# 367
출산 휴가 (2)
(367)
구건호는 최근에 가정의 따듯함을 비로써 느끼는 것 같았다. 그것은 김영은의 출산 휴가로 아침마다 같이 밥을 먹고 나오니 그런 것 같았다. 혼자 있을 때는 귀찮아서 대충 먹고 나왔지만 김영은이 동산만한 부픈 배를 가지고도 찌개나 국을 끓여주니 좋았다.
“갔다 올게.”
“잘 다녀오세요.”
이런 말이라도 아침에 나갈 때 주고받으니 집안에 따듯한 공기도 흐르는 것 같았다.
오늘도 구건호는 김영은의 전송을 받고 벤틀리 승용차를 타고 강남 신사동의 빌딩으로 출근을 했다.
비서 오연수가 조간신문과 커피를 갖다 주었다. 구건호는 다리를 꼬고 앉아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았다. 구건호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난데 전화 받을 수 있어?”
“받을 수 있어. 말해 봐.”
“우리 경리직원 은형남씨 이야기 들으니까 지에이치 산하의 각사가 전년도 실적보고하고 금년도 사업계획을 보고했다는데 우리만 빠진 것 같네.”
“흠, 그랬던가? 그럼 간단히 전화로 지난해 손익만 이야기 해봐.”
“잠간만, 자료를 보고 이야기할게. 전화 끊지 말아봐.”
잠시 후 누나가 손익을 보고했다.
“로지스틱스는 지난해 매출이 총 14억원으로 집계되었네.”
“흠.”
“거기서 기사들 인건비하고 차량 수리비 같은 경비 들어간 것이 10억이고 일반관리비가 2억 나갔어.”
“그런가?”
“그런데 나는 운송경비와 일반관리비 나누는 것이 가끔 헷갈려.”
“경리 담당한다는 은형남씨에게 물어봐.”
“그렇게 하고는 있어. 로지스틱스는 금융비용은 없으니까 경상이익이 2억 나왔어.”
“흠, 그래?”
“그럼 남은 2억은 이제 어떻게 하는 거야?”
“지금 나에게 불러준 연말 결산자료를 이제 모두 거래하는 공인회계사에 갖다 줘야 돼. 그럼 거기서 로지스틱스에서 회계처리한 것들이 맞나 안 맞나 감사를 하게 돼. 그걸 외부감사라고 부르지.”
“응, 그건 알 것 같아.”
“그럼 외부감사 자료가 나오고 공인회계사의 이상 없습니다 하는 의견이 나오면 법인세를 신고하고 미리 법인세를 예납하던가 아니면 나중에 국세청에서 고지서 나오면 내던가 해야 되겠지?”
“그리고 나머지는?”
“경상이익 2억 남은 데서 법인세 20%를 낸다면 4천만원을 내야 되겠지?”
“그렇지.”
“그런데 법인세는 과표가 2억이하면 10%만 내도 되니까 절세 방법은 경리 담당자나 거래하는 회계사하고 의논을 해봐.”
“응, 무슨 말인지 알겠어.”
“경상이익 2억에서 법인세 20% 냈다고 가정하면 1억 6천만원이 남게 되겠지? 이게 바로 세후 순이익이 되는 거야. 이걸 주주한테 배당하는 거지.”
“아하, 그럼 1억 6천만원을 구사장한테 보내는구나.”
“아니야. 돈을 몽땅 다 보내면 거기서 갑자기 운영자금 쓸데 애를 먹을 수도 있겠지?”
“그러겠지.”
“그래서 상법에 보면 이익금의 10분의 1이상은 적립하라 이렇게 되어있어. 이걸 법정준비금, 또는 법정 적립금이라고 불러. 재벌 기업들은 이 준비금 쌓아 놓은 것만 해도 어마어마하지.”
“그럼 1억 6천만원에서 법정준비금 1천 6백만원을 빼면 얼마가 남나. 잠깐만, 내가 계산기 한번 두드려 볼게.”
“계산기 두드릴 필요 없어. 1억 4천 4백만원 남아.”
“빨리도 계산하네. 그럼 이걸 주주에게 준다는 건가?‘
“그렇지.
“그렇게 되는 거구나.”
“현재는 로지스틱스 주주가 내가 100%야. 주주는 여러 명이라도 상관이 없어. 원래 주식회사 개념은 여러 주주가 돈을 합쳐 회사를 만든다는 취지니까.”
“이제 알 것 같아.”
“이렇게 하지.”
“뭘?”
“내가 누나에게 5% 주식을 주지. 그럼 나는 95%고 누나가 5%지분을 갖게 되는 거야. 누나가 돈은 투자 안했지만 내가 5%를 준다면 누나는 배당을 받기위해 더 열심히 뛰겠지.?”
“그야, 그러겠지.”
“그럼 공인회계사 외부감사 의뢰할 때 주주 변동이 생겼다고 하고 주주는 구건호 95%, 구건숙 5%라고 이야기 해줘. 그리고 세무서 신고도 해야 될 거야. 처음 설립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주식은 내가 누나에게 5% 증여하는 방식이 될 거야.”
“정말 5% 나를 주는 거야?”
“지금 지에이치 모빌의 송장환 사장이나 미디어의 신정숙 사장, 중국 소주시의 김민혁 사장 등이 모두 5%의 지분을 갖고 있어.”
“그으래?”
“그래서 그 사람들이 월급 외에 5% 배당을 받기위해 열심히 뛰는 거야. 지금 이 회사들 매출 신장율이 높잖아? 나는 지분이 5%줄어들었지만 회사가 커지면 그게 더 이익이 되지.”
“그렇게 되는 거구나.”
“자, 이제 누나도 지에이치 로지스틱스의 당당한 주주야. 열심히 해봐.”
“알겠다. 고맙다. 그리고 열심히 할게.”
1월 말이 되자 양평에 사는 최 화가가 타워팰리스로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이모님.”
“죄송하긴! 나도 영은이 하고 오래간만에 함께 있으니 좋아요.”
최 화가가 김영은의 출산을 앞두고 도와주러 왔지만 불편한 것은 있었다. 우선 옷을 벗고 거실에 나오기가 난처했다. 방안에서 꼭 옷을 입고 나와야 했다. 그건 아마 최 화가도 같은 입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점도 있었다. 우선 식탁이 풍성해 졌다. 최 화가는 음식 솜씨가 좋았다. 또 음식을 쉽게 빨리 만들었다. 뚝딱하면 동태찌개가 나오고 뚝딱하면 호박전이 나오고 그랬다. 맛도 좋았다.
“오빠, 우리 이모 음식솜씨 좋지?”
“음, 좋아.”
“한때 양평에서 전통 음식점 차리려고 했었어. 화가가 요리하는 전통음식점 말이야.”
“흠, 그거 잘될 것 같은데?”
“화가가 직접 만드는 음식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더 왔겠지?”
구건호가 최 화가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모님, 지금이라도 하시죠?”
“아휴, 싫어. 돈 주고 하래도 이젠 못해. 나이 들어 허리 아파 못해.”
“사람 두고 하면 되지요?”
“아휴, 싫어. 복잡하게 살기 싫어. 그리고 내가 돈은 벌어서 뭘 해? 자식도 없는데.”
자식도 없다는 말에 구건호와 김영은은 미안한 생각이 들어 입을 닫았다.
최화가가 온 후로 구건호는 제법 살이 붙는 것 같았다. 또 김영은이 집에 있어 이제는 술도 안마시고 집에 일찍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당분간 모리에이꼬를 만나러 일본 가긴 틀렸네.”
설빙의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옛날 같으면 예쁜 여자를 보면 다 취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덜했다.
구건호는 집에 퇴근하고 가면 김영은이 최 화가와 함께 쭈그리고 앉아 김치를 담그든가 마늘 같은 것을 까고 앉아 있는 것을 보면 영락없이 집에 들어온 느낌이 났다.
“기름은 한 방울만 넣고 고춧가루는 반 숟갈만 넣어.”
또 김영은이 음식 만드는 법을 최 화가에게 배우니 좋았다. 밥상에는 늘 신선한 야채와 생선이 올라왔다.
“맛이 괜찮아요?”
어느 날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최 화가가 구건호에게 말했다.
“국물 맛이 좋네요.”
“오늘 만든 건 다 영은이가 만든 거예요.”
“그래? 어쩐지 맛이 없더라.”
“금방 좋다고 해 놓고! 그럼 먹지 마!”
김영은이 냄비를 가져가려고 하였다.
“아냐, 아냐. 좋아. 좋아.”
저녁을 먹고 셋은 언제나 과일을 먹으며 거실에서 TV를 보았다. 뉴스를 보고 드라마도 보았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도 하였다. 최 화가가 예술을 이야기 할 때는 구건호와 김영은이 주로 듣는 입장이었고 구건호가 경제를 이야기 할 때는 최 화가와 김영은이 주로 듣는 입장이었다. 또 김영은이 건강을 이야기 할 때는 최 화가와 구건호가 듣는 입장이었다. 모두 그 계통에서는 일가견들이 있는 사람들이라 자기 분야에서는 해박했다.
어느 날 구건호가 출근하고 최 화가와 김영은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얘, 구서방이 생활비는 잘 주냐?”
“안 줘.”
“안 줘? 너 의사 월급 받는다고 그래서 그러나?”
“의사 월급 얼마 받느냐고 한 번도 안 물어보았어.”
“그럼 각자 수입은 각자가 관리하는 건가?”
“그렇지는 않아. 두 달 전에 생활비하라고 딱 한번 받아보았어.”
“그래? 딱 한번만? 얼마를 주는데 한번만 줘?”
“그때 생활비 하라고 5천만원 주데.”
“5천만원? 세상에!”
“한 달에 생활비 천만원씩 준다고 하면서 5개월 치라고 하면서 주었어.”
“한 달 생활비가 천만원? 세상에! 그럼 구서방 한 달 수입이 얼마야?”
“몰라. 이야기 안하니까. 배당금은 모르겠고 월급은 여러 개 회사에서 들어와 3,500만원이란 소리를 들은 것 같아.”
“월급만 3,500만원? 허, 웬만한 사람 1년 연봉보다도 많네. 너, 그럼 한 달 천만원씩 받아서 뭐하냐?”
“그냥 갖고 있어. 5천만원 받은 것도 그냥 갖고 있어.”
“그럼 밍크코트도 사고 명품 핸드백도 사고 좀 그래라.”
“밍크코트? 호호, 그런 것 입고 다니면 쪽 팔려.”
“하긴 네가 밍크코트 입고 명품 핸드백 흔들거리고 다니면 그것도 우습게 보이긴 하겠지. 여자들이 아무리 호사스럽게 치장해도 서울대 의대 나온 네 간판만 하겠냐? 그런데 네 엄마나 너는 어떻게 그렇게 똑같이 경제관념이 없냐?”
“그 엄마에 그 딸인 걸 어떡해.”
“구서방이 기업하는 사람인데 배당금 얼마 받았다는 이야기는 정말 안 해?”
“안 해. 나도 알고 싶지 않고.”
“너 구서방 공장 가봤냐?”
“안 가봤어. 나 그런데 가는 것 좋아 안 해. 사장 가족이 나타나는 걸 좋아할 종업원이 어디 있어.”“종업원이 많은가?”
“직산에 있는 공장은 500명이라는 소리를 들었어.”
“500명? 세상에! 그렇게나 많아?”
“아산에도 공장이 있는데 거긴 150명이래.”
“거기도 150명? 그럼 일 년에 얼마 버는 거야?”
“몰라, 아, 이모 딴 이야기 해. 재미없는 이야기 하지 말고.”
“알았다. 그런데 구서방이 참 대단하긴 대단한 사람인 모양이다.”
2월이 되었다. 이번 음력설에는 구건호만 잠깐 차례를 지내러 왔다. 김영은은 만삭이라 오지 못했다. 엄마가 구건호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네 처, 혼자 어디 못 다니게 해라. 그리고 이슬이 비치면 바로 병원에 데리고 가.”
“알았어요.”
“이모님이 오셔서 안심은 되지만 그래도 사람일은 모르는 거니까 입원준비는 항상 하고 있어야 돼.”
“알겠어요.”
구정이 지나고 며칠이 지난 날 이었다. 김영은이 어지럽다고 해서 안방 침대로 갔다. 구건호는 김영은의 허벅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 이거 왜 이래?”
“만삭이 되면 다 그런 거야.”
허벅지의 살이 심하게 트인 것이 보였다. 구건호는 김영은의 손을 잡아주고 뺨에 뽀뽀를 해주었다.
다음날 새벽 이슬이 비친다고 하여 구건호와 이모는 허둥지둥 입원 준비물을 챙겼다. 아직은 엄찬호가 벤트리 승용차를 가지고 올 시간이 아니므로 구건호는 랜드로버에 김영은과 이모를 태우고 서울대 병원으로 갔다.
서울대 병원은 대기시간이 길기로 악명 높은 곳이지만 김영은은 이곳에 근무하는 의사라 바로 입원이 가능했다.
병원 복도에 앉아 있는 구건호에게 이모가 말했다.
“구서방은 이제 회사에 가 봐요. 아기는 오늘 나올지 내일 나올지 모르니까 가서 일봐요.”
“괜찮겠어요?”
“뭔 일 있으면 연락 할게요.”
“그럼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병원을 나왔다. 갈 때는 출근시간이 되어서 그런지 차들이 엄청 막혔다. 구건호는 엄찬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지금 병원에 와 있다. 차가 막혀서 조금 늦을지 모르니까 타워팰리스 아파트에서 잠깐 기다려.”
“예, 알겠습니다.”
엄찬호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