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6
출산 휴가 (1)
(366)
구건호가 사무실에 도착하여 오후 2시경 김민혁에게 전화를 하였다.
“많이 바쁜 모양이네? 사무실에도 안 있고.”
“하하, 괜찮아. 바쁜 건 없어.”
“우리 지난해 실적은 거기 홍과장이란 사람한테 이메일은 보냈었어.”
“알고 있어. 그래도 사장 목소리는 한번 들어야지.”
“지난해에는 100억 겨우 턱걸이해서 104억을 했네.”
“수고했다.”
“매출원가는 80억이고 일반관리비는 8억이 지출됐어.“
“흠, 그래? 일반관리비가 8%는 넘지 않았네.”
“일반관리비 줄이려고 애는 썼는데 잘 안되네. 과장 한사람 인건비가 관리직이다 보니 원가가 아니고 일반관리비에 들어가 안 줄어들었어.”
“그랬나? 그 과장이란 사람이 일은 잘 하지?”
“잘 해. 요즘 여기 통반장은 걔가 다해.”
“그런가?”
“여긴 금융비용은 따로 없으니까 경상이익 16억으로 보면 돼.”
“흠, 고생했다.”
“여기서 공사세(公司稅: 법인세) 내면 한 12억 정도 떨어질 거야.”
“다, 배당 할 건가?”
“그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구사장도 환러스지 공사에 들어가는 돈이 있을 것 같고, 나도 돈이 필요해서 그래.”
“흠, 그래?”
“그럼 구사장이 11억 4천만원이 돌아가고 내가 6천만원 배당이 돌아가.”
“유보금 안 남겨도 될까?”
“돈이 계속 흘러나가고 흘러 들어오고 하니까 빼내도 지장은 없어.”
“그럼, 그러지 뭐.”
“내가 이번에 6천만원 배당 받으면 인천에 부모님 살고계신 아파트 융자받은 것 갚으려고 해. 그러면 내가 한국의 빚이 없어져.”
“흠, 그런가?”
“한국 빚만 없어져도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아. 중국 아파트 살 때 진 빚은 내년부터 갚아 나가면 돼.”
“그런가?”
“어쨌든 그렇게 되면 한국에 아파트 한 채 있고 중국도 아파트 한 채 있으니까 중산층은 되는 셈이야. 이렇게 되면 내가 아마 이석호 보다 나을걸?”
“이석호는 지금 심양에 있나?”
“심양에 있겠지. 좀 도와주고 싶어도 걘 워낙 싸가지가 없던 놈이라 동정이 안가. 하지만 이제 나이가 먹으니까 이전처럼 그런 감정은 많이 없어지진 했어.”
“도와주진 못해도 말이나 친절하게 해 주면 되겠지.”
“참, 여기 통역으로 있다가 안당시 문재식한테 가 있는 조은화 알지?”
“알지, 나도 걔한테 중국말 기초는 배웠었는데.”
“걔가 지금 문재식 부부 후다오(가정교사)를 하고 있는데 문재식 와이프가 중국어를 그렇게 잘한다고 하네.”
“재식이 와이프가? 중국어 배운지도 얼마 안 되잖아?”
“조은화가 그러는데 배운지 얼마 안 되었어도 그렇게 잘한다고 그러네. 하나를 알려주면 열 개를 응용한다고 하면서 자기가 이제껏 한국 사람들 가정교사 했지만 그런 사람 처음 본다고 했어.”
“허허. 재식이 와이프가 그런 재주가 있었나? 국문과 졸업생이라 한문은 좀 알거야. 그런데 어학은 좀 다른데.”
“내가 어디서 들은 이야기인데 어학은 천부적으로 타고 난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숫자에 타고 난 구건호가 있듯이 말이야.”
“하하, 나는 그냥 암산이나 흉내 내는 정도지. 어쨌든 재식이 와이프가 어학에 소질이 있다니 기특하군.”
“딩딩 회사는 딩딩이 애덤캐슬러에게 지난해 실적과 금년 목표를 보고 했다는데 보고 받았지?”
“응, 디욘코리아는 어제 보고 받았어. 총 매출이 528억이야.”
“햐, 528억? 대단하네. 생긴 지도 얼마 안 된 회사인데.”
“디욘이라는 브랜드 때문이지 뭐.”
“박종석이 하고도 통화해 보았는데 지에이치 모빌은 지난해 1,102억 매출을 올렸다고 하네. 정말 대단해. 구건호가 내 친구지만 정말 존경스럽다.”
“더, 해야지. 아직 멀었어.”
“지에이치 모빌은 종업원이 벌써 500명이라니 대단하지 않아? 난, 어디가도 진짜 구건호가 자랑스러워.”
“하하, 쓸데없는 소리! 들어가거라.”
구건호가 전화를 끊고 생각해 보았다.
[김민혁이나 미디어의 신정숙 사장이나 금년에도 똑 같이 6천만원씩 배당을 받아가네. 그럼 자기들 급여까지 합치면 다들 억대 연봉은 훌쩍 넘으니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겠군.]
[더구나 신정숙 사장은 강남에 부채를 안고서 집을 샀더라도 12억이나 간다고 하니 앉아서 1년에 3억 5천을 번 셈이야. 배당받은 것 하고 월급까지 합치면 일년에 4억 5천을 번 셈이야.]
[그러고 보니 김민혁이나 문재식은 인천에 집을 샀기 때문에 입주해서 편하게 살긴 해도 아파트 값은 한 푼도 안 올라갔을 거야. 이러니 사람들이 강남, 강남 하지 않겠어? 이제 신사장 집은 15억, 18억, 20억, 점점 올라가는데 인천의 집은 3년 가고 5년 가도 제자리에서 맴돈다면 정말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해질 거야.]
[그럼 강남의 집 한 채면 인천에 10채를 사네. 우리가 학교를 다닐 땐 인천서 아파트 두 채면 부자 소리를 듣는데 신사장은 곧 10채를 살 힘이 생기겠네. 문재식은 태어나서 평생 아파트에서 살아보지 못하다가 거의 40세가 다 되어 처음 살아보는데 말이야. 이러니 흙수저, 금수저라는 말이 나오지.]
[언젠가 지금 괴산에 내려가서 청학정사에 살고 있는 강남 박도사가 이야기 했지? 부자는 만족하면 부자라고 했지? 그래, 지금 신정숙 사장이나 김민혁이나 문재식은 아주 만족해하는 것 같아. 그들은 부자가 되었어.]
구건호가 문재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구사장! 그렇지 않아도 전화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무슨 일 있어?”
“그게 아니고, 지금 지에이치 산하 각사들이 구사장에게 전년도 실적과 금년도 계획을 보고하는 것 같은데 난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으니.”
“거긴 이번에 생략해. 버스 운행한지 두 달도 안됐잖아.”
“매일 매일 수입금 기록은 철저히 하고 있어. 내가 하지 않더라도 중국 애들이 이건 아주 철저해. 영운부에서도 하고 경리에서도 하고 있어.”
“그래?”
“창춘 부사장 책상 뒤 벽에는 매일매일 차량별, 노선별, 기사별 수입금 현황이 붙어 있어.”
“하하, 그래?”
“현재 고속버스 5대에 하루 150만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어. 내년에 증차 20대를 채우자니깐 그렇게 못하고 10대 정도 운행될 거라고 창춘이 그러네. 차는 수요 예측을 하고 증차를 한다고 그랬어.”
“흠, 그래? 참, 제수씨나 아기는 다 건강하지?”
“응, 건강해. 아기가 밤에 자주 울어서 그게 문제인데 괜찮아.”
“다행이다.”
“아, 그리고 제수씨가 그렇게 중국어를 잘 한다며?”
“잘 하긴. 이제 중국에 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아냐, 소문이 여기저기서 들리던데? 어학에 천부적 소질이 있다는 소문이 들려.”
“천부적은 무슨 천부적! 열심히는 하고 있는 것 같더군. 우린 조은화 한테 배우면 그 시간뿐인데 와이프는 그날 배운 걸 하루 종일 중얼 거리고 다녀. 소문이 났다면 천부적인 것은 아니고 아마 노력일거야. 밥하면서 빨래하면서도 계속 중얼거리니까.”
“거봐. 그게 대단한 거지. 하여튼 대단하다. 토요일, 일요일은 산책도 하냐? 아직 아이가 밖에 못 나가니 집에만 있겠구나.”
“웬걸, 와이프가 나보고 아기 좀 보라고 하고 자전거 타고 요즘 토요일 일요일만 되면 날라 다녀.”
“날라 다녀?”
“중국말 해보고 싶어 미치겠는 모양이야. 자전거 타고 재래식 시장에 가고 길거리 호떡도 사오고 학생들 하고도 공원 같은 데서도 잘 떠들고 그래. 실전 연습한다고 말이야.”
“하하, 그래? 그런 정신이면 됐다.”
구건호는 전화를 끊고 통역 조은화를 생각해 보았다. 약속시간에 잘 나오지도 않고 매너도 마음에 안 들지만 자기를 비롯하여 김민혁이나 문재식 부부에게 중국어를 가르쳐준 공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만나면 용돈이라도 주어야 하겠군. 우리 지에이치를 위해서 큰 공적이 있는 사람이네.”
구건호는 우선 문재식 부부에게 아기 탄생에 대한 축하금이나 보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상 서랍 속에서 100만원을 꺼냈다. 그리고 홍과장을 불렀다.
“이거 100만원인데 중국으로 부쳐주세요. 외화 송금해 주세요. 주소와 중국은행 계좌번호는 여기에 적혀 있어요.”
구건호는 돈과 메모지를 홍과장에게 주었다.
금요일 저녁이 되었다.
도곡동 타워팰리스로 온 김영은이 출산 휴가원을 제출하였다고 하였다. 이제 임신9개월이 되었으니 휴가원을 제출한 모양이었다.
“잘 했다. 이제 여기 아파트에서 조용히 음악이나 듣고 독서나 해.”
“나, 명륜동 아남 아파트에서 가져올 것들이 있는데?”
“내일 나랑 같이 아남아파트에 가자.”
“그런데 오빠 출근하고 나 혼자 집에 있다가 아프면 어떡하지?”
“글쎄다. 산통이라도 있게 되면 그것도 문제겠다. 가정부 아줌마 한분 오라고 할까?”
“가정부 보다는... 이모님 좀 오시라고 하면 안 될까?”
“그건 알아서 해. 그런데 이모님 한테 좀 미안한데.”
“출산일이 한 달 남았으니 한 보름 정도 지나서 이모님 오시라고 할게.”
“알았다. 방은 많으니 오셔서 같이 지내도록 해봐.”
구건호는 토요일 김영은과 함께 명륜동 아남아파트엘 갔다. 김영은은 역시 걷는 것도 힘들어 했다. 배가 동산 만하게 불러 있었다. 구건호가 오래간만에 아남 아파트엘 와 보았다.
“어? 벽에 붙은 그림엽서 다 치웠네.”
“정신없는 것 같아서 다 떼었어. 따로 보관해 놓았어.”
“여기 있는 짐 다 타워팰리스로 옮기고 여기는 방 빼자.”
“아직은....”
“아기 낳고도 계속 서울대 병원 다닐 거야?”
“생각 좀 해 보고.”
구건호는 김영은이 주는 물건들을 가방에 담았다. 책도 있고 주로 무슨 옷가지 같은 것들이었다. 김영은이 바닥에 앉아서 옷을 정리하는데 옆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구건호가 김영은의 뺨에 입을 쪽 맞추었다.
“아휴, 주책! 저리 가요!”
구건호가 이번엔 김영은의 동산만한 배에다 대고 입을 맞추었다.
“아휴, 저리가요!”
“당신한테 뽀뽀한 것 아니야. 우리 아기한테 한 거야.”
말없이 옷을 개고 있던 김영은이 구건호를 돌아보고 웃으며 말했다.
“우리 여기 온 김에 오빠와 처음 만났던 경양식집에 가요.”
“그럴까? 거기가 대학로 에술극장 부근 어떤 호프집 2층이었던 것 같은데.”
“맞아요.”
구건호가 예술극장 쪽으로 랜드로버 승용차를 몰았다.
“여기 오니 기분이 새롭네.”
“그때 당신을 처음 만나서 굉장히 쑥스러워 했던 것 같아.”
“나는 무슨 아저씨 같은 사람이 나왔나 그랬어.”
“아저씨? 하하, 내가 그랬나?”
“그때 오빠가 그림 이야기를 하는데 굉장히 유식해 보였어. 알고 보니 전부 신사장한테 얻어들은 것들이었어.”
“왜, 지금도 유식하지.”
“피, 순 엉터리!”
“그때 처음 만나서 스테이크 먹었던 것 같아. 그것 시키자.”
“좋아요.”
김영은도 행복한지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미소를 자주 띠었다.
“많이 먹어. 뱃속에 아기도 있으니.”
구건호가 김영은의 나이프를 들고 고기를 썰어주었다.
“오빠, 우리 갈 때 성신여대역 쪽으로 가자. 거기 스타벅스 쪽으로 해서 성북동 길상사 쪽으로 드라이브 해요.”
“아주 삼청각까지 가자.”
둘은 사이다까지 마셔가며 행복한 표정으로 고기를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