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363화 (363/501)

# 363

GH 각사 내부 결산 보고 (1)

(363)

서울대 정책대학원 수료식 날이 되었다.

비록 학위도 없는 1년 짜리 과정이지만 사회 저명인사들로 구성된 학생들은 수준 높은 교육도 받고 서로의 인맥도 쌓는 계기가 되었다. 서로 물밑 접촉이 많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은밀한 거래도 있었을 듯싶었다.

구건호만 해도 큰 효과를 보았다. 우선 이진우 장관을 알게 되어 그가 결혼식 때 주례도 서 주었고 그 인연으로 A전자와도 접촉하게 되었다. 앞으로 정치자금을 위하여 어떤 요구를 할지는 몰라도 구건호는 이익을 받은 범위에서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

교수들이 와서 인사를 하였다.

“교육받느라고 수고들 하셨습니다.”

교수들이 일렬로 서서 악수를 해주었다. 수료증 전달을 위해 총장이 나왔는데 가운을 걸치고 박사모를 쓰고 나왔다.

총장은 한사람씩 일일이 수료증을 주고 악수를 하였다. 이 장면은 사진사가 와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20명 모두 한 장씩 찍었다.

수료식이 끝나고 종강 파티 겸 망년회로 63빌딩 중식당을 가기로 했다. 구건호가 지도교수 몇 사람에게 63빌딩을 가자고 하니까 모두 손사래를 쳤다.

“사회 저명인사들만 가시는데 우리 교수가 끼면 재미가 없습니다. 가서 즐겁게들 노세요.”

구건호도 교수들에게 강력하게 가자고 권하지는 않았다.

63빌딩 중식당 백리향은 넓은 방이 많았다. 20명이 들어가고도 널널했다. 사람들은 코스 요리를 먹어가며 즐겁게 이야기 했다. 최근에 바쁜 일이 많아 학교를 나오다 안 나오다 하는 김앤정 로펌의 김영진 변호사도 오늘은 구건호가 특별히 불러서 나왔다.

“전망 좋은데?”

“그러게 강 건너 불빛도 아름답네.”

“한잔해라.”

“난, 못해. 넌 기사가 있지만 난 직접 운전하고 가야 되잖아.”

“너도 기사 하나 둬라.”

“기사는 돈 많은 사장님들이나 두지, 나 같은 변호사가 어떻게 기사를 둬?”

“김앤정 로펌은 돈 잘 벌기로 소문난데 아냐?”

“아휴, 아무리 돈 잘 벌어도 구사장에겐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기지.”

음식은 코스요리라 조금씩 계속 나왔다. 모인 사람들이 20명이나 되다보니 끼리끼리 모여 떠들었다. 이진우 장관이 회장이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수정방’이라는 중국술 술병을 들고 일어섰다.

“늘그막에 다들 공부하느라 고생들 하셨습니다. 제가 한잔씩 올리겠습니다.”

이진우 장관은 돌아다니면서 중국술을 한잔씩 따라주었다. 술을 따라 주면서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를 꼭 했다.

“박의원 지역구는 다음 선거 때 상대방 정당에서 전략 공천할 가능성이 커.”

“지검장님은 내년엔 서울로 오셔야지요? 오실 것 같은데?”

“사령관님은 입만 닥치고 계시면 만수무강할 수 있습니다.”

이진우 장관이 마침내 구건호가 있는 자리에 왔다. 먼저 김변호사에게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나, 장관 그만두면 김앤정 로펌에 자리 하나 만들어 줄 수 있겠소?”

“별 말씀을요. 지금 계신자리 몇 년 더 하셔야지요.”

이장관이 구건호에게도 술을 따라 주었다.

“총무, 1년 동안 고생 많았소. 그런데 관상을 보니 총무가 내년에는 돈을 억수로 벌겠는데?”

“아이고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진우 장관이 하는 말이 어떤 의미를 두고 하는 말인지, 그냥 덕담인지는 몰라도 듣기에는 좋았다. 구건호도 이날은 꽤 취하도록 마셨다.

구건호가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도착하니 거실과 안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여보, 나 왔어.”

구건호가 비틀거리며 안방 문을 열었다. 김영은은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사랑해, 여보.”

구건호가 침대로 가서 김영은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아휴, 술 냄새!”

“조금 마셨지.”

“아휴, 저리 가요. 뭔 술을 그렇게 마셔!”

“오늘 이진우 장관이랑, 김앤정 로펌의 김영진 변호사랑 모두 같이 마셨지. 이것 봐. 서울대 수료증이야. 오늘 종강 파티 겸 망년회 했지.”

김영은이 반쯤 일어나 앉으며 코를 막고 수료증을 쳐다보았다.

“알았어요. 이제 그만 건너 방에 가세요. 술 냄새 너무 나서 나토 토할 것 같아.”

“알았어. 건너 방으로 간다. 빠이빠이. 사랑 한다 영은아.”

“알았어요. 빨리 나가요!”

구건호는 안방을 나와 건너 방으로 가더니 옷도 벗지 않은 채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한국에 있는 방송국에서 연말 연기대상 시상식이 있는 날이었다. 설빙이 상을 타게 되었다. 다른 연예인과 기자들, 그리고 매니지먼트사의 관계자들이 대거 방송국의 행사장에 참석했다.

“축하해, 설빙”

설빙은 지금은 아니지만 전에 자기의 메니지먼트사였던 BM엔터테인먼트사 이사의 인사를 받았다.

“이사님 오셨어요?”

BM엔터테인먼트 이사는 말쑥한 양복 정장에 붉은 넥타이를 매고 나왔다.

“언니 축하해요.”

최근 중국을 왔다 갔다 하는 리아도 와서 인사를 해주었다. 설빙은 자기가 출연을 거부했던 <욕망의 찬가>에서 리아가 요즘 뜨는 것 같아 괜히 못마땅했다.

“너, 요새 얼굴보기 힘들다.”

BM엔터테인먼트 이사가 눈웃음을 치며 대신 말했다.

“리아가 요즘 중국 드라마 촬영 때문에 바빠서 시간내기가 힘든 모양이야.”

설빙이 리아를 쳐다보며 말했다.

“참, 너 중국드라마 찍는다는 건 인터넷에서 봤어. 너도 이번에 상타니?”

“아니에요. 상 타는 친구들 축하해 주러 왔어요.”

“그래? 중국드라마는 잘 되니?”

“괜찮은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은 극 초반인걸요.”

옆에서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BM엔터테인먼트 이사가 말했다.

“리아가 출연하는 드라마는 <시광여몽>이라는 일일극인데 시청률이 괜찮은 모양이야. 한국의 지에이치 미디어라는 곳에서 펀딩한 드라마야.”

“지에이치 뭐라고요?”

“지에이치 미디어. 지에이치 갤러리도 갖고 있는 회사야. 거기 언젠가 갤러리 초청 받은 적 없었나?”

“받았던 것 같아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설빙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길이 없었다.

[지에이치 모빌의 구건호라는 사람이 투자한 것이 틀림없어. 리아가 꼬리친 것이 틀림없어.]

설빙은 연예인이기 때문에 그동안 키스신도 많이 찍어 구건호와 키스 한번 한 것은 별 일도 아니었다. 구건호 뿐만 아니라 신문사 사장 아들하고도 키스했고 대통령 아들하고도 키스를 해보았다. 키스 한 번한 구건호의 펀딩 받은 드라마를 찍는다는 것이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지만 왠지 싫었다. 아니 리아의 미모가 싫었다.

“너, 오늘 상 안 받지? 여기 앞줄은 상 받는 사람들 앉는 곳이니 뒤에 가서 앉아라. 곧 행사가 시작될 모양이다.”

리아가 쫓겨나듯이 뒷자리로 갔다.

사실 설빙은 구건호가 그렇게 탐탁하지는 않았었다. 연예인 같이 생기지도 않았고 돈이 좀 있다고는 하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재벌 아들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빌딩 하나 가지고 있고 지방의 부품공장 하나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하가다가 돈 좀 만지니까 자기 같은 스타나 꾀시려고 하는 사람 정도로 보았다. 더구나 자기 같은 스타는 요즈음 재벌아들 아니면 나이어린 남자와 연애하는 것이 대세인데 구건호는 나이가 많아 싫었다.

“구건호? 흥! 돈은 좀 있는 모양이네. 동경의 뉴오따니 호텔 소 연회실인 겟규(월궁)를 통째로 빌렸든 작자이니.”

그러나 설빙은 구건호가 통 연락이 없는 게 이상하긴 했다. 설빙은 구건호가 김영은과 결혼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또 구건호 곁에는 항상 잊지 못하는 나이어린 춤추는 게이샤 모리 에이꼬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이후 설빙은 구건호도 싫지만 리아는 더욱 싫어 방송국 복도에서 만나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해가 바뀌어 1월이 되었다.

“나도 이제 38살이 되는가?”

디욘코리아의 시무식 때문에 벤트리 승용차를 타고 아산으로 내려가고 있는 구건호의 마음은 착잡했다.

[40세가 되기 전에 1조원을 벌겠다고 했는데 너무 목표를 크게 잡은 모양이네. 지금 38세인데 무슨 수로 2년 후에 1조원을 벌겠나?]

[양주에 있는 방일가스에 있다가 아산의 와이에스테크의 경리사원 면접 보러 올 때가 32살이었는데 벌써 6년이란 세월이 흘렀네. 많이 벌고 가정도 이루었지만 내 목표 1조원은 꿈으로 끝날 건가?]

구건호는 직산의 지에이치 모빌에 들리지 않고 바로 디욘코리아로 갔다. 직원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윤상무가 사장실을 들어왔다.

“종업원들은 모두 강당에 모였습니다. 오늘 시무식 때 말씀하실 사장님 신년사입니다.”

윤상무가 낭독할 원고를 주었다.

“그럼 갑시다.”

강당에는 150명 가량의 종업원들이 모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단상 위에는 임원들이 단하에 있는 종업원들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정면의 벽에는 ‘디욘코리아 20XX년 시무식’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단상위에 앉아있던 임원들이 일어나 구건호에게 인사를 하였다.

총무과장의 사회로 시무식이 시작되었다.

구건호는 신년사 원고를 보지 않고 아주 짧게 했다. 지난해에 고생들이 많았다는 것과 새해에는 매출이 늘어나고 중국과 인도의 수출량도 늘어나 회사의 전망이 아주 밝음을 이야기 해주었다.

시무식이 끝나고 나갈 때 구건호의 제의로 임원 4명이 모두 모두 강당 문 앞에 일렬로 서서 나가는 종업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해주었다. 150명 전체를 그렇게 해주었다.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사장님도 복 많이 받으십시오.”

임원 모두가 일렬로 서서 손을 잡아주자 종업원들은 모두 좋아했다. 주방아줌마와 경비원, 청소원까지 모두 악수를 해주었다.

다음날 구건호가 신사동 빌딩으로 출근했을 때 홍과장이 전년도 결산 문제 때문에 사장실을 들어왔다.

“각사의 신년도 예산안은 지난 12월 말에 사장님 지시대로 그대로 승인한다는 이메일 회신을 보낸바 있습니다.”

“흠.”

“지난해 내부결산 보고는 어떻게 할까요? 12월분이 마감 안 되어 집계가 나오지 않은 회사들도 있는데요?”

“12월은 추정손익으로 하고 이달 10일까지 지난해 연간 내부결산 끝내라고 하세요. 다음 주 내가 보고 받겠다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특히 지에이치 모빌과 디욘코리아는 경리책임자가 임원회의 석상에서 발표하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규모가 작은 로지스틱스는 서류보고로 대체한다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미디어와 개발은 내가 여기 있을 때 편한 시간대에 보고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이메일을 문서형식으로 해서 각사에 보내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그런데 홍과장이 꼭 기획조정실장 같네.”

“호호, 지에이치 그룹이 생기면 기획조정실장 되는 게 제 꿈이에요.”

“허허. 그래요?”

홍과장이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데 다시 구건호가 홍과장을 불렀다.

“중국에도 결산보고를 하라고 해주세요. 이메일로 서류 보고를 해달라고 하세요. 소주시의 기차배건 유한공사하고 귀주성 안당시의 안당 GH객운 유한공사 두 군데 모두 보내세요.”

“알겠습니다.”

홍과장이 살며시 문을 닫고 나갔다.

구건호가 소파에 기대어 조용히 생각해 보았다.

[홍과장이 기획조정실장 해도 될까? 성격이 차분하고 숫자에 밝으니 해도 되겠지. 여자인데 잘 해낼 수 있을까? 세무사 자격도 있어서 믿음직스럽긴 하지만 글쎄...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