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359화 (359/501)

# 359

1차 벤더 업체 (2)

(359)

화요일이 되었다. 구건호가 신사동 빌딩으로 출근을 하였다.

상해에 가 있는 신정숙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제 정식 계약 서명은 했습니다. 기자들이 많이 몰려왔네요.”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저는 다시 한국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세요. 상해 구경할 곳 있으면 하고 오세요.”

“지에이치 미디어에 경리와 총무를 담당하는 여직원이 있습니다. 이름이 노형숙인데 통장과 도장을 맡겨놓고 왔습니다. 혹시 외화송금 심부름 시킬 일 있으면 시켜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연기자 캐스팅 완료되면 100만불 보내기로 했는데 오늘 보내죠. 더군다나 신사장님이 가셔서 서명도 했으니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노형숙이에게 전화를 해 놓겠습니다. 걔가 지난번에 5만불 송금할 때도 일을 해봐서 외화 송금하는 일을 잘 알겁니다.”

“알겠습니다. 거기 심감독님도 잘 있지요?”

“네, 잘 계십니다. 얼굴도 좋아지셨던데요? 호호.”

구건호는 10분 정도 지나서 비서 오연수를 불렀다.

“아래층에 내려가서 노형숙이란 직원을 오라고 하세요.”

“노형숙요? 알겠습니다.”

잠시 후 비서 오연수가 노형숙이란 직원을 데리고 올라왔다. 구건호가 보니 안면은 있는 사람이었다.

“찾으셨습니까?”

“노형숙씨라고 하셨나요?”

“네, 그렇습니다.”

노형숙은 대답을 꼭 초등학교 학생처럼 말했다. 구건호 앞이라 긴장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상해에 가 있는 신사장님 전화 받았지요?”

“받았습니다.”

“그럼, 지금 은행에 가셔서 100만 달러만 외화송금하세요. 송금하는 요령은 알지요?”

“예, 압니다. 지난번 송금할 때 작성한 외화송금 신청서 복사한 것을 가지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옆에 있던 비서 오연수가 100만불이라는 소리에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미국 유학 경험이 있는 오연수는 100만불이 얼마나 큰돈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상해에 가있는 심운학 감독 알지요?”

“네, 압니다. 그 분은 우리 사무실에서 근무도 같이 했었습니다.”

“그럼 외화송금하시고 영수증을 사진 찍어서 심감독님한테 보내주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일을 아주 잘 하시게 생겼네.”

구건호의 이 말에 노형숙은 긴장이 풀어지는지 배시시 웃었다.

“감사합니다.”

[이제 상해의 환러스지 공사는 제작 발표회만 남았군. 제작발표회를 하면 한국이나 중국의 연예계가 떠들썩하겠군.]

구건호가 달력을 보았다.

[벌써 11월도 다 가는군. 문재식은 12월 출산인가? 문재식은 요즘 잘 있나? 주간 업무보고는 잘 올라오는데 거긴 개인적인 생활에 대한 기록은 없으니 문재식의 와이프가 잘 있는지 모르겠네.]

구건호가 문재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문사장? 나야.”

“구사장? 내가 조금 있다가 전화 넣어줄게. 지금 터미널에 시장님이 왔다고 그러네.”

“그래? 그럼 얼른 일 봐라.”

20분 정도 지나서 문재식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휴, 미안. 시장이 새로 부임한 모양이야. 그래서 중요 현장을 시찰하는 것 같았어.”

“인사는 했니?”

“그럼, 가서 인사했지. 합자사 부사장 창춘(常春: 상춘)이 시장을 맞이하고 있다가 내가 가니 소개시켜 주더라고.”

“시장이 뭐라고 하니?”

“한궈펑요(한국친구)라고 하면서 반가워하데? 마음 좋은 동네 할아버지처럼 생겼어.”

“거기 터미널 뭐 볼게 있다고 갔지?”

“새 건물 짓는다고 하니까 온 것 같아.”

“흠, 그래?”

“장춘 부사장이 시장을 따라다니면서 건설 계획을 자세히 설명하더군.”

“그랬나?”

“터미널 출입구는 공용도로라 우리가 간여를 못하지만 아스팔트를 시에서 깔아주면 좋겠다는 건의도 하고 그러는 걸 옆에서 들었어.”

“그래? 창춘도 할 말은 하는 사람이네.”

“머리가 비상한 친구야. 앞이마가 톡 튀어나온 것 봐. 우리 합자한 것도 실은 그 사람 머리에서 다 나왔다고 했어.”

“리스캉 친구인 부시장이 아니고?”

“발의는 부시장이 했는지 모르지만 세부 추진계획은 창춘이 다 짰어. 그러니까 안당시 객운공사의 기획실장을 오랫동안 했지. 그 친구 별명이 뭔지 알아?”

“뭔데? 별명이 있었나?”

“객운공사 직원들이 창춘을 부를 때 창제갈(창씨 성을 가진 제갈공명)이라고 불러.”

“뭐? 창제갈? 푸하하하.”

“나도 처음에 그 소리 듣고 배꼽 잡았어.”

“너, 제갈공명을 상대하려니 힘들겠다.”

“아주 힘들어.”

“그리고 제수씨는 어떠냐? 다음 달이 출산인데.”

“응, 괜찮아. 가끔 아랫배가 아프다고 하지만 잘 먹고 잘 지내. 벌써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아줌마 몇 사람도 사귀었던데?”

“흠, 수완이 있는 모양이구나.”

“국문과를 다녔던 사람이라 한문을 약간 알아. 그래서 아파트 아줌마들 하고 이야기 할 때는 말이 안통하면 필담도 하고 그런 모양이야.”

“호, 그래?”

“거기 아줌마들은 그래도 다 저명인사 부인들이 많아서 사귈 만 하다고 했어.”

“중국인 저명인사 부인들과 사귀는 것도 나중에 귀중한 자산이 되겠지.”

“종석이 이야기 들으니까 석호가 직산 공장에도 왔었다며?”

“왔었어.”

“염치도 좋지. 거길 어디라고 가?”

“이석호한테는 내가 가게 손해 보더라도 그냥 팔라고 했어. 반만 받아도 손 털고 나오라고 했어.”

“그게 답이야. 갠 빨리 털고 나와야 돼. 지금 거기 있으면서 돈도 못 벌면서 생활비 까먹는 게 얼만데 그래? 더군다나 걘 나하고 달라서 씀씀이도 클걸?”

“아마, 그럴 거야.”

“그리고 중국엔 나보다 먼저 들어간 놈이 아직도 기초 중국어도 몰라서 헤매니 참 딱해 보여.”

“그래?”

“구사장도 중국 살아봐서 알지만 조선족이나 한국인들 많이 사는데 사는 사람들은 중국어 10년 가도 못 배우잖아.”

“그건 그래.”

“여기는 큰돈은 못 벌어도 약간 이익을 남기는 수준은 될 거야.”

“캐쉬카우 사업이 다 그래. 알았다. 그럼 수고해라.”

구건호는 전화를 끊고 식어버린 차를 마셨다.

[문재식의 처는 적응을 잘 하는 것 같군. 다음 달이 해산이면 문재식이도 아이 아빠가 되네. 그런데 중국은 가정부 두기가 좋은데 나는 어떻게 하나? 돌봐줄 장모님도 안계신데. 인천 엄마를 오시라고 할까? 영은이가 시어머니는 부담을 가질 텐데....]

[박종석이는 아이가 많이 컷을 걸? 100일 넘었나? 아니, 반년도 지난 것 같은데?]

구건호는 박종석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어, 형!”

“전화기 소리가 왜 이러냐? 떠드는 소리가 막 난다.”

“H그룹에서 5스타 인증 심사가 나왔어. 지금 공정관리와 설비시스템 체크하고 있어.”

“오? 그래? 그럼 나중에 전화하자.”

“응, 내가 심사 끝나고 바로 전화 넣어줄게. 급한 일이면 지금 통화하고.”

“아냐, 괜찮아. 급한 일은 아니야. 나중에 통화하자.‘

[H그룹에서 심사가 나와?]

구건호는 1차 벤더의 기회가 다가오는 것 같아 미소를 지었다.

사실 H그룹의 심사가 나오기 까지는 송사장의 공이 컸다. 송사장은 1차벤더 회사인 S기업에 있었기 때문에 H그룹 구매팀 임원이나 간부들을 잘 알고 있었다. 또 품질 심사에 대한 대응 요령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에이치 모빌을 1차 벤더로 만들기엔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 남들이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을 만들든가 H그룹 오너의 빽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송사장은 클라이슬러라는 글러벌 기업의 납품을 통해 우회하는 전략을 택했다. 하지만 H그룹 구매팀은 냉담했다. 시설과 인력이 우수하다고 설득했지만 H그룹 구매팀은 꿈쩍도 안했다.

하지만 크라이슬러의 납품량이 증가하고 까다롭기로 소문난 A전자에 최근 어셈블리 제품이 대량으로 들어가고 있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다른 1차 벤더의 불량이 나오자 복수업체를 선정하기 위하여 지에이치 모빌의 규모와 생산시시스템을 점검하러 오게 된 것이다.

송사장의 그간의 노력도 있었지만 불량을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해준 박종석 이사나 품질관리 직원들과 연구소 직원들의 노력도 많은 힘이 되었다. 그리고 운도 따라 주었다.

[심사 나오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나오면 1차 벤더가 될 확률이 높다.]

구건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구건호가 점심을 먹고 와서 사장실에서 졸고 있는데 송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H그룹의 5스타 인증심사가 있었습니다. 다 끝나고 심사 나온 사람들한테 점심까지 먹여서 보냈습니다.”

“아이고 수고 하셨습니다. 뭐 지적 사항은 없습니까?”

“공정관리와 설비관리는 박종석이사가 준비를 잘해 심사원들 인상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연구실의 시험 시스템이나 검사시스템도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지적은 한 가지 금형온도 실시간 확인 누락을 지적했고 전압관리에 대한 점검 미흡을 지적했습니다. 품질관리부에서 서류로 시정조치 보고서를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마침 심사 나온 사람들이 제가 S기업에 있을 때부터 잘 알던 애들이 나와서 다행이었습니다.”

“흠, 그래요?”

“제가 모빌에 와 있는 줄 몰랐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모빌이 이렇게 규모가 크고 품질시스템이나 공정시스템이 잘 되어있는 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다 평상시 송사장님이 욕을 먹으면서까지 직원들에게 잔소리한 덕분 아닙니까?”

“아닙니다. 우리 직원들도 잘 따라주었기 때문입니다.”

“H그룹으로부터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심사는 끝났으니 저도 조용히 기다려 보겠습니다.”

송사장의 전화가 끝나고 한참 후에 박종석 이사의 전화가 왔다.

“형? 어휴, 미안해.”

“심사 나온 사람들 다 갔다며?”

“응, 와서 보고 인상들은 좋게 받은 모양이야.”

“지적 사항이 많았나?”

“한두 가지 있었지만 바로 시정 가능한 것들이었어.”

“흠, 그래?”

“그런데 점심 먹고 형한테 바로 전화하려고 했는데 송사장이 어찌나 잔소리를 해대는지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고.”

“송사장이 무슨 잔소리를 하는데 그래?”

“지적사항 하나 가지고 나하고 품질팀장하고 연구소 간부들 불러서 더럽게 잔소리하데. 하도 잔소리해서 한번 머리로 받아버리고 싶은 생각도 났어.”

“하하, 그래? 그래도 그 사람 가끔 네 칭찬 하더라.”

“뒷소리는 안하는 사람이라 내가 참지. 어느 때 보면 정이 팍팍 떨어져.”

“너 천적은 그 사람인 모양이다. 하하.”

“웃지 마, 남 괴로워 죽겠는데.”

“심사원들이 인상이 좋아서 갔다니 다행이다.”

“응, 나도 그건 기분이 좋아.”

“야, 그리고 네 딸 지금 많이 컸지? 100일 지났지?”

“100일이 뭐야? 벌써 7개월째 들어가는데.”

“그런가?”

“집에 들어가면 이뻐 죽겠어. 방긋방긋 웃을 땐 내가 미칠 것 같아.”

“그래? 아직 말은 못하지?”

“말은 아직 못해. 옹알이만 길게 해. 하지만 장난감 같은 것 흔들어주면 갤갤 거리고 웃어.”

“오, 그래? 많이 귀엽겠다.”

“딸랑이 같은 것 가지고 가서 흔들어주면 금방 반응하고 갤갤 거려.”

“양가 어른들도 좋아하겠다.”

“서로 데려가려고 그래.”

“너희 가정의 화목한 모습이 눈에 선하게 들어온다.”

“고마워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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