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355화 (355/501)

# 355

동창 이석호 (5)

(355)

구건호는 이석호가 너무 자연스럽지 못한 것을 느꼈다. 학교 다닐 때 자기를 괴롭힌 건 철없을 때의 이야기니까 지나갈 수 있다. 더구나 이석호는 자기가 처음으로 노량진에서 베트남 쌀 국수집을 열었을 때 자문을 해주고 축하도 해준 사람이었다. 푸대접해서 보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긴장을 풀어주었다.

“심양에서 사업을 잘 되나?”

이석호는 구건호에게는 솔직해야 될 것만 같았다.

“잘 안 돼. 가게를 팔라고 하는데 잘 안되네.”

“지금 주 수입원은 뭔가?”

“가게 3개 사놓고 두 개는 내놓고 한 개는 내가 한국 물건 떼다가 팔고 있어.”

“흠, 그래?”

“지금은 번화하지 않지만 도시계획이 잡혀있어서 그 일대가 개발이 돼.”

“그래? 그럼 잘 되겠구나.”

구건호가 이 소리를 하고 차를 마셨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석호가 눈 읏음을 치며 말했다.

“동창들 사이에선 구사장이 불쌍하다는 소문이 있는데 들어봤지?”

“내가? 처음 듣는데?”

“구사장이 김민혁이나 문재식 같은 사람을 왜 쓰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소문이 있어.”

이 말에 구건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눈살을 찌푸린 건 구건호 뿐만 아니고 옆에 있는 박종석이도 눈살을 찌푸렸다.

“솔직히 말해 김민혁이나 문재식은 학교 다닐 때 좀 헤렸잖아. 여기 있는 박종석이 같이 야무진 데가 없었잖아.”

구건호는 대답대신 차를 마셨다. 이석호의 다음 말을 기다려보았다.

“헤리지 않은 사람을 썼으면 아마 구사장의 중국 회사는 지금보다 몇 배 더 커졌을 거란 이야기들을 많이 해. 그래서 구사장이 불쌍하다는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 같아.”

구건호가 다리를 꼬면서 말했다.

“뭔가 오해를 한 것 같군. 김민혁이나 문재식은 사업파트너지 내 밑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야.”

“걔들이 투자를 했나? 걔들이 그런 실력은 없는 것 같은데?”

“투자는 여러 형태가 있어. 구체적인 투자방법은 서로 개인적 비밀이기에 내가 말할 수는 없어. 혹시 동창들 만나면 그렇게 이야기 해줘. 오해들은 풀어야지. 그리고 내가 보기엔 두 사람 다 어려서 고생들을 많이 해서 그런지 열심히들 하고 있는 것 같았어.”

잠시 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구건호가 웃으며 말했다.

“심양에 있는 그 가게는 은행에 담보로 제공할 수 있는가?”

“전량(轉諒: 양도가능) 건물은 아닌 것 같았어. 상가 주인이 토지국과 협의는 하고 있는 모양이야.”

“흠, 중국은 그게 문제야.”

이석호의 얼굴이 어두워지고 있는 것 같았다. 구건호가 꼬운 다리를 다시 바꾸어 꼬면서 말했다.

“답은 두 가지다.”

이석호와 박종석이 구건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가게를 손해 좀 보고 파는 수 밖에 없다. 그게 손실을 최대한 줄이는 방법이다. 들인 돈이 아깝지만 손해 좀 보고 미련 없이 털고 나와라. 그 지역 중국인들은 아마 그 가게를 안살수도 있다. 신문광고라도 내서 다른 지역사람한테라도 팔고 나와라. 사는 사람은 또 뭔가 아이디어가 있을지 누가 알아?”

“흠, 가게를 손해보고 판다?”

“나도 노량진에서 베트남 쌀국수를 할 때 손해보고 털고 나왔어. 손해 본 곳에 자꾸 미련을 가지면 발전이 없지. 손해를 만회하려고 한국 사람들한테 사라고 하는 것은 수건돌리기 게임 밖에 안 돼. 그런 짓은 욕먹을 짓이니 하지마라.”

이 말에 이석호의 얼굴에서 작은 경련이 일어났다.

“두 번째는 가게 3개를 탁 터서 특색 있는 물건을 팔아 봐라. 그럼 사람들은 가게가 좀 멀어도 찾아온다. 거기가면 뭐가 있더라 하는 물건을 팔아봐라. 하지만 이 경우는 투자를 더 해야 하고 위험부담은 있겠지. 확실하게 이거다 하는 필링이 들어올 때 하면 돼.“

“그럼, 구사장 같으면 뭐를 하면 좋을까?”

“그건 나도 몰라. 그쪽 지역 연구를 해야 되겠지.”

이석호는 구건호에게 상가를 사라고 하는 것은 씨알도 안 먹혀 들어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가게를 사라고 하면 구건호는 핀잔을 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구건호가 마지막으로 더 잔인한 소리를 했다.

“절반이라도 건져서 나오는 것이 어쩌면 현명할지도 몰라.”

이 말을 듣고 이석호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힘내라, 이석호!”

구건호가 이석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이석호의 등을 두드린다는 것은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대번에 이석호의 주먹이 날아올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이석호는 몸을 내맡긴 채 눈만 감고 있었다.

“이석호! 나는 그래도 너한테 고맙게 생각해. 내가 처음 노량진에서 장사할 때 네가 어드바이스도 해주고 개업 때 박종석이와 같이 축하 화분도 보내주고 방문까지 해 주었잖아. 나는 그걸 아직도 못 잊어.”

“그거야 뭐 당연한 일인데...”

“그런데 네가 심양서 개업할 때 방문 축하는커녕 화분도 못 보냈다. 이거 적은 돈이지만 개업식 찬조금이니 받아둬라.”

“어어, 이러면 안 돼.”

“받아 둬. 개업식 때 친지들이 봉투는 많이 보내잖아? 부담 갖지 마.”

구건호는 봉투를 얼른 이석호의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석호가 왔으니 중국서 있었던 재미난 이야기를 들으면 좋겠는데 내가 아산에 있는 디욘코리아라는 회사에 가야돼. 박종석이하고 식사하고 올라가라. 미안하다.”

구건호가 일어서서 손을 내밀자 이석호도 일어서서 손을 내밀었다. 구건호는 악수를 하면서 박종석을 돌아보았다.

“박이사! 네가 좋아하는 석호 형 왔으니 맛있는 것 좀 사드려. 네가 평상시에 형, 형. 하고 잘 따르던 사람 아니냐?”

“응, 형, 염려 마. 내가 잘 대접할게. 나도 석호 형이 와서 반가워.”

구건호는 이석호와 더 이야기를 나누어도 되지만 일부러 디욘코리아를 간다고 하면서 자리를 피했다. 오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친구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석호는 구건호의 방을 나오다가 화장실에 가서 구건호가 준 봉투를 열어보았다. 10만원 정도 준 것으로 알았는데 놀랍게도 50만원이 든 봉투였다.

박종석은 이석호를 잠시 복도에 세워놓고 경리이사를 찾아갔다.

“손님 접대해야 합니다. 법인카드 좀 빌려주세요.”

경리이사가 법인카드를 주면서 말했다.

“영수증 꼭 가져오세요.”

박종석이 이석호를 잡아끌며 말했다.

“경리에서 법인카드 받아왔어. 형 먹고 싶은 것 아무거나 말해.”

박종석은 이석호를 데리고 갈비집으로 갔다.

구건호는 아산으로 가다가 음봉 저수지 앞에 있는 경양식 집에서 엄찬호와 함께 돈가스를 먹었다. 커피까지 마시고 호수 구경도 했다가 천천히 디욘코리아로 갔다.

김전무는 외근 나가고 상임감사가 들어왔다.

“김전무님 말씀을 들으니까 벤처나 기업 부설연구소 지정은 금년도 외부감사 끝나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 했었습니다. 그게 좋겠죠?”

“외부감사 후 결산서 나오고 법인세 신고까지 한 상태면 더욱 좋겠죠.”

“디욘코리아가 설립된 지 일년 반이 되었으니까 전년도 반년치 실적 자료도 결산서에 같이 나오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래요, 너무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지 말지요. 그러면 추진과정에서 걸리적 거리는 게 많이 튀어나옵니다.”

“최악의 경우 법인세 22%를 맞지요. 사실 22%면 견딜 만은 합니다. 매출이 적을 때 맞고 이후 매출이 많아지면 절세하는 방안을 연구해 보겠습니다.”

“그러세요.”

“미국의 라이멘델 디욘사에서도 우리와 합작한건 한국시장이 매력이 있어서일 겁니다. 수요처도 풍부하고 질 좋은 화공약품을 구하기 쉽고 노동력의 질도 우수하지만 법인세율도 많은 참고를 했을 겁니다. 중국과 인도는 물론 일본까지도 모두 법인세가 25% 아닙니까?”

“흠, 일본도 높네요.”

“일본은 과표 800만엔 이상이면 무조건 25%입니다. 이걸 아베 정권이 2020년도까지 20%로 끌어 내리겠다는 것 아닙니까?”

“세수(稅收)라는 것이 나라 살림하는 것과 관계가 있어 있어 정치하는 사람들이 판단을 잘 해야겠네요.”

“그렇지요. 다른 곳의 세원(稅源)을 발굴 하든가 복지 예산을 깎든가 그래야 하겠지요.”

“참, 중국과 인도가 매출이 늘고 있습니다. 각각 월 판매량 100톤씩을 넘기고 있습니다.”

“흠, 그래요?”

“주간 업무보고에 인도와 중국이 각각 관리직 사원을 1명씩 늘려야겠다는 품의가 올라왔습니다. 다음번 임원회의 때 사장님께 재가 신청하겠습니다.”

“나 없더라도 비 간부직은 애덤 캐슬러나 김전무 전결로 처리하세요.”

“알겠습니다.”

“우리 전결 권한 규정이 있지요?”

“있습니다. 이노비즈 신청 같은 것 하려면 그런 거 다 비치해야 합니다. 또 회사에서는 일사불란한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규정이기도 합니다.”

“알겟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구건호는 방금 나간 상임감사를 생각해 보았다.

[저 양반이 나이가 조금 적으면 좋겠는데 그게 문제란 말이야. 인사규정을 어기면서까지 정년 연장을 해 줄 수도 없고. 이거 참.]

구건호가 현장을 내려가 보았다. 배합실이었던 연구실로 들어가 보았다. 연구실 직원들이 마스크를 쓰고 일을 하고 있었다. 연구실 직원들은 흰 가운 같은 것을 입고 일을 했다. 전에 배합실 조직으로 있을 때는 생산직과 똑같은 제복을 입었었는데 연구실로 바뀌면서 제복도 바꾸었었다.

“오셨습니까?”

공장장겸 연구소 부소장인 유희열 부장이 와서 인사를 하였다.

“새로 산 실험장비들은 이쪽에 설치했습니다.”

실험 장비를 다루던 직원 두 사람이 구건호를 보고 허리굽혀 인사를 하였다. 죽 늘어선 실험장비를 보니 연구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연구소 내에는 분진가루가 날리니 대기 오염측정을 잘하세요.”

“예, 이곳의 대기환경은 수시로 체크하고 있습니다. 먼지 측정뿐만 아니라 화공약품을 다루므로 아황산 가스나 일산화 탄소도 체크하고 있습니다. 저기 벽에 붙어있는 것이 체크리스트입니다.”

“흠, 그래요? 연구소장님은 자리에 계신가요?”

“예, 계십니다.”

늙은 연구소장은 전자현미경을 갖다놓고 뭔가를 연구하고 있었다.

“뭐, 연구하십니까?”

“익! 사장님 오셨네.”

연구소장은 황급히 일어났다.

“앉아계세요. 그냥.”

“제 방을 배정해 주시고 실험장비도 들어오니까 제가 촉탁이 아니고 진짜 옛날 연구소장으로 돌아간 느낌입니다. 하하.”

“건강하게 잘 계시니 저도 보기가 좋습니다.”

“그리고 관리는 여기 유부장이 잘 하고 있으니 저도 연구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뭘 연구합니까?”

“화공약품을 배합했을 때 일어나는 화학적 반응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하하, 그래요? 연구에 방해되는 것 같아 저는 올라가 보겠습니다.”

구건호가 다시 2층 사장실로 올라왔다. 외근 나갔던 김전무가 돌아와 사장실로 왔다.

“외근 힘들죠?”

“아니, 괜찮습니다. 늘 하던 일인데요. 뭘.”

“지금이 11월인데 올 년말 인사에서 디욘코리아는 승진 후보자가 없지요?”

“없습니다. 전부 지에이치 모빌에서 한 계급씩 승진해서 온 사람들이 많아서 올해는 없습니다. 내년에는 실적이나 인사고과에 따라 몇 사람 나올 것 같습니다.”

“현장도 지금 공장장이 부장급인데 유부장도 이번에 어렵겠네요.”

“유부장도 작년에 부장이 된 사람입니다. 일은 열심히 하지만 승진은 금년엔 안 됩니다.”

“흠.”

“차라리 금년 년 말에 성과급을 좀 나누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그냥 주는 보너스가 아니고 성과급이기 때문에 혹시 모빌의 노조 귀에 들어가도 크게 뭐라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흠, 금년엔 그럼 그렇게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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