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354화 (354/501)

# 354

동창 이석호 (4)

(354)

11월이 되었다.

김영은이 금요일 무언가를 많이 사가지고 왔다.

“그게 다 뭐야?”

“출산용품인데 중국간 친구 부인에게 부쳐 줘.”

“에구, 본인 거나 챙기지 남의 것 까지 신경 쓰네.”

“나야 백화점에서 아무 때고 살 수 있지만 거긴 또 다르잖아?”

“중국도 있을 건 다 있어.”

“그래도 보내줘. 우편으로 보내줘요. 내꺼 하고 두 세트 샀으니까.”

“고마워.”

구건호는 정말 김영은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뺨에 뽀뽀를 해주었다.

구건호가 날짜를 계산해 보았다. 문재식의 처는 9개월에 접어들었고 김영은은 7개월째를 접어들었다.

구건호는 출산용품을 차에 실고 다니다가 화요일에 비서 오연수를 시켜 우체국에 가서 부쳐주라고 하였다.

출산용품에는 물티슈에서부터 가제 손수건, 기저귀 파우치까지 들어 있다고 하였다.

요즈음은 우편 속도가 빨라져서 그런지 3일 만에 바로 문재식에게서 전화가 왔다.

“고맙게도 출산 용품을 보내주었네?”

“응, 내 와이프가 자기 출산용품 사면서 제수씨 한테도 보내주라고 했어.”

“고맙게도 여기까지 챙겨줘 고맙다고 말 좀 전해줘.”

“중국에도 다 있는 것을 보냈으니 고마울 것도 없어.”

“아니야. 한국 상표보고 반가웠어. 심리적으로 아주 좋은 선물을 받았어. 내 와이프도 무척 좋아했어.”

“좋아했다니 다행이다.”

“거기 제수씨는 지금 7개 월 째지?”

“응, 맞아. 문사장은 다음 달이면 해산이니 신경 많이 써야겠다.”

“요즈음은 낮에 집에서 태교 음악이나 듣고 특별히 하는 일 없어. 저녁에 조은화에게 중국어 레슨 받고 여기 아파트 단지 산책하는 게 일이야.”

“그래? 같이 손잡고 다니겠구나.”

“하하, 어떻게 알았지? 산책하고 나서는 중국 드라마 많이 봐. 와이프 중국어 속도가 나보다 빠른 것 같아.”

“그래?”

“아파트에 사는 할머니들이 지나가면 물어봐. 임신 몇 개월째냐고 물으면 척척 중국말로 대답해 주더라고.”

“허허, 그래?“

“귀양시에 들어가는 중빠(중형버스) 한 대는 따빠(대형버스)로 바꾸어 주기로 했어. 그래서 중형버스는 현재 의빈시를 뛰게 했어. 그러니 일일 수입이 좀 나아졌어.”

“요즘 하루 매출이 얼마나 돼?”

“고속버스 7대에서 우리나라 돈으로 200만 원 정도 돼. 우리나라는 물론 더 되겠지만 여긴 중국이니까 아무래도 적겠지. 그래도 사업개시한지 얼마 안 되어 7대까지 늘은 것은 많이 늘은 거라고 뚜이팡꽁스(對方公司: 상대방 도시에 있는 회사)에 있는 사람들이 그랬어.”

“터미널은 터파기 공사 아직 안 들어갔지?”

“아직 안 들어 갔어. 지질 공사만 한 상태고 민원문제가 완결이 안 되니까 공사 못하는 모양이야. 이제 겨우 터미널 담 안쪽에 있는 전봇대 옮겼어. 전봇대 하나 옮기는데도 그렇게 시간이 걸리네.”

“그래?”

“내가 보기엔 지금 11월 되었으니까 겨울 넘기고 봄에나 공사 시작될 것 같아. 그 안에 민원문제 하고 도로문제 완결 시키겠지. 공사 예정지역이라고 입간판 세우고 깃발만 잔뜩 꽂아둔 상태야.”

“그래?”

“중방 애들 말로는 공사입찰 광고 나갔으니까 업체 선정되면 내가 건설회사 사장하고 공사 하도급 계약서를 서명한다고 그랬어.“

“아마, 그럴 거다.”

“변동사항 있으면 또 보고할게.”

“알았다. 수고해라.”

구건호는 문재식 부부가 좋은 환경에서 산책도 하고 태교도 한다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심운학 감독이 한국에 들어온다는 연락이 왔다.

“섭외한 한국 배우를 중국에 데려가고 한국 메니지먼트사와 계약도 해야 합니다. 그 아이를 데려가 중국 스탭들에게 소개도 시켜 줘야하고 대본 리딩도 같이해야 합니다.”

“대본 번역은 다 다 되었지요.”

“그럼요. 나머지 번역본도 다 되어 몇 부 복사도 해 놓았습니다.”

“그럼 여기 메니지먼트사는 어디입니까?”

“BM 엔터테인먼트사 입니다.“

BM 엔터테인먼트사라고 하니까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이사의 얼굴도 생각나고 이현만 회장 얼굴도 떠올랐다.

“그럼 캐스팅 다 끝나서 돈 보내야 하는 겁니까?”

“아직은 아닙니다. 여기서 한국배우를 데리고 가면 중국 스탭들이 오케이를 해야 합니다. 이미 구두 상으로는 다들 오케이 했습니다. 오케이 정도가 아니고 크게 환영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요? 그럼 잘 알겠습니다.”

“참고로 한국 배우는 이름이 ‘리아’입니다.”

“리아? 이름도 이상하네요.”

“하하, 사장님은 처음 듣는 이름일겁니다. 하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선 이름이 제법 알려진 아이입니다. 원래 본명은 강리아라 중국에서는 강리아 그대로 쓰기로 했습니다.”

“강리아? 그럼 중국 발음으로 ‘지앙리얼’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대신 중국에서는 강리아 할 때의 강을 굳셀 강자 대신에 강이름 강자로 바꾸었습니다.”

“흠, 그래요?”

“한국 들어가면 사장님께 인사드리러 한번 들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구건호가 직산의 지에이치 모빌 공장으로 출근을 하였다.

구건호가 현장 생산동엘 들렸더니 직원들은 일을 하고 있는데 간부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조장급으로 보이는 생산직 사원에게 물었다.

“관리자들은 하나도 안보이네? 다들 어디 갔어요?”

“공장장님 실에서 회의 중입니다.”

공장장 실은 현장에 있었다. 창문으로 보니 박종석이사가 대리에서부터 부장까지 생산부 관리자들 앞에서 악을 쓰고 있었다. 창문을 닫았어도 소리가 조그맣게 새어 나왔다.

“어떤 개자식이 물건을 이렇게 만든 거야? 반품 들어왔잖아?”

한참 안 들리더니 또 박이사 소리가 흘러나왔다.

“생각을 딴 데 두고 있으니 물건을 요따위로 빼지. 어떤 자식인지 씨발 걸리기만 하면 아구창을 돌려놓겠어.”

박종석이 보다도 나이가 많은 부, 차장들도 아무소리 안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박종석의 거친 성격이 또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구건호는 박이사가 현장은 꽉 잡고 리드해 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화가 나면 언어가 거칠게나오는 것도 걱정은 되었다.

구건호가 2층 사장실로 올라왔다.

구건호가 왔다는 소릴 듣고 송사장이 들어왔다.

“불량이 좀 나온 모양이지요?”

“신입직원들이 많이 늘어나니까 불량이 좀 나왔습니다. 아직 숙련도가 약해서 그런 모양입니다. 아침에 현장에 내려가서 박이사에게 주의를 좀 주었습니다.”

“불량이 많이 나왔습니까?”

“다행히 라인을 스톱시켜서 불량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400만원 정도 클레임을 맞을 것 같습니다. 납품한 제품은 이상이 없는데 우리가 조립과정에서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OJT교육의 미숙함이었습니다.”

“흠, 그래요?”

“A전자 당진공장에서 저와 공장장을 같이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내일 같이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사장과 공장장을 들어오라고 한 것 보니까 중대 결함이 있는 모양이네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마 새로운 오더를 주려는데 주의를 주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박이사에게 일단은 불량대책 회의를 하라고 했습니다.”

“아까 현장을 지나가다 보니까 박이사 악 쓰는 소리가 나던데요?”

“그 친구 원래 흥분하면 악부터 씁니다. 대책회의는 잘 하고 끝낼 겁니다. 요즘 지에이치 로지스틱스에 경리로 있던 아가씨가 여기 생산부 서무로 와서 회의 정리 같은 페이퍼 워크는 잘 하고 있습니다.”

“흠, 그래요?”

“오늘 불량 대책회의 회의록은 복사해서 내일 박이사와 함께 A전자 당진공장 갈 때 가져갈 겁니다. 사장과 공장장이 불량으로 인해 불려갔다고 하면 직원들을 정신 차리게 하는 효과는 있습니다.”

“흠, 그렇긴 하겠네요.”

“생산부의 반장이나 계장, 과장, 그리고 부차장들은 거친 사람이 많습니다. 박이사나 되니까 그래도 저렇게 꽉 잡고 끌고 나갑니다. 현장에서 대가 약한 사람은 버티기 힘듭니다.”

“흠, 잘 알겠습니다.”

구건호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여 주었다.

“그럼, 저는 나가보겠습니다.”

송사장이 인사를 하고 나갔다.

송사장이 나간 후 구건호는 비서 박희정이 가져온 차를 마시며 조간 경제신문을 보고 있었다.

“형? 나야. 종석이. 여기 왔다갔다며?”

“응, 너 회의 중이더구나.”

“불량이 나와서 송사장이 나한테 와서 뭐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열 받아 전체 회의를 소집했어.”

“송사장이 뭐라고 했는데 열을 받아?”

“공장장은 뭐하고 있는 사람이야? 그러잖아! 내가 잘못한건 알지만 부하직원들도 있는데 그 앞에서 그러니까 열 받더라고.”

“하하, 그래?”

“지금 생각하면 내가 잘못한건 맞아. 내일 A공장 당진공장에서 사장과 공장장이 같이 들어오라고 했다니 송사장도 열 받았겠지.”

“하하, 알았다. 앞으로 불량 주의하고 열심히 해라.”

“고마워 형.”

구건호가 생각하기에 송사장이 사람 다루는 솜씨는 한수 위인 것 같았다.

구건호가 조간신문 두 개를 다 보고나서 시계를 보았다.

“흠?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12시가 다 되어가네.“

구건호가 점심식사를 어디 가서 할까하고 생각하는데 박종석이사가 또 전화를 했다.

“형? 지금 사무실에 있지?”

“응, 왜 전화했냐?”‘석호 형이 왔어. 지금 내 곁에 있어.“”이석호가?“

“형을 좀 만나고 싶다고 하는데?”

“나를?”

“한국에 잠깐 다니러 왔는데 얼굴이라도 보고 가겠다고 하네.”

“같이 올라와라. 그럼.”

구건호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 친구가 왜 여기까지 왔지?”

잠시 후 사장실 문의 노크 소리가 들리고 박이사와 함께 이석호가 들어왔다. 구건호가 일어서며 손을 내밀었다.

“오. 이석호 아닌가! 오래간만이다.”

이석호가 어색한 웃음을 띠고 구건호의 손을 잡았다.

“이리와 앉아라.”

“구건호가 사내전화로 비서 박희정을 불렀다.”

“여기 차 3잔만 가져와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박희정이 뒷걸음으로 사장실을 나갔다.

“중국 사업은 잘 되지?”

“뭐, 그럭저럭.”

“소주시와 안당시는 관광을 왔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좋은 구경 많이 했겠다.”

“응, 좀 했지.”

비서가 차를 가져왔다.

“차, 마셔라.”

어색한 분위기가 흘러갔다. 차를 마시며 이석호는 아무 말도 안했다. 이석호는 구건호를 만나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했으나 막상 구건호를 만나고는 아무 말도 못했다. 구건호는 옛날의 구건호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서는 서서히 카리스마가 형성되고 있었다. 450명이나 되는 종업원들이 근무하는 거대한 공장의 오너 사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여기 공장은 엄청 크네.”

“450명이야. 아마 내년이 되면 더 커질 거야.”

그동안 학교 졸업 후 자영업만 죽 해온 이석호 입장에서는 이런 공장의 방문은 처음이었다. 죽 늘어선 자동화 된 기계장비도 그렇지만 직원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도 그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대단하네.”

더구나 박종석 이사는 구건호가 아산에도 이와 비슷한 공장이 있고 서울 신사동에 시가 2천 억짜리의 빌딩이 있다고 말했었다. 중국 심양에 있는 1억짜리 가게를 분할로 사달라는 말이 목구멍으로 나오지 않았다.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온 것 같은데?”

구건호가 미소를 띠고 말했다.

“아냐, 그냥 지나가다 한번 들렸어.”

그러면서 이석호는 찻잔만 만지작거렸다. 공부도 못하고 가난한집 아이라고 뒤통수를 톡톡 때리던 옛날의 구건호가 아니고 어떤 거인이 앞에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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