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350화 (350/501)

# 350

추석 (2)

(350)

장인은 명절 때 더 외로울 것 같았다. 구건호는 차례를 지내는 집안이라 여기를 먼저 들리기도 어려웠다.

“장모님이 안 계셔서 많이 외로우시겠는데. 우리 집은 대가족이라 그런 것을 못 느끼겠지만 신림동 아버님은 많이 외로우실 거야. 당신이 잘 해드려.”

구건호의 말에 김영은은 시무룩해져 창밖만 쳐다보았다.

구건호와 김영은이 선물을 잔뜩 사들고 신림동 동부 아파트로 왔다.

“아빠.”

“오, 왔냐?”

“안녕하세요?”

“구서방도 왔네. 시가에는 들렸었나?”

“들렸다 오는 길이에요.”

“거긴 차례를 지낸다고 했지?”

“네.”

“뭘 그렇게 많이 사왔어. 들고 오느라고 팔 떨어졌겠다.”

김영은은 아빠가 입을 셔츠나 펜티, 양말 같은 것을 많이 사왔다. 명절 때 선물 받은 생활용품이나 참치 통조림 같은 것도 잔뜩 가져왔다. 구건호가 중국 술 마오타이와 해외여행 시 면세점에서 산 양주를 선물로 가져왔다.

“비싼 술도 사왔네.”

“잠 안 올 때 한잔씩 하세요.”

“허허, 알겠네.”

김영은이 다른 가방에 든 물건들을 꺼냈다. 놀랍게도 찬합에 든 음식 같은 것들이 나왔다. 구건호가 신기해서 물었다.

“이건 언제 준비했지?”

“오늘 아침 새벽에 했어.”

나물 무침과 불고기, 건어물 볶음 같은 것들이 나왔다.

“식사 안하셨지요?”

“음, 나는 천천히 먹어도 돼.”

김영은이 가져온 음식을 덥혀서 내왔다. 술안주로는 적격이었다.

셋이 앉아서 저녁을 겸해서 식사를 했다.

“네 이모도 가까이 살면 네가 자주 찾아볼 텐데 그렇지 못하는구나.”

“그렇지 않아도 내일 이 사람과 찾아보려고 합니다. 어머님 묘소도 같이 들릴 겁니다.”

구건호의 말에 장인이 빙긋이 웃었다.

신림동 동부아파트에서 타워팰리스로 오는 도중 김영은이 구건호에게 물었다.

“내일 정말 우리 엄마 산소와 이모한테 들릴 거예요?”

“들리지 뭐. 할 일도 없는데.”

“포천에서 양평은 엄청 돌아갈 텐데.”

“명절에 서울서 부산까지 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포천서 양평이 뭐가 멀어?”

“그래도 멀지. 그럼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해야 되겠네.”

“그러자.”

“오빠 피곤하겠다.”

“괜찮아.”

김영은이 운전하는 구건호의 옆얼굴을 쳐다보고 웃었다.

구건호는 잠결에 뭔가 소리가 들려 잠이 깨었다. 주방으로 나가보니 김영은이 뭐를 만들고 있었다.

“뭐해? 몸도 무거운데.”

“아냐, 산소에 가지고 갈 것 포장 좀 하느라고.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오빠는 세수나 해.”

구건호와 김영은은 아침을 간단히 먹고 포천으로 향했다. 추석 연휴가 길어서인지 아직 차는 막히지 않았다.

묘소는 포천 시내를 지나서 한참 더 가야 했다. 거의 오전 11시가 되어서야 묘소에 도착했다.

김영은과 구건호가 음식을 묘소 앞에 차려놓고 두 번 절하였다.

“엄마, 나 임신했어. 6개월째야.”

김영은은 술을 입에 대는 시늉만 하고 묘소의 잔디에 술을 뿌렸다. 오늘은 김영은이 지난번처럼 훌쩍이지 않는 것 같았다.

김영은이 묘소 앞에서 자기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였다.

“아빠? 나 오빠랑 같이 포천 엄마 묘소에 왔어요.”

“그래? 벌써 갔어? 고맙다. 구서방한테도 고맙다고 이야기해라.”

핸드폰에서 들리는 장인의 소리는 아주 명랑해 보였다. 구건호는 장모의 묘소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건호는 포천에서 양평으로 향했다. 의정부 IC까지 내려왔다가 남양주 쪽으로 가는 차도를 이용했다. 임신한 김영은을 태우고 한적한 교외를 달리니 기분은 좋았다. 오후 2시가 넘어 최 화가가 사는 양평의 집에 도착했다.

최화가는 강아지의 목줄을 잡고 어딜 가려든 참이었다.

“어마나, 영은이 왔네. 구서방도 오고!”

“어디 가시는 길이에요?”

“아니, 그냥 요 앞에 산보 좀 가려고. 강아지가 하도 낑낑대서 운동 좀 시키려고 나왔어.“

강아지는 집에선 요란하게 짖더니 밖에 나와선 자기 영역이 아니라 그런지 구건호의 바짓가랑이 냄새만 맞고 꼬리를 흔들었다.

김영은이 과일과 떡 같은 음식을 꺼내자 최화가가 놀랐다.

“너, 네 엄마 산소에 들렸다 오는 거니?”

“네, 거기 들렸다 오는 길이에요.”

“나도 같이 갈걸 그랬다. 나도 네 엄마 산소 가본지 몇 년 된 것 같다.“

“다음에 가요.”

“네 엄마가 살았으면 구서방한테 잘해 주었을 텐데.”

셋은 저녁까지 잘 먹고 고스톱도 치다가 밤 10시가 넘어서 출발했다.

“밤길 조심해야겠는데?”

“지금이 오히려 좋아요. 차가 덜 막히니 좋아요.”

명절도 끝나고 구건호가 신사동 사무실에서 심감독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명절을 중국에서 보내서 한국 생각이 많이 났겠네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서울과 상해는 사실 가까운 거리 아닙니까?”

심감독은 가정사에 대하여는 일체 말이 없었다. 구건호도 특별히 물어보지 않았다. 신용 불량이 된 사람이라 물어보면 복잡할 것만 같았다.

“앞으로 만들 일일 연속극 <시광여몽>을 제작하기 위한 스태프 구성은 끝났습니다.”

“흠, 그렇습니까?”

“현재의 환러스지 공사의 스탭들이 그대로 다 들어오기로 했습니다. 촬영감독과 조명감독도 연출을 맡고 있는 천바오깡 사장이 다 결정했습니다.”

“흠, 그렇습니까?”

“연기자 캐스팅은 지금 하고 있는 중입니다. 남자주인공은 중국배우로 하고 여자 주인공을 한국 배우로 하기로 했습니다. 배우나 작가에게 지급하는 출연료와 원고료는 제작비의 50%를 넘지 않도록 했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여자 배우는 BM엔터테인먼트에서 눈여겨 본 아이가 있습니다. 가창력도 있고 연기력만 조금 지도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인물도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형이라 먹혀 들어갈 것 같습니다.”

“그럼 캐스팅만 끝나면 바로 촬영에 들어가는 겁니까?”

“아닙니다. 대본 리딩을 먼저 해야 됩니다. 연기자들이 모두 모여 상대 배우와 호흡도 맞추어 보고 그래야 됩니다. 연기자의 감정이입이나 실감나는 대사나 억양 같은 걸 전부 피드백 해야 합니다.”

“아휴, 뭐가 복잡하네요. 그 동네도 쉬운 일은 없는 것 같네요.”

“캐릭터를 창조하는 일입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한국 연애인이 오면 최상급 호텔도 잡아주고 그래야겠네요.”

“당연합니다. 그래서 제작비의 절반은 출연료와 작가 원고료입니다. 우리나라는 이 비율이 더 높습니다.”

“아무튼 열심히 하십시오. 100만 달러는 내가 연기자 캐스팅이 완료되면 출자하겠다고 했으니까 완료여부를 나에게 알려주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이번엔 문재식에게 전화를 해 보았다.

“거긴 운수회사라 추석 때 바빴지?”

“말도 못하게 바빴어. 차가 새벽부터 나가기 시작했어. 중추절 특별 수송기간이라 반차(班車) 횟수도 늘리고 전부 비상체제에 들어갔었어.”

“집에도 제대로 못 들어갔겠구나.”

“어제부터는 좀 풀렸어. 이제는 이쪽에서는 내려가는 손님은 별로고 오는 손님들이 많아.”

“그래?”

“추석날 시 당서기가 여기 터미널에 왔다갔어. 시 당서기하고 인사도 나누었어.”

“그래?”

“시 당서기가 뜨니까 국장들도 몇 명 뜨고 공안국장까지 오고 그러네. 신문기자들이 와서 나하고 시 당서기하고 이야기 하는 모습을 사진도 찍어가고 그랬어.”

“그래? 너 출세했다. 시 당서기가 뭐라고 그러냐?”

“합자 회사인줄 몰랐던 모양이야. 합자회사 사장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놀라던 눈치이던데? 그러면서 합자를 잘했다고 하면서 이윤을 보장하도록 지원해 주겠다고 하네. 말은 번드르르 했어.”

“짜식들 선로패나 많이 주지.”

“그렇지 않아도 그 소리 좀 하려고 했더니 안당시 객운공사 옌사장이 나와서 ‘원활한 수송에 만전이 없도록 했다’ 라는 이야기만 해달라고 하네. 생방송 나간다고 하면서.”

“그래?”

“역시 중국은 인간이 많아. 귀성객이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어. 여기 터미널이 꽉 차고 광장에도 꽉 차고 터미널 주변 대로변 까지 꽉 찼었어.”

“그게 다 돈 아니냐?“

“중방 애들이 여기다 호텔을 짓는다고 해서 그게 될까 했었는데 사람 나오는걸 보니까 되긴 될 것 같아.”

“그래?”

“하여튼 추석 D-1일엔 직원들하고 공안들이 쫙 깔려 인원 정리하고 그랬어. 파출소 소장이 와서 공안국장을 인사시켜주더라고. 꼭 도독 놈같이 우락부락한 50대였어. 한가락 하는 것 같았어.”

“하하, 그래? 공안국장하고 인사하고 너 거기서 유지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공안국장이 어려운 일 있으면 자기 찾아오라고 명함까지 주었어.”

“그래?”

“그런데 공안들 눈하고는 우리 눈하고 다른 모양이야. 쓰리꾼을 잘도 잡아내더라고. 난 통 모르겠는데 금방 내 앞에서 낚아채더라고.”

“그래?”

“잡으면 바로 벨트 풀고 수갑 채우는 데 여기도 쓰리꾼이나 폭력배들 보면 문신이 장난 아니었어.”

“그놈들 흉기도 가지고 다닐지 모르니 조심해라.”

“하하, 알았어.”

“네 와이프도 대화할 사람이 없으니 외롭겠다. 잘 대해줘라.”

“망원동 집 내놓고 부천 원미동 친정에 있을 땐 가슴이 답답하고 위가 쓰리다고 했는데 여기 와서 그게 없어졌데.”

“그래?”

“여기 아파트엔 숲이 많고 고급 별장들이 많아 산책하면 가슴이 뻥 뚫린다고 했어. 자전거를 한 대 사고 싶어하는 데 내가 말렸어. 출산하고 나서 자전거 타고 다니라고 그랬어.”

“그래야지. 지금 자전거 타면 위험하겠지.”

“궁금한 게 많은지 발발이처럼 잘도 돌아다녀. 벌써 시장에 가서 두부도 사오고 콩나물도 사오고 그러던데? 조은화도 우리 집 반찬이 맛있다고 저녁 먹고 갈 때가 많아.”

“그래?”

“참, 그리고 아파트 잔금은 다 치뤘어. 융자문제도 다 해결하고.“

“그래? 수고했구나.”

“지금 장식을 하고 있는데 끝나면 바로 세를 놓을게. 빨리 하려고 했었는데 추석이 끼어서 빨리 못해 미안하다.”

“천천히 해도 돼. 월 임대료는 한 채에 3천 위안 받을 수 있다고 그랬지?”

“고급 아파트라 그렇게 받아.”

“그럼 5채니까 1만 5천 위안 정도 임대료가 매월 들어오겠구나.”

“그렇지, 그런데 이자가 1만 위안 정도 나갈 거야.”

“그럼 5천 위안 떨어지나? 한 채 값 3천 위안은 너한테 줄게. 관리해 주는 값은 주어야지.”

“아, 그거 필요 없어. 내가 구사장 신세진 것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데 그런 것 까지 받으면 어떻게 하겠어?”

“안 받으면 내가 뭘 부탁하기도 어려워져. 받아야 돼.”

“그럼 우리 와이프 줘라. 여기 아파트 임대관리는 와이프가 하기로 했으니까.”

“제수씨가? 좋지 그럼.”

“그런데 새 아파트라 임대 주기가 참 아깝다.”

“아깝긴.”

“와이프는 출산하면 자전거 타고 아마 안당시는 구석구석 잘도 돌아다닐 거야.”

“활동적이고 좋지. 건강하다는 이야기 아니겠어? 너 장가 잘 갔다.“

“하하, 고맙다.”

문재식은 이제 크게 깔깔대고 웃을 줄도 알았다. 전에 전화로 동창회 명부 기금 3만원만 보내달라고 할 때는 목소리 자체가 침울 했는데 이제는 중국의 지역 기관장인 시 당서기나 공안국장을 만나고 매스컴도 타니 자신감이 충만해진 것 같았다.

[자신감을 가질 만하지. 동인천 역앞에 2억짜리 주공아파트도 사 놓았고 지금 사장 월급 받으니까 이제 목소리에 힘이 팍팍 들어가겠지.]

구건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문사장이 거기서 잘 적응하는 것 같아 안심이다. 더구나 제수씨도 적응을 잘 하는 것 같아 기쁘다. 그럼 또 전화하자.”

“그래, 고맙다. 들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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