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349화 (349/501)

# 349

추석 (1)

(349)

구건호는 총무이사가 나가고 난후 다리를 꼬고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구건호 방을 노크하면서 깔끔하게 생긴 젊은 직원이 들어왔다. 구건호보다 두세 살 어려 보였다.

“총무과장입니다.”

총무과장은 무언가 쇼핑백 두 개를 들고 들어왔다.

“뭐요? 그게?”

“종업원들에게 나누어주는 추석 선물입니다. 사장님 것과 사장님 차 기사 것입니다.”

“오, 그래요? 내 것까지 챙겼네.”

구건호가 빙그레 웃었다.

“나가다가 내 차 기사 엄찬호를 찾아서 차에 실으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잠시 후 엄찬호가 들어와 추석 선물을 가지고 나갔다.

이번엔 총무과 직원 여러 명이 쇼핑백과 선물포장 같은 것을 들고 들어왔다.

“이건 뭐요?”

“거래처에서 사장님 앞으로 보낸 선물들입니다.”

구건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도로 다 내가요!”

“예?”

“과일이나 음식 같은 건 직원들이 먹고 다른 것은 돌려주던지 청소원이나 경비를 주던지 그렇게 하세요.”

“예?”

총무과장이 주저주저하였다. 구건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서, 내 가라니까!”

“알겠습니다.”

총무과장과 직원들은 얼굴이 뻘개져서 도로 가져왔던 물건들을 가져갔다. 총무이사가 뛰어왔다.

“사장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보내주신 분들의 성의를 생각 해 주십시오.”

“그건 거 오면 총무이사님이 선별해 도로 보내주세요.“

“일부는 제가 다시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분들은...”

“지금 가져온 물건들은 내가 돌려보내지 않고 청소원이나 경비들 주라고 했으니 내가 받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렇게 알고 나누어 주세요.”

“참고로 보내주신 분들 명단입니다.”

구건호는 명단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명단은 총무이사님이 알아서 보관하세요. 가져온 물건 처분도 알아서 하세요.”

”그럼 제가 급여를 적게 받는 잡급직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총무이사도 얼굴이 뻘개진 모습으로 사장실을 나왔다.

오후가 되어 구건호는 디욘코리아로 넘어갔다. 애덤 캐슬러가 생글거리며 구건호가 있는 사장실로 들어왔다. 애덤 캐슬러 뒤로 다이어리를 든 통역 채명준이 따라 들어왔다.

“이번 2기 보드미팅(이사회)은 서류로 대체하자는 본사의 의견이 있었습니다.”

“하긴 특별한 의제도 없을 거요. 회사가 잘 돌아가고 있으니까.”

“본사에서는 지난번 구두로 제가 말씀드린 증자에 관한 내용을 보내왔습니다.”

“어디, 한번 봅시다.”

구건호가 본사에서 보낸 서류를 보았다.

[(주)디욘코리아에 출자한 한미 양국의 회사는 다음사항을 협의하고 서명

한다.

1. 제1기 년도의 세후 순이익금은 각자의 출자비율에 따라 현금 배당한다.

2. 한미 양국의 회사는 각각 500만불을 증자한다. 단, 한국 출자사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공장의 건물을 현물 출자할 수 있으며 차액 분은 현금출

자 한다.

3. 한국의 공장 건물은 공신력 있는 한국의 감정평가기관이 평가한 감정서

를 제시하여야 하며 영문 공증한다.

4. 제1기의 선임된 이사는 2기 년도에도 변동 없이 업무를 수행하는 것으

로 한다.

5. 해외의 공장 설립은 사전 상호 협의한다.

20XX년 10월 12일

라이먼델 디욘 ㈜ ㈜지에이치 모빌

브렌든 버크 구건호 ]

구건호는 별 이상이 없어 서명을 해주었다.

애덤 캐슬러가 구건호가 서명한 서류에 입을 쪽 맞추었다.

“탱큐 베리마치, 보스!”

애덤 캐슬러가 나가자 구건호는 윤상무를 불렀다.

“찾으셨습니까?”

“상무님이 지은 디욘코리아의 이 공장 건물은 건설비가 얼마가 들어갔지요?”

“25억 들어갔습니다. 외부에 이야기 할 때는 30억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건설비 원가는 사장님에게만 보고 드렸습니다.”

“이번에 디욘코리아가 증자합니다. 토지는 이미 합자할 때 들어가 있고 건물은 안 들어갔었는데 이번에 증자하면서 들어갑니다. 잘 아는 감정평가 기관이 있으면 건물 감정 평가를 받아놓으세요.”

“알겠습니다.”

“감정평가 금액을 최대한 부풀려야 합니다. 감정 평가사들이 실사 나오면 은행융자를 받으려고 그런다고 조용히 말하고 최대한 부풀려 달라고 하세요. 애덤 캐슬러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평가서 나오면 통역 채명준이 한테 번역하게 하세요.”

“알겠습니다.”

“번역본은 법원 앞에 있는 공증인 사무실에 가서 공증하고 애덤 캐슬러 부사장에게 갖다 주세요.”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경리담당 조명숙 차장이 올린 시제표를 확인하고 서명한 후에 바로 서울로 향했다.

가는 도중 운전하던 엄찬호가 말했다.

“사장님, 디욘코리아에서도 총무과장이 종업원 추석 선물이라고 두 개를 실었습니다.”

“그래? 공식적인 추석 선물 외에 개별적으로 주는 선물은 받지 마라. 그런 거 함부로 받으면 너 나한테 혼난다.”

“알겠습니다. 오전에 벌써 소문 돌았습니다.”

“무슨 소문?”

“사장님께 함부로 선물하면 안 된다는 소문입니다.”

“그런가?”

“평상시 조용하던 사장님이 선물 꾸러미 가져오자 버럭 화를 냈다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흠, 그래?”

“간부들이 저한테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뭘 물어보았는데?”

“평상시도 선물 가져오면 사장님이 화를 내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래서 뭐라고 이야기 했냐?”

“함부로 선물하면 날벼락 난다고 했죠.”

“잘했다.”

“그랬더니, ‘하긴 사장님이야 있을 것 다 있으신 분인데 선물 잘못하면 박살나겠지’ 그러더군요.”

“흠, 그래?”

추석이 다가오자 거리의 교통량이 빈번해졌다.

구건호는 고속도로에 차량도 많이 밀리자 직산과 아산에 있는 디욘코리아에 내려가지 않았다.

“다들 잘 하고 있으니 굳이 내가 안내려가도 되겠지.”

지에이치 개발도 추석 선물이 나왔고 지에이치 미디어도 종업원 추석 선물이 나왔다. 개발의 강이사나 미디어의 신사장은 사회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라 직접 구건호에게 선물을 가져오지 않았다. 조용히 엄찬호를 불러 자동차에 싣게 했다.

금요일 저녁에 엄찬호가 구건호의 몫의 선물을 차에서 내려 아파트 현관까지 가져다주었다.

“네 것도 잘 챙겼냐?”

“네, 제 것도 4개회사에서 받은 것 4개를 트렁크에 보관했습니다.”

“로지스틱스도 추석 선물이 있었을 텐데 거긴 멀어서 못 가겠구나.”

“하하, 그러네요. 그런데 거긴 종업원이 없어서 선물 나누어 주었겠어요?”

“운전기사들이 많잖아?”

“아, 그렇군요. 기사들이 있겠네요.”

“월요일부터 한 3일 쉬겠구나. 추석 연휴 잘 보내라.”

“사장님도 잘 보내세요.”

“이거 연휴기간 때 양말이라도 사서 신어라.”

구건호가 봉투 하나를 주자 엄찬호가 황송해 두 손으로 받았다.

“고맙습니다.”

엄찬호는 사실 지에이치 산하의 임원들에게서 구두표를 받았다. 모두 넉 장이나 받았다. 구건호가 모빌에서 선물 들어온 것 때문에 화를 냈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조마조마 했었다.

“내가 구두표 받은 것 사장님이 알면 불벼락 떨어질 텐데.”

엄찬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번만 구두표를 받고 다음부터는 거절해야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구두표 하나는 태영이 형 갖다 줘야지.”

엄찬호는 운전을 하고 가면서 안 포켓을 쓰다듬어 보았다. 구건호가 준 봉투와 구두표가 들어있어 두둑한 촉감이 손에 전해져 왔다.

추석이 되었다.

구건호는 차례를 지내기 때문에 김영은과 함께 아침 일찍 인천으로 출발했다. 엄찬호가 쉬기 때문에 랜드로버를 직접 운전하고 인천 구월동으로 갔다.

구건호가 갈비짝을 선물로 가져왔다.

“안녕하세요?”

“익! 이게 누구야, 정아 아니야? 얘가 벌써 이렇게 컸나? 처녀꼴 나네?”

정아가 부끄럼을 타는지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엄마는 영은이에게 일을 못하게 했다.

“너는 쉬어라. 몸도 무거운데 가만히 있어라.”

아버지도 김영은의 불러온 배를 보고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출산 때 까지는 조심하는 게 좋아.”

일은 누나가 많이 했다. 누나는 40대 초반에 주부경력이 붙어서인지 일을 아주 잘했다. 또 일을 쉽게 했다.

차례가 끝나고 음식을 먹기 위해서 가족이 삥 둘러앉았다. 7명이 둘러앉으니 대가족이었다.

“가족들이 다 모이니 좋다.”

아빠가 벙긋거리며 구건호와 김영은을 쳐다보았다.

“대가족이네요. 모두 7명이네요.”

이 말에 음식을 더 가져오던 누나가 웃으며 말했다.

“내년 추석에는 8명이에요. 8명.”

“8명?”

“아, 지금 올케 뱃속에 아이 하나 누어 있잖아요.”

이 말에 모두 웃었다. 정아가 호기심이 생기는지 김영은의 배를 자꾸 쳐다보았다.

식사를 하면서 엄마가 말했다.

“너, 갈 때 옥수수하고 땅콩 좀 가져가거라.”

“옥수수요?”

“내가 남촌동 밭에서 딴 거야. 두 집이 나누었어. 너네 것하고 정아네 것하고 나누었어.”

구건호가 김영은의 얼굴을 쳐다보고 말했다.

“그럴까?”

김영은이 싫다고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누나가 말했다.

“갈 때 우리 회사 선물도 가져가. 운전기사들한테 추석 선물 하나씩 나누어 줬어. 찬호 것 하고 두 개 가지고 가.”

“하하, 그래?“

구건호가 매형의 빈 잔에 술을 채우면서 말했다.

“할 만 하세요?”

“원래 기름밥 먹든 사람이라 불편한건 없어.”

“다행이네요.”

“그런데 모빌하고 디욘코리아에 가서 총무과장들 만날 때가 제일 부담스러워.”

“왜요? 걔들이 뭐라고 합니까?”

“그런 건 아닌데 거기 사장이 처남이라 괜히 조심스러워.”

“그런 건 걱정 안하셔도 돼요. 평상시대로 하시면 돼요.”

이번엔 엄마가 말했다.

“정아야, 넌 아까부터 자꾸 네 외숙모 배를 보냐? 너도 동생보고 싶지? 엄마보고 동생 하나 낳아달라고 해라.”

누나가 발끈했다.

“엄만, 별소릴! 지금 하나 있는 것 기르기도 힘들어요.”

이번엔 아빠가 나무랐다.

“둘이 결혼해 하나만 만들면 쓰냐? 인구가 자꾸 줄어들어 걱정이다. 아직 젊으니까 하나 더 생산해라. 못 키우겠으면 우리 두 내외가 길러주마.”

“아휴, 싫어요.”

아빠가 매형을 쳐다보며 말했다.

“임서방은 어떻게 생각해?”

“예? 저, 저는...”

매형이 얼굴이 빨개진 채 말을 더듬었다.

구건호는 분위기가 이상한 것 같아 말을 바꾸었다.

“정아가 합창대회에 나가서 상 탔다며? 노래한번 들어보자.”

“그래, 한번 해봐라.”

엄마도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노래하면 삼촌이 용돈 준데. 해봐.”

정아가 미적거리더니 마지못해 일어서서 노래를 불렀다. ‘과수원길’ 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합창단원이라 그런지 노래를 진짜 잘 불렀다. 조그만 입으로 앙증맞게 잘 불렀다. 김영은도 이런 모습을 보고 박수를 쳐주었다. 노래의 중간쯤에서 온 가족이 손뼉을 치며 정아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잘 불렀다. 이리와라. 외삼촌이 용돈 줄게.”

구건호가 만 원짜리 몇 장을 꺼내 정아에게 주었다.

“고맙습니다.”

정아가 깊숙이 허리 굽혀 구건호에게 인사를 하였다.

구건호는 식사까지 잘 하고 옥수수와 땅콩까지 얻었다. 누나가 준 로지스틱스 추석 선물도 두 개 챙겼다. 봉투를 하나 꺼내 엄마에게 드렸다.

“자주 찾아뵙지 못해 미안해요.”

“뭐, 이런 걸 주냐. 돈은 우리도 있는데...”

“있어도 필요할 때 두 분이 쓰세요.”

“고맙다. 그리고 네 처 몸 관리 잘 하도록 해라. 떡두꺼비 같은 손주 좀 보자.”

“누나, 매형도 잘 있어요. 저 갑니다.”

“그래, 차 많이 밀리니 조심해 가거라.”

구건호는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신림동 장인이 사는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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