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2
심운학 감독 채용 (2)
(342)
구건호는 이진우 장관과의 인연이 잘된 일인지, 잘못된 일인지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힘들었다. 단지 이진우 장관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협력을 해준 대가로 지에이치 모빌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상해의 리스캉은 정치자금을 만들 위해 환러스지 공사라는 드라마 제작사를 이용하려고 했지. 거기에 리스캉 부친의 이름으로 투자한 30만 달러는 리스캉 부친의 진짜 돈이 아니라는데 약간 머리는 아프겠어.]
[하지만 여기는 달라. 지에이치 모빌의 15%는 이진우 장관 부친의 진짜 돈이겠지. 그 정도는 있는 사람이니까. 더구나 15%를 투자할 때는 지에이치 모빌이 부채가 많아 투자자를 유치할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고 하면 걸려들 것도 없겠지.]
구건호는 청담동 이회장의 말도 생각났다.
[기업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정치권은 불가원(不可遠) 불가근(不可近)이네. 멀리해서도 안 되고, 가까이 해서도 안 된다는 이야기지. 정치권에서 손을 내미는 것을 잡을 수는 있지만 이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지는 말게.]
구건호는 이회장에게 그동안 안부 인사 한번 하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전화를 걸었다.
“회장님 이십니까? 저, 구건호입니다.”
“아, 구사장 이신가?”
노인의 음성이 들렸다.
“자주 연락을 못해 죄송합니다. 요즘 중국에 또 하나 벌리는 게 있어서 연락을 못 드렸습니다.”
“중국에서는 무슨 사업을 하시나?”
“고속버스 사업입니다.”
“고속버스 사업? 정부의 인허가 사업은 그냥 내주진 않을 텐데? 정치자금이라도 먹였나?”
“터미널을 지어주기로 했습니다.”
“그럴 테지. 그런 조건이 있었겠지. 땅 좀 내놓을 테니 터미널 지을 돈 좀 가져오라고 했겠군.”
“제가 2,500만 달러를 내기로 했습니다.”
“거기가 중국 어디인가?”
“귀주성 안당시입니다. 서쪽 끝에 있는 도시죠.”
“부동산 규제는 덜한 지역이겠구먼.”
“그런 것 같습니다.”
“터미널은 토지 등기되는걸 보고 투자하시게.”
“그렇지 않아도 다음번 출자는 토지 등기되는 것 보고 투자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대단하네.”
“예? 뭐가 말입니까?”
“그런 건은 어떻게 연결되어 맡는가? 중국에 인맥이라도 있는 모양이네.”
“상해시의 국장급 정도 되는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흠, 그런가? 지에이치 모빌도 잘 되고 있나?”
“예, 금년 말 매출이 1천억은 넘을 것 같습니다.”
“1천억이라.... 대단하시네. 정치적 입김이 없는 상태에서 짧은 시일 내에 1천억이면 대단한 거네.”
“고맙습니다.”
구건호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다.
[웬걸요. 지금 조금 정치적 입김을 타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회장님이 말씀하신 불가원 불가근이란 명언은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구건호는 전화를 끊고 디욘코리아로 넘어갔다.
디욘코리아는 현관 앞에 차량들이 있는걸 보니 손님이 온 모양이었다. 왜냐하면 직원들은 현관 앞에 차를 주차시키지 않기 때문이었다. 현관 앞에는 주로 구건호 차량만 주차를 했었다.
사장실에 올라가니 김전무가 들어왔다.
“오늘은 어디 안 나가신 모양이네요.”
“이노비즈 인증 실사가 나와서요.”
“아, 그렇습니까?”
“우리가 온라인 자가진단에서는 평점이 잘 나왔습니다. 지금 기술보증기금에서 실사를 나왔는데 우리 회사가 설립된 지 얼마 안 된 기업이라고 시비를 거네요.‘
“이노비즈 인증은 신설기업은 안되나요?”
“원칙적으로 3년 이상 된 기업을 하는 모양입니다. 평점이 좀 깎일 것 같습니다.”
“대응 잘 하시고 무리하게 인증을 받으려고 하지 마세요. 우리가 이 기회에 내부관리 시스템을 구축한다고만 생각하십시오.”
“저도 그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노비즈 뿐만 아니라 ISO구축도 하고 있는 중입니다.”
“흠, 잘 하셨습니다.”
“모빌의 매출 증가에 따라 여기도 급격히 인원이 늘어나 년 말이면 디욘코리아의 종업원 수가 150명이 넘어갈 전망입니다. 내부 관리 시스템 구축이 시급한 실정입니다.”
“전무님을 뒷받침할 이사급 임원이 필요하긴 하네요.”
“아닙니다. 유희열 부장이나 성일기 과장 등이 다 열심히 하고 있어 제가 편합니다.”
“그럼 일 보십시오. 밖에 실사 나온 외부 손님도 있으니 전무님은 가서 일 보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전무이사가 돌아가자 이번엔 상임감사를 불렀다. 숫자에 밝은 사람이라 회사 돌아가는 사정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기에 불렀다.
“지금 해외 수출까지 합하면 월 매출 100톤이 넘어가지요?”
“넘어갑니다.”
“금액으로 따져 년 매출 500억은 달성하겠네요.“
“500억은 무난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노비즈 실사에 생각나는 것이 있어 말씀드립니다.”
“말씀하세요.”
“이노비즈는 우리가 회사가 설립한지 3년 미만이라 점수가 불리하게 나올 수가 있습니다.”
“이야기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김전무님한테도 인증에 신경 쓰는 것 보다는 시스템 구축이 목적이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기회에 우리 회사를 아주 벤처기업으로 신청하면 어떻겠습니까?”
“옛? 벤처기업으로요?”
“그렇습니다. 벤처기업은 코스닥 상장을 3년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벤처 투자기금으로부터 투자받은 회사도 아닌데 가능하겠습니까?‘
“벤처기업 지정신청은 벤처투자기금을 투자받은 회사가 신청 가능하지만, 기술평가 보증기업이나 연구 개발기업도 가능합니다. 배합실 간판을 떼어내고 연구소를 만들었으니 연구 개발기업으로 가보심이 어떻겠습니까?”
“일정비율을 연구개발비로 한다는 기준이 있을 것 아닙니까?”
“제조업의 경우 연구 개발기업은 매출액의 5%를 연구개발비로 써야 합니다.”
“거, 보세요. 우리가 매출 500억이니까 5%면 25억 아닙니까? 말도 안 됩니다.”
“말도 안 되긴 합니다.”
“보세요. 지금 배합실, 아니 연구실의 인원이 6명입니다. 이들의 인건비를 연구비로 몽땅 때려 넣어도 년간 인건비 2억이 조금 넘습니다. 25억을 무슨 수로 맞춥니까?”
상임감사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맞추도록 해야지요.‘
“맞추도록 해? 어떻게요?”
“연구실 외에 압출기 기계잡고 있는 요원들도 모두 연구실 편제로 하는 겁니다. 사무실도 하나 배정해 책상도 주고 평상시는 기계 앞에서 일하지만 작업일지 같은 건 사무실에서 쓰도록 하는 겁니다.”
“흠.”
“명칭도 연구개발실, 연구분석실, 등으로 편제하면 됩니다.”
“그래도 25억은 못 맞추어지겠는데요?”
“그리고 우리가 배합을 위하여 구매하는 화공약품 말입니다. 이걸 전부 시험 분석용 원재료로 때려 넣으면 25억은 충분히 맞추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역시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라 노회하기가 그지없었다.
“흠, 그럴듯한 이야기입니다. 우선 안을 작성하셔서 다음번 임원회의 때 발표를 하도록 하세요. 이런 일은 각 부서의 도움을 얻어야 하니까요.”
“물론입니다. 그럼 제가 안을 한번 만들어보겠습니다.
금요일이 되었다.
구건호가 신사동 빌딩으로 출근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전화가 왔다. 심운학 감독이었다.
“사장님? 접니다. 심감독입니다.“
“아, 예. 감독님.”
“시놉시스는 다 읽어보았습니다. 이것에 대한 의견을 직접 방문하여 사장님께 설명해 드리고 싶습니다.”
“올 때 주민등록 등본하고 이력서 한통 가지고 오세요.”
“이력서요?”
“여기서 필요해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오전 11시경 심감독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말씀하신 이력서와 주민등록 등본은 여기 있습니다.”
구건호는 서류를 받고 보지도 않은 채 테이블 한쪽으로 밀어 넣었다.
“시놉시는 마음에 듭니까?”
“시놉시는 중국 작가가 나름대로 잘 썼습니다. 중국의 작가들도 불과 몇 년 사이에 의식이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흠, 그래요?”
“단지, 가족애를 좀더 강조할 필요가 있어 몇몇 장면을 고쳤습니다. 인물 관계도도 다시 설정했습니다.”
“흠, 그래요?”
“이것은 저 보다도 제 처지를 안타깝게 여긴 한국의 유명 드라마 작가가 조언해준 겁니다. 달달하고 상큼한 연애 이야기와,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힐링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줄거리를 재편성 해 보았습니다.”
“흠, 그래요? 붉은 글씨로 많이 정정해 놓으셨네요.”
“이 정도면 중국의 가정주부나 직장 여성들을 눈물바다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공하겠어요?”
“저는 확신합니다.”
“흠... 그래요?”
구건호가 환러스지 공사 사장이 보낸 이메일 프린트한 것을 심감독에게 보여주었다.
“현재 환러스지 공사는 단기차입금 20억에 미지급금 4억이 있습니다. 미지급금은 모두 밀린 급여들입니다.”
“흐흠...”
“내가 돈을 투자하면 드라마 제작보다는 밀린 임금 주고 빚부터 갚겠지요. 그러면 제작비가 축이 납니다. 제작비를 또 추가 투자하면 돈이 많이 들어갈 텐데 뽑을 수 있겠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작품의 성공성에 무게를 두고 싶습니다. 작품은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작비 일부를 빚을 갚는데 쓴다면 투자금 회수는 어떨지 잘은 모르겠습니다.“
“작품은 성공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또, 제작비라는 것은 원래 계획보다 더 많이 들어갈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야, 그럴 수도 있지만 현대물은 크게 차이가 안 날겁니다.”
“드라마 <모래시계>로 유명한 김종학 PD가 자살한 원인을 잘 아시죠?”
“압니다. 저하고 이름도 비슷하고 좋아했던 선배라 잘 압니다. <모래시계>는 성공했지만 <태왕사신기>가 원래 계획보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갔던 것도 잘 압니다.”
“무려 30%가까이 제작비가 더 들어갔습니다.”
“그렇습니다. <태왕사신기>는 기획단계에서 315억원 제작비를 예상했지만 나중에 보니 406억원이나 들어갔습니다.”
“더구나 누적 매출액도 제작비의 절반밖에 안 됐습니다.”
심운학 감독은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구건호가 다리를 꼬면서 말했다.
“어두운 이야기만 해서 미안합니다. 심감독님처럼 능력 있는 분이 성공할 수 있는 드라마로 예상한다니 중국드라마 <시광여몽>에 대하여 저도 흥미를 갖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 나오는 주인공을 남자는 중국배우로 하드라도 여자는 한국배우로 하고 싶습니다. 이름이 덜 알려진 신인배우를 쓰면 예산이 절감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구건호는 갑자기 설빙이 생각났지만 바로 지워버렸다.
“이렇게 하시죠.”
“어떻게 말입니까?”
“일단은 심감독님을 지에이치 미디어의 드라마 사업본부장으로 채용하겠습니다.”
“옛? 채용요?”
“단, 월급은 100만원으로 합니다. 그 이상의 급여 책정은 채권자들에게 압류를 당하니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건, 그 그렇습니다.”
“그리고 내가 중국 투자를 결정하면 심감독님은 중국서 근무하는 겁니다. 나머지 급여는 중국에서 보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갑자기 심감독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자기를 채용하는 것은 중국에 투자를 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가, 감사합니다. 사장님.”
“지에이치 미디어 채용 때문에 이력서와 주민등록 등본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4대 보험은 가입해 드려야지요.”
“고, 고맙습니다. 사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