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0
공상은행 지점장 재회(再會) (2)
(340)
저녁 6시가 되었다.
가방을 들고 후줄그레한 양복을 입은 왕지엔이 나타났다.
“왕지엔!”
“구건호 반갑다!”
“은행 지점장이란 사람은 안 왔나?”
“아직 안 왔어.”
“지점장한테 뭘 이야기 하려고 그래?”
“은행 지점장 만나면 할 일이 뭐 있나? 돈 빌려달라고 하는 말 밖에는.”
“하긴 그래.”
“어? 저기 온다.”
말쑥한 차림의 지점장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구사장님? 전보다 많이 몸이 나신 것 같네요. 그동안 변한 것 같아 잘 못 알아보겠네요.”
“지점장님은 그대로이신 것 같습니다.”
“그래요? 고맙습니다.”
“참, 인사하시죠. 절강대학의 왕지엔 교수님입니다.”
“아, 왕교수님! TV에서 몇 번 뵈었습니다.”
“TV요? TV에 자주 나오는 모양이지요?”
“경제 진단 같은 때 많이 나옵니다.”
“가끔 나와서 잡스러운 소리나 하고 있지요. 허허.”
“식사는 멀리 갈 필요 없이 왕후삔관에서 하시죠.”
구건호는 두 사람을 5층에 있는 왕후삔관 식당으로 안내했다. 호텔 내 음식점이라 깨끗했고 시원한 창문 너머로 서호의 호수가 보였다.
지점장이 맥주를 한잔 하면서 구건호에게 물었다.
“구사장님은 지금 중국에 계십니까? 한국에 계십니까?”
“왔다 갔다 합니다.”
구건호는 지에이치 모빌과 디욘코리아, 지에이치 개발 등 3개 회사 대표이사의 글자가 인쇄된 명함을 지점장에게 주었다.
“지에이치 모빌? 뭐하는 회사입니까?”
“자동차 부품 제조회사입니다.”
“오, 그렇습니까? 회사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작년도 매출은 한국 돈으로 816억을 했습니다. 금년에는 1천억을 돌파할 것 같습니다. 달러로 환산하면 1억 달러 정도 되겠네요.”
“헉! 1억 달러!”
지점장이 놀랐다. 옆에 있던 왕지엔도 놀라는 눈치였다.
“중국에 투자는 안합니까?”
오늘은 그것 때문에 왔습니다. 실상 법인은 규모가 커도 이익이 안 나면 배당을 못하는 것 아닙니까?“
“그야 그렇겠지요.”
“그래서 개인적 재산이나 불려볼까 합니다. 귀주성 안당시에 화계화원이란 아파트가 있습니다. 여기 융자를 받을 수 있을까 해서요.”
“거긴 얼마나 합니까? 안당시 같으면 비싸진 않을 텐데요.”
“장식까지 하면 100만 위안 정도 합니다. 그 지역에선 가장 비싼 곳입니다.”
“역시 이곳보다는 훨씬 싸군요. 그런데 어떻게 거기까지 가서 아파트를 사게 되었습니까?”
이번엔 왕지엔이 말했다.
“거기서 터미널 사업을 한답니다. 터미널을 짓고 고속버스 운송 사업을 하는 거지요.”
“터미널 사업요? 그건 돈 많이 들어가는 사업 아닙니까?”
“5천만 달러짜리 프로젝트입니다.”
“그럼 한방측이 2,500만 달러라는 이야기네요.”
“그렇습니다. 이미 350만 달러가 투자되었습니다.”
“오, 그래요?”
장빙차오 지점장과 왕지엔 교수가 동시에 놀라는 시늉을 했다.
“그래서 제가 자문 좀 구하고자 지점장님을 뵈려고 했습니다.“
“하하, 제가 건설에 대하여 뭐 아는 것이 있나요?”
“혹시 기성고(旣成高)에 따른 대출이 가능한지요?”
“기성고? 기성고가 뭡니까?”
“영어로 하면 건설의 Completed Amount 말입니다.”
지점장이 눈을 깜박이는데 왕지엔이 옆에서 보고 말했다.
“아, 완성 공정량(工程量)에 따른 대출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아, 완공대관(完工貸款)을 말하는 것 같네요. 하지만 토지가 합자사 명의라야 하고 인허가를 득한 사업부지라야 합니다. 건축허가도 마땅히 따라야 하고요.”
“조건이 갖추어지면 건설 중인 건물도 완성도에 따라 대출이 가능하단 이야기군요.”
지점장이 음식을 먹으며 말했다.
“그건 안당시에서 거래하는 주거래 은행이 있을 것 아닙니까? 거기에서 상의를 해야 되겠지요.”
“이것은 꼭 그렇게 한다는 것 보다는 참고로 그냥 한번 물어보았습니다. 뭐, 중방 측에서 알아서 하겠지요.”
한쪽에서 술만 마시던 왕교수는 고개만 두 번 크게 끄덕였다.
“다음엔 제가 안당시에 아파트를 구입하는데 아파트 구입가격의 40% 정도를 융자받으려고 합니다. 혹시 그쪽 공상은행에 잘 아시는 분이 있습니까?”
“안당시는 없지만 귀양시에는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번 물어볼까요?”
“번거롭게 해서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이것도 다 은행 비즈니스인 데요 뭐.”
지점장은 바로 귀주시 공상은행 지점정에게 전화를 했다.
“여기 항주야. 퇴근했나? 우리 고객 중 한분이 안당시 공상은행을 찾아가려고 하는데 거기 지점장이 누구지?”
“류샤오똥(劉小東)이야. 왜?”
“아파트 사고 대출 좀 받으려고 하는 모양이야.”
“그야, 누구든지 아무 때고 찾아가면 되지. 아는 사람이라고 이자 싸게 해줄 것도 아닌데.”
“그래도 아는 사람 통하면 접근하기가 쉽지. 한국인이 한사람 아파트 융자 때문에 상의하러 오면 친절히 잘 대해주라고 해라.”
“한국인이? 알았어. 전화나 한통이나 해주지.”
지점장이 서호초어(醋魚)를 한 점 떼어 먹으며 말했다.
“오늘 저에게 물어보시겠다는 것은 그것뿐입니까? 항주에선 더 이상 사업은 안 하십니까?”
“인연이 닿으면 하겠는데 아직은 벌려놓은 것이 없네요.”
“우리 왕교수님이 더 크고 좋은 집 사서 이사 갈 때 지점장님이 편의를 보아주십시오.”
왕교수가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난, 지금 살고 있는 집도 과분해요.”
구건호가 오늘 지점장을 만난 것은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첫째는 안당시에서 화계화원 아파트를 사면서 대출받는 것이 용이하게끔 현지 지점장을 소개받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합자사가 건설 중인 건물과 토지를 담보로 건설자금을 융자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건설 중인 자금융자는 현지 지점장들에게 확실한 답변을 듣고 싶어서였다.
구건호가 지점장에게 거래하는 것도 없이 시간만 빼앗은 것 같아 면세점에서 산 화장품세트를 선물했다.
“귀중한 시간 뺏어서 미안합니다. 이건 한국 화장품입니다. 사모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헉! 이런 것을! 고맙습니다. 제 처가 한국화장품을 좋아하는데 집에 가져가면 상당히 고마워할 것 같습니다.“
구건호는 왕후삔관 음식점에서 지점장을 배웅했다. 지점장이 먼저 가고 왕교수와 구건호 둘이 남았다.
“구사장, 여긴 너무 고급스럽다. 내려가서 서호 주변을 걷다가 맥주나 한잔 하자.”
“좋지.”
구건호는 왕지엔과 함께 서호 주변을 걸었다.
“이곳 항주는 전보다 많이 달라졌네. 새 건물이 많이 들어섰어.”
“하루가 다르게 자본의 힘이 위력을 발휘하지.”
“그래, 맞다. 서쪽의 구석진 도시 안당시도 거리 곳곳에 건설 중인 데가 많더라. 개발이 한창이야.”
“사람이 몰리면 집값이 올라가게 되어있지. 그런데 너 합자사 건설자금은 중간에 대출받으려고 그러는 거냐?”
“한 가지 물어보자. 안당시 교통국은 터미널 부지를 출자하고 합자사를 만들었는데 터미널을 과연 합자하고 싶을까? 시청건물이나 기차역을 합자하고 싶을까?”
“합자를 한다고 계약을 했으면 당연히 그래야지.”
구건호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터미널은 금계산업단지와 다르다. 터미널은 공공 건물이다. 금계산업단지는 한국기업을 유치해야할 필요성이 있지만 터미널은 그런 마음이 없을 거다. 터미널은 굳이 합자를 안 해도 수익이 보장되는 사업이다. 다만 건설자금이 조금 모자랄 뿐이지.”
“그 말이 무슨 말이지?”
“합자를 한다고 하여 투자를 유치하고는 터미널은 굳이 합작형태로 가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즉, 합자사로 토지등기를 안 해 준다는 이야기지.”
“설마?”
“두고 봐라. 안당시 객운공사는 우리보고 출자금만 빨리 가져오라고 재축하지 토지등기는 각종 이유를 들어 안 해줄 것이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
“우리는 합자사 명의로 토지 등기를 안 해 주면 더 이상 돈을 못 넣겠다고 해야지.”
“옳아, 그럼 중방이 기성고를 가지고 자기들끼리 융자 받고 터미널을 운영한다는 거겠군.”
“그렇지.”
‘그럼 이미 들어간 350만불은 어떻게 해?“
“고속버스 회사 면허를 내주었으니 약간의 과실송금을 하게 해주겠지. 350만불에 대한 이자와 원금상환조로 매년 죽지 않을 정도로 과실 송금을 해주겠지.”
“그럼 큰 매력도 없는데 왜 이 사업을 하려는 거지?”
“이자보단 나으니까. 한국에서 이자소득으로 종합소득세를 맞는 것 보다는 나으니깐 하는 거지.”
왕지엔이 걸음을 멈추고 구건호를 쳐다보며 웃었다.“아파트를 투자하는 건 간식용이군.”
“간식이지. 사 두었다가 임대 놓으면 융자 받은 돈 이자는 카버가 되겠지. 그렇게 3년간만 푹 담가두면 맛있는 음식이 되겠지? 항주에서 화강화원을 샀을 때처럼 말일세.”“과연, 사업가다운 발상이야.”
“저기 맥주집이 있다. 치킨조각에 생맥주나 마시자.”
“그래 들어가자!”
왕지엔은 칭따오 맥주 두병을 시켰다. 그리고 치킨 후라이드도 시켰다.
“리스캉은 만났다고 했지?”
“만났지. 환러스지 라는 드라마 제작사 사장도 만났지.”
“거기 사업에 투자할건가?”
“솔직히 말해 투자하고 싶은 생각은 없네.”
“그럴 테지.”
왕지엔이 시니컬한 웃음을 지으며 맥주를 마셨다.
“환러스지 공사가 자본금이 100만 달러네. 리스캉의 부친이 30만불을 투자한 것으로 되어있더군.”
“그랬을 거야.”
“노인들은 수익이 많다 하더라도 위험이 높은 사업에 투자하는 것은 꺼려하지. 캐쉬카우 사업이라면 몰라도 말이네. 너무 욕심을 부렸어. 30만 달러면 적지 않은 돈이지. 나는 친구들이 모아준 정치자금이라고 보네. 합법을 위장한 정치자금이지. 리스캉이 더 높은 곳으로 가려면 자금이 필요하지 않겠어?”
“리스캉이 환러스지 공사 애들을 너무 믿었든 게 탈이야. 드라마 제작은 잘 할지 몰라도 비즈니스에 약했지. 너무 스타 배우들에게 의존하려고 했어.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진 거지.”
“그런 셈이네.”
“실은 네가 금계산업단지 합자하면서 준 커미션에다가 친구들이 돈을 합쳐 30만 달러를 만들었어. 그 돈이 부친의 이름으로 투자한 거지. 리스캉이 담당 국장으로 있으니까 방송국에서 지원하는 제작비나 좋은 시간대 편성 같은 건 압력을 넣어 줄줄 알았지. 하지만 톱스타 한사람이 몽땅 가져가는 구조라서 시청율이 오르지 못하면 까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지.”
“환러스지는 지금 부채가 20억, 미지급금이 4억이네.”
“그런가?”
“내가 돈을 투자해도 채권자들에게 시달리니까 먼저 부채부터 갚으려고 한다면 제작비는 또 다시 가져와야 한다는 말이 되네. 그래서 나도 얼른 결정을 못하고 신중해질 수밖에 없네.”
“나도 그때 적극적으로 말렸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후회스러워.”
왕지엔은 그러면서 고개를 젖히고 맥주를 마셨다. 그의 목 젓이 보였다.
“그때 이 사업은 되는 사업이라고 환러스지 공사 사장 천바오깡이 하도 우기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지만 좋은 선택은 아니었어.”
“흠, 그랬나?”
“내가 듣기로는 세 번째 제작은 한국의 투자금도 중요하지만 한국의 드라마 제작기술이나 컨텐츠의 내용을 지원받으려고 하는 것 같아. 한국이 드라마는 잘 만들잖아?”
“그래서 나도 참 고민이 많다. 사업이란 생각보다 그렇게 쉽게 가는 건 없어.”
“그럴 테지. 네가 돈 가져오면 환러스지 공사 애들은 밀린 임금이나 밀린 캐런티나 주려고 하겠지. 이 문제는 나도 자신이 없어 투자하라고 강력히는 말 못하겠다.”
그러면서 왕지엔은 괴로운 표정으로 술을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