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339화 (339/501)

# 339

공상은행 지점장 재회(再會) (1)

(339)

9월말이 되었다.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구건호가 신사동 사옥으로 출근하여 이 메일을 열어보았다. 여러 광고 이메일 속에 중국 드라마 제작사인 환러스지 공사에서 보낸 이메일이 있었다. 일부 간자체는 깨져서 들어왔다.

구건호가 이메일을 열어보았다. 안에 있는 내용들은 깨져있지 않았다.

[존경하는 구사장님께.

저희 환러스지 공사의 경리직원이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어 재무현황을 보내드리지 못했습니다. 환러스지 공사는 설립된 지 1년 정도의 회사로 자본금은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1백만 달러입니다.

금년에 드라마 두 편을 찍었습니다. 하나는 ‘형제몽(兄弟夢)’이라는 항일물 35부작으로 이미 방영이 끝났고 현재 찍고 있는 것은 ‘추일연(秋日宴)’이란 현대물입니다. 33부작인데 현재 2회가 남았습니다.

금년도 매출은 금일 환율로 계산하여 한국돈 128억이며 제작비와 일반관리비로 104억을 지출하였습니다. 24억 영업손실이 발생했습니다.

환러스지 공사의 부채는 현재 단기차입금이 20억이고 미지급금이 4억입니다. 두 번의 일일 연속극의 시청율이 저조하여 3번째 드라마는 작가의 원고만 받아 논 상태입니다.

환러스지 공사는 유능한 스탭들이 있고 그 동안의 노하우도 있어 이대로 해산하기는 너무 아깝습니다.

저희는 구사장님과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지난번에 같이 오셨던 심운학 감독님께 드릴 다음번 작품의 시놉시스를 보내드리오니 검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좋은 소식 있기를 기대합니다.

20xx년 9월 29일 환러스지공사 총경리 천바오깡 드림.]

구건호는 시놉시스를 심운학 감독에게 이메일로 다시 보냈다. 그리고 전화로 문자를 넣어주었다.

[중국에서 시놉시스가 왔네요. 번역작업은 내가 시키겠습니다.]

구건호는 전에 사업계획서 번역 일을 시켰던 외국어대학 중문과 강사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나, 지에이치 구건호 사장이요.”

“어마, 사장님. 건강하시죠?”

“전화 받을 수 있지요?”

“예, 괜찮습니다.”

“드라마 대본 시놉시스 하나를 보냈으니 최대한 빨리 번역해서 보내줘요. 문학이라 표현에 난이도가 있는 문장들이 있을 겁니다. 잘 번역해 보세요.”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사장님.”

구건호는 중국에서 온 이메일을 프린트해서 다시 읽어보았다. 다리를 꼬고 앉아 비서 오연수가 가져온 녹차를 마시면서 천천히 읽어보았다.

“흠, 단기 부채도 채권자들이 돈을 달라고 재촉을 하겠군. 미지급금 4억이면 대부분 인건비나 개런티 같은데? 현재 직원들 급여는 얼마나 밀렸나?”

구건호는 답신을 보냈다.

[보내주신 이메일 잘 받았습니다. 미지급금에 대한 세부내역을 알고 싶습니다. 인건비는 내부직원 급여와 외부 캐런티를 구분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단기차입금 부채도 금융기관별 현황을 알고자 합니다. 시놉시는 현재 번역을 맡겼습니다. 힘들 내시기 바랍니다.]

구건호는 단기차입금 같은 것은 금융권 부채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연기를 해보면 되겠지만 미지급금의 대부분이 급여라면 빨리 지급해야할 상황이 벌어질 수 있겠다고 생각되었다.

구건호가 꼬운 다리를 풀고 신문을 보고 있는데 신사장이 사장실에 들어왔다. 지에이치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일본 현대작가전에 대한 조중동 신문기사를 가지고 올라왔다.

“저희 갤러리에서 열리는 일본 현대작가전 기사에요. 한번 보시겠어요?”

구건호가 신사장이 준 신문을 읽어보았다.

[일본 현대 작가 3인전이 신사동 지에이치 갤러리에서 열린다. 일본의 전통과 현대를 접목시킨 대담한 구상은 우리에게도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 작품을 통하여 현대 일본 젊은이들의 고민과 사유체계를 엿볼 수 있다.]

그림까지 신문에 실려 나왔다. 전통 기모노를 입고 있는 일본여인의 얼굴에 한쪽은 서양의 배우의 얼굴을 한 모습이어서 구건호가 보기엔 이상했다.

“전시회가 오늘부터 열리나요?”

“그렇습니다.”

“점심 먹고 오다가 한번 들러 보겠습니다.”

“영은이는 좀 어때요?”

“음식은 잘 먹습니다. 배도 약간 불러온 것 같기도 합니다.”

“호호, 입덧 시기가 끝나서 그런 모양이네요. 좋아하는 음식 많이 사 주세요.”

구건호는 지에이치 개발의 강이사와 함께 신사동 빌딩 건너편에 있는 김수사(金壽司)라는 일식집에서 초밥을 먹고 일본 현대 미술전을 구경했다. 사진에서 볼 때와 달리 실제 그림을 보니 무언가 강렬함이 있고 호소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흠, 예술 작품이란 이런 힘이 있는 것 같군.]

구건호가 천천히 그림을 구경하고 18층 사장실로 올라왔다.

커피를 한잔 마시고 꾸벅꾸벅 졸다 깨니 벌써 오후 2시가 되었다. 이 시간이면 구건호가 졸다가 깨는 시간이란 것을 아는 문재식이 전화를 했다.

“문사장? 할만해?”

“날마다 매표수입현황을 보고받으니 이제 재미가 좀 있네.”

“손님은 많아?”

“토요일, 일요일은 꽉꽉 차서 갔어. 다음 달에 추석이라 예비차 한 대 늘려달라고 시청에 요구한 상태야.”

“그렇지, 추석엔 이동이 많으니 그렇겠지.”

“예비차 늘리는 것도 여기 시청에서 귀양시와 협의해야 돼. 오후에 운수처장이 귀양시 출장갔다 온다고 했어.”“그랬나?“

“운수처장이 여자인데 내가 귀양시 출장가는거 빨리 해달라고 졸랐어. 그리고 출장 갈 때 내차 아우디 빌려주겠다고 하니까 벌컥 화를 내네.”

“왜?”

“자존심이 상했는지 ‘우리도 차 있어요.’ 그러던데?“

“하하, 그래?”

“중국여자들 좀 사나운 데가 있는 것 같아. 아, 그리고 나 화계화원으로 이사했어.”

“그래? 살만 해?”

“와, 진짜 좋데. 36평짜리 새 아파트 침대에 들어누우니까 진시황이 부럽지 않았어. 완전히 아방궁이 따로 없더군.”

“양귀비나 하나 데려오면 되겠다.”

“양귀비는! 다음 달에 못난 와이프가 오기로 했어.”

“제수씨가 몸도 무거워졌을 텐데 빨리 들어와야 되는 거 아니야?”

“아파트를 장만해 이사했으니 빨리 들어오라고 했어. 정리할 것이 있으니까 10월 중순쯤 들어올 것 같아.”

“그런가?”

“아마 와이프 여기 들어오면 놀랄 거야. 고급 아파트에 남편이 아우디 타고 다니는 고속버스회사 사장이 되었으니 얼마나 놀랄 거야? 다 구사장 덕택이긴 하지만 말이야.”

“쓸데없는 소리!”

“요즘, 내가 그런 걸 느껴. 살다보니 이런 세상도 있구나 하는 걸 느껴.”

“하하, 그래?”

“아, 그리고 아파트 물어보았어. 현재 남아있는 것이 8채인데 내가 5채만 사겠다고 했어. 한국에서 나오는 간부직원들 숙소로 사용한다고 했어.”

“그랬더니 뭐래?”

“회사 영업집조하고 투자확인서와 외국인등록증도 복사해 달라고 해서 다 줬어.”

“그래? 일단은 내가 계약금을 보내줄게.”

구건호는 비서 오연수에게 엄찬호를 대기시키라고 지시했다.

구건호는 공상은행의 통장과 도장, 그리고 신분증 등을 들고 나왔다.

“어디로 가시죠?”

“서울시청으로 가자.”

“시청요?”

“시청앞 삼성그룹 본관 옆에 중국 공상은행이 있다. 거기로 가자.”

한국 내 공상은행은 지금 구건호가 가고자하는 태평로 지점이 있지만 중국인들이 많이 몰려있는 영등포구 대림동이나 건국대학 앞에도 있다.

“중국은행이 거기도 있어요?”

“있어. 그 근처에 유료 주차장이 있나 찾아봐야겠구나.”

중국 공상은행(ICBC)은 중국 국유 상업은행으로 전 세계에 뻗어있는 글로벌 은행이다. 구건호는 중국 공상은행에 위완화 예치가 되어있지만 인터넷 뱅킹이 신청이 안 되어 있고 직접 은행엘 갔다. 또 송금액이 거액이라 직접 은행엘 가야했다.

구건호는 벤틀리 승용차 차 안에서 조용히 공상은행 통장을 열어보았다. 한국 돈으로 하면 약 17억원이 예치되어 있었다.

“금계 산업단지 철수할 때 받은 돈이지. 이 중에서 김민혁이 있는 기차배건 유한공사 설립자금을 썼지만 환수했고 딩딩이 있는 회사의 창고를 살 때 들어간 돈도 도로 받았으니 아직 그대로 있네.”

“금계산업 단지 철수할 때 받은 돈 보다는 그래도 한 1억 정도 쓴 셈이네.”

구건호는 공상은행에 가서 한화 1억원 정도를 문재식에게 송금했다. 아파트 5채 살 계약금조로 송금했다.

공상은행 직원이 구건호의 예치된 통장의 금액을 보고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중국말 할 줄 아세요?”

공상은행 창구에는 중국어를 잘하는 한국인 여행원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날 구건호에게 중국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은 사람은 중국인 남자직원이었다.

“정기예금하실 생각이 없습니까? 년 2.7%이자가 붙습니다.”

“됐습니다. 곧 빠져나갈 돈입니다.”

“언제라도 정기예금 의사가 있으시면 찾아주세요.”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은행 문을 나와 바로 문재식에게 전화를 해 주었다.

“방금 태평로에 있는 공상은행에서 60만 위안(한국돈 1억원) 송금했어. 아파트 위치 좋은 곳으로 5채 계약해봐. 60만 위안이면 충분하지?”

“응, 충분해.”

구건호는 태평로에 있는 공상은행을 들렸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왕지엔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 술 한 잔 할까?”

“내일? 너, 지금 어디에 있니? 상해냐?”

“아니야. 서울이야.”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항주엘 오겠다는 거야?”

“응, 가을바람이 불어서.”

“실없는 사람 같으니! 그래 와라. 나도 너 만나면 할 이야기들이 많을 것 같다.”

구건호는 사무실에 돌아와 옛날 명함철을 뒤졌다.

“흠, 여기 있네.”

구건호가 찾아낸 명함은 옛날 항주에 있을 때 알게 되었던 중국 공상은행 지점장 장빙차오(張炳朝)였다.

구건호가 전화를 걸었다.

“지점장님이시죠? 혹시 기억하시려는지 모르겠습니다. 4년 전에 항주에서 화강화원 198평방미터짜리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지점장님 신세를 졌던 한국 사람입니다.”

“오, 안녕하세요? 기억납니다. 화강화원이 고급아파트라 기억나고, 손님도 한국인이라 특별히 기억납니다.”

“지금 어디 지점에 근무합니까?”

“지금 서호지점 그대로입니다. 한번 놀러오세요.”

중국은 한국처럼 공무원이나 은행원들의 자리 바뀜이 심하지 않았다. 아직도 장 지점장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내일 저녁 식사 같이 하시죠?”

“내일이요? 뭐, 좋습니다. 어디로 갈가요?”

“내일 오후 6시에 왕후삔관(望湖賓館: 망호빈관)에서 뵙지요.”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인터넷으로 바로 항공권을 예약했다. 방학도 끝나고 시즌이 아니라서 비행기 좌석은 많이 남아 있었다. 더구나 비즈니스 클라스는 많이 남아 있었다.

다음날이 되었다. 구건호는 오후 2시쯤 항주의 소산비행장에 내렸다. 기내식이 소화가 안 되는 것 같아서 사이다를 하나 사먹고 항주의 망후삔관으로 갔다.

“이거 6시까지 어떻게 기다리지? 비행기 시간이 안 맞아 지금 왔지만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네. 그럼 뱃놀이나 하지.”

구건호는 서호에 있는 유람선에 몸을 실었다. 서호 유람선은 바가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돈이 많은 구건호도 비록 작은 돈이지만 바가지 쓰는 것은 싫었다. 두어 번 흥정을 하고 배를 탔다.

“호수 안에 있는 저 섬에 갔다 오고 나서 호수나 한 바퀴 돌면 얼추 시간이 되겠다.”

구건호는 배 위에서 왕지엔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항주에 왔어. 이따 6시에 왕후삔관에서 만나자.”

“왕후삔관? 왜 거기서 만나? 둘이 만나는데 고급 호텔에서 만날 필요가 뭐있어?”

“만날 사람이 있어서 그래.”

“누군데? 한국인이야?”

“아니, 공상은행 지점장이야.”

“공상은행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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