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6
환러스지(歡樂世紀) 드라마 제작사 (3)
(336)
구건호와 김민혁, 그리고 심운학 감독은 상해의 영화 촬영소인 영시낙원(影視樂園)을 구경하고 무석시로 향했다.
상해의 영화촬영소에서 많이 걸어서인지 세 사람은 모두 차안에서 잠이 들었다. 서로 쓰러져 코까지 골며 잤다.
한참을 달려 무석시에 도착했다. 2시간은 족히 달려온 것 같았다.
“야, 이거 점심 먹을 시간이 지났다.”
무석시는 강소성 남부지역인 장강 삼각주에 있는 도시로 소주시 옆에 있으며 인구는 650만 명이다. 태호라는 거대한 호수가 있어서 삼국지와 수호지를 재현하는데 적합한 장소였다.
“어디 가서 간단히 만두나 먹고 촬영소 구경하자. 촬영소 구경하고 저녁이나 잘 먹자.”
“그럴까?”
운전기사까지 네 사람은 영화 촬영소 앞에 있는 쾌찬(快餐)이라고 쓴 분식점 앞에서 만두와 꽈배기 같은 것을 사먹었다.
“이거라도 먹으니까 살겠다.”
만두를 먹으면서 같이 따라온 운전기사가 말했다.
“아까 오다보니까 여기 문표(門票: 입장권)은 210위안이나 하던데요? 상해 영시낙원 촬영소보다 훨씬 비쌉니다.”
“흠? 그래요? 그럼 입장료만 840원이란 이야기네. 한국 돈으로 15만원 정도하네. 되게 비싸네.”
구건호가 지갑을 꺼내 기사에게 1천 위안을 주었다.
“당신이 표 4장만 사와요.”
“알겠습니다.”
옆에 있던 김민혁이 펄쩍 뛰었다.
“무슨 소리! 입장권 값은 내가 낼게.”
“김사장은 이따가 맛있는 저녁이나 사. 여기 입장권은 내가 살 테니까.”
기사가 표 4장을 사왔다.
“여기 거스름돈입니다.”
구건호가 웃으면서 돈을 받지 않았다.
“기사님 시원한 음료수 사 먹으세요.”
“고맙습니다. 사장님.”
운전기사는 구건호에게 고개를 까닥이며 인사를 했다.
촬영소는 입장권이 비싸도 사람들로 넘쳐났다. 대절버스를 타고 온 것으로 보아 다른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삼국지의 주역이 도원결의한 장소가 있었고, 무기를 든 삼국지의 장수들 모형이 위엄 있게 서 있었다. 학창의를 입고 공작 깃털의 부채를 든 제갈공명도 있었다.
“궁궐도 있네?”
“오나라 궁궐입니다. 손권이 있는 궁궐입니다.”
태호 주변에는 조조군단의 군선들이 정박해 있었다.
“야, 이 태호 라는 호수가 바다야? 저수지야?”
김민혁이 옆에서 말해주었다.
“방금 한국 관광객을 안내하는 가이드가 말하는걸 보니까 여기 태호가 한국의 제주도보다도 크고 서울의 몇 배 면적이라고 그러네.”
구건호가 넓은 호수를 넋 놓고 쳐다보고 있으니까 운전기사가 웃으며 말했다.
“이 태호는 민물이지만 파도도 치고 미역도 납니다.”
“민물에서 어떻게 그러죠?”
“민물이지만 호수가 하도 넓어 달의 중력 영향을 받아 파도가 칩니다.”
“그래요?”
사람들은 배 위로 올라가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앉았을 만한 지휘부에 앉아 사진을 찍느라고 법석이었다. 구건호도 사진이나 한 장 찍을까 하다가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만 두었다.
일행들은 당성(唐城)도 구경하였다. 이쪽은 삼국지나 수호지처럼 인기가 덜한지 사람들이 붐비지 않았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운이 좋았는지 사극영화 촬영하는 것을 구경할 수 있었다. 여자배우를 보니 예쁜 것 보다는 몸매가 좋고 얼굴 윤곽선이 뚜렷한 배우였다.
“옷 저렇게 입고 덥겠는데?”
한 커트가 끝나자 군졸 복을 입은 많은 사람들이 손바닥만한 그늘 속으로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방패와 칼은 궁성 담 벽에 세워놓았다. 칼은 은빛 칠을 하였다. 구건호가 칼을 들어보니 플라스틱이 아니고 나무였다. 나무로 칼 모형을 만들고 은빛 페인트를 칠해 놓았다.
“어, 이게 다 나무네.”
구건호가 칼을 들고 웃었다. 그늘에서 쉬고 있던 군졸하나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아저씨, 그거 만지지 마세요!”
“예? 알았어요.”
구건호가 나무칼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나무칼자루 속에 한 두 자루는 진짜 칼도 있었다. 이것은 진짜 칼끼리 부딪칠 때 써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행들은 수호지 촬영소로 갔다. 수호지에 나오는 무대가 팔았다는 호떡을 사먹고 있는데 관광객들이 ‘판진리엔’을 소리치며 한쪽으로 우루루 몰려갔다.
“판진리엔(潘金蓮: 반금련)이다!”
“판진리엔?”
구건호도 어디서 들었던 이름인 것 같아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람들이 몰려간 곳을 보니 어떤 모형 옛날 집에 반금련의 집이란 깃대가 꽂혀 있었다.
“아, 반금련!”
반금련은 수호지에 나오는 요부의 이름이었다. 떡장사 하는 남편 무대를 놔두고 돈 많은 서문경한테 붙어 불륜을 저지른 여인이었다. 미모와 색으로 유명한 여자였다. 떡장사 남편 무대는 불륜 현장을 덮쳤다가 오히려 서문경의 발길질에 맞아죽었다.
구건호와 김민혁, 그리고 심운학 감독이 반금련의 집으로 들어가 보았다. 안에는 진짜 반금련의 복장하고 화장을 짙게 한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요염하게 보이게 하려고 턱에 사마귀도 하나 만들어 부치고 부채를 들고 앉아 있었다. 관광객들은 이 여자와 서로 사진을 찍으려고 아우성이었다. 사진은 한번 찍는데 10위안씩 받았다. 중국인들의 장사 속 하나는 기발 났다.
구건호 옆에 있던 김민혁이 갑자기 웃었다.
“으하하하, 반금련이 옆에 진짜 뚜쟁이 왕노파도 앉아있네.”
구건호가 보니 정말 왕노파로 분장한 사람이 옆에서 지팡이를 짚고 앉아 있었다.
무석 영화촬영소 관광을 마친 일행들은 소주시로 왔다.
구건호와 심감독은 김민혁이 예약해 논 하야트 리젠시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다시 김민혁이 안내하는 고급 음식점으로 왔다. 전통 중국음식점으로 전통복장을 한 악사가 나와서 호궁을 연주하는 음식점이었다.
“오우, 굉장하네요.”
심운학 감독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호화스런 홀 주변을 살펴보았다.
“구사장, 딩딩이 여기로 온다고 했어. 구사장 왔다고 하니까 온다고 했어.”
“하하, 그래?”
키가 후리후리하고 개량 치파오를 입은 딩딩이 들어왔다.
“쥐쫑(구사장님)! 반갑습니다!”
딩딩이 들어오면서 손을 내밀었다. 중국은 개방적이라 여자들도 남자를 만나면 손을 잘 내밀었다.
“점전 더 세련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호호, 사모님도 한번 모시고 중국에 오세요. 소주는 관광도시니까 구경할 때도 많잖아요?”
“기회가 되면 한 번 같이 오지요.”
구건호가 심감독을 딩딩에게 소개했다.
“이 분은 여기 김사장 부인입니다. 상해 국제학교에 영어교사로 있다가 김사장과 결혼했습니다. 중국 한족입니다. 현재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아, 그러십니까?”
딩딩이 유창한 영어로 심감독에게 말했다. 심감독은 영어가 시원찮은지 두 손을 휘저으며 못 알아듣겠다고 하였다.
김민혁이 심감독에게 말했다.
“제 처는 여기서 디욘코리아라는 회사의 플라스틱과 엘라스터머라는 인조 합성고무 원재료를 판매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디욘코리아는 미국의 세계적 기업인 라이먼델 디욘사와 구건호 사장이 각각 50%씩 투자한 회사입니다.”
“그렇습니까?”
심감독은 구건호의 저력에 또 한 번 놀랐다.
음식이 나왔다. 심감독은 먹어보지 못한 음식들이 꾸역꾸역 나왔다. 길거리의 중국음식은 먹기가 이상했지만 여기의 음식들은 하나같이 잘 맞았다. 값비싼 바이주도 나왔다. 참석자들은 오늘 상해와 무석의 촬영소를 구경하느라 운동량이 많아서 그런지 술들을 잘도 마셨다.
“오늘은 술이 좀 받네.”
“받으면 많이 들어.”
“깐베이 한번 하지.”
“좋아!”
참석자들은 모두 잔을 부딪쳤다. 구건호와 김민혁은 폼 잡고 술들을 마셨다. 김민혁이 말했다.
“왔으니 간단한 업무보고는 해야지.”
“됐어, 나중에 해.”
“그럼 간단히 대략적인 것만 말할게. 지금 매출은 월 8억5천 정도 해. 년말이면 100억은 달성할거야.”
“흠, 그래? 니가 수고 많이했다.”
딩딩도 웃으면서 구건호의 잔에 술잔을 부딪치며 말했다.“
“저도 보고 드리죠. 현재 90톤 매출인데 100톤을 하기 위해 뛰고 있습니다.”
“여기 톤당 460에 들어오죠? 년 간 매출이 50억 정도 되겠네요. 초기년도로서는 아주 훌륭한 성적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구건호와 딩딩이 다시 잔을 부딪쳤다. 중국어를 모르는 심감독은 구건호와 딩딩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눈만 껌벅였다.
김민혁이 구건호에게 말했다. 심감독은 김민혁이 말할 때 한국어로 말하니 좋았다.
“드라마 제작사 사람들은 만나보았다며?”
“만났어 환러스지 공사라고 거기 사장과 감독도 만났어.”
“어땠어? 투자 할 건가?”
“글쎄. 지금 내 돈이 들어가면 채권자들한테 시달리니까 그거부터 먼저 갚으려고 하겠지. 정작은 드라마 제작비로 써야 하는데 말이야.”
“흠, 그러면 문제가 되겠구나.”
“금액이 적으면 모른 척 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금액이 많다면 생각은 해 봐야겠지.“
“흠, 그렇겠구나.”
김민혁은 구건호와 한국말로만 대화하면 자기 부인 딩딩이 심심해 할까봐 중간 중간에 통역을 해주었다. 구건호는 김민혁의 중국어 실력에 새삼 놀랐다.
[작년만 해도 벅벅 기더니 지금은 아주 유창하네. 나보다 더 잘하는 것 같아. 중국 여자와 함께 살아서 그런가?]
김민혁이 구건호의 빈 잔에 술을 따라주면서 말했다.
“그럼 새로 찍을 드라마에 투자할건가?”
“그래야 되겠지. 그래서 여기 계신 심감독님이 시놉시스를 중국 애들한테 보내 달라고 했어. 중국 드라마는 재미가 없으니까 재미있는 스토리로 다시 고쳐야겠지.”
“흠, 전문가님이 오셨으니 판단을 잘 하겠지.”
“문재식이 있는 곳은 터미널 건설항목이 있어 투자액이 많지?”
“5천만 달러 프로젝트니까 내가 현금으로 2,500만 달러를 투자해.”
“2,500만 달러? 그럼 한국 돈으로만 해도 250억이 넘는데 언제 투자한 돈 회수하려고 그러는가? 캐쉬카우 사업이라 손해는 안보겠지만 너무 회수기간이 오래 걸려 지루하겠는데?”
“그러겠지. 하지만 나도 생각은 있으니까.”
“문재식은 부인도 같이 중국에 들어온다며?”
“그럴 생각인 모양이야. 걘 와이프가 임신 7개월이니까 출산도 여기 와서 해야될 거야.”
“킥킥, 미국 같으면 애기 낳으면 미국 시민권자가 되는데 여긴 그런 게 없으니 섭섭하겠다. 미국처럼 속지주의가 아니니까.”
“중국서 태어나 중국을 잘 알게 하는 것도 좋겠지.”
“그것도 나쁘진 않지.”
“문재식은 초음파 검사에서 딸이라고 하더군. 난 아들이라고 병원에서 그랬어.”
구건호의 이 말을 듣자마자 김민혁이 딩딩에게 지금까지 한 말을 통역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 의견도 말했다.
“우리도 어서 하나 만들자.”
딩딩은 김민혁의 말을 듣고 답변은 없이 웃으면서 김민혁의 어깨를 주먹으로 가볍게 쳤다.
딩딩이 심심한지 구건호에게 물었다.
“사모님이 의사라고 했지요?”
“그렇습니다.”
“좋은 직업이네요. 중국에서도 의사직업은 쳐줍니다. 언제한번 만나 뵙고 싶어요.”
“그럴 기회를 한번 만들어보지요. 한데 제 처는 어딜 돌아다니길 좋아하지 않아 그게 문제이긴 합니다. 아프리카에 봉사활동은 한 2년 했지만 말입니다.”
“봉사활동요? 오, 훌륭하신 분이네요.“
김민혁이 이번엔 심감독이 심심해 할 것 같아 구건호와 딩딩의 말을 통역해 주었다.
“구사장 부인이 의사인데 아프리카에서 2년간 의료 봉사활동을 했답니다.”
“오, 그래요? 구사장님 부인이 의사십니까?”
“모르셨습니까? 현재 서울대병원 의사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구사장님이나 김민혁 사장님이나 부인들이 다 훌륭하신 분들인 것 같습니다.”
심감독은 구건호의 부인이 의외로 점잖은 사람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