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333화 (333/501)

# 333

이노비즈 인증 (3)

(333)

구건호는 전임 연구소장에게도 전화를 했다.

“구사장님 아닙니까?”

“소장님 요즘 얼굴 뵙기 힘드네요.”

“사장님 배려해 줘서 촉탁으로 있게 해 준건 고마운 일입니다. 하지만 거기 나가 있으면 젊은 사람들 눈치만 보여 나가 있기도 난처해 집에 있습니다. 회사는 오전에 살짝 얼굴만 비칩니다. 오늘도 임원회의가 있다고 해서 잠깐 앉았다가 왔습니다.”

“따로 방을 마련해 드려야 하는데 우리가 실수 했습니다.”

“아닙니다. 촉탁이나 자문역을 따로 방을 만들어주는 회사는 없습니다. 정년까지 연장해서 촉탁으로 있게 해준 것만 해도 고맙습니다.”

“오늘 임원회의 때 나온 이야기인데 배합실을 연구소로 하자는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도 대외적으로 나쁜 일은 아닙니다. 어차피 배합이라는 것도 몇 번 시험단계를 거치고 하는 것이니까요.”

“방금 소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대외적 문제를 고려해 오늘자로 연구소로 명칭을 바꿉니다. 그리고 촉탁이시지만 방소장님 방도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가끔 오셔서 신문도 보고 젊은 사람들 일하는 것도 보고 그러시면 안 되겠습니까?”

“나야 그러면 고맙지요.”

“연구소가 모빌 연구소와 달라서 이곳 배합실은 화공약품 냄새가 나는 곳이라 환경은 좋지 못합니다. 창문이 있는 곳으로 방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아이고 마스크 쓰고 화공약품을 직접 배합하는 직원들도 있는데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오늘 임원들도 방길훈 소장님이 촉탁으로 계시지만 형식적이나마 연구소장님 자리를 드리고 지금 연구소 책임자인 유희열 부장은 부소장으로 하자는 이야기들도 나왔습니다.”

“유부장이 어떻게 받아 들이냐 하는 문제가 있겠네요.”

“유부장한테 제가 간접적으로 한번 물어보았습니다. 유부장은 소장님이 전에 모시던 상사라 환영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요? 하하, 알겠습니다.”

“연구소장으로 직함은 드리지만 촉탁급여가 올라가는 건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사장님껜 늘 감사한 마음을 안고 삽니다. 시간이 많다보니 물파 회장님도 만나 뵙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물파산업 회장님은 잘 계시죠?”

“요즘 두 다리 뻗고 잠을 잔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까?”

“구사장님이 주신 돈으로 수원에 꼬마빌딩을 샀는데 거기서 월세가 500만원 정도가 나온답니다. 국민연금까지 합쳐서 월 600 나오니까 자식들한테 손 안 벌리고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하하, 그래요?”

“물파 시절 생각만 하면 소름이 끼친 답니다. 그분 한 5년간은 채권자들한테 말도 못하게 시달렸었습니다. 우리가 지켜보기도 딱했으니까요.”

“그렇군요.”

“그리고 중국에 촉탁으로 가있는 모빌의 전임 공장장하고는 자주 통화합니다. 이만수 공장장도 거기에 있는 김민혁 사장이 잘해 준다고 해서 좋답니다. 중국 소주시 졸정원에서 찍은 사진도 저에게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촉탁으로 가신 두 분 다 건강하신 것 같아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그럼 연구소장님이 계실 방은 제가 꾸며 놓으라고 총무에 지시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전임연구소장은 구건호의 전화를 받고 기뻤다. 이번 년 말에 끝나는 촉탁을 혹시라도 1년 연장해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수가 된 35살이나 된 아들이 게임만하고 있어 울화통이 터지는데 담배 값까지 대주고 있어서 그에게는 아직 돈이 필요했다.

전임 연구소장 방길훈씨는 어느 날 회사에 잠깐 나갔다가 집에 갔더니 오전 12시가 되도록 일어나지 않은 아들에게 화가 났다.

“야, 이놈아! 지금 몇 시인데 잠을 자! 지금 이 시각엔 회사나 관공서에 가면 한창 일하고 점심 먹을 시간이야! 우리 회사 구사장 봐라 네 나이에 물파산업을 인수하고 수백억 재산을 모은 사람이야.”

아들에게서 바로 반격이 들어왔다.

“웃기네. 내 친구 원태 아버지는 원태한테 지금 사업체 하나를 물려줬어요. 서울 강남 반포에 있는 아파트도 30억 주고 사줬어요. 내가 지금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아세요. 밖에 나가면 다 돈 들어가잖아요.”

“그럼 이놈아 어디 가서 알바라도 해야지.”

“인서울대학 나온 내가 지금 알바하면 좋겠어요? 알바하면 시간 다 뺏겨 다른 건 알아보지도 못해요. 촉탁이니 뭘 알아야지.”

이렇게 되다보면 우당탕하고 싸움만 일어났다. 방소장은 촉탁이라도 연장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구건호는 총무과장과 경리차장을 불렀다.

두 사람이 구건호 앞에 와서 두 손을 모으고 섰다.

“오늘 임원회의에서 급여 인상안이 통과된 것 들었지요?”

“방금 윤상무님한테 들었습니다.”

“총무과장은 임금인상 품의 안을 작성하고 경리 조차장은 총무에서 임금 인상된 종업원 급여 명세표가 넘어오면 일반관리비가 몇 프로 증액되는가 보세요.”

“알겠습니다.”

“임금인상은 시간당 수당으로 급여를 받는 생산직을 제외하고는 모든 정액 급여자는 일제히 인상하는 걸로 합니다. 촉탁으로 계신분도 함께 인상조정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 차 기사 엄찬호는 용역인데 여기도 용역비 7% 올려주세요. 다른 사람 다 올리면서 자기만 안올려주면 입이 나올 테니까.”

“당연하신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총무과장은 기구개편 통보를 각 부서로 해주세요. 현재의 배합실을 연구소로 조정한다는 안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연구소장은 방길훈씨로 하고 소장 옆에 괄호로 촉탁이라고 명기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부소장은 유희열 부장으로 하고 유부장은 괄호에 공장장 겸직이란 말을 명기 하세요.”

“알겠습니다.”

“나머지 배합실 근무자중 일반사원은 연구원으로, 대리, 과장은 선임 연구원으로 부장, 차장은 책임 연구원으로 하세요.”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윤상무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사내에 있지요?”

“그렇습니다. 올라갈까요?”

“아니요. 올라올 필요 없습니다. 배합실 한쪽에 화공약품 냄새가 덜 나는 쪽으로 연구소장 방을 하나 만들어주세요. 크기는 지에이치 모빌의 이사급 방 넓이면 되겠습니다. 창문도 하나 달아주고요.”

“알겠습니다.”

“임원용 책상과 의자도 사 주세요.”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인도 법인장으로 나가있는 이선생에게 전화를 했다. 이선생은 애덤캐슬러 통역으로 있었던 사람이다.

“나, 구건호입니다.”

“앗, 사장님 아니십니까?”

“고생 많죠?”

“아닙니다. 잘 있습니다.”

“월 판매액이 70톤 넘어간다고 했지요?”

“아직 적어 죄송합니다. 유럽회사 몇 군데를 공략하고 있는데 여기가 뚫리면 90톤 넘어갈 것 같습니다. 김전무님이 인도에 나와 있는 한국기업 법인장들을 많이 알고 있어 몇 사람 추가로 소개도 받았습니다.”

“그래요? 인도는 이부장님이 계셔서 걱정이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내가 오늘 전화한 것은 애덤캐슬러에게 전화 한통 해달라는 부탁을 드리려고 전화했습니다.”

“무슨 전화입니까?”

“오늘 아침에 임원회의가 있었습니다. 회의에서 배합실을 연구소로 바꾸고 이너비즈 인증을 위해 TFT를 구성하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벤처기업 인증을 받으려고 하는 사전 포석이라고 말씀해 주세요. 이대로 가면 법인세가 인상되어 22%를 납부해야 됩니다.”

“법인세가 그렇게 많습니까? 제 친구는 10%라고 하던데요?”

“과표에 따라 다릅니다. 경상이익이 2억 미만이면 10%지만 우리 회사와 같은 매출이면 22% 물게 됩니다. 벤처기업으로 인증시 법인세 감면 혜택을 받으니 오늘 임원회의의 배경은 이런 맥락에서 긴급히 열게 된 것이라고 말씀하세요.”

“알겠습니다.”

“현재 애덤캐슬러에게 젊은 통역이 있지만 아무래도 현재 통역은 사내에 있는 사람이라 말이 나오면 안 될 것 같아 인도에 나와 있는 이부장님을 통해서 내가 이야기 하더라고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번에 관리직 급여는 7%인상됩니다. 많이 올려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구건호가 화장실에 갔다가 의자에 앉는데 애덤캐슬러가 들어왔다.

“방금 인도에 나가있는 이부장한테 전화 받았습니다.”

“오, 그래요?”

“역시 사장님은 우리들의 보스입니다.”

“별 말씀.”

애덤캐슬러가 구건호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신청했다.

구건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법인세 감면도 중요하지만 내부의 조직력 강화와 팀웍을 위하여 이너비즈 인증 시스템은 구축하는 게 좋을 것 같군.]

구건호는 디욘코리아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최근 들어 이쪽도 인원이 증가하여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 직원이 120명을 넘는다고 하였다. 지에이치 모빌의 400명에 비해선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120명이 식사를 하니 배식판을 들고 줄을 서야했다. 생선토막을 나누어주던 주방아줌마가 구건호를 보고 깜짝 놀라 구건호에게만 생선을 두 토막 주었다.

구건호는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다짐을 했다.

[지에이치 모빌이나 디욘코리아의 종업원은 모두 1천명 이상으로 늘린다!]

오후가 되어 구건호는 커피 한잔을 마시고 꾸벅 꾸벅 졸기 시작했다. 고개가 옆으로 꺾어지려고 할 무렵 사장실 노크소리가 들렸다. 구건호가 화들짝 놀라 자세를 바로 잡았다. 들어온 사람은 김전무였다. 결재판 같은걸 들고 왔다.

“이노비즈 인증을 위한 TFT 구성안(案)입니다. 사장님이 내일은 이곳에 안계시고 개발로 출근하시기 때문에 급히 만들어가지고 왔습니다. 빠진 건 추후 보강하겠습니다.”

“흠, 빨리도 만들었네요.”

구건호가 서류를 살펴보며 말했다.

“추진목적, 추진일정, TFT(Task Force Team) 조직도이네요.”

“사장님 이름으로 각부서로 공문 발송예정입니다. 공고판에도 붙이고 그럴 예정입니다.”

“알겠습니다.”

“차제에 이 운동 하면서 전결 권한규정이나 제안제도, OJT(On the Job Trainning) 교육제도 같은건 정비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생산현장에서 OJT교육은 필요합니다. 배합기술도 혼자만 알면 안 됩니다.”

“흠, 전무님 말이 맞습니다.”

구건호는 김전무가 가지고온 이노비즈 인증을 위한 TFT 구성안에 힘찬 싸인을 하였다.

김전무가 나가자 이번엔 윤상무가 결재판을 들고 왔다.

“기구 개편안 통보입니다. 아울러 연구소 요원 인사발령장입니다.”

구건호가 기안지 서류를 보니 기안자는 박선홍 과장이고 검토자가 윤상무였다. 최종 승인란은 구건호의 싸인을 받기위해 비워두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구건호는 승인란에 힘찬 싸인을 하였다. 디욘코리아의 모든 결재 서류는 ‘담당-대리-과장-차장-부장-이사’ 식으로 결재란이 되어있지 않았다. 지에이치 모빌시절에 ISO14000과 TS16949 구축 및 SQ심사를 받다보니 결재란이 ‘작성-검토-승인’으로만 되어 있었다. 의사결정의 신속화를 위하여 결재단계를 대폭 줄인 것이다.

구건호가 방금 서명한 서류들은 각 부서로 보내지고 공고판에도 부착되었다. 사원들은 총무과장이 새로운 공고문을 부착하자 무슨 내용인가 보러왔다.

“연구소장 방길훈? 이 양반이 누구지? 아, 모빌의 연구소장님으로 계셨던 나이 많은 분?”

“부소장은 유희열부장인데? 킥킥 유부장은 공장장 겸임이네. 막강한 실세로 떠오르네.”

“이노비즈 인증을 위한 TFT? 여기 팀장은 성일기 과장이네. 야, 미국 연수 갔다 온 사람들만 뜨네. 우리도 미국 연수 좀 보내달라고 하자.”

직원들은 이런 말들을 주고받으며 공고판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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