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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큰손 이야기-314화 (314/501)

# 314

주식 분포 이동 (3)

(314)

저녁때 김영은이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집엘 왔다.

“어디 아파?”

“아니, 힘들어서 그래.”

“뭘 이렇게 많이 사왔어?”

“채소가 좀 싸기에 샀어. 무 하고 고추장을 샀더니 들고 올 때 무거워서 혼났네.”

“배달시키지 그랬어.”

구건호가 사온 물건을 식탁에 올려놓고 냉장고에 들어갈건 냉장고에 넣었다. 김영은은 거실 소파에 들어누었다.

“임신 중 너무 힘든 일 하지 마. 차라리 마트에 갈 땐 나하고 같이 가.”

“알았어. 선풍기나 나 있는 곳으로 돌려줘.”

“에어컨 틀까?”

“에어컨은 싫어. 감기 걸려.”

김영은은 저녁을 차릴 생각도 없이 소파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구건호가 주섬주섬 일어나 김치찌개를 끓이고 밥을 안쳤다. 밥과 찌개만 있으면 나머지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이게 무슨 냄새야?”

김치찌개 끓이는 냄새 때문에 김영은이 잠을 깼다.

“내가 찌개하고 밥은 해놨어.”

“그래? 내가 깜박 잠이 들었었네.”

김영은이 일어나 가지 나물을 볶고, 오이냉채를 만들고 생선을 구웠다.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자리에서 구건호가 말했다.

“결혼한 지 5개월이 지났는데 내가 당신 생활비를 한푼도 안줬었네.”

“왜? 줄라고?”

“내가 안줘도 달라는 소리를 통 안하네.”

“달라기 전에 줘야지.”

“얼마를 줄까?”

“알아서 해요.”

“내가 4개 회사에서 급여를 받아. 앞으로 한 개 더 늘어 5개 회사가 될 거야. 현재 받는 건 다 합치면 세금 떼고 한 3천 될 거야.”

“3천? 세상에!”

“왜?”

“우리 대학병원 원장보다도 급여가 많고 서울대 총장보다도 훨씬 많네.”

“우린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잖아. 그 정도는 받아야지.”

“엄청나네.”

“그래서 말인데, 실은 내가 나가는 데가 많아. 관혼상제도 사장이니까 5만원 나갈 때 10만원 나가고, 10만원 나갈 때 20만원 나가. 적게 주면 사장이 그것밖에 안하냐고 뒤에서 욕해.”

“흠.”

“그래서 3천만원 수입 중 내가 천만원 쓰고, 당신 생활비로 천만원 주고 장래를 위한 저축 천만원 하려고 그래. 그러면 됐지?”

“오빠 한 달에 500만 쓰고, 생활비도 500만 쓰고 저축 2천만원 하면 안 될까?”

“나, 천만원 써야 돼. 회사 종업원만 해도 수백 명이야. 사업상 아는 사람도 많아. 돈 나갈 때 천지야.”

그러면서 구건호는 밥 먹다말고 봉투를 하나 가져왔다.

“이게 뭐야?”

“가져. 생활비야. 결혼하고 나서 한 번도 못줘서 5개월치 소급해서 줄게. 5천만원이야.”

“5천만원?”

“당신 이 돈 갖고 필요할 때 써. 그리고 의사월급 받는 것도 내가 간여 안하니 알아서 써.”

“세상에! 5천만원이나!”

김영은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놀란 표정만 지었다.

돈이란 있어도 더 갖고 싶은 마력을 지닌 물건이었다. 김영은은 돈을 잘 버는 의사지만 매월 천만원씩 돈이 들어 온 다니 즐거운 모양이었다. 설거지를 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참외까지 깎아서 구건호가 있는 방으로 가져왔다.

“뭐해?”

“인터넷 좀 하고 있어.”

김영은은 한쪽 구석에 있는 물건을 보았다. 일본 동경 신쥬쿠의 마루이 백화점에서 산 티셔츠와 넥타이였다. 모리에이꼬가 골라준 물건들이었다.

“저건 뭐야?”

“응, 티셔츠하고 넥타이.”

“티셔츠하고 넥타이? 일제 같은데? 일본 갔다 왔어?”

“아, 아니 서 선물 받은 거야.”

“선물? 정말이야? 그런데 색깔이 왜 이래? 유치해!”

“그 글쎄 그런 것 같기도 해.”

“다른 사람 줘! 색깔이 촌스러워. 너무 원색이야.”

김영은은 인상까지 썼다.

“다, 다른 사람 줄게.”

구건호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다. 일본에 가서 모리에이꼬만 만나고 오면 김영은은 뭔가 이상한 감정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김영은은 구건호 방을 나가더니 TV를 크게 틀고 거실에 비스듬히 누웠다. 구건호가 세수 대야에 물을 담아 거실로 가져왔다.

“힘들지? 발 씻어줄게.”

“발을? 웬 안하던 행동을 하네.”

구건호는 김영은의 발을 씻어주었다. 김영은은 기분 좋은 자세로 반쯤 누워 구건호에게 발을 내 맡겼다. 한참 발을 씻기고 있는데 김영은이 불렀다.

“오빠!”

“왜?”

“나, 오빠 믿어.”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구건호는 김영은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세수 대야의 물을 버리러 화장실로 갔다. 구건호는 화장실의 거울을 보고 혼자 중얼거렸다.

“내가 뭘 들켰나?”

김영은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둘이 참외를 먹으며 TV를 보았다. TV는 주말 명화까지 보았다. 김영은이 졸립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구건호도 따라 들어갔다.

“오빠, 오빠 방에 가서 안 자?”

“오늘은 영은이가 더 예뻐 보인다.”

구건호가 김영은을 와락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김영은은 오늘 구건호를 밀어내지 않았다. 구건호가 하는 대로 몸을 맡겨놓고 있었다. 구건호가 김영은의 옷을 하나하나 벗기기 시작했다.

토요일이 되었다.

구건호는 김영은과 함께 양재천변을 걸었다. 김영은의 손을 잡고 걸어도 또 모리에이꼬가 생각났다. 모리에이꼬는 훗카이도에 있는 오타루의 운하변을 걷고 싶다고 했는데 거긴 어떨까? 여기 양재천변보다 어떨까? 구건호는 그러면서 에이꼬의 생각을 떨쳐 내려고 하였다.

“영은이가 아이를 가졌는데 내가 삼가야지. 태교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지도 몰라.”

그러면서 구건호는 김영의 손을 꼬옥 잡고 자주 쳐다보며 웃어주었다. 사실 또 김영은이와 함께 이렇게 손을 잡고 걸으면 행복하기도 하였다.

구건호가 김영은에게 회사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김영은은 가장 가까운 가족이기 때문에 알려줘야 할 것만 같았다.

“천안 직산에 있는 우리 공장 못 와보았지?”

“못 가봤어.”

“한번 가볼래?”

“싫어.”

“왜?”

‘사장 부인이 그런데 나타나면 종업원들은 싫어할 거야. 대학병원에 병원장의 부인이 고개 세우고 들어와 봐,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나 간호원들이 좋겠어? 나쁘겠어? 다 스트레스지.“

“하긴 그럴 것도 같다. 그럼 멀리서 보면 어때?”

“들어가지 않고 멀리서 보는 거야 상관이 없겠지.”

“그럼, 내일 일요일인데 가 볼까?”

“다음에 가. 나, 내일 집에서 할 일 많아.”

월요일이 되었다.

구건호는 직산의 지에이치 모빌로 출근을 했다. 박희정 비서가 차를 가지고 들어왔다.

“경리이사 좀 오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잠시후 경리이사가 서류를 들고 왔다.

“자본금 변경등기 다 했습니까?”

“다 했습니다. 여기 법원에서 뗀 등기사항 전부증명서입니다. 현재사항 증명서입니다.”

구건호는 발행 주식의 총수와 자본의 총액, 변경 등기 연월일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임원에 관한 사항을 보았다. 임원에 관한 사항은 변동이 없었다.

대표이사는 구건호, 이사는 아버지 이름으로 올라와 있고, 감사만 상임감사였던 고희석씨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상임감사는 디욘코리아로 갔으니 송장환 사장으로 교체할까? 아니야 임기가 남아있으니 그대로 두자.]

“공증한 주주 명부도 가져왔지요?”

“가져왔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서류가 두 장이네?”

“한 장은 사장님 진술서입니다.”

“진술서?”

구건호가 공증된 진술서를 읽어 보았다.

[본인은 공증인가 법무 법인 XX에서 임시 이사회 의사록의 인증을 촉탁함에 있어서 ㈜지에이치 모빌의 대표이사로서 본 회의가 적법하게 소집되었으며, 결의의 절차와 내용이 진실에 부합함을 진술합니다. 20XX년 0월 0일. 위 진술인 구건호]

“제기럴, 구색은 다 갖추어 놓았네.”

구건호는 본 서류를 다시 정리하면서 경리이사 얼굴을 쳐다보았다.

“서류 잘 보았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송사장님 계시면 오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송사장이 들어왔다.

“송사장님을 제가 처음에 모셔올 때 스톡옵션 3%를 드린다고 했었습니다.”

“기억이 납니다.”

“사실 스톡옵션 행사는 복잡하고 증자 형태가 되기 때문에 이번에 아예 제가 모빌의 주식을 3% 증여하기로 했습니다.”

“증여요?”

“경리이사에게 이야기 못 들었습니까?”

“아직 못 들었습니다.”

“이번에 증자하면서 돈을 납입한 어떤 개인에게는 13%, 송사장님이 3%, 제가 84%의 지분을 갖기로 했습니다. 여기 공증까지 한 주주명부입니다.”

송사장은 공증서류를 자세히 보았다.

‘사장님, 전 한 일도 없는데 고, 고맙습니다.“

“이번에 증여형태로 3%를 받았으니 회사가 잘 되나, 못되나 이제 공동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회사가 매년 흑자 행진을 한다면 매년 3%의 배당금을 받아갈 수 있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송사장의 입이 귀밑까지 걸리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예, 물어보세요.“

“13% 지분을 갖게 되는 이범식씨는 누구입니까? 혹시 A전자와 관련이 있는 인물입니까?”

“그냥 그런 줄만 아십시오. 더 이상 질문하지 마십시오.”

“아, 알겠습니다.”

“약간 증자가 되었기에 법인 등기부등본도 새로 떼어 놓았으니 참고로 보세요.”

송사장이 새로 뗀 법인 등기부등본을 보았다.

구건호가 다리를 꼬고 앉으며 비서 박희정을 불렀다.

“송사장님 오셨으니 차 두잔 가져와요.”

“알겠습니다.”

구건호가 차를 마시며 말했다.

“A전자 당진공장에 우리 원가계산서는 가져다주었지요?”

“예, 보냈습니다. 노무비만 약간 증가한 것으로 해서 보냈습니다.”

“다른 말 없습니까?”

“다른 말 없습니다.”

“5가지 품목의 일시 생산이라 디레이 걸리거나 그런 일은 없습니까?”

“박이사가 책임지고 야간작업을 하고 있어 아직 그런 일은 없습니다.”

“기계장비 더 들여오는 문제를 캐피털사와 협의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선 유압프레스기를 5대 들여오기로 협의 했습니다. 금주중으로 기계 들어올 예정입니다.”

“설치 공간은 되겠습니까?”

“충분합니다.”

“알겠습니다.”

송사장이 깍듯이 인사하고 나갔다. 송사장은 처음 들어올 때보다 구건호를 대하는 태도가 점점 더 공손해져 갔다.

구건호는 다시 경리이사를 불렀다.

“경리이사님이 가져오신 이 법인 등기부등본 원본하고 공증한 주주명부 사본을 A전자 사장님에게 보내주세요. 오전 중으로 우체국에 가서 등기 속달로 보내주세요. 우리 회사의 현황을 보고 싶답니다. 자기들이 처음 거래하는 협력사 현황은 등록을 해야 한다고 하네요.”

구건호는 주소가 적혀있는 A전자 사장 명함을 경리이사에게 주었다.

“명함은 주소만 적고 다시 가져오세요.”

“알겠습니다. 이 분은 가끔 언론에도 나오시는 분이라 얼굴 사진이 기억나는 것 같습니다.”

“허허, 그래요?”

구건호는 A전자 박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증자는 다했습니다. 새로 발급받은 저희회사 법인 등기부등본하고 공증한 주주명부 사본을 오늘 등기 속달로 보내겠습니다. 내일 중으로 도착할겁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엘투에 대한 정보는 어디 유출시키지 않았지요?”

“우리 임원들도 모릅니다. 같이 있는 우리 송사장도 모릅니다.”

“알겠습니다. 이제 저하고 자주 통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앞으로 매출에 대해선 기대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구건호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다시 꼬며 차를 마셨다. 그리고 조간신문을 집어 들었다. 신문엔 4천만원의 돈을 받고 자살한 국회의원의 기사로 가득했다.

[정치는 돈이 있어야 해. 이진우 장관은 정치 생명이 롱런할 것 같군!]

구건호는 천천히 차를 마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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