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2
주식 분포 이동 (1)
(312)
구건호가 사장실로 올라갔다. 박희정 비서가 녹차를 가져오면서 말했다.
“송사장님은 만동전장에 들어가셨습니다.”
“흠, 그래요?”
“오늘 거기서 협력사 사장단 회의가 있답니다. 구사장님 오시면 말씀드려 달라고 했습니다.”
“안 해도 되는데... 알겠습니다. 경리이사 좀 들어오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박희정씨가 조용히 인사를 하고 사장실을 나갔다.
잠시후 경리이사가 서류를 들고 왔다. 경리이사는 공손히 서류를 구건호 앞에 내밀었다.
“뭡니까?”
“A전자의 물품 공급 확약서 공증 서류 입니다.”
구건호가 대략 서류를 훑어보았다. 경리이사는 의자에 앉지 않고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구건호 앞에 서 있었다.
“앉으세요. 서 있지만 말고.”
“네, 알겠습니다.”
경리이사가 조심스럽게 구건호 앞에 앉았다.
“5가지 품목이 모두 월 10만개씩 들어가네요.”
“그렇습니다. 단가는 4500원에서 6500원 사이입니다. 월 27.5억씩 납품이 됩니다.”
“흠, 년 간 330억의 매출이 발생하네요.”
“송사장님 말로는 A전자 수원 연구소의 신규 개발품도 이 정도 선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종업원도 100명 가량은 늘어나야 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흠.”
“참, 사장님이 증자용이라고 말씀하신 현금 7억 5천만 원은 돈 들어왔습니다. 이범식이란 분한테서 들어왔습니다. 개인 이름으로 들어왔습니다.”
“메모하세요.”
“알겠습니다.”
“우리 거래하는 법무사 사무실 있지요?”
“예, 있습니다.‘
“거기 김실장이라고 하는 사람 있지요? 우리 사무실 오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현재 우리 회사 납입 자본금이 50억 원인데 7억 5천만 원을 증자합니다. 1주당 1만원짜리 주식을 7만 5천주 늘립니다. 증자의 지분은 모두 이범식씨로 합니다.”
“이범식씨 인적사항을 알 수 있습니까?”
“주소하고 생년월일만 나중에 알려드리지요. 연세가 많아서 은퇴하신 분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 주식 3%는 송장환 사장에게 증여하는 것으로 하세요.”
”옛? 증여라고 하셨습니까?“
“네, 1만 5천주 증여하는 것으로 하세요.”
“알겠습니다.”
경리이사가 서류를 들고 방을 나가자 구건호는 A전자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사 전화가 아니고 핸드폰 전화로 하니 좋았다. 회사 전화로 전화를 하면 대개는 비서실에서 어디냐고 꼬치꼬치 물었다. 특히 A전자 같은 대기업에서는 더욱 그랬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돈 들어온 것 확인했습니다. 이범식씨가 이진우 장관님 아버님 맞으시죠?”
“맞습니다. 그분 주민등록 등본이 우리한테 있으니까 팩스로 보내드리지요. 아니 팩스보다는 스캔 떠서 보내드리죠.”
“알겠습니다.”
“증자 수속 다 끝나면 주식분포 명세서를 나한테 보내주세요.”
“주식분포 명세서요?”
“사내 양식으로 하셔도 됩니다. 대표이사 인감 날인하시고 법인인감만 첨부해서 우편으로 보내 주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주식 분포 명세서는 관할 세무서에 신고해야 될 겁니다. 신고는 법인세 과세표준 신고기한 내에 하시면 될 겁니다.”
“예, 그건 알고 있습니다.”
“현재 당진공장에서 기존제품 300억, 수원 연구소의 개발품 300억등 600억의 매출이 발생할 것입니다. 금년 안에 1천억 수준으로 끌어 올려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15% 증자했지만 전체 주식 중 차지하는 포지션은 13%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저희 주식은 코스닥 상장이란 큰 선물도 있지만 출자사인 디욘코리아 역시 상장되면 부가적 이득이 크신 것을 알고 계셨으면 합니다.”
“그것 역시 우리 기획조정실에서 조사한바 있어 알고 있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잠깐만!”
“또 무슨 일이 남았습니까?”
“앞으로 호칭문제는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진우 장관님은 엘원(L1)으로 부친이신 이범식씨는 엘투(L2)로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구사장님과 저와의 일은 엘원은 전혀 모르고 계십니다. 엘원 사모님 또한 전혀 모르십니다. 엘투께서 언젠가 나에게 가지고 있는 재산을 늘려달라고 해서 독자적으로 내가 추진하는 사항입니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구건호가 전화를 끊고 20분쯤 지났을 무렵 A전자 사장에게서 문자 메세지가 왔다.
[엘투의 주민등록표 사본을 방금 보냈습니다. 확인 바랍니다.]
구건호가 A전자 사장이 보낸 주민등록표를 출력시켰다.
“이범식씨 주소가 서울 강남구 대치동 미도아파트로 되어있네. 내가 사는 곳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이네. 그런데 생년월일이 1938년생? 그럼 나이가 어떻게 되는 거야? 힉! 만 나이로 80세네. 와. 많다.”
구건호는 생각해 보았다.
[80세면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분이네. 하긴 요즘은 100세 시대니까 오래 살겠지. 더구나 아들이 장관이며 재벌 사위이니 온갖 좋은 건 다 드시겠지. 아주 오래 오래 살겠지.]
[그런데 만약에 돌아가신다면? 그렇지 그때는 자연스레 이진우 장관이 자식이니까 상속이 되겠지. 그땐 누가 뭐래도 돌아가신 아버지 재산을 상속 받은 거니까 시비 걸 놈이 없겠지.]
김민화 경리이사가 다시 들어왔다.
“저, 사장님. 개인 인감 증명서 두통만 준비해달라고 하네요?”
“누가요?”
“법무사 사무실 김실장이 그럽니다.”
“거, 귀찮네.”
“혹시 인감도장이 있으시면 저희가 떼 가지고 오겠습니다. 경리부 김대리가 서류발급 담당입니다.”
“김대리 오라고 하세요.“
경리이사가 자기 핸드폰으로 김대리를 불렀다.
“사장님 실로 빨리 와 봐요.”
김대리가 오는 동안 구건호는 자기가 출력시킨 엘투의 주민등록 초본 사본을 경리이사에게 주었다.
“이 분이 7만 5천주의 지에이치 모빌의 주식을 소유하게 되실 분입니다.”
경리이사가 서류를 보았다.
“연세가... 상당히 많으신 분이네요. 저희 부모님보다도 많으신 분이네요. 이 분은 사장님과 어떻게 되는 분입니까?”
“아는 분입니다. 자세한건 묻지 않아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김대리가 들어왔다. 안경을 낀 젊은 남자직원이었다. 가끔 구건호와 복도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해서 총무부 직원인줄 알았는데 경리부 직원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승진했다고 승진자 여러 명이 한꺼번에 구건호 방에 들어왔을 때 악수를 했던 직원이었다. 나이는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며 들어왔다.
“인감증명서는 아무지역에서도 뗄 수 있지요.”
“뗄 수 있습니다.”
“인감도장만 가지고 가면 되나?”
“사장님 주민등록증도 필요합니다.”
“내 주민등록증을?”
“네, 그렇습니다.”
구건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인감도장과 주민등록증을 주었다.
“요새 인감은 컴퓨터에 입력되어 있어서 인감도장 안 쓰지 않나요?”
“안 씁니다. 이 도장은 위임장에 찍을 겁니다. 앞으론 주민 센타에서 위임장 용지를 몇 장 회사에 갖다 놓겠습니다.”
“원래 주민 센터에서 서류발급 받는 일을 총무에서 안 하나?”
옆에 있던 경리이사가 재빨리 말했다.
“일반서류는 총무에서 합니다. 하지만 주주에 관련된 사항은 경리에서 합니다. 상임감사님 계실 때 업무분장을 그렇게 했습니다.”
구건호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요? 김대리! 그럼 빨리 갔다 와요. 내 차를 내줄까?”
“아닙니다. 제 차를 타고 가겠습니다.”
법무사 사무실의 실장이란 사람이 와서 김대리가 떼어가지고 온 서류를 몽땅 가져갔다. 법무사의 실장이란 사람은 이 밖에도 빈 서류를 가져와 빈 공란에 여러 장의 인감도장을 구건호에게 날인 받아 갔다.
“뭐가 이렇게 복잡해?”
“호호호. 원래 서류가 많습니다. 법인 등기부등본에 발행주식의 총수와 자본 총액이 모두 달라져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정관 일부도 정정해야하고 이사회 결의록도 한부 만들어야 합니다.”
“흠.”
“그리고 주주 명부는 공증 하실 거죠?”
“하는 게 좋겠죠.”
“그럼 여기도 도장 찍어 주세요. 연필로 동그라미 친 곳에는 다 찍어 주세요.”
“도장 풍년이네.”
“호호호, 이제 되었습니다. 사장님. 심부름 시킬 일 있으시면 언제든지 저희 법무사 사무실로 연락 주세요.”
“알겠습니다.”
법무사 사무실 실장이란 사람이 구건호에게 명함을 주고 나갔다. 법무사 사무실 실장이 사장 방을 나가자 구건호가 혼자 중얼거렸다.
“방금나간 법무사 사무실 실장이란 사람은 올 때 마다 나한테 명함을 주고 가네. 내가 이 여자 명함을 석장이나 가지고 있네.”
그러면서 구건호는 쓴 웃음을 지었다.
구건호는 디욘코리아로 넘어갔다.
마침 김전무가 자리에 있었다. 김전무는 구건호가 온 것을 알고 사장 방으로 들어왔다.
“지에이치 모빌은 A전자 일감이 갑자기 터져 난리던데요? 박종석 이사는 지금 야간작업에 비상 체제라고 하고 송사장은 대대적인 생산직 사원 모집을 할 계획이라고 하네요.”
“그렇게 되는 모양입니다.”
“까다롭다고 소문 난 A전자의 오더는 사장님이 따오신 거라는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사장님 주례를 섰던 이진우 장관이 A그룹의 사위라서 그런 모양이라는 소문도 있습니다.”
“그건 아니요. 우리가 만든 AM083 어셈블리나 그동안 S기업에 들어간 프로텍타 부품 때문에 그런 거요. 난 어디 가서 로비한 것도 없어요.”
“그렇습니까?”
그러면서 김전무는 못 믿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디욘코리아 판매량은 꾸준히 늘고 있지요?”
“예,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해외부분에서도 증가 추세입니다.”
“그럼 해외부분은 애덤 캐슬러 부사장이 주로 담당하고 전무님은 국내영업을 담당하시는가요?”
“아닙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애덤 캐슬러 부사장은 총괄 부사장입니다. 국내외 전체를 다 관장하는 직책입니다. 단지 국내영업은 제가 있으니까 믿거라 하고 터치를 덜 하는 셈이기는 합니다.”
“흠.“
“저 역시 총괄 전무이기 때문에 해외 영업부문도 또박 또박 보고 받고 있습니다. 애덤 캐슬러 부사장이 영어를 사용하니까 중국 법인장이나 인도 법인장과 자주 통화는 하지만 말입니다.”
“국내 판매는 월 600톤 나가는가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달부터는 A전자 제품 때문에 모빌 쪽 판매가 대폭 늘어날 전망입니다.”
“계열사간 거래인데 괜찮을라나 모르겠네요.”
“괜찮습니다. 부당거래는 아니잖습니까? 또 정부에서도 내부거래의 효율성이 있다면 함부로 시비를 못 겁니다. 특정인을 위해 일감을 몰아주거나 그런 건 아니잖습니까?”
“흠, 그런가요?”
“그리고 여긴 지분 100%의 계열사도 아니고 합작법인 아닙니까. 품질 때문에 여기 것을 쓴다는데 누기 뭐라고 하겠습니까?“
비서 이선혜가 차를 가지고 왔다.
“흠? 이건 냄새가 다르네? 무슨 차요?”
“대추차예요.”
“대추차?”
“저희 엄마가 만든 거예요.”
“산 게 아니고 만든 거요? 흠, 냄새가 좋은데?”
구건호와 김전무가 대추차를 마셨다.
“좋은데. 뭔가 몸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비타민이 많고 신장과 고혈압에 좋답니다.”
“흠, 그래요? 귀한 차니까 잘 마실게요.”
비서 이선혜가 얼굴이 빨개진 채 종종 걸음으로 나갔다.
김전무가 차를 마시며 말했다.
“비서 이선혜는 집안이 좋으니까 어머니도 얌전하신 것 같네요. 차도 잘 만드는 모양이네요.”
“그런 것 같네요.“
둘은 마주 않아 뜨거운 차를 후후 불면서 마셨다. 구건호는 차를 마시다 말고 김전무에게 물었다.
“A전자의 물량은 얼마나 터질 것 같습니까?”
“글쎄요. 저 정도 추세라면 1, 2백은 무난할 것 같은데요? 대단한 위력입니다. 제가 20년 이상 이 바닥에서 근무하면서 처음 느끼는 강풍입니다.”
“A전자에 들어가는 납품 액 1년 목표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글쎄요. 한 200억?”
구건호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럼 300억?”
구건호가 또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렇다면....”
구건호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밀고 말했다.
“1년 안의 목표는 1천억이요.”
“네? 1천 억요?”
김전무는 뜨거운 대추차 물을 바지에 엎지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