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311화 (311/501)

# 311

신쥬꾸 호텔의 추억 (2)

(311)

구건호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호텔이었다. 시계를 보았다. 아침 10시가 넘어 있었다. 옆에서 모리에이꼬가 새근거리며 자고 있었다.

구건호는 물을 한 컵 마시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밤새도록 에어컨을 틀어 방안의 공기가 차가웠기 때문이었다. 구건호는 반나의 모리에이꼬를 끌어당겼다. 모리에이꼬는 앙증맞은 손으로 구건호의 가슴을 더듬었다. 잠결에 그러는 것 같았다. 구건호는 모리에이꼬를 꼭 껴안은 채 다시 또 잠이 들었다.

구건호가 잠이 깬 것은 지에이치 모빌의 송사장 전화 때문이었다. 구건호는 모리에이꼬를 꼭 껴안은 채 이불 속에서 전화를 받았다.

“공증을 마쳤습니다. A전자 직원과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 앞에 있는 공증인 사무실에 가서 다 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공증 서류는 나중에 오시면 보십시오. 경리이사에게 맡겨놓겠습니다.”

“알겠습니다.”

“A전자 수원연구소에서 받은 도면 신제품도 모두 시제품을 만들어 3차 실험을 마치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점심 먹고 나서 연구소장이 직접 시제품을 들고 A전자 수원연구소를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렇습니까?”

“변동사항이 있으면 또 보고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구건호는 스마트폰에 저장해 둔 지에이치 모빌의 주거래 은행 계좌번호를 찾았다. 그리고 바로 을지로 본사에 있는 A전자 사장에게 문자를 날렸다.

[지에이치 모빌의 주거래 은행 계좌번호를 보냅니다. 증자용 금액 7억 5천만 원을 송금해 주시면 수속 밟도록 하겠습니다.]

구건호는 모빌의 김민화 경리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요.”

“예, 사장님.”

“송사장님이 A전자 물품 공급 확약서 공증본 가져오면 보관해 놓고 있어요.”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한테서 우리 주거래 은행 통장으로 7억 5천만원이 들어올 겁니다. 증자용이니 돈 들어오면 나한테 보고해 주세요.”

“증자용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구건호는 전화를 끊고 나서 모리에이꼬를 다시 껴안고 애무하기 시작했다.

구건호가 시계를 보았다.

“이크! 12시가 다 되어 가네.”

구건호와 모리에이꼬는 호텔 내에 있는 뷔페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맞은편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던 모리에이꼬는 구건호와 눈이 마주치자 수줍은 듯 웃었다.

모리에이꼬에게 전화가 왔다.

“아, 마마상.”

에이꼬가 전화를 받자마자 마마상이라고 한 걸로 보아 세가와 준꼬인 것으로 짐작 되었다.

마마상이 전화로 모리에이꼬에게 물었다.

“너, 휴가 신청하고 삿뽀로 안 갔었니?”

“네.”

“널 누가 게이오 플라자 호텔에서 보았다는 사람이 있는데 맞냐? 거긴 누구랑 갔니?”

“후견인 구사장님과 함께 갔어요.”

“오, 그래? 후견인 선생님이라면 안심이 된다.”

세가와 준꼬는 에이꼬가 다른 남자들과 만나는 걸 극도로 경계했다. 잘못했다가는 눈이 맞아 도주를 했다거나 살림이라도 차려 공연을 펑크 내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춤추는 예기(藝妓)들은 30세 가까이 되어야 자기들이 들인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가 있었다. 후견인들은 대부분 재력과 신사다움이 있고 또 기혼자들이 많아 예기들과 살림을 차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후견인과의 잦은 접촉은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오히려 권장하기도 했다.

전화가 끝나자 구건호가 물었다.

“전화 건 사람이 마마상 같은데?“

“휴가 때 삿뽀로 안 갔냐고 물었어요.”

“참, 삿뽀로에 계신 할머님은 괜찮아? 지난번 수술하셨다고 했지? 에이꼬한테 괜찮다는 문자는 받았지만 정말 괜찮으셔?”

“예, 요즈음은 건강하게 지내세요.”

“휴가를 삿뽀로에 간다고 했는데 거기 휴가를 보낼 좋은 휴양지가 있나?”

“휴양지 보다는 오타루의 운하변을 걷고 싶었어요.”

“오타루의 운하변?”

“네.”

모리에이꼬는 이 말을 하고 창밖을 보며 추억에 젖은 눈을 하고 있었다.“

“이 더운 여름에 휴양지도 아닌 운하 변을 왜 걸어?”

“거기가 엄마 아빠와 걷던 마지막 장소이기 때문이에요.”

“흠, 그래?”

“아빠가 오타루에서 교사 생활을 했어요.”

“집이 삿뽀로 아니었나?”

“삿뽀로 맞아요. 아빠만 거기서 원룸 생활했어요. 주말이면 아빠가 삿뽀루에 올라오셨지만 어느 땐 엄마와 함께 오타루에 가기도 했어요. 거기 오타루 스시야도리에 가면 초밥이 유명해요. 엄마, 아빠와 추억이 깃든 그 고장엘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보니 구건호가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다이칸 야마의 모리에이꼬 방에 거린 그림 때문이었다. 방에는 많은 그림엽서와 자기가 공연할 때의 기모노 복장의 그림들이 있었다. 그 속에는 자기가 스케치한 것으로 보이는 서툰 솜씨의 그림도 있었다. 젊은 부부가 양쪽에서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어떤 운하변을 걷는 장면이었다.

“흠, 그런 사연이 있었군.”

구건호는 에이꼬의 귀중한 시간여행을 빼앗은 것 같아 미안했다.

“삿뽀로에서 오타루가 먼가?”

“멀진 않아요. 버스타고 50분 정도면 도착해요.”

“휴가기간이 얼마 남았나?”

“사흘 남았어요?”

“그럼 삿뽀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어줄 테니까 다녀와라. 오빠도 같이 갔으면 좋겠는데 나는 내일 한국에 바쁜 일이 있어 들어가야 해.”

“됐어요. 올해는 그냥 동경에서 지내죠.”

‘내가 가고나면 사흘 동안 뭐 할래?“

“그냥 집에서 만화책이나 보죠.”

이 말을 하면서 모리 에이꼬는 해맑게 웃었다.

구건호와 모리에이꼬는 다시 수영장엘 갔다. 호텔의 체크아웃은 내일이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는 많았다.

“지금 밖에 나가면 너무 더우니까 여기서 3시까지만 놀자. 그리고 쇼핑하러 가자.”

“좋아요.”

구건호와 모리에이꼬는 수영장에서 텀벙거리고 놀았다. 번쩍거리는 썬크림을 바르고 폴딩 썬베드에 반쯤 누워 낮잠도 잤다. 그리고 다시 물속에 들어가 텀벙거렸다. 모리에이꼬가 움직일 때는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았다. 심지어는 어린 학생들까지도 모리에이꼬를 쳐다보았다. 호텔 수영장에서 단연 돋보이는 미모였다.

구건호와 모리에이꼬는 게이오 플라자 호텔 밖으로 나왔다. 신쥬꾸의 거리를 걷다가 마루이 백화점에 들어가 에이꼬가 좋아하는 옷들을 사주었다. 마루이 백화점은 주로 젊은이들의 상품이 많았지만 꼭 그렇지 만은 않았다. 에이꼬가 노인용 모자를 만지작거렸다.

“할머니 사주게?”

에이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구건호는 할머니 모자와 할머니 건강식품도 샀다. 에이꼬는 미안한지 구건호를 마루이 맨관으로 끌고 갔다. 에이꼬는 마루이 맨관에서 구건호의 티셔츠와 넥타이를 골라주기도 했다.

구건호와 에이꼬는 쇼핑을 하고 마루이백화점 본관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와 삿뽀로로 가는 항권권을 티케팅 햇다. 구건호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항공권은 한국에서 미리 티케팅을 하여 삿뽀로로 가는 항공권만 티게팅 했다. 삿뽈로로가는 항공권도 성수기라 동이나 비즈니스석을 끊어주었다.

구건호는 모리에이꼬와 함께 꿈같은 밤을 또 보냈다. 구건호는 게이오 플라자 호텔에서 아침 조식 후 에이꼬가 골라준 티셔츠와 넥타이가 든 쇼핑백을 들었다. 그리고 안 포켓에서 봉투 두 개를 꺼냈다.

“이건 생활비에 보태 써.”

“고맙습니다.”

모리에이꼬는 두 손으로 봉투를 받았다.

“이건 에어컨 사는데 써.”

“에어컨 없어도 되는데....”

“그래도 하나 사. 집안이 너무 더웠어.”

“그럼, 나는 먼저 나갈게.”

“삿뽀로행 비행기는 오후라 다이칸 야마의 맨션을 다녀와야겠어요. 거기서 할머니 갖다드릴 짐이 있어요.”

“그래? 이번엔 삿뽀로에 가면 얼마 놀지도 못하고 바로 와야겠네. 휴가기간이 다 되어서 말이야.”

“마마상한테 양해 좀 구해야 되겠어요. 휴가를 하루 이틀 연장한다고요. 후견인을 만났다면 아마 마마상도 편의를 보아줄 거예요.”

“그래? 그럼 잘 있어.“

구건호는 모리에이꼬를 껴 앉고 오랫동안 키스를 했다.“

구건호가 김포 공항에 도착했다.

엄찬호가 벤틀리 승용차를 가지고 나왔다. 엄찬호는 구건호가 없는 동안 세차라도 했는지 차가 깨끗하고 차 안에서 향수 냄새도 났다.

“세차 했냐?”

“네, 사장님 오신다고 해서 아침에 했습니다.”

“잘했다.”

강변도로를 달리면서 엄찬호가 룸미러를 보며 말했다.

“사장님 일본 가실 때 보다 살이 빠지신 것 같아요.”

“내가? 일본간지 이틀 밖에 안 되는데 그새 어떻게 살이 빠지냐?”

“그렇게 보여요.”

구건호는 웃고 말았지만 속으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건 네 말이 맞을 것 같다. 이틀 동안 모리에이꼬에게 시달렸으니 안 그렇겠냐. 이놈아!]

엄찬호는 룸미러를 보면서 계속 말했다.

“그런데 살은 빠지셨어도 표정은 밝아 보여요. 일본에 가셔서 사업상 일이 잘된 모양입니다.”

“암, 잘 됐지.”

“어디로 모실까요? 아직 퇴근 시간은 많이 남았는데 신사동 빌딩으로 갈 가요?”

“아니다. 그냥 집으로 가자. 좀 피곤하다.”

“알겠습니다. 바로 타워팰리스로 가겠습니다.”

다음날 구건호는 바로 직산의 지에이치 모빌로 출근했다.

박종석 이사가 있는 현장엘 들렸다. 전에는 기계 중에서 몇 대는 가동을 하고 있지 않았지만 지금은 모든 기계가 다 돌아가고 있었다.

구건호를 발견한 박종석 이사가 뛰어왔다.

“A전자 당진공장 물량 때문에 기계가 다 돌아가는 건가?”

“지금 야간작업까지 해.”

“네가 고생이 많겠구나.”

“아니야. 내가 고생하는 것도 없어. 야간에 계장급 이상 관리자 한사람씩만 야간 당직 세우면 돼. 생산직 사원들이야 어차피 야간 수당 나가니까 불만들 없어. 오히려 급여를 더 받으니까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아.”

“그래?”

“조금 전에 송사장도 여기에 왔다 갔는데 직원 모집공고 냈으니 몇 일만 참으라고 했어.”

“기계 장비도 더 들어와야 되지?”

“송사장 말로는 압출기와 사출기, 유압프레스를 5대씩 주문했는데 리스로 들여온다고 하네.”

“그런가?”

“리스 때문에 캐피탈 회사에서 왔다 가기도 했어.”

“기게 장비 들어오면 설치 장소는 다 되냐?“

“이번 장비까지는 비집고 들어오면 되기는 돼. 하지만 추가로 들어온다면 생산동 하나를 더 건축해야 할 거야. 아니면 근처에 공장이라도 임대해서 기계장비 들여오던가 해야 될 거야.”

“당진공장은 어마어마하지?”

“어마어마해. 하지만 거기 공장장이 실사 나올 때 우리공장 와보고 짜임새 있게 잘해 놓았다고 칭찬하던데?”

“그래? 같은 공장장이니까 너하고 대화가 잘 되겠다.”

“관리직 출신이라 나같이 직접 용접기나 망치 같은걸 많이 들본 것 같지는 않았어.”

“그래? 저기 오는 사람이 영업부 서차장 아니냐?”

“요즘 영업부 서차장이 계속 여기 들려. 현장을 알아야 영업을 할 수 있겠다고 하면서 여기 자주와. 날 만나면 저녁에 소주 한잔하자고 계속 따리 붙이고 있어.”

서차장이 구건호를 보고 흠칫 놀라며 인사하고 가버렸다.

“저 사람 도로 가버린다.”

“형이 있으니까 아마 어려워서 그런 모양이야. 황급히 도망가는 것 같네. 하하.”

“흠, 서차장도 열심히 하는 모양이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하루에 한 번씩 송사장한테 깨지는 모양이야. 우리 회사 간부치고 송사장한테 안 깨진 사람 없어. 나도 처음엔 많이 깨졌으니까.”

“요즘은 괜찮냐?”

“요즘은 덜 해. 처음엔 하도 잔소리해서 받아버리고 회사 그만 두려고 했었어.”

“하하, 그래?”

“그런데 겪어보니 사람은 나쁘지는 않더군. 뒷소리는 안하잖아. 포천이나 양주 공장에 있을 땐 공장장이나 임원들이 앞에서는 칭찬하고 뒤에서 씹는 놈들이 얼마나 많았어. 송사장은 그러진 않더군. 큰물에서 놀던 사람이라 조금은 다른 것 같기는 해. 그러니까 형이 데리고 왔겠지만 말이야.”

“앞으로 이 회사는 송사장과 네가 이끌어 나가야 할 것 같다.”

“난, 경영에 대해선 잘 몰라.”

“너, 금년에 폴리텍 대학 졸업하지?”

“응, 졸업이야.”

“4년제 대학 편입할거냐?”

“생각중이야. 한번 해보려고 해.”

“웬일이냐 너? 전에는 공부라면 질색을 하던 놈이?”

“하하, 나도 애 아빠가 되더니 약해지는 것 같아.”

“그게 왜 약해지는 거냐? 강해지는 거지.”

“그런가?”

“그럼, 난 간다. 열심히 해라.”

“알았어.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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