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308화 (308/501)

# 308

물품 공급 확약서 (2)

(308회)

퇴근시간 무렵 송사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A전자 당진 공장에 가서 공장장을 만났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뭐라고 그럽니까?”

“금형을 몇 개 받아왔습니다. 금형의 소유가 A전자 당진공장이므로 우리에게 임대하는 형식으로 해서 가져왔습니다. 샘플 몇 개 뽑아서 가져오라고 합니다.”

“수량과 단가는 어떻습니까?”

“수량은 수출품이라 제법 많습니다. 한 품목당 월 10만개 납품 가능하답니다. 5종류입니다.”

“그래요?”

“단가는 4500원에서 6500원 사이입니다. 그 사람들이 제시한 단가표는 작년도 분이라 노무비가 조금 더 반영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재료비는 디욘코리아 것으로 한번 산출해보려고 합니다.”

“그럼 5종류니까 월 20억 내지 30억 납품 가능하겠네요.”

“정확히 27.5억입니다.”

“그럼 년간 330억? 흠, 대단하네요.”

“우선 금형이 있으니까 바로 내일이라도 뽑아서 갖다 주면 자기들이 테스트후 공장 실사를 나오겠답니다. 물품 공급계약서는 그때 작성하기로 했습니다.”

“흠, 그런가요?“

“그런데 제품에 따라서는 A전자 당진공장에서 지정하는 업체에서 만든 부품을 우리가 만든 것과 조립을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같이 간 박종석이사는 조립을 하청 주지 말고 우리가 아세이(조립)반을 만들어 운영하는 게 속도가 빠를 거란 이야기를 했습니다.”

“흠, 그래요?”

“일단 샘플은 박종석 이사가 책임지고 만들어서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역시 박이사와 같이 가기를 잘 했습니다. 당진공장에서 납품 받았던 성형제품의 불량을 금방 잡아냈습니다. 온도가 높은 상태에서 바로 냉각해 기포가 생긴다고 주장했습니다. 영업의 서창훈 차장이 못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은 저녁에 정책대학원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구건호는 자동차에 떡 40조각과 건강음료 40개를 자동차에 실었다. 원생은 20명이지만 거물급 원생들이라 따라온 기사들이 있어서 40개씩을 준비했다.

“찬호야, 이 봉지 하나는 네가 정책대학원 원생들이 타고 온 수행 기사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다들 대기 하느라고 수고가 많을 거다.”

“고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수업이 9시 넘어 끝나는데 8시쯤이면 슬슬 배가 고픕니다. 떡이 말랑 말랑해서 좋네요. 포장도 고급스럽고요.”

구건호는 교실에서 이진우 장관과 만났다. 이진우 장관은 구건호를 보고 헛기침만 했다.

“어흠, 흠.“

A전자에 관한 이야기는 일체 없었다. 구건호 역시 물어볼 수도 없었다. 일단 표면상으로 A전자 사장은 이진우 장관이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했었다. 섣불리 물어보면 무슨 소리냐고 하면서 이 일은 없던 일이 되고 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단수가 높으니 조심해야지.]

구건호 역시 이진우 장관을 보고 헛기침만 했다.

“어흠, 흠.“

서로 고수급들 끼리 헛기침만 하기가 재미없어 구건호가 한마디 했다.

“오늘 날씨가 무척 덥죠?”

“그러게 말이요. 비라도 한줄기 왔으면 좋겠는데.”

옆자리의 김앤정 로펌의 김영진 변호사가 볼펜으로 구건호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요즘 중국 안가?”

김영진 변호사는 고수급들의 헛기침 속에 보이지 않는 살벌한 교전이 오고가는 것을 몰랐다.

“요즘 잘 안가.”

“왕지엔과 리스캉 연락 없어?”

“연락 없어.”

“터미널 사업한다는 것은 어떻게 되었어?“

“거기 가서 사장할 사람 내일 들어가. 출자하기로 했어.”

첫 시간이 끝나고 구건호가 떡과 건강음료를 돌렸다. 원생들은 처음엔 서먹서먹했는데 벌써 만난 지 8개월째를 접어들어서 그런지 쉬는 시간엔 아주 시끄러웠다. 농담들도 더 많이 했다. 화재는 나이든 사람들이라 그런지 건강관련 이야기들이 제일 많이 오고갔다.

“총무가 오늘도 떡을 돌리네.”

“총무가 이렇게 떡을 사다간 집안 거덜 나는 것 아니야? 돈 많은 사장인줄은 알지만 얻어먹기 미안한데?”

떡을 다 먹고 구건호가 쓰레기봉투를 들고 교실을 한 바퀴 돌고 있는데 이진우 장관이 앞으로 나왔다.“잠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조용이 해. 회장님 한 말씀 하신다.”

“에, 앞줄에 계신 흰머리의 00부 장관님은 항상 조용하고 미소만 날리는 분입니다. 이번에 따님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축하의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어, 그래?”

“딸은 흰머리 아닌가?”

“으하하하.”

국회의원이 능글맞게 흰머리 장관을 놀렸다.

이진우 장관이 구건호를 불렀다.

“이 청첩장 나누어 줘요.”

구건호가 청첩장을 받아서 한사람씩 나누어 주었다. 장관들은 50대 중후반이 많다보니 아들 결혼식은 없어도 딸 결혼식은 제법 있었다.

이진우 장관은 또 한마디 했다.

‘에, 우리가 벌써 여기 와서 공부한지 벌써 8개월째 들어가고 있습니다.“

짓궂은 국회의원이 또 한마디 했다.

“우리가 언제 공부했나? 8개월 동안 놀러왔지.”

간간히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진우 장관은 국회의원의 초치는 소리에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말을 했다.

“제가 회장이 된 후로 이렇다 할 업적이 없습니다. 이점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에 또.... 우리가 앞으로 4개월이 지나면 이 정책대학원 수료를 하게 되고 흩어지게 됩니다. 한번 맺은 인연을 저는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자주는 못 만나지만 모임을 만들어 일 년에 한 두 번이라도 만나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고 곡주라도 마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옳소!”

“회장이 회장된 후 처음으로 좋은 이야기 하네.”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그러면 모임 이름도 아예 만들 가요? ‘서울대학교 정책대학원 00기’ 이렇게 할 가요?”

국회의원 한사람이 반대했다.

“그거 너무 길어요. 서울대학교 이름이 자꾸 들어가는 것도 모양이 안 좋아요. 내가 고려대학교를 나왔는데 남들 보기에 1년짜리 대학원 다니고 학력 세탁하는 것처럼 보여 흉해요.”

“그럼 뭐로 할 가요?”

“여기가 관악산 기슭이니까 관악포럼으로 합시다.”

“관악포럼? 괜찮은데? 다른 의견 없습니까?”

“관악포럼 좋습니다.”

여기 저기서 관악포럼 좋다는 말이 나오고 그걸로 정하자는 박수 소리가 들렸다.

“에, 그럼 우리들 모임은 관악 포럼으로 하고 회장과 총무는 누굴 뽑는 것이 좋겠습니까?”

“뽑긴 뭘 뽑아 지금 회장과 총무가 그대로 하면 되지.”

‘그럼, 한번 회장은 영원한 회장이고, 한번 총무는 영원한 총무지.“

“회장과 총무 그대로 하자고 박수 한번 쳐줍시다.”

이렇게 되어서 구건호는 향후 관악포럼의 총무를 맡게 되었다.

금요일이 되어서 김영은이 타워팰리스로 왔다. 김영은은 정말 임신을 했는지 얼굴에 기미 같은 것이 낀 것 같기도 했고 음식을 먹지 못했다. 어느 때는 헛구역질도 했다.

“날이 더우니 에어컨 틀까?”

“틀지 마. 감기 들어. 몸에도 안 좋고.”

“그래, 그럼 거실에서 선풍기나 틀어 놓고 수박이나 먹자. 수박은 먹을 수 있지?”

구건호와 김영은은 거실에 앉아 TV를 보면서 수박을 먹었다.

구건호가 김영은의 배를 슬슬 만져보았다.

“배가 좀 부른가?”

“아직은 몰라. 만지지 마.”

“그래? 그럼 종아리나 주물러 줄게.”

구건호는 열심히 김영은의 종아리를 주물렀고 김영은은 종아리를 구건호에게 내 맡긴 채 수박을 먹었다.

“여보!”

“여보? 어휴 징그러워!”

“그럼, 영은아. 출산하면 명륜동 아남아파트는 못 있겠지? 이리 와야 되겠지?”

“그래야 되겠지.”

“그런데 옆에서 누가 봐줘야 할 사람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장모님이라도 계시면 좋은데 안계시니까 우리 어머니 오시라고 할까?”

“시부모님은 어려우니까 양평 이모님이나 차라리 우리 아버지 오시라고 할까 생각중이야.”

“신림동 아버님이나 양평 이모님에게는 임신했다는 말 했지?”

“했어.”

“굉장히 좋아하지?”

“오빠도 인천 구월동 부모님께 말씀 드렸나?”

“드렸어.”

“뭐래?”

“드디어 손자 보게 되었다고 두 분이 춤까지 추셨데. 누나한테도 축하한다고 전화 왔었어.”

“그래? 그런데 오빠, 나 졸립다.”

“그래, 이불 깔아줄게.”

구건호가 안방의 이불을 깔아주었다. 김영은이 잠옷으로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었다. 구건호도 잠옷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같이 누었다. 구건호가 김영은을 끌어당기고 뽀뽀를 하면서 잠옷을 벗기려고 하자 김영은이 황급히 막았다.

“안 돼! 임신 중이야! 각방 써!”

“아직은 초기라 괜찮아!”

“그래도 안 돼. 조심하는 게 좋잖아? 각방 써.”

“에이, 그럼 할수 없지.”

구건호가 투덜거리며 베개를 들고 건너 방으로 왔다. 혼자 누워있으니 잠도 오지 않고 뒤숭 생숭 하였다. 김영은의 하얀 속살만 생각났다.

[흠, 이래서 옛날 양반들은 첩을 얻었구나. 그러나 저러나 출산 때까지 어떻게 견디지? 앞으로 출산 때 까지는 날짜가 많이 남았는데. 모리 에이꼬나 만나러 갈까? 설빙에게 다시 연락을 해 볼까? 와이프가 임신 중인데 외도해도 될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구건호도 잠이 들었다.

구건호는 월요일 신사동 사옥으로 출근했다. 엄찬호가 물었다.

“오늘 직산으로 가는 날 아닙니까?”

“오후에나 가자. 여기에 일이 있다.”

구건호는 18층 사무실로 올라가자 경리 홍과장을 불렀다.

“앞에 앉아 봐요.”

홍과장이 메모지와 볼펜을 꺼냈다.“

“최근에 내가 땅을 판 것이 있는데 양도소득세 신고를 해야 되겠네요.”

“개인입니까? 법인입니까?”

“법인이요.”

“그럼 그 법인이 거래하는 세무사 사무실에서 신고하는 것이 안 좋겠습니까? 그동안의 과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 테니까요.”

“아니 그 법인이 최근 이사를 했어요. 지에이치 로지스틱스란 운송회사인데 큰 회사는 아니에요. 성환에 있다가 지금은 시흥시로 옮겼어요. 홍과장이 세무사 자격증이 있어서 내가 하는 말이요.”

“언제 매입하고 언제 파셨습니까?”

“원래 그 땅은 1천평 정도의 공장을 지에이치 로지스틱스에서 법인 명의로 샀었는데 그 옆의 농지를 샀어요. 1,500평과 2,600평 농지인데 농지에서 공장용도로 지목이 변경된 땅을 샀어요.”

홍과장은 구건호가 하는 말을 정신없이 메모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그 땅을 몽땅 팔았어요. 처음에 산 공장과 나중에 지목 변경된 땅 모두를 팔았어요.”

“그럼 모두 5,100평을 파셨네요.“

“그렇지. 모두 65억에 팔았어요.”

“헉! 65억! 큰돈이네요. 그 땅을 구입한 시기와 판 시기가 같은 해에 모두 발생했습니까?”

“같은 해입니다.”

“그럼 장기보유 혜택은 전혀 못 받겠네요.”

“그렇게 될 거요.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인데 이걸 홍과장이 직접 계산해서 신고하란 소린 아니요. 혹시 세무사 선배 중에서 양도소득세 문제를 잘 다루어본 선배 세무사가 있으면 홍과장이 맡겨보세요. 수수료는 후하게 주도록 하지요.”

“저하고 같은 해에 세무사 시험에 합격한 친구가 있습니다. 세무사 사무실에 있는데 거기 한번 의뢰해도 되겠습니까?”

“같은 해에 합격한 친구? 홍과장 친구면 경험이 많지 않을 것 같은데?”

“호호, 아닙니다. 거기 시니어 베테랑 세무사가 있어요. 제 친구가 다 하는 건 아닙니다.“

“그래요? 그럼 의논해 보세요.”

구건호는 홍과장에게 두툼한 대봉투 하나를 주었다.

“여기에 매매계약서와 관련 서류들이 있어요. 잘 검토해보고 토지별 등기부등본은 최근 것으로 다시 떼어보세요. 주소들은 그 안에 다 들어 있어요.”

“알겠습니다.”

홍과장은 대봉투를 받아가지고 조용히 사장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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