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304화 (304/501)

# 304

A그룹의 비밀 제의 (2)

(304)

A전자의 박사장은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공휴일이 아니라서 오고가는 사람도 없었다. 그늘진 벤치라 구건호도 같이 앉아 캔 커피를 마셨다.

멀리 보이는 벤틀리 승용차는 엄찬호가 앞뒤 문을 모두 열어놓고 냄새를 빼고 있었다. 엄찬호는 그 옆의 돌에 앉아서 음악을 듣는 것 같았다.

A전자 사장이 말했다.

“구사장님, 사업이 많이 힘들죠?”

“힘들긴 하지만 재미 있을 때도 많습니다.”

“하긴 구사장님은 오너 사장이라 스트레스가 우리보단 적을 것 같네요.”

“A전자는 1만 명이 넘는 종업원이 있는데 관리도 무척 복잡할 것 같습니다.“

“내가 다 하는 건 아닙니다. 유능한 임원들이 있으니까요. 우린 임원만 30명이 넘습니다.”

“힉! 30명요? 엄청 나네요.”

“우리가 많은 건 아닙니다. 현재 1만 2천명 종업원이 있으니까 종업원 400명당 1명꼴로 임원이 있는 셈입니다.”

“허, 임원 되려면 400명을 제켜야 하겠네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A전자 사장은 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구사장님이 결혼할 때 이진우 장관님이 주례를 서주었다고 했지요?”

“그렇습니다.”

“주례 선생님은 평생 잊지 못하는 법인데.... 이 장관님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 좋은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장관님은 앞으로 정치를 하실 분입니다.”

“정치요?”

“장관은 오래 못합니다. 벌써 장관이 되신 지도 2년이 넘었습니다. 이제 경질이 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 분들은 또 정부의 어떤 자리를 맡게 되겠지요.”

“그거 보다는 정치에 뜻을 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여당과 야당에서 서로 오라고 물밑 접촉을 하는 모양입니다.”

“워낙 인기가 좋은 분이라 그러신 모양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일체 밖에 나가서 하시면 안 됩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해서는 안 됩니다.”

“무슨 말인데 그렇습니까?”

“정치를 하려면 돈이 들어갑니다.”

“그야 그렇겠지요.”

“정치를 하려면 이진우 장관님이 돈이 필요합니다.”

“돈이야 걱정 없지 않겠습니까? A그룹 회장님 사위 아닙니까?”

“이진우 장관의 정적들은 A그룹을 주시하겠지요. 만에 하나 A그룹의 돈이 이진우 장관의 캠프에 흘러 들어간다는 것을 알면 A그룹이 심한 상처를 입게 됩니다.”

“흠.”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리가 정치자금을 마련해 줍시다.”

“정치 자금을요? 저희 회사는 정치자금을 댈 그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종업원 몇 백 명 앉아서 오순도순 자동차 부품이나 만드는 회사입니다.”

“그런 뜻이 아니고 지에이치 모빌이 A그룹에 납품을 하게 해드리죠.”

“옛? 뭐라고요? 납품을요?”

“그리고 비자금을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비자금을요? 전 그런 것 못합니다. 사장님도 잘 아시다시피 법인 돈은 영수증 없이는 돈 지출이 안 됩니다. 매입 매출 세금계산서는 정확히 국세청 세금계산서를 끊지 않습니까?“

“고전적 수법으로 비자금을 만들자는 것은 아닙니다. 합법적으로 하자는 겁니다.”

‘합법적으로요?“

A전자 사장은 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주위를 돌아보았다. 주위엔 새소리뿐 아무도 없었다.

“납품을 하게해드리고 지에이치 모빌의 주식을 우리에게 일정 분량 주는 겁니다.”

“주식을요?”

“이장관에게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장관님의 부친에게 주는 것입니다.”

“옛? 부친에게요?”

“이진우 장관에게 주식을 주거나, 젊은 사람에게 주면 자금 출처를 의심받습니다.”

“실례지만 지금 하시는 이야기들은 이장관님과 사전에 의논한 것입니까?”

“이장관님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십니다. 이장관님의 부인도 모릅니다. 저의 개인적 제안일 뿐입니다.”

구건호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렇지. 무슨 일이 터지면 박사장 선에서 꼬리 짜르기를 해야 되겠지.]

A전자 박사장은 구건호를 쳐다보지 않고 앞만 본채 말했다.

“일전에 구사장님이 운영하는 직산의 공장을 방문한 것은 공장 규모를 보러갔던 것입니다. 즉, 납품 능력이 있는 회사인가를 점검하러 갔었습니다. 그 정도 규모면 가능해서 말씀드립니다. 잘 알다시피 A전자에 납품하는 1차 벤더는 매출이 조 단위가 넘어가는 회사들도 있습니다.”

“흠.”

“합법적으로 이진우 장관의 부친이 현금 배당을 받게 되면 정치자금 지원이 가능합니다. 아들이 자식의 정치자금을 대주는데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YS보십시오. 대통령이 될 때까지 멸치 수산업을 하는 아버지의 돈을 갖다 썼습니다. 물론 정치자금도 있지만 그것도 무시할 처지는 못 됩니다.”

“흠.”

“제가 왜 이장관님의 정치자금 줄로 구건호 사장님을 택한 줄 아십니까?”

“무슨 이유입니까?”

“첫째로 믿을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주례를 섰던 인연도 무시 못 할 인연입니다. 더군다나 구사장님 같이 자수성가 하신 분들은 영리하여 밖에 나가 쓸데없는 이야기를 안 합니다. 때로는 자기 자신의 자존심도 죽일 줄 아는 무서운 인내력의 소유자들이지요.”

“제가 그런가요?”

“둘째는 코스닥 직전의 회사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지에이치 모빌의 주식을 받아야지 코스닥 상장되면 주식 값이 튈뿐만 아니라 대형 주식의 움직임은 공시를 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기획조정실에서 몇 개월 전부터 은밀히 지에이치 모빌을 조사해왔습니다.”

“조사를요?”

“아주 최적의 회사였습니다. 지에이치 모빌이라는 회사의 규모와 사장의 케릭터가 아주 최적이었습니다. 인공적으로 만들려고 해도 만들기 어려운 최적의 회사였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를 납품하게 해주고 주식은 얼마나 달라는 겁니까?”

“납품은 1년 안에 1천억 이상을 해드리고 매년 그 이상을 늘려드리겠습니다.”

“헉! 1천 억요?”

“그 대신 품질은 우수해야합니다. 불량이 나온다면 거래는 무산될 수 있습니다.”

“주식은요? 설마 100%달라는 것은 아닐 테고.”

“하하. 아마 50% 이상을 달라면 구사장님은 당장 나에게 욕을 하고 가버릴 겁니다. 50%이상이면 경영권을 빼앗기니까요. 나는 15%를 요구합니다.”

“뭐요? 15%요?”

“부품 제조업은 전통 굴뚝산업이라 매출 신장율이 높지 않습니다. 코스닥 상장시키려고 노력하니까 상장은 되겠지요. 해외법인 몇 개 만들 돈은 증권시장을 통해 조달이 가능하겠지요. 그래 보았자 매출 1천억을 조금 넘는 회사일겁니다.”

“흠.”

“어떻습니까? 100%지분을 가지고 있는 매출 1천 억짜리 회사를 갖고 싶습니까? 지분 85%를 가진 1조 원짜리 회사를 갖고 싶습니까?”

“흠...”

구건호는 엄청난 제의에 답변을 못하고 신음 소리만 냈다.

A전자 박사장은 다시 캔 커피를 마셨다. 캔 커피는 다 마셨는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흔들어도 나오지 않았다.

“주식 15%는 증여 방식이 아닙니다. 증자 방식입니다. 그래야 구사장님도 명분이 섭니다. 코스닥에 진출하기 위해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증자를 했다고 하면 누구나 수긍합니다.”

“증여는 제가 갖고 있는 주식을 양도 하는 것 이지만 증자는 돈을 가져와야합니다.”

“당연히 15%의 돈을 가져옵니다.”

“돈을 가져 온다?”

“우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지에이치 모빌은 현재 자본금 50억입니다. 발행주식수는 주당 1만원에 50만주입니다. 15%증자하게 되면 주식 수는 5십7만 5천주로 늘어나고 자본금은 57억 5천만 원이 됩니다.

증자로 흘러 들어간 돈은 부채를 상환하여 부채비율을 확 떨어트립니다. 단숨에 코스닥 상장의 길이 가까워집니다. 어때요? 매력이 있지 않습니까?”

구건호도 캔 커피를 마셨다. 구건호의 캔 커피도 다 마셨는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럼 증자해놓고 납품을 안받아주면 어떻게 할 겁니까?”

A전자 사장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품공급 확약서를 체결하고 공증을 해드리지요. 대한민국 굴지의 대회사 A전자와의 계약체결입니다. 그걸 못 믿으면 어떻게 합니까? 도면도 드리고 금형도 드립니다.”

“금형을 준다고요?”

“이미 개발된 제품 중 납품과정에서 불량이 생겨 우리가 납품회사로부터 회수해 논 금형들이 있습니다. 우선 이걸 드리지요. 그러면 지에이치 모빌에선 당장 내일이라도 생산 가능할 것입니다.”

“금형만 있다면 그렇겠지요.”

“중자용 돈 7억 5천만원은 당장 내일이라도 지에이치 모빌의 주거래 은행 계좌로 송금을 해 드리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이진우 장관님의 부친께서 투자하시는 것이고 이진우장관님과 그 사모님게서는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구건호는 고개를 돌려 A전자 사장 얼굴을 쳐다보았다. 금테 안경에 창백한 얼굴을 하고 곱게 늙은 듯한 50대의 이 남자가 다시 보였다.

[진짜 똑똑하군. 그러니 거대기업 A전자의 사장이 되어 연봉 수십억을 받는 사람이 되었지.]

A전자 사장은 구건호가 답변은 안하고 자기 얼굴만 쳐다보자 의아한 생각이 드는 모양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생각할 여유를 주십시오.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오늘 구사장님과 내가 한 이야기는 하늘과 땅만 알뿐입니다. 그러면 좋은 소식을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오늘은 차를 가지고 오지 않았으니 을지로 입구까지만 태워주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은 벤치에서 일어나 벤틀리 승용차가 주차해 있는 남산도서관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구건호는 A전자 박사장과 헤어져 다시 신사동 빌딩으로 왔다. 구건호가 심각한 얼굴로 들어오자 비서 오연수가 구건호의 안색을 살폈다.

“저, 사장님 커피 드릴까요?”

“아니, 녹차 하나 줘요.”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녹차를 마시며 창밖을 내다 보았다. A전자 박사장이 한 말을 곰씹어 보았다.

[지에이치 모빌의 주식 15%를 달라? 코스닥 상장을 하면 배당은 둘째 치고 당장에 주식 값이 튀니 되팔아도 큰돈 손에 쥐겠군. 참으로 영리한 사람들이네. 영리하다 못해 영악스럽기까지 하네.]

[미끼치고는 내가 거절하기 힘든 아까운 미끼야. 자기들도 벌고 나도 벌고 하자는 이야기인데 해봐? 어차피 15%의 주식이면 경영권을 넘보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이것은 정말 이진우 장관의 정치자금 때문인가? 아니면 단순히 한탕 돈을 벌기 위함인가? 돈이 이진우 장관 부친 명의로 들어온다면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구건호는 창밖을 보다가 계속 사장실을 돌았다.

[어떻게 한다? 자동차부품 2차 벤다에서 가전제품은 분야에서는 1차 벤더가 되는 기회인데 해봐? 주식 15%가 아깝긴 한데. 말이 7억 5천만 원이지 코스닥 상장되면 75억 가치가 있을듯한 돈인데.]

[송장환 사장한테는 적어도 3%의 주식 증여는 해야 될 거야. 그의 노력으로 매출이 확대된 건 사실이고 관리체계가 잡힌 건 맞으니까 해 줘야 되겠지. 처음에 스카웃 할 때 조건도 그랬으니까 약속은 지켜줘야 하겠지.]

[그러면 이장관 부친 15%, 송사장 3%, 내가 82%인가?. 아직 모빌에 쏟아 부은 돈은 내가 한 푼도 못 챙겼는데. 해봐? 하지 마? 해봐?]

구건호는 계속 사장실을 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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