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2
늦깎이 결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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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건호는 신사장과 박종석 이사에게도 문재식이 부천의 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다고 말해주었다. 이미 동거하던 여자고 임신까지 한 상태라 중국 가기 전에 조용히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들 결혼 한줄 알았는데 그런 사정이 있느냐고 놀라는 눈치였다.
문재식은 사실 함께 사는 여자의 부모를 뵙지 못했다. 그냥 만나서 살다보니 동거를 하게 되었고 지금 임신상태에서 해외로 나간다니 다급한 마음에서 결혼식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문재식은 동거녀의 부모를 부천역 앞에 있는 카페에서 만났다. 동거녀의 부모역시 노동을 많이 한 사람들이라 얼굴에 고생한 흔적이 역력했다.
“내가 이야기는 많이 들었네. 막상 만나보니 신랑 될 사람이 얌전하게 생겼군.”
장인과 장모는 문재식을 마음에 들어 했다.
“좀 근사한 예식장에서 혼례를 올려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막상 출국 날짜를 받아놓고 급하게 하게 되어 그렇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야, 아니야. 결혼식보다도 앞으로 잘 사는 게 중요하지.”
문재식은 그 날로 자기 동거녀를 동인천역에 있는 주공아파트로 데리고 갔다. 동거녀는 문재식의 엄마와 아빠에게 큰절까지 했다.
“몸도 무겁다며 절은 무슨 절,”
문재식의 부모 역시 이런 일에 익숙치 않아 쑥스러워했다. 며느리 될 사람이 어렵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문재식의 엄마는 있는 솜씨, 없는 솜씨를 다 부려 저녁을 준비해 주었다.
네 식구가 앉아서 밥을 먹었다. 아빠가 한마디 했다.
“이렇게 4식구가 아파트에 앉아서 밥을 먹으니 사람이 사는 것 같다. 너희들이 중국을 안가고 이렇게 살아도 좋았을 걸 그랬다.”
상견례도 이틀 후에 바로 했다. 시간이 없다보니 번개 불에 콩 구워 먹듯이 했다. 상견례는 부천 중동에 있는 나리스 키친이라는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했다. 문재식과 문재식의 동거녀는 상견례보다도 고생만 해 오신 부모님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주고 싶었던 욕심도 있었다.
문재식의 동거녀가 문재식에게 말했다.
“우리집이 원미동에 있는 연립에 사는데 엄마는 늘 부천역이라도 가려면 저런 식당은 누가 가느냐고 물었었어. 거기 가서 원 없이 고기라도 드시게 합시다.”
“좋아 우리 부모님도 그런데 못 가보셨을거야. 마음껏 식사라도 하게 해드리지.”
하지만 양가의 어른들은 상견례 날 체면을 차리느라 많이 먹질 못했다. 말씀들도 잘 안하셨다. 오히려 이야기를 많이 한건 문재식과 동거녀였다.
아마도 양가의 부모님들은 아들과 딸의 결혼식에 본인들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다는데 대한 미안함과 이렇다 할 내세울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상은 아들과 딸이 훌륭한 사회인이 되어서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노동을 하면서 뒷받침을 한 큰 공이 있지만 본인들은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금요일 날 저녁에 도곡동 타워팰스로 퇴근한 구건호는 식탁에서 김영은에게 문재식의 결혼 이야기를 했다.
“어려서 같은 동네에서 살았고 고등학교도 같이 다닌 친구야. 현재 내가 만든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 결혼식이 끝나면 바로 중국에 가서 근무할 사람이야. 동거녀가 임신 3개월이라 부랴부랴 결혼식을 하기로 했어. 동거녀가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었다는군.”
“여자들 심정이야 그렇겠지요.”
“늦은 저녁시간에 다니던 교회에서 조용히 하기로 해서 내일 저녁 가봐야 해. 그런데 친구들도 별로 없고 하객도 없어서 결혼식이 너무 초라하지가 않으려나 모르겠네. 당신도 같이 갈래? 인천 연안부두에 가서 회 사줄게.”
“회? 여름에 먹어도 되나?”
“먹어도 되지. 요즘같이 더운 날은 시원한 바다를 보면서 회를 먹는 것도 좋잖아?”
“그럼 갈까? 오빠도 없는 집에서 심심한데. 더군다나 하객도 없다는데.”
“고맙다. 내일가자.”
문재식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다.
구건호는 엄찬호가 운전하는 벤틀리 승용차는 신랑 신부를 위해 빌려주었다. 그리고 자기는 김영은과 함께 랜드로버를 타고 식장이 있는 부천의 교회엘 갔다.
식장에 도착하니 토요일 저녁시간인데도 하객들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구건호가 보낸 축하 화환 옆에서 문재식의 부모님이 흰 장갑을 끼고 서 있는 모습도 보였다.
입구에 서 있던 김민혁과 박종석을 만났다.
“어? 형수님도 같이 오셨네.”
“안녕하세요?”
김영은과 박종석이 같이 인사를 했다.
박종석이 옆에서 아이를 안고 있던 여자를 소개했다. 박종석 역시 고맙게도 부부가 함께 왔다.
“민혁이도 왔구나.”
구건호 부부가 김민혁과도 인사를 했다.
신정숙 사장의 얼굴도 보여 인사를 했다. 신사장은 김영은을 보고 무척 반가워했다. 눈에 익은 하객들과 인사를 나눈 구건호 부부는 문재식 부모에게 다다가 인사를 했다.
“재식이 친구 구건호입니다.”
“오, 건호!”
구건호의 얼굴을 알아본 문재식의 엄마는 구건호를 껴안기도 했다.
“친구들이 와줘서 고마워!”
구건호는 식장에서 누나와 매형을 만나기도 했고 사회단체에 다니는 동창 강민호도 만났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신부의 아버지와 함께 입장하던 신부는 가늘게 떨었다. 그리고 기쁨의 눈물까지 흘렸다.
주례는 교회의 목사님이 해 주셨고 성가대의 축가도 있어 분위기는 그런대로 좋았다. 물론 가까운 친지만 불러 하객이 많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단출하고 가족적인 분위가 있어서 더 좋았다.
기념사진을 찍을 때 보니까 신랑의 친구는 5명이었다. 구건호, 김민혁, 강민호, 박종석, 그리고 문재식의 문예창작과 대학 동창인지 구건호가 모르는 친구 한 명이 더 왔었다. 신부의 친구 역시 많지 않은 6명이었다. 이렇게 해서 돼지 농장 잡역부 아들인 문재식과 닥트공 출신의 노점상 딸인 신부는 여러 하객들의 축복 속에 백년가약을 맺었다.
구건호는 교회의 마당에 설치한 뷔페식 음식을 먹고 연안부두로 향했다. 날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구건호는 운전을 하면서 옆자리의 김영은에게 말했다.
“문재식은 지금 제주도 가는 비행기를 탑승했겠군.”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그랬죠?”
“문재식이 문학상을 탔지.”
“신부는 시를 쓴다고 그랬지요?”
“시를 쓴다고 했어.”
“멋진 부부네요. 문학하는 부부라 중국에 가면 중국문화를 빨리 익힐 것 같네요.”
“그런가?”
연안부두는 호객행위로 시끄러웠다. 밤늦은 시간인데도 여기는 불야성이었다. 구건호 부부는 가장 큰 회집의 이층으로 올라갔다.
월요일이 되었다.
구건호는 성환의 로지스틱스를 들려보았다.
낯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로지스틱스가 쓰던 사무실을 청소하기도 했고 성토한 논은 측량을 하고 있었다.
“이제 여기와는 인연이 끊어졌네.”
“그러네요.”
엄찬호도 웃으며 말했다.
구건호는 직산의 모빌에 잠간 들렸다가 시흥엘 왔다. 누나와 매형이 어떻게 하고 있는가 궁금했다.
온비드에서 임대받은 토지의 풀은 깨끗이 베어져 있었고 로지스틱스의 예비차 트럭 2대가 서있었다.
“광장이 넓으니까 우리 차 주차하기도 좋네요.”
엄찬호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사무실로 쓰고 있는 어린이집 현수막은 말끔히 걷어져 있었고 입구에 ㈜지에이치 로지스틱스란 커다란 간판이 보였다.
“할만해?”
“건호 왔구나!”
옆에 서있던 매형이 누나에게 핀잔을 주었다.
“건호가 뭐야? 구사장이지. 밖에선 구사장이라고 해야지.”
“하하, 됐습니다.”
사무실은 놀랍게도 깨끗해졌다. 회의용 탁자에는 예쁜 꽃병까지 갖다 놓았다. 꽃병의 꽃은 산 것이 아니고 근처의 야생화 같았다. 문재식이 있을 때보다도 누나가 있으니까 더 깔끔하게 해 놓은 것 같았다.
“문사장에게 업무는 다 인계 받았나?”
“받았는데 잘 모르겠어.”
“부닥쳐가며 하다보면 익숙하게 될 거야. 새로운 업무보다는 루틴한 업무도 많거든.”
“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해야 되겠는데.”
“명함 나왔나?”
“나왔어.”
누나가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새로 나온 명함을 보여주었다. 하나는 대표이사 명함이고 하나는 상무이사 구건숙의 명함이었다.
“참, 구사장 왔는데 차 한잔 해야지.”
누나가 차를 끓여왔는데 녹차가 아니고 대추차 같은 것이었다.
“대추차 같은데?”
“대추도 넣고 감초도 넣고 그랬어. 여기 오는 운전기사들이 차 맛이 좋다고 하던데?”
“흠, 괜찮은데. 기사들이 여기 너무 멀다고 하는 사람들은 없어?”
“몇 사람 오지 않았는데 멀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없었어. 오히려 작은 운송회사는 이런 곳에 있는게 맞다고 했어. 성환은 아무래도 오너 사장님이 부동산 투기 목적이었던 것 같았다고 했어.”
“그래?”
“식당이 멀어 불편하지?”
“아니, 여기서 직접 해먹어. 어제는 휴일이지만 우린 여기 나왔었어. 주방도 있고 그래서 여기서 밥을 해먹으니 좋던데? 마침 기사가 한명 왔기에 같이 먹으니까 식당 밥 보다도 진짜 집밥 같다고 좋아했어. 식사 후 커피마시며 넓은 마당 쳐다보니 전원생활이 따로 없었어.”
“그래? 흠, 그리고 여긴 가까운 은행이 어디 있나?”
“로터리 부근에 신한은행이 있어서 문사장한테 신한은행 통장을 인수 받았어. 큰 돈이 든 통장은 구사장하고 상의해서 주고 우선 운영비 쓰라고 2천만원이 든 통장을 받았어.”
“신혼여행이 오늘까지니까 내일은 여기 나오겠네.”
“이삼일 여기 나왔다가 중국 간다고 했어.”
구건호는 차 맛이 더 좋은지 차를 한잔 더 달라고 하였다.
“아, 그리고 문사장이 급여표라고 하면서 주고 갔어.”
구건호는 매형이 준 표를 보았다. 급여가 적혀있었다.
[대표이사 임희재 320만원, 상무이사 구건숙 250만원. 구건호 이사 500만원, 중국파견 문재식 150만원.]
“흠, 내 급여가 많으면 여기가 힘들어지니 내 급여는 300으로 조정해요. 그리고 중국파견 문재식의 급여는 180만원으로 올려줘요.”
“알겠네.”
“그리고 법인카드 인수 받았죠?”
“받았어. 한 장은 내가 갖고 있고 한 장은 정아 엄마 줬네.”
“어디은행 카드죠?”
“기업은행거네.”
“기업은행은 어디 있는지 아세요?”
“여기서 3키로 정도 나가면 있어.”
“기업은행 공인인증번호는 누나 컴퓨터에 깔려있나?”
“갈려있어. 경리 아가씨가 쓰던 컴퓨터는 그대로 내가 물려받았고, 문사장이 쓰던 컴퓨터는 정아 아빠가 다 물려받아서 자료 같은 건 다 들어 있어.”
“흠, 그런가요?”
“기업은행 OTP카드 받았나요?”
구사장 있을 때 준다고 하고선 아직 안 받았어.“
“기업은행 통장 확인은 가능하지요?”
“공인인증번호가 컴퓨터에 깔려있어 가능해. 3억 정도 잔액이 있는 것 같더군.”
“법인카드 쓰면 거기 3억에서 빠져 나가겠군요.”
“그러더군. 법인카드는 월 사용 한도액이 천만원이고 현금인출은 불가능하다는 소리를 들었어. 그리고 토지대금 들어온 건 우리은행에 있는데 그건 구사장에게 직접 주겠다고 했어.”
“흠, 알겠습니다.”
“법인카드 사용범위는 이야기 들었죠?”
“접대비나 사무용품, 식대 등 경비지출은 다 쓸 수 있다고 들었네.”
“경리 책을 보면 계정과목이 있습니다. 거기 계정과목에 나오는 건 다 쓸 수 있지만 개인용 옷을 산다거나 화장품이나 이런 것 사면 안 됩니다.”
“화장품?”
매형과 누나는 깔깔 웃었다. 구건호도 웃으며 말했다.
“이를테면 회사 업무와 관련된 것만 지출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마신 대추차는 법인카드로 사도 됩니다.”
“정말?“
“접대용이니까?”
누나와 매형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괜히 우리 돈으로 샀잖아.”
“하하 앞으로 그러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