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1
늦깎이 결혼 (2)
(301)
누나와 매형은 최근 성환에 있는 로지스틱스에 출근했다. 문재식으로부터 업무를 인수인계 받아야하기 때문이었다. 문재식은 팔린 토지의 잔금만 받으면 회사에 나오지를 않는다고 하여 부지런히 배웠다.
매형은 문재식과 함께 거래처를 돌기도 했다. 누나는 경리에게 세금계산서를 끊는 일에서부터 세무사 사무실에 전표 갖다 주는 일, 4대 보험 신고하는 일, 부가세 신고하는 법 등을 알려주었다.
구건호가 지에이치 모빌에 출근하여 간략한 업무 보고를 받고 신문을 보고 있는데 비서 박희정씨가 들어 왔다.
“사장님, 경비실에 누가 찾아왔다는데요? 누님이라는 분이 왔답니다.”
“누님이? 들어오라고 하세요.”
박희정씨의 안내를 받아 누나와 매형이 쑥스러운 표정을 하고 사장실에 들어왔다.
“여긴 웬일이세요?”
“로지스틱스에서 경리보는 직원이 전산회계는 안 해 보았다고 해서 그런 건 어떻게 하나 구경좀 해보려고 왔어. 그런데 여긴 공장이 상상외로 크고 엄격하네. 난 여기도 로지스틱스 만한 곳 인줄 알았어.”
“오셨으니 차나 한잔 하시죠.”
구건호가 박희정씨에게 차를 주문했다.
“여긴 직원들이 얼마나 돼?”
“300명입니다.”
“헉! 300명!”
누나와 매형은 평소와 달리 차도 아주 조심스레 마셨다.
“여기는 용역 없나?”
“용역은 없습니다. 다 정직원입니다.”
“아까 보니까 직원들이 모두 똘똘하게 생겼던데? 전부 제복을 입고 명찰을 달고 근무하네. 처남만 여기서 제복을 안 입었네.”
“여기 자주 올 필요 없어요. 오셨으니 공장 구경이나 하고 가세요.”
구건호는 박종석 이사를 사내 전화로 불렀다.
박종석 이사가 올라왔다.
“박이사! 우리 누나 알지? 우리 누나하고 매형이야.”
“건숙이 누님?”
“누나 박이사 몰라? 설렁탕집 아들.”
“맞아, 맞아. 아까 긴가 민가 했는데 맞네.”
박종석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누님이 시험 공부하는데 떠든다고 먼지 털이로 저를 때리고 그랬잖아요.”
“내가 그랬었나?”
“두 분 공장 안내 좀 해드려.”
박종석이 현장을 안내했다.
“여기 일렬로 서 있는 것들이 유압프레스 기계들 입니다.”
“아, 굉장하네.”
“여기는 사출실 입니다.”
사출에서 나오는 뜨거운 제품들을 로봇 팔들이 규칙적으로 움직이며 꺼내어 다른 용기에 담는 모습도 보였다. 제복을 입은 젊은 여성들이 열 지어 앉아 소형 절단기를 이용해 제품을 다듬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흠.”
누나와 매형은 공장에서 근무를 해본 사람들이지만 이렇게 큰 공장은 처음 와보았다. 인천서 이런 공장은 자기들 실력으론 들어가기도 힘들었고 인연도 닿지 않았었다.
[건호가 이렇게 큰 공장을 운영하다니 참 신기한 일이네. 어떻게 해서 이런 공장을 운영하게 되었을까? 노량진서 9급 공무원 시험 공부한다고 나한테 용돈 달라고 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건호는 내 동생 같지가 않아.]
매형이 박종석이사에게 물었다.
“저기 연구소라고 쓰여 있는 건물은 무얼 연구하는데 입니까?”
“제품을 개발하기도 하고 제품 의뢰 도면이 오면 시제품을 만들어 성능 테스트도 하고 그럽니다. 저기엔 박사들도 있습니다. 연구소장님은 독일 뮌헨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신 분입니다.
"구경해 보시겠습니까?“
“아닙니다. 됐습니다.”
누나와 매형은 구건호에게 누가 될까봐 몸을 사렸다.
누나와 매형이 다시 사장실을 올라왔다.
“잘 보았어요?”
“잘 봤어. 대단하네.”
구건호는 김민화 경리이사를 불렀다. 경리이사가 사장실을 들어왔다.
“이분들은 지에이치 로지스틱스에서 일하실 분들입니다. 전산회계 처리하는 걸 보고 싶다고 하니 보여주세요.”
“로지스틱스에도 전산 회계프로그램 깔았습니까?”
“안 깔았는데 나중에 깐답니다. 개괄적인 것만 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경리이사는 구건호에게는 깍듯이 인사하고 나갔지만 매형하고 누나에게는 도도한 자세를 취했다. 하긴 김민화 이사는 누나보다도 다섯 살 정도는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였다.
“김대리!”
김민화 이사는 파티션 쳐진 자기자리로 돌아가 앉으며 대리 한명을 누나에게 붙여주었다.
“이분들 로지스틱스에서 오신 분들이니까 전산 회계프로그램 다루는 법좀 알려주세요.”
담당 대리는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누나에게 앉으라고 하였다.
“분개는 할 줄 아시죠?”
“예, 분개요?”
“경리담당이시라면서요?”
“그, 그렇습니다.”
누나는 대리가 설명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요양원에서 어깨 너머로 배운 경리 지식으론 여기서는 어림도 없었다. 누나는 대충 예, 예, 하고 다시 사장실로 올라왔다.
구건호는 디욘코리아로 갔기 때문에 자리에 없었다.
누나는 자기의 소나타를 다시 성환 방향으로 몰았다.
“건호가 대단하네요. 저런 공장의 오너 사장이라니 말이에요.”
“그러게 말이야. 저런 걸 어떻게 만들었지? 아산에도 이런 공장이 또 있다며?”
“디욘코리아라는 공장이래요. 아산의 디욘코리아에는 우리 로지스틱스에서 트럭 3대가 용역 맡아 들어가 있다고 했어요.”
“처남은 아산 이외에도 강남에 큰 빌딩이 있다며? 중국에도 공장이 있고? 참 대단해. 내가 결혼할 때 노량진서 공부한다고 비쩍 말라 있었는데 지금은 살도 붙고 완전한 사업가 틀이나. 그런데 10년도 안된 세월에 사람이 그렇게 성장할 수 있을까?”
“글쎄,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가요.”
문재식은 어머니를 이사 시켰다. 화평동 재개발지구 낡은 연립의 지하에서 동인천역 솔빛마을 주공아파트로 옮긴 것이다. 문재식은 지하실에 있었던 낡은 물건은 대부분 다 버렸다. 엄마는 TV를 버리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화면이 어리어리해서 그런 것 보면 눈 나빠져요. 새로 샀으니 버리세요.”
문재식은 이삿짐을 용달차에 실어 보내고 엄마는 자기가 몰고 다니는 SM5 승용차에 태웠다. 동네 할머니들이 아쉬워서 모두 나와 쳐다보았다.
“아이고, 아들이 돈 잘 버는 모양이네. 자가용 승용차까지 가져왔네.”
“주공아파트로 이사 간다며? 저 아줌마 늦 팔자 피는 모양이네. 만날 도라지 까면서 죽은 작은 아들 생각하며 훌쩍거리더니 이사 가네.”
문재식은 할머니들한테 크게 인사를 하고 박카스를 한통 사서 나눠드시라고 하고는 정든 집을 떠났다.
엄마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문재식을 쳐다보며 방글방글 웃었다. 좋은 모양이었다.
“엘리베이터도 있네.”
현관문이 열리고 새로 한 도배장판에 거실에 있는 대형 TV를 보고 엄마는 크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저희는 중국에 들어가니 안방 쓰세요. 아빠도 오늘 저녁 여기에 오기로 하셨어요.”
엄마는 이방 저방 구경하다가 냉장고를 열어보고 무척 좋아하였다.
“지하에 살 땐 냉장고가 작아서 물건이 많이 못 들어갔었는데... 물도 새고. 이 냉장고 비싸지?”
엄마는 가스레인지도 켜보고 세탁기 뚜껑도 열어보았다.
“여기는 개미 같은 것 없으니까 안심하세요.”
저녁때쯤 아빠가 낡은 가방을 메고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빠는 집을 보고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
“저는 중국으로 발령을 받아서 가니 두 분 안방 쓰세요. 방이 3개니까 하나는 비워두세요. 망원동에 있던 내 물건이 들어와야 되니까요.”
“알았다. 집이 참 좋다. 이 집 융자는 얼마 들어있냐?”
“융자는 아직 없어요.”
“그으래?”
융자가 없다는 말에 아빠는 또 놀라는 표정이었다.
“저녁 식사 하러가세요. 오늘은 첫날이니까 내려가서 사먹지요.”
문재식은 엄마 아빠와 함께 눈에 띄는 식당이 있어 들어갔다. 불낙을 시켰다. 맥주도 한 병 시켰다.
“반찬 가지 수가 많네.”
엄마는 상기된 표정으로 반찬을 조금씩 맛보았다. 아빠는 복잡한 심정으로 맥주를 마셨다.
“속이 시원하고나.”
불낙은 불고기 재료와 낙지가 들어가서인지 두 분다 엄청 잘 먹었다. 젊은 문재식보다도 더 잘 먹는 것 같았다. 공기밥을 추가로 하나 더 시켜야 했다.
아빠가 물었다.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일이 뭐라고 했지?”
문재식은 가지고 있는 명함을 아빠에게 드렸다.
“지에이치 로지스틱스 대표이사?”
“화물운송업이에요.”
“로지스틱스가 화물운송이란 소리인가?”
“예, 저는 여기 월급쟁이 사장이고 주인은 따로 있어요. 사장은 다른 사람이 맡기로 하고 저는 중국에 가서 고속버스 사업을 하라고 해서 가게 된 거예요.”
아빠는 슈퍼에서 생수와 플라스틱 통에 든 맥주와 새우깡을 샀다. 아파트에 올라가서 한잔 드시려는 모양이었다. 엄마가 주차장에 있던 SM5를 가리켰다.
“이게 재식이 차에요.”
“그래? 차를 샀나?”
“회사 차에요.”
“흠, 그래?”
문재식은 8층 아파트로 올라가서 엄마와 아빠에게 말했다.
“저는 이제 성환으로 가봐야 해요. 내일 모레 저녁에 결혼할 여자를 데리고 올 테니까 그런 줄 아세요.”
문재식은 안 포켓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100만원이에요. 며느리 될 사람 오니 아빠는 기성복 하나 사시고 엄마도 양장 옷 한 벌 사세요.”
“됐다. 내가 양돈장에서 해고수당 100만원 받았다. 돈 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니까 받아두세요. 모레 저녁에 올게요. 편히 들 쉬세요.”
“그래 조심해 가거라.”
현관문 키 번호 잊지 마세요. 비밀번호가 0719번이에요. 아빠 엄마 결혼 기념일이 7월 19일이라 그렇게 했어요.‘
“흠, 알겠다.”
아빠가 처음으로 빙긋이 웃었다.
문재식은 아파트에 두 분만 남기고 성환으로 돌아왔다.
구건호가 신사동 빌딩 사장실에서 스마트폰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는데 문재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토지대금 잔금 다 받았어.”
“그래? 그럼 이사는 내일 할 건가?”
“오늘 하기로 했어. 크게 옮길 것도 없어. 이사짐은 우리화물차에 다 실었어. 트럭 두 대가 예비차로 마당에 서 있었는데 한 대는 내가 끌고 가고 한 대는 매형이 끌고 가기로 했어.”
“그래? 그럼 수고하겠구나.”
“내가 중국가는 건 결혼식 끝나고 바로 갈게.”
“알았다. 그건 걱정 말고 천천히 네 일 봐라. 결혼식 전까지는 그래도 네가 시흥에 출근해서 누나와 매형 일 좀 봐줘라. 오전에만 나가도 될 거야.”
“알았다. 그건 염려 마.”
“잔금 받았으니까 양도세 신고하는 건 내가 알아서 할게.”
“구사장, 법인통장을 누나나 매형한테 넘길까?”
“우선 갖고 있어라. 지금 거기 거래 튼 은행은 한군덴가?”
“세 군데나 돼. 용역 준 회사들이 돈을 보낼 때 주로 자기들이 지정하는 은행을 통해서 하기 때문에 억지로 3개 만들었어. 경비 쓰는 출금 통장은 하나 갖고 해.”
“시흥으로 옮기면 거기 사업장에서 가까운 은행이 어디인가나 알아봐라.”
“알았다.”
구건호는 오래간만에 김민혁에게 전화를 했다.
“어, 구사장. 전화 자주 못해 미안하다.”
“아니, 괜찮아. 무소식이 희소식이야.”
“매출은 그런대로 조금씩 늘고 있어. 딩딩 판매회사도 그렇고.”
“다행이구나.”
“딩딩은 위클리 리포트를(주간 업무보고)를 영문으로 써서 애덤 캐슬러에게 송부해.”
“그게 좋겠지. 디욘코리아엔 중국말 하는 친구가 없으니까.”
“왜? 디욘코리아의 대표이사가 중국말 잘하는 구건호 사장 아니야?”
“하하, 나는 주간업무 같은 거 안 봐. 부사장 전결이야.”
“하하, 나도 그냥 해본 소리야.”
“그리고 26일 문재식이 결혼한다.”
“뭐? 걔 마누라 있잖아?”
“문재식이가 동거하는 여자가 있지만 그동안 경제적 사정 때문에 못했었지. 이번에 중국 안당시 객운참으로 부임하는데 결혼식을 하고 간다고 했어. 동거하는 여자가 임신3개월이고 이번에 못하면 평생 웨딩드레스를 못 입어 본다고 해서 가족끼리 조용히 저녁때 교회에서 한다고 한 모양이야. 친구도 너하고 나하고만 부른다고 했어.”
“그래? 그럼 가야되겠구나. 걔가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너 한국 다녀간 지 오래됐지? 부모님도 뵐 겸 한번 와라.”
“그래 갈게. 만나면 축하한다고 전해줘라. 거기 개발에 정지영 대리라고 있지? 그 사람한테 이야기해서 내 앞으로 화환 좀 보내주라고 해줘. 돈은 부쳐줄게.”
“알았어. 해줄게. 돈은 부칠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