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0
늦깎이 결혼 (1)
(300)
구건호는 근처의 은행에서 1천만원을 인출하여 아파트 계약을 했다. 문재식의 이름으로 계약을 했다. 부동산 주인은 계약은 자기와 해도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주인하고 계약을 안 해도 됩니까?”
“주인이 부천 중동에 사는데 저에게 일임했습니다. 잔금 치룰 땐 주인이 나올 겁니다. 여기 등기부등본 있습니다. 근저당 설정된 것 하나도 없이 깨끗합니다.”
구건호는 잔금을 1주일 후에 지불하기로 하고 키의 비밀번호를 받았다.
“문재식은 제 이름이 아니고 제 친구입니다. 중도금, 잔금은 제 친구가 치루러 올 겁니다.”
“아, 그러세요? 하긴 아파트 구조는 다 똑같으니 친구가 대신해도 되겠지요.”
구건호는 문재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네가 아무리 그래도 꿈쩍하지 않아 내가 지금 동인천역 주공아파트에 와 있다.”
“거긴 왜?”
“네 이름으로 무조건 아파트 한 채 계약했다.”
“뭐라고?”
30평짜리는 2억6천 달라고 해서 못 샀고 26평짜리 1억8천 달라고 해서 계약했다. 화장실은 한 개지만 너희 부모님 살기엔 불편하진 않을 거다.”
“허, 어쩌자고 그런 일을!”
“중도금하고 잔금은 네가 치러라. 역에서 내려 곧장 올라오면 있는 제일 부동산이다. 메모해봐라. 솔빛마을 아파트 1단지 3동 8xx호다. 자동문 키 열쇠 비밀번호는 0719니까 오늘 저녁이라도 와서 봐라. 도배도 되어있는 비어 있는 집이다.”
“허, 이런!‘
“계약금 천만원 주었으니까 중도금, 잔금은 네가 땅 판돈 중에서 1억 8천만 원을 대표이사 문재식의 가수금으로 뽑아내서 집값 치러라. 안 그러면 계약금 천만원 날라 간다.”
“허허.”
문재식은 그날 바로 구건호가 계약한 집을 가보았다.
“정말 방이 3개네. 안방은 엄마와 아빠가 쓰고 망원동에 있는 내 물건은 건너 방으로 옮기자.”
문재식은 화평동에 있는 엄마가 살고 있는 낡은 연립의 지하실을 찾았다. 연립은 재개발이라 철거 대상인지 붉은 시멘트 글씨로 철거라고 쓰여 있었다. 엄마는 TV를 보고 있었다. TV는 낡아 화면이 선명하지 못하고 흔들거리는 것 같았다. 집안은 습기와 곰팡이 냄새로 쿵쿵한 냄새가 났다.
“재식이 왔구나!”
엄마는 반가워했다. 낡은 상 위에 시루떡 같은 것이 있었다.
“밥 아직 안 먹었지?”
“먹고 왔어요. 일어나지 마세요.”
“그럼 시루떡 데워줄까? 아까 교회에서 주고 갔어.”
“아니 되었어요.”
문재식이 작은 방 문을 열어보았다. 문재식이 쓰던 책상이 그대로 있었고 문재식이 써 놓은 ‘하면 된다.’란 표어도 벽에 그대로 붙어 있었다.
“여기 보증금이 얼마였지요?”
“150만원에 월세 15만원이었지.”
“집 내놓으세요.”
“왜? 헐린데? 난 여기가 좋은데. 이웃 할머니들도 다 좋은데. 도라지 까는 일감도 있어서 좋고.”
“도라지 그만 까시고 집 내놓으세요. 동인천역 근방에 솔빛마을 주공아파트 하나 샀어요.”
“아파트를 사? 무슨 돈으로?”
“제가 다음 달에 중국 가는데 제돈 하고 사장이 빌려준 돈하고 같이 합해서 샀어요.”
“그으래? 정말이야?”
엄마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이제 지하실 생활 벗어나게 되었어요. 밝은 데로 가요.”
“그래?
“아빠도 오시라고 할 거예요. 생활비는 보내줄 테니까 거기서 돌아가실 때까지 사세요.”
“거기 산다고 빚쟁이들 몰려오는 거 아니야?”
“이제 그런 거 없어요. 저도 빚 다 갚았고 아빠도 법원에 개인회생 신청해서 없어요. 가기만 하면 돼요.”
엄마는 약간 공포스런 눈으로 문재식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평생을 빚쟁이들한테 시달리는 삶을 살다보니 그런 것 같았다.
문재식은 엄마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저 돈 많이 벌었어요. 집 옮기세요.”
문재식은 엄마에게 집을 내 놓으라 신신당부하고 집을 나섰다. 엄마는 반신반의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문재식은 망원동 집에서 퇴근한 자기의 와이프를 위해서 밥을 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 웬일이야? 당신? 평일인데 올라왔어?”
“직장이 멀어 힘들지? 내가 밥통에 밥 해놓았어.”
“그래? 그런데 웬일이야?”
“집 보러왔어.”
“집을 보러와?”
“아파트를 하나 샀어. 동인천역 앞에 있는 26평짜리 주공아파트 한 채 샀어.”
“아파트를 사? 무슨 돈으로?”
“구사장이 사줬어.”
“구사장이?”
문재식은 그동안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주소를 성환으로 옮기고 구사장의 부탁으로 농지를 자기 이름으로 합필하고 농지전용허가를 받고, 지목변경하고, 화장품 회사에 되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 그게 당신 이름으로 산거였어? 난 회사이름으로 그런 줄 알았어. 그럼 구사장이 당신한테 보상은 해 줄만하네. 이름을 빌려주고 아파트를 산 내 친구도 이름 빌려준 사람한테 사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아.”
“그래도 이름 빌려준 값이 너무 커. 1억 8천짜리 아파트를 받았으니까 말이야.”
“과하긴 하지만 구사장은 강남 큰손으로 소문난 사람 아니야? 이 정도로는 그 사람은 아마 끄떡도 안할 거야. 당신이 중국 가서 일 잘해주면 되잖아. 또 이번 일로 구사장도 이익을 봤잖아.”
“흠.”
“트럭 1대에서 27대까지 당신이 로지스틱스 차를 늘려주었어. 구사장도 아마 그걸 감안해서 이 집을 사 주었을 거야. 너무 부담 갖지 마.”
문재식의 처는 집에 들어올 때는 피곤해서 녹초가 되어 들어오더니 기운이 나는지 문재식의 뺨에 뽀뽀까지 하였다.
“지금 그 아파트 보러가자. 자동키 열쇠 비밀번호 안다며?”
“지금? 9시야. 늦었어. 다음에 가.”
“지금 가보고 싶어. 우리 집을 가보고 싶어.”
문재식은 할 수없이 자기 처를 데리고 동인천역 앞의 주공아파트를 갔다.
문재식의 처도 집안이 가난했다. 아빠가 닥트공이었다. 지금은 나이가 많아 닥트 일을 못하고 트럭에 과일 같은 것을 싣고 팔러 다녔다. 역시 낡은 연립주택에 살았지만 빚은 없었다. 동생은 전문대를 나와 인천서 취업중이고 자기는 시를 썼었다. 학원의 방문교사로 일하기도 하였고 출판사 교정 일을 보기도 했었다. 교정 일을 볼 때 출판사 편집실에서 일하던 문재식을 만나 동거를 하게 되었다.
처음엔 서로 사이가 좋았으나 출판사가 문을 닫아 문재식이 실업자가 되었을 때 둘의 틈이 벌어졌다. 문재식이 자기 와이프 신용카드로 돈을 쓰고 갚지 못한 것이 화근이 되었었다. 둘은 똑같이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결국 이 사건으로 둘은 크게 다투고 별거를 하였다. 그 후 문재식이 구건호의 도움으로 지에이치 미디어의 편집 주간이 되면서 둘은 다시 만나 동거를 하게 되었다. 돈은 부부사이를 갈라놓고 사랑도 갈라놓는 힘이 있었다.
문재식은 아파트 비빌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아파트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문재식이 손을 더듬어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켰다. 도배까지 새로 한 거실이 들어나자 문재식의 처는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문재식을 냉큼 껴 앉았다.
“우리 집이다!”
“그래 우리 집이다.”
“나, 임신했어.”
“그으래? 왜 이야기 안했어?”
“안지 얼마 안 돼. 출산은 중국 가서 하기로 했어.”
“중국에서는 합자사라 회사에서 차도주고 집도 준데. 구사장 말로는 국영기업의 합자이기 때문에 30평짜리 집을 준다고 했어. 그러면 우린 거기 가서 살고 여긴 부모님께 맡기기로 하자.”
“아파트 명의는 당신 명의죠?”
“명의는 당연히 내 명의지.”
“그럼 됐어요. 관리는 부모님께 맡겨도 되겠지요.”
“고마워”
문재식의 처는 너무도 기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
며칠후 구건호가 신사동 빌딩으로 출근하였더니 문재식으로부터 장문의 이메일이 왔다.
[친구 구건호 사장에게.
구사장 덕분에 아파트 중도금과 잔금을 모두 지불했네. 정말 고마움에 뭐라고 이야기를 못하겠어. 내 와이프도 그 아파트를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네. 와이프 역시 중국을 가기 위하여 신사장에게 북카페를 그만 두겠다고 의사를 밝힌 상태네.
실은 내 와이프가 임신 3개월이네. 와이프의 소원이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는 것이 소원이었지. 그래서 중국에 가기 전에 와이프가 다니던 부천의 교회에서 이달 26일 저녁 시간에 가족과 친구 몇 사람만 초대하여 조용한 예식을 올리려고 하네.
절대 다른 사람한테는 알리지 말고 친구도 구사장과 박종석 이사만 왔으면 좋겠어. 민혁이가 왔으면 좋겠는데 걔는 중국에 있어서 안 되고 사회단체에 있던 강민호만 알리려고 하네.
와이프도 친한 친구 서너 명만 부른다고 했네. 신혼여행은 생략했어. 부끄럽고 창피해 말을 안 할까 하다가 연락을 하네. 이해 바라네.
From 친구 문재식 ]
구건호는 즉시 답장을 보냈다.
[친구야, 축하한다. 내가 그날 꼭 가마. 중국 민혁이도 오라고 하겠네. 나는 네가 결혼식을 요란스럽게 했으면 했는데 조용히 하고 싶다니 섭섭하다.
그래도 신혼여행은 다녀와야 되지 않겠어? 제주도 왕복 항공권하고 KAL호텔 예약을 해 놓겠네.]
구건호는 결혼 선물로 잔금을 치룬 동인천역 아파트에 냉장고와 세탁기 소파와 탁자를 사서 보내주었다. 마침 대형 TV를 싸게 세일하는 곳이 있어서 TV도 한 대 사서 보내주었다. 비용은 400만원도 안 들었다. 엄찬호를 아파트로 보내 물건을 받아두게 하였다. 구건호는 문재식에게 문자를 보내주었다.
[가전제품 싸게 세일하는 곳이 있어서 사서 보낸다. 결혼 선물이다. 나중에 마음에 안 들면 바꾸어도 된다.]
답이 왔다.
[너무 고맙다. 금생에 내가 네 신세를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문재식은 저녁때 아파트를 둘러보았다 거실에 소파와 TV가 있었고 주방엔 냉장고와 세탁기가 있었다. 사람이 사는 집 같아 보였다. 문재식은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화평동 엄마의 지하실 집을 찾아갔다.
“엄마 짐 옮기세요. 내가 내일 올 테니 같이 옮겨요. 여긴 방이 안 빠져도 우선 옮겨요.”
“보증금 150만원 받고 나가야지?”
“집 주인한테 쥐가 많고 개미기 많아서 이사 간다고 하세요. 전에 엄마가 개미기 많아서 못살겠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저 결혼해요. 이사를 가야 그 집에서 며느리 인사도 받을 것 아녜요?”
“결혼? 아이쿠 결혼이라니. 내가 아무것도 준비한 것도 없는데.”
“걱정 말아요. 중국 가기 전에 교회에서 간단히 하니까 그런 줄 아세요. 신부가 엄마 옷 살 돈은 보내왔어요.”
“부모 도리를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
엄마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문재식은 그 자리에서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세요? 엄마하고 저 이사 가요.”
“어디로? 지금 사는 집 철거 하냐?”
“아녜요. 집 샀어요. 동인천역앞 주공아파트에요?”
“집을 사? 돈이 어디서 나서?”
“제가 모은 돈 하고 사장이 좀 도와주었어요.”
“그래?”
“그리고 이달 26일 저 결혼해요.”
“결혼? 큰일 났다. 아무 준비도 못해 놓았는데!”
“그건 걱정 마세요. 교회에서 간단히 하기로 했어요. 신부가 아빠 옷값 보내왔어요.”
“허, 그래?”
“그리고 돈사에서 일하는 것 그만 두세요. 거긴 여름철에 냄새가 장난 아니잖아요. 이제 집에 와 쉬세요. 생활비는 보내드릴게요.”
“하긴 농장주인이 인도 청년이 오니까 그만두라고 해서 지금 다른 델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이제 집에 와서 쉬세요. 생활비는 보내드릴게요.”
“너한테 참으로 면목이 없다.”
“그럼 내일이라도 보따리 싸서 오세요. 아파트 주소는 문자 보낼게요.”
“미한하다.”
“지금 그런 소리해서 뭐해요? 제가 대든 것 사과하지요.”
“아니다. 너는 잘못이 없다. 내 죄가 많다.”
“결혼식 끝나고 저는 바로 중국엘 가요. 신부랑 같이 가요. 신부가 임신 중이라 결혼을 서둘러 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 임신 중이야?”
전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엄마도 놀라서 아빠와 똑같은 소리를 했다.
“임신 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