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9
문재식의 가정사 (2)
(299)
구건호는 문재식의 엄마가 한때 작은 아들을 잃고 정신기가 온전치 못하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조심스레 엄마의 근황을 물었다.
“엄마는 어떻게 지내시나? 생활비는 어떻게 하고 있나?”
“그런대로 잘 지내. 생활비는 아빠가 좀 보내주고 나도 보내주곤 해. 노령연금 조금 나오는 것도 있어.”
“그럼 생활은 되겠구나.”
구건호의 질문에 문재식은 헛웃음만 지었다.
“월세 임대료 빼면 남는 것도 없어. 방2개짜리 지하실이라도 월세 15만원이야. 돈을 모을 수가 없지. 아빠도 월급 100만원 받아서 40만원 법원 변제금 내고 엄마 생활비 20만원 갖다 주면 40만원가지고 생활하겠지.”
문재식은 소주를 소주잔에 따라 마시지 않고 물 컵에 따라 냉수 마시듯이 했다.
“요즘 서울 강남의 30평짜리 아파트가 30억 간다며? 그런 신문 보도를 볼 때마다 강남의 고급 아파트 단지에 불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야. 킥킥.”
“흠.”
“그러면 나는 잡혀가겠지. CCTV에 찍혀 불도 못 지르고 신나 통 들고 들어갔다는 죄로 걸려들겠지. 그리고 온 세상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 하겠지. 빨갱이 사상을 가진 불순세력이라고 하겠지. 젊은 놈이 열심히 일해서 돈 벌 생각은 안하고 사회 불만만 있는 놈이라고 하겠지.”
“너, 취했구나.”
“구사장, 법은 누구를 위해서 있는 줄 아는가? 부자를 위해서 있는 거지,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니야.”
“술 좀 천천히 마셔라.”
“당장 먹을 쌀값이 없어서, 월세 임대료를 못 내서, 동창회 명부 5만원 받아 잠시 이용한 걸 갖고 동창들은 나를 사기꾼이라고 하고 돌팔매를 했지. 킥킥.”
“지나간 일이 잖아.”
“구사장 나, 중국 가서 꼭 성공하고 올게. 하찮은 나에게 기회를 만들어주어 고맙다. 너한테는 늘 신세만 진다. 내가 축대 밑에서 이석호한테 죽도록 맞을 때 말려준 것도 너였지? 너에게 빚이 많다.”
문재식은 구건호의 빈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어째, 나만 마시는 것 같다. 너도 마셔라.”
“너는 나에게 빚 없어. 오히려 이번에 땅을 좋은 값에 팔게 되어 내가 네 덕을 본 결과가 되었어.”
“구건호! 넌, 참 좋은 놈이다. 오너 사장한테 놈이라고 해서 미안하다. 역시 넌 인물이야. 너보다 공부를 잘했던 조원철이나 황병철이 인물이 아니야. 그놈들은 환경의 뒷받침에 힘 입었을 뿐이야. 인물은 역시 구건호 너다. 내 친구이지만 정말로 자랑스럽다.”
“이 자식이 정말 취하니까 헛소리 하네! 야! 지하실! 그만 마셔라. 너무 취했다.”
“킥킥킥, 지하실 소리 들으니 반갑다. 딱 한 병만 더 하자.”
“괜찮아? 그럼 딱 한 병이다. 아줌마, 여기 술 한 병만 더 주세요!”
구건호는 익은 고기를 문재식 앞으로 밀어주며 물었다.
“너 동생 잃고 어머님 정신기가 가끔 오락가락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괜찮아?”
“한때 그랬는데 괜찮아. 요즘 동네 사람들하고 잘 어울려. 동네 할머니들하고 도라지도 까고 그래?”
“도라지?”
“도라지 까주면 키로 당 얼마씩 돈을 받는 모양이야.”
“흠, 그런 소일거리가 있었구나.”
“그것도 쉽지 않아. 지난번에 집에 가보니까 엄마 손톱이 전부 시커멓게 변색이 되었더군. 도라지 오래 까다 보면 손톱이 그렇게 되는 모양이야. 내가 자리를 잡으면 엄마를 잘 모시고 싶어도 나 역시 망원동집 월세가 나가니 얼른 쉽지가 않네. 대한민국은 역시 집이 있어야 돼.”
“그래도 네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잘 자랐다. 문예지에 소설이 당선되는 재능이 있는 사람인데 운이 안 닿아서 그런 모양이다.”
“재능는 얼어 죽을 무슨 재능!”
“그리고 오늘 내가 술 한 잔을 하자고 한 이유는 너에 대한 보상 때문이다. 땅 팔아 돈을 몇푼 벌게 되었으니 너 이름 빌린 값은 줘야지.”
“됐다. 그런 것 받자고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필요 없다.”
“사회적 관례가 그렇지 않아. 만족스럽지는 못해도 조금 주마.”
“됐다니까.”
“내가 땅 사느라고 들어간 돈이 약 40억이 된다.”
“그렇게 되겠지. 로지스틱스 땅은 처음에 정비공장을 20억에 샀고, 논 1,500평은 9억에, 맹지인 논 2,600평은 10억에 샀으니 땅값만 39억 들었지. 취득세나 각종 수수료 더하면 40억 되겠지.”
“그 다음에 농지전용부담금 3억 냈고, 지목 변경하면서 등록세 6천 냈고, 성토 작업비나 각종 세금과 수수료 들어간 것 합쳐서 모두 4천 잡으면 땅값 포함해 들어간 돈이 총 44억인 셈이야. 여기에 65억에 팔면 21억이 떨어져.”
“양도소득세로 다 뺏길걸?”
“양도 소득세로 절반은 뜯길 거야. 보유기간도 짧아 장기보유 특별공제는 못 받겠지. 진짜 10억을 뜯기고 나면 11억 남는데 여기서 그동안 중장비나 트럭 사느라고 7억2천 융자 받은 것이 있으니까 공제하면 3억 정도 남겠지.”
“65억에 팔렸어도 별것 아니네.”
“아니야. 3억이 현금으로 떨어졌으니 그게 얼마야? 그리고 차량 보유대수 27대인 로직스틱스라는 화물 운송회사 공짜로 하나 생겼잖아? 문재식이 덕분에 짭짤한 장사 한 거야.”
“난 한 것 없어.”
“톡 까놓고 말 하겠다. 땅 사느라 이름 빌린 값으로 너에게 인천지역의 작은 아파트를 하나 사주마.”
“뭐라고? 아파트를?”
“주소까지 옯겨 가며 농지를 사고팔고 했으니 당연한 보상이다. 그리고 집이라도 사서 부모님을 모셔야 네가 걱정 없이 중국 가서 사업에 몰두할 수 있지 않겠냐?”
“말도 안 돼!”
“네 어머니가 동인천역에서 가까운 화평동에 사시니 동인천역 옆에 있는 주공아파트 사 주마. 너도 가끔 한국에 오면 쉬었다 갈 곳은 있어야 하니 방 3개짜리 사라. 2억이면 살 거다.”
“술... 취했냐?”
“아니야. 이것은 네가 농지를 살 때부터 생각했었어. 그리고 아버지를 모셔 와라. 부부는 나이 들수록 함께 있는 것이 좋다.”
“고마운 말이지만 생활비는 어떡하고. 내가 아직은 부모님 생활비까지 보탤 여력은 안 돼. 중국 가서도 월세 살아야 하잖아? 더군다나 아빠는 법원의 변제금도 있는데.”
“네가 중국을 가게 되면 합자사에서 집은 얻어줄 거다. 국영기업이기 때문에 자체 규정이나 조례 같은 것이 있어. 그건 내가 강소성 곤산시에 있는 금계산업단지에서 합자사를 해봐서 잘 알아.”
“흠.”
문재식은 술이 깨는지 구건호의 말을 긴장한 채 경청했다.
“국영기업 총경리급이기 때문에 적어도 30평정도의 집은 얻어줄 거다. 임대료는 합자사의 기숙사 경비로 정리하겠지. 그리고 급여는 네가 여기서 300받지만 거기서는 합자사 규정이 있어서 1만 위안이나 1만 5천 위안 정도 밖에 못 받아.”
“그런가?”
“그 돈 가지고 한국에 오면 생활하기가 힘들지만 중국엔 물가가 싸니 그럭저럭 생활이 가능할거다. 그래서 모자라는 부분은 한국에 있는 로지스틱스에서 네 월급을 보충해 줘야 되겠지. 보충액은 150만원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 중국에서 1만위안을 받더라도 지금 받고 있는 급여가 대충 맞추어 질거야.”
“정말인가?”
“김민혁이도 처음에 중국 갔을 때 급여가 안 맞아 지에이치 개발에서 월 150만원을 보조해 준적이 있었어.”
“흠.”
“중국서 받는 급여는 중국서 그 돈 가지고 절약해서 살고, 여기서 나오는 150만원은 부모님한테 보내면 부모님도 생활이 가능할거다.“
문재식은 갑자기 심각한 표정이 되어 무언가를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주공아파트는 네 명의로 사는 거니까 부모님 돌아가시면 네 집이다. 네 재산이 되는 거다. 너의 집도 사람답게 살아야 할 것 아니냐. 어머님 지하실을 벗어나게 해 드려라. 아버님도 냄새나는 돈사에서 이제 빼드려라. 이제 너나 나나 부모 원망만 하고 살 나이는 아니잖아.”
문재식은 고개를 떨구고 황소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구건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 잠간 소변 좀 보고 올게.”
구건호는 나가서 소변을 보고 담배를 피웠다. 식당의 창문 너머로 문재식을 보니 문재식은 그때까지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훔치는걸 보니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구건호가 신사동 빌딩으로 출근하니 갤러리의 전시회 안내 플래카드가 바뀌어 있었다.
“청년 작가전? 신인 작가들인 모양이네. 이쿠조 선생 목각 전시품은 모두 당진 S기업 공장으로 간 모양이네. 실상 AM083어셈블리 금형은 우리 회사에서 만든 거니까 지에이치 모빌의 현관에 전시했으면 좋을 걸 잘못했네.”
구건호는 목각 전시품이 전부 S기업으로 갔다는데 서운한 감이 들었다. 처음엔 몰랐는데 이제 보니 서운했다.
구건호는 사무실에 올라와 문재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분당 정자동에서 삼겹살에 소주를 마신지가 이틀이 지났으니 동인천역에 아파트 계약을 했으리라 생각되었다.
“문사장? 아파트는 계약했나?”
“아직 안했어.”
“너, 중국 갈 날짜도 다가오는데 빨리 해야지!”
“됐어. 아무리 보아도 너한테 과분한 신세를 지게 되는 것 같아 안했어. 이름 빌려준 값은 필요 없어. 친구지간에 뭐 그런 것 따지냐. 중국 갈 준비하느라 지금 중국어 인강 듣고 있어.”
“안했다고? 너 남의 성의를 무시하는 거냐? 넌 이제부터 친구도 아니다!”
“됐어. 우리 집 문제는 내가 해결하는 게 맞아.”
“너 정말 이럴 거냐?”
“됐다니까!”
“맘대로 해라! 그럼!”
구건호는 전화를 끊고 식식거렸다.
“짜식이 자존심만 남아가지고! 아마 이석호한테 내가 그랬으면 얼씨구나 하고 계약했을 거다!”
구건호는 안되겠다 싶어 엄찬호를 불렀다.
“인천 동인천역에 바람 쏘이러 가자!”
구건호는 동인천 앞에 있는 솔빛마을 주공아파트를 찾았다.
“아이쿠 단지가 크네. 2천 가구가 넘을듯하네.”
구건호는 부동산 간판이 있어서 들어갔다.
“매물 있어요?”
“몇평짜리 찾습니까?”
“30평요.”
“7층 로얄층에 하나 나온 것이 있네요.”
“얼마나 합니까?”
“집주인이 2억6천에 내 놓았네요.”
“그렇게 비싸요?”
“26평짜리는 싸요. 8층에 도배 다한 집 1억 8천에 나온 것도 있어요.”
“그건 또 왜 그렇게 싸요?”
“30평짜리는 화장실이 두 개고 26평짜리는 화장실이 하나에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화장실 두 개짜리를 원하잖아요. 그래서 가격 차이가 많이 납니다.”
“흠, 그런가요?”
“아직 애가 없는 신혼부부나 노부부 같으면 26평짜리도 운동장입니다. 집도 지금 주인이 수리 싹하고 비워있으니 가서 보셔도 됩니다.”
구건호는 아무리 생각해도 30평짜리는 문재식이 부담스러워 할 것만 같았다. 김민혁이도 아파트를 2억 주고 샀는데 여긴 가격이 더 세니 문재식이 펄쩍 뛸 것만 같았다. 26평짜리가 비록 화장실은 하나라도 문재식도 중국에 가 있고 노부부가 생활하기는 아무 불편함이 없을 것 같았다. 집값도 1억 8천이면 문재식의 거부감도 덜할 것 같았다.
부동산 사장은 구건호가 생각하는 눈치를 보이자 다시 아파트 자랑을 하였다.
“여긴 주공아파트라 동간의 거리도 넓고 시원합니다. 또 지하철역도 500미터밖에 안되니 서울에 직장인들도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비어있다니 구경해 볼까요?”
구건호가 올라가 보았다. 채광도 좋고 무엇보다도 도배도 새로 되어있어 좋았다.
“집은 비어있으니 아무 때고 들어오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