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7
로지스틱스 토지 매각 (2)
(297)
금요일 신사동 빌딩으로 출근하는 날이었다.
빌딩 벽에 걸린 사카다 이쿠조씨의 목각 전시회 플래카드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구건호가 플래카드를 쳐다보았다.
“전시회가 일요일까지인 모양이군. 작품이 안 팔렸다면 미디어의 신사장이 안절부절 못하겠네. 하지만 관람객이 몰려 이 동네 편의점이나 음식점들은 재미 좀 봤겠군.”
사장실에 도착하자 비서 오연수가 바로 아침 조간신문과 커피를 가져왔다.
“요즘 계속 갤러리 전시회 지원 나가나?”
구건호는 이제 자기도 모르게 나이어린 사람한테는 반말이 자연스레 튀어 나왔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그게 편할 때가 있었다. 존대 말을 쓰면 오히려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이 너무 몰려 지원해줘야 합니다. 10시쯤 내려가 봐야합니다. 사장님이 뭐 시키실 일 있으면 정지영 대리에게 연락하면 제가 바로 뛰어오겠습니다.”
“그럼 내일하고 모레까지 전시회가 열린다는데 오연수씨는 토요일, 일요일 어디 놀러가지도 못하겠네?”
“전시회 끝나고 나서 신사장님이 맛있는 것 사준다고 했어요.”
“하하, 그래? 그럼 나가서 일봐요.”
“네.”
오연수가 허리를 깊숙이 굽혀 인사하고 구건호의 방을 나갔다.
구건호가 커피를 천천히 마시며 조간신문을 보고 있었다. 신문 같은 건 스마트폰으로도 볼 수 있지만 종이 신문으로 보는 게 눈이 편했다.
신문을 보다보니 어느새 10시쯤 되었다. 구건호의 주특기인 잠이 소르르 몰려와 눈이 게슴츠레 할 무렵 사장실 노크소리가 들리고 신정숙 사장이 들어왔다. 신사장은 평소와 달리 화사한 옷을 입고 화장까지 했다.
“어서 오십시오.”
구건호가 신사장이 들고 있는 백을 보았다. 어디서 많이 본 백 같았다.
“이거요? 호호. 구사장님이 선물로 준 샤넬 핸드백에요.”
신사장은 백을 흔들어보였다. 맞았다. 신사장이 들고 있는 핸드백은 중매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구건호가 사준 백이었다.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사다준 것이었다.
“오늘은 화사한 차림으로 웬일이십니까? 선보러 가십니까?”
“호호, 나이 50이 다된 여자가 무슨 선이에요.”
“어딜 가시는 것 같은 차림인데요?”
신사장은 사카다 이쿠조씨의 작품이 소리만 요란했지 팔리지가 않아서 고민만 할 줄 알았는데 표정을 보니 상기된 모습이었다.
“대기업인 S기업 아시죠? 거기 사장님과 오늘 11시에 미팅이 있어요.”
“S기업은 대기업 아닙니까? 거기서 왜요? S기업은 우리 지에이치 모빌에서도 거래하는 기업인데요?”
“S기업 공장은 평택과 당진에 있잖습니까? 본사는 여기 양재동에 있고요.”
“그렇지요.”
“양재동 본사에 있는 사장님이 저를 만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요? 무슨 일로요?”
“사카다 이쿠조씨 작품에 대하여 상의할 것이 있답니다.”
“상의? 몇 점 사줄려나?”
“그랬으면 좋겠네요. 혹시 몰라서 이 핸드백에 작품 구입신청서 용지 몇 장 넣고 갑니다.”
“흠, 그런가요?”
“혼자 가지 않고 요시타카 선생하고 같이 가려고 합니다.”
“마츠이 요시타카 선생이요?”
“요시타카 선생 포즈가 남다르잖아요. 흰머리 섞인 꽁지머리에 콧수염까지 길렀으니 예술가처럼 보이잖아요?”
“허허. 그렇긴 하지요. 잘 다녀오세요.”
신정숙 사장이 나가고 난후 로지스틱스의 문재식의 일이 궁금했다.
“오늘 오전에 화장품 회사와 땅 매매계약서 체결하기로 했는데.... 했나?”
구건호는 전화를 걸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아직 11시도 안됐는데 안했겠지. 했으면 문재식이가 전화를 먼저 했겠지.”
구건호는 안절부절 못한 채 뒷짐을 지고 사장실을 왔다 갔다 했다.
“목만 타네.”
구건호는 비서 오연수를 부르려다 그만두었다.
“아 참, 오연수는 아래층 갤러리에 지원 근무 나갔지.”
구건호는 사장실 문을 열고 목만 내놓은 채 정지영 대리를 불렀다.
“정대리! 나 녹차 좀 줘요.”
“예, 알겠습니다. 사장님.”
구건호는 녹차를 마시면서 또 사장실을 왔다 갔다 했다.
“문재식이 땅 계약 했을까? S기업 사장은 왜 신사장을 불렀을까?”
구건호는 도저히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구건호는 갤러리에 내려가서 이쿠조 선생의 목각 전시회나 구경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구건호가 갤러리로 왔다.
아직 오전인데도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오연수는 자기네 사장이 온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팜프렛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보아하니 미디어의 직원들이 대부분 내려와 있는 것 같았다. 작품에 손을 대거나 작은 조각품이므로 누가 훔쳐 갈까봐 감시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만지지 마세요.”
“작품 앞에 있는 붉은 줄을 넘지 마세요.”
미디어 직원들은 안내 명찰을 단채 관람자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구건호는 사람들 틈에 끼어 작품을 구경했다. 요꼬하마 미술관에서 이미 구경은 했지만 지금 다시 보니 또 새로웠다.
“역시 이쿠조 선생 솜씨는 대단해!”
요꼬하마의 모토마치에 있는 그의 집에서 다다미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이쿠조 선생의 모습이 떠 올랐다.
“명장(名匠)이란 그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
갤러리를 구경하고 오니 오전 11시 30분이 되었다.
“오늘은 시간이 되게 안가네.”
12시가 거진 다되어서 문재식에게서 전화가 왔다.
“구사장? 화장품 회사 이사가 와서 땅 계약했어.”
“어, 그래?”
“그런데 개자식들이 계약금조로 2억만 가지고 왔네.”
“됐다. 괜찮아.”
“15일 후에 중도금 치루고 30일 후에 잔금 치르기로 했어.”
“한 달간은 당분간 거기 있어도 되겠구나.”
“그래야 되겠지.”
“시흥시로 이사 가는 건 중도금 치루면 할까? 사실 여긴 이삿짐도 별로 없어. 제조회사하고 다르니까.”
“잔금 받고 해도 되겠지.”
“직원들한테 모빌로 보내준다고 하니까 뭐라고 하는지 알아?”
“뭐라는데?”
“사장님하고 계속 일하고 싶은데 모빌로 가게 되어서 서운하다고 했어. 그러면서도 속으론 좋아하는 것 같던데?‘
“하하, 그래?”
“계약금 2억 받은 건 네 통장으로 보내줄게.”
“아니야. 법인이 판 것이기 때문에 법인 통장에 있어야 돼.”
“흠, 그런가?”
“앞으로 중도금, 잔금 받으면 그 돈이 중국으로 가야돼. 외환신고도 하고 그래야 돼.”
“나, 그런 것 모르는데.”
“모빌이나 디욘코리아의 경리담당 책임자들에게 물어보면 돼.”
“흠, 그러면 되겠구나.”
“매형이나 누님한테 업무 인수인계 시킬가?”
“업무를 가르쳐 주는 건 상관이 없지만 잔금 받을 때까지 인수시키면 안돼. 그리고 직원들도 마찬가지야. 잔금 받을 때까지 모빌로 보내면 안 돼.”
“알았다.”
“오늘 수고 많이 했다.”
“그리고 참, 로지스틱스가 시흥으로 가게 되면 구사장 급여를 책정해야 겟어.”
“어떻게?”
“내가 한번 짜봤는데 들어봐.”
“흠.”
“구사장 급여 500만원, 매형 350만원, 누님 250만원. 이러면 안 될까?”
“내 것이 많다. 월 400으로 해라.”
“그래도 되겠어?”
“그래도 돼.”
“그리고 로지스틱스 법인카드는 두 장인데 하나는 매형주고, 하나는 경리를 담당할 누님 주고가면 되겠네.”
“그렇게 해라.”
문재식의 전화를 끊고 나니 바로 신사장에게서 연락이 왓다.
“아휴, 사장님. 웬 전화가 그렇게 길어요?”
“아 예, 방금 문사장하고 통화하느라고요. 어떻게 됐어요? S기업 사장 만난 거.”
“호호호, 놀라지 마세요.”
“놀라다니요?”
“이쿠조 선생의 작품 전량을 매입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요?”
“모두 3억에 퉁쳤습니다.”
“그걸 다 매입해서 뭘 하려고 그러지요? S기업 사장 집이 그렇게 넓은가?”
“개인이 사는 게 아니고 S기업 법인이 사는 것으로 했습니다.”
“법인이요? 양재동 사옥에 전시하려고요?”
“호호호, 그게 아니고요. 당진공장으로 가져간다고 했습니다. 당진공장이 부지가 3만평이고 공장 건물만 연건평 1만5천평이랍니다.”
“거긴 대기업이니까 그렇게 될 겁니다.”
“작품을 거기 현관에 설치한답니다. 거기서 생산되는 부품의 금형을 깎은 세계적 명장 이쿠조 선생의 작품이라고 설명서도 붙여 놓겠답니다. 설치하는 것도 우리가 용역을 받았습니다.”
“오, 그래요? 하긴 완성차 바이어들이 그 공장을 방문했을 때 홍보 효과는 있을 것 같네요.“
“그렇지 않아도 매입대금 3억원은 광고선전비로 한다고 했어요. S기업은 한해 광고선전비 예산만 해도 수백억원을 쓴다고 했어요.”
“흠, 그럴 겁니다.”
“조금 전에 요시타카 선생이 요꼬하마의 이쿠조 선생에게 작품이 팔렸다고 통화를 했습니다.”
“그래요?”
“저희가 에이전시 수수료 떼고, 광고 홍보비 떼고 20만 달러 보내준다고 하니까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그리고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뭐라고 하는데요?”
“앞으로 금형 깎지 않고 목각만 깎아야 하겠다고 했어요. 호호.”
“하하, 그랬나요?”
“지에이치 갤러리가 이제 2년간은 강이사님께 드리는 임대료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네요. 호호.”
“어쨋든 축하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 그리고 S기업 사장님이 구사장님에게 안부 전한다고 했습니다.”
“오, 그래요? 거기 부사장님은 내가 잘 알아도 사장님과는 회의 때 몇 번 본 것 밖에 없는데....”
“저는 거기까진 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고마운 일입니다.”
‘저, 기왕 나온 김에 요시타카 선생하고 식사하고 들어가겠습니다.“
“예, 그러세요.”
구건호는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쿠조 선생의 목각 전시회가 소문만 요란했고 작품이 팔리지 않아 신사장이 날마다 우거지 상이었는데 이제 얼굴이 펴지겠군.”
요꼬하마의 이쿠조 선생도 앙다문 일자 입을 벌리고 웃을 것만 같았다.
구건호는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요양병원은 그만두었지?”
“오전에만 나가기로 했어. 정아 아빠가 가서 잡초는 다 제거 했어.”
“성환 땅은 팔렸어.”
“그래? 어떻게 빨리 나갔네?”
“마침 화장품 회사에서 계약을 하자고 해서 빨리 나갔어.”
“그럼 요양병원은 이제 그만 두어야겠다.”
“누나가 경리업무를 보게 되니까 경리공부 좀 해.”
“알았다. 하지만 걱정이 앞선다.”
“문재식 사장이 그러는데 매형과 누님 급여를 얼마 책정하면 좋겠냐고 하네?”
“내가 얼마 달라고 할 수 있나. 거기서 정하는 대로 따라야지.”
“그래도 대충 말해봐.”
“내가 여기서 190만원 받고 정아 아빠도 300은 버니까 비슷하게 맞추어 주면 좋지. 참 정아 아빠는 차량 감가비가 없어지니까 250에 맞추어도 불만은 안할 거야.”
“내가 문사장하고 이야기 했는데 매형은 350만원, 누나는 250만원하면 어때?”
“그러면 우린 좋지! 그런데 그렇게 해도 돼?”
“앞으로 매형이 사장이니까 향후 급여는 경영실적에 따라 본인이 스스로 정해야 돼. 처음만 이렇게 하고 내년에 많이 벌면 많이 책정해도 돼. 잘 안되면 더 내려갈 수도 있고.”
“그거야 그렇겠지.”
“그리고 법인 카드가 2장이 있는데 한 장은 매형이 가지고 관리하고, 한 장은 누나가 관리해야 돼.”
“법인카드? 회사카드 말이지? 전에 내가 종이컵 공장에 다닐 때 거기 경리 담당자가 법인 카드 쓰는 걸 봤어.”
“앞으로 누나나 매형의 개인차 기름은 모두 법인카드로 정리해. 식대도 그렇고.”
“흠,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