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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목 변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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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이 들어서지 않은 넓은 땅은 보기만 해도 시원했다. 문재식이 땅을 바라보며 구건호에게 말했다.
“이 정도 땅이면 중고등학교는 충분히 만들 수 있겠다.”
“땅 팔아먹기도 아깝겠지?”
“정말 아까워.”
“네가 논 사고 농지전용 허가도 받고 성토작업까지 했으니 큰일 했다.”
“뭘.”
문재식은 이렇게 겸손을 떨었지만 속으론 굉장히 자신을 대견스럽게 생각했다. 그래서 집에 가서도 자기 부인에게 자랑도 하였었다.
“내가 맹지인 논을 사가지고 합필하고 농지전용허가도 받았지.”
“맹지가 뭐에요?”
“눈먼 땅이지. 진입도로가 없으면 맹지라고 해.”
“이걸 내가 성토작업하고 형질변경을 하고 있어.”
문재식은 침까지 튀어가며 말했었다.
“이제 내가 직접 뛰어다니면서 지목변경을 작업을 하고 다시 합필하고 법인 양도 후 매각 수순을 밟는 거야.”
문재식은 그동안 얻은 법률지식을 동원해서 말했다.
문재식의 처는 문재식이 존경스러워 보였다.
“당신 뭔가 큰 일을 하는 것 같네요. 구사장도 좋아하죠?”
“그럼, 구사장도 아마 이 땅이 뻥튀기해서 팔리면 가만있지는 않을 거야.”
“그럼, 그 땅이 팔리면 구사장이 중국 투자하겠다는 건가요?”
“그렇지. 당신도 이제 머리가 돌아가네. 그 땅 판 돈이 중국으로 흘러가고 터미널과 고속버스 사업을 하는 거지.”
최근에 문재식은 자신감이 넘쳐났고 문재식의 부인도 차츰 문재식이 유능한 사람으로 비추어졌다.
“구사장님도 당신 같은 사람이 없으면 안 되겠어요.”
문재식은 중국엘 빨리 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땅 다진 것을 확인하던 구건호 옆에 와서 물었다.
“중국에서는 아직 연락 없지?”
“연락 없어. 우리 눈치만 보고 있겠지.”
“너무 늦는다고 다른 나라하고 합작하는 것은 아니겠지? 지난번에 보니까 홍콩기업하고 이야기가 한번 있었다고 하던데.”
“의향서 체결했으니까 그런 건 없을 거야.”
구건호가 문재식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럼 나는 간다. 수고해라. 지목변경은 토지대장이나 등기부등본상에 ”장(場)“으로 나온다. 논을 답(畓)이라고 하고 밭을 전(田)으로 하듯이 말이다.”
“응, 알겠어.“
6월이 다가고 7월이 되었다.
신정숙 사장이 마츠이 요시타카 선생과 함께 18층 구건호의 사무실로 올라왔다.
“코스프레 잡지가 나왔습니다.”
“오, 그래요?”
“절반은 일본잡지를 그대로 베낀 거고 절반은 요시타카 선생님이 취재한 것입니다. 실상 요시타카 선생님이 다 만든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수고하셨네요.”
구건호가 보니 종이가 고급이라 그런지 책도 페이지 수는 얼마 안 되지만 제법 무거웠다.
“그래, 아이들 반응은 어떻습니까?”
“책이 지금 막 나와서 제일먼저 구사장님께 보인 겁니다. 아직 서점에 뿌려지지 않아 반응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언제 책이 나오냐고 묻는 것을 보니 기본 2천부는 충분히 나갈 것 같습니다.”
“책이 화보집 같네요.”
“요즘 잡지에 글이 많이 들어가면 지루해서 안봅니다. 이렇게 사진이 많이 들어간 것이 좋습니다. 요사타카 선생님은 기자출신이라 사진 찍는 기술이 거의 예술작품 수준입니다.”
“신사장님이 좋은 분을 만나신 것 같습니다.”
“이달 중순경부터 사카다 이쿠조씨의 목각 전시회를 우리 갤러리에서 열 예정입니다.”
“벌써 7월 중순이 되어가네요.”
“지금은 국내작가 6인 합동전을 하고 있습니다. 젊은 작가들입니다.”
“알겠습니다. 점심시간에 한번 둘러보겠습니다.”
신사장과 요시타카 선생이 나간 후 구건호는 이들이 두고 간 코스프레 잡지를 보았다.
“노랑머리, 빨간머리. 정신 사납네.”
구건호는 비서 오연수를 불렀다.
“이 잡지 가져가서 봐요. 신사장이 만든 거예요.”
“오머, 잡지가 예쁘네요.”
오연수는 잡지를 가슴에 품어 안고 함박웃음을 머금은 채 종종걸음으로 뛰어 나갔다.
강이사가 들어왔다.
“7월부터는 임대료를 물가상승율 3%는 반영 해야겠습니다.”
“저항은 없겠죠?”
“이미 공문으로 고지를 했습니다. 엘리베이터에도 공고문을 부착도 했습니다.”
“3%라....”
“너무 적죠? 우리나라는 물가상승율이 지가변동율 보다 못합니다.”
“흠, 그러면 안 되죠. 부동산 상승률이 더 높으면 부동산을 가진 자와 안가진자의 격차는 너무 커지지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닙니다.”
“그래도 부동산은 올라갑니다. 정부에서 보유세를 중과하면 엄청난 저항을 하겠지요. 사회주의로 가는 거냐고 따지겠지요.”
구건호는 강이사가 나간 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지금 이 빌딩이 이익을 못 내고 있지만 5년 후 2,100억에 산 빌딩이 2,500이나 3,000억이 되었다면 그게 과연 옳은 현상인가]
구건호는 나라 살림을 하는 최고 의사결정권자들인 장관들을 생각해 보았다.
[서울대학교 정책대학원에서 만난 장관님들이나 국회의원들이 민생의 아픔을 이해할까?]
구건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다. 강남 일대의 부동산들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에 잠겨있는데 스마트폰 벨이 울렸다. 매형이었다. 생전 전화를 하지 않는 사람인데 전화를 했다.
“온비드에 임대물건이 나와서 전화했네.”
“온비드요?”
“한국 자산관리공사(캠코)에서 운영하는 공매사이트 있지 않은가?”
“아, 온비드!”
“임대 부동산이 나왔는데 경기도 시흥에 있는 잡종지야. 화물차들 세워놓기 딱 알맞은 자리네.”
“몇 평인데요?”
“천 평정도 되는 것 같았어. 임대 감정평가 6천인데 공매 유찰되면 더 떨어질 수 있어.”
“임대니까 부동산 투자하려고 덤벼드는 사람은 없겠네요.”
“실수요자만 덤빌 거야.”
“현장에 가보셨어요?”
“가보진 못했는데 일단 사진으로 보니까 근사해. 도로에 붙은 땅이라 대형차들이 출입 가능할 것 같아. 여기다 콘테이너 박스만 갖다놓으면 지에이치 로지스틱스 자리로는 딱이야.”
“경쟁자가 많을 가요?‘
“없을걸. 200평 300평짜리는 인기 있어도 1,000평 넘어가면 인기 없어.”
“거긴 1년치 임대료죠?”
“그렇지. 감정가가 1년 임대료야. 보증금은 아니야.”
“그럼 1년 있다가 없어지는 거군요. 중국의 깔세처럼 말입니다.”
“경기도 시흥이면 인천 구월동 아파트에서도 출퇴근 가능할거야.”
“국유지인가요?”
“그러겠지.”
“일단 현장 답사해 보시고 다시 전화주세요.‘
‘알겠네.“
구건호는 시흥과 인천을 생각하다가 연안부두 쪽의 작약도가 갑자기 그리워졌다.
“학교 다닐 때 김민혁과 문재식과 작약도로 굴 따먹으러 갔던 것이 생각나네.”
작약도는 연안부두와 아주 가까워 배 운임비가 비싸지 않았다. 그래서 여름방학 때 깡통과 드라이버를 가지고 가서 굴을 따가지고 왔던 기억이 있었다.“
“이번 토요일 영은이랑 바닷가나 놀러갈까? 싱싱한 생선회 생각도 나네.”
그러다가 포천 이회장 별장의 의료봉사가 떠올랐다.
“아 참, 이번 토요일은 포천 이회장님 별장에서 아이들 분변검사 한다고 했지.”
구건호는 봉사활동도 큰맘 먹지 않으면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토요일이 되었다.
구건호는 타워팰리스 주차장에서 김영은이 가져온 가방을 자기 차에 옮겨 실었다.
“어이쿠, 오늘 가방은 왜 이렇게 무거워. 지난번 것은 가벼웠었는데.”
“오늘은 검사장비가 들어있어서 그래.”
“그 작은 상자는 또 뭐야?”
“이거? 오빠가 지난번 중국 갔다 오다가 면세점에서 산 화장품이야. 나에게 선물로 줬잖아.”
“그런데 그걸 왜 차에 실어?”
“포천 장애인 시설에서 일하는 지도교사 주려고.”
“지도교사?”
“아이들 변 수거도 하고 수고했잖아. 그래서 선물을 주려고 했는데 마땅한 것이 없잖아.”
“돈 봉투로 주는 게 낫잖아?”
“돈 봉투는 안 받을 거야. 봉사하러 간 사람이 돈 봉투 주는 것도 이상하잖아?”
“하긴 그래. 그런데 당신 준 선물을 남에게 주니 그게 좀 그렇다.”
“오빠는 출장 자주 가니까 나에게 또 사주면 되잖아. 좋은 일 하는데 뭐 어때.”
“알았다. 갖다 줘라.”
“내가 주는 게 아니고 오빠가 준 것이 되는 셈이야.”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구건호는 포천으로 가는 도중 이회장의 전화를 받았다.
“지난주에 내 별장을 왔다갔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예, 한사람씩 검사를 했습니다. 체크된 아이들 명단은 지도교사에게 넘겼습니다.”
“참으로 고맙네. 거기까지 신경을 써주니 고맙네. 지도교사에게 들으니까 오늘도 온다며?”
‘예, 오늘은 분변검사를 합니다.“
“분변검사? 수거해 가지고 가는 게 아닌가?”
“분변 검사는 12시간 이내에 해야 된답니다. 그래서 검사 장비를 차에 싣고 지금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 두 번씩이나 왔다 갔다 하고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아이고, 10번이라도 왔다 갔다 해야지요. 그동안 회장님께 받은 은혜가 얼마인데요?”
“허허, 내가 무슨 은혜를 주었다고 그러는가?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말게. 누가 들으면 진짜인줄 알겠네. 그럼 조심해서 다녀오시게.”
“누구야? 이회장님?”
“맞아.”
“그분한테 오빠가 신세진 게 많아?”
“물질적 도움을 직접 받은 건 없지만 조언을 많이 받았지. 내 인생의 멘토였지.”
“재산이 많으신 분이라며? 젊었을 때 큰 사업하신 분인가?”
“아니, 돈놀이 하신분이야. 그것도 아주 악랄하게.”
“악랄하신분이 저런 장애인 시설을 운영해? 호호, 뭐가 안 맞네.”
“젊었을 때 악랄함에 대한 회한이겠지.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과 지혜는 뛰어나신 분이야. 그런 면에선 아주 초절정 고수지. 자식들도 다 잘 된 것 같아. 아들이 안산에서 제지회사 대표이사야.”
“빌딩도 많다며?”
“청담동에 노른자위 땅에 대형빌딩을 가지고 계시지. 우리가 가는 포천 장애인 시설에서 우수한 아이들도 나왔어. 세종대학에 교수로 있는 여자도 여기 출신아고 했어.“
“그래?”
“운영한지 오래된 모양이야. 지난번에 이야기 들으니까 아버지라고 부른 아이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늙어서 아이들이 할아버지라고 부른다며 공허한 웃음을 짓더구먼.”
“오래하셨다니 훌륭하신 분이네.”
구건호의 랜드로버가 포천 시설에 도착했다.
지도교사는 지난번처럼 크게 반기지는 않았다. 분변 수거와 같은 힘든 일을 시켜서 그런 모양이었다. 형식적으로 인사하는 느낌을 받았다.
구건호가 무거운 가방을 들고 김영은의 뒤를 따랐다. 활동실에 들어가 책상위에 검사 장비를 설치했다. 검사장비는 무슨 현미경 같은 거였다.
지도교사가 마스크를 쓴 채 고무장갑을 끼고 아이들 분변을 담은 상자를 가져왔다. 냄새가 확 풍겼다. 구건호가 윽 소리를 내며 코를 감싸 쥐었다. 토할 것 같았다.
“이거 쓰세요.”
김영은이 마스크를 주었다.
지도교사가 나가자 김영은이 상자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유리판에 첫 번째 분변을 쏟았다.
“이거 나무막대기로 유리판 위에 있는 변을 넓게 펴놓도록 하세요. 그리고 날 주면 되요.”
“이거 30개 전부 그렇게 하라는 말인가?”
“그렇게 해야 되요. 오늘은 남자 간호사라는 것 잊지 말아요.”
“젠장, 더럽게 됐네. 내가 사서 왜 이 고생이지.”
구건호는 유리판 위에 변을 펼치는 작업을 하다가 소리를 질렀다.
“윽! 냄새! 도저히 못 참겠다.”
“조금만 참아보세요. 코가 마비되면 괜찮아요.”
“당신은 괜찮아?”
“난, 괜찮아요.”
김영은은 진지한 자세로 검사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가 중요한 일을 하는 거예요. 천사 같은 아이들 영양분을 빨아먹는 기생충을 잡아내는 거예요.”
“그래, 알았어. 빨리해. 그런데 이 사탕만한 변 가지고 검사가 다 가능한 거야?”
“충체 확인도 있지만 충란 검출도 중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