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282화 (282/501)

# 282

양평 나들이 (2)

(282)

구건호와 김영은은 시원한 열무김치 국수에 호박전에 막걸리까지 마시고 밖으로 나왔다. 최 화가가 사는 주변의 밭에는 고추와 상추, 대파가 쑥쑥 자라고 있었다.

“지금 금방 서울에 못가겠다. 먹은 것도 꺼지고 술도 좀 깨야겠다.”

“저기 파란 지붕이 있는 집까지 걸어요.”

구건호는 김영은의 손을 잡고 걸었다.

“오빠, 우리 은퇴하면 여기서 살까?”

“싫어, 벌레가 많아. 나, 아까도 모기한테 물렸어.”

“오빠, 자연 좋아하잖아? 포천 낚시터도 자주 갔다며?”

“음, 낚시는 좋아하지.”

“오빠 낚시하는 것 구경할까?”

“낮엔 잘 안 잡혀. 고기는 아침, 저녁에 잘 물어.”

“그래?”

“포천 낚시터에 가면 내가 잘 아는 이회장이란 분 별장이 있어.”

“별장?”

“응, 대지 천 평에 건평이 200평도 넘는 큰 별장이야.”

“돈이 아주 많은 분인 모양이네.”

“많지, 청담동에 큰 빌딩 몇 개를 가지고 계신 분인데.”

“그래서 그런 별장을 갖고 있는 모양이네. 그런데 그건 너무 사치 아냐?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그건 좀 심한데.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그렇지 않아. 그 분이 재산을 형성하는 과정은 악랄한 면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 별장이 지금 장애인 시설로 쓰고 있어.”

“그래?”

“지금 거기에 한 20명 내지 30명 있는 모양이야.”

“장애인 시설은 정부 지원금이 있을 것 아닌가?”

“그 양반이 독자적으로 지원하는 모양이던데?”

“흠, 그렇다면 훌륭한 분이네. 식대만 해도 엄청 나갈 텐데.”

둘은 아무 말 없이 밭 사이를 걸었다. 태양 볕이 제법 따사로웠다.

고개를 숙이고 걷던 김영은이 구건호를 불렀다.

“오빠!”

“왜?”

“포천에 있다는 그 별장, 내가 한번 가보고 싶어.”

“거긴 왜? 장애인들만 있는데.”

“가서 아이들 건강상태를 체크해보고 도와줄 것이 있으면 도와주고 싶어.”

앞서가던 구건호가 걸음을 멈추고 김영은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빙긋이 웃었다.

“고맙다. 내가 장가는 참 잘 간 것 같다.”

구건호는 김영은의 손을 잡고 파란대문이 있는 집을 향해 걸었다.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왔다.

구건호가 지에이치 모빌로 출근을 하였다.

지에치 모빌은 송장환 사장의 체제 아래서 매출이 소폭이나마 늘고 있고 부채도 소폭이나마 꺼져가고 있었다. 플라스틱과 합성고무를 이용한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제조업체로 획기적인 매출신장은 없어도 착실히 발전해 나가고 있었다.

구건호는 2층에 있는 모빌의 사장실에서 마당에 들어오거나 나가는 화물 트럭들을 바라보았다.

[여기 임원들이 젊어져서 좋아. 송사장과 연구소장만 50대고 총무이사와 경리이사는 40대 후반, 생산이사 박종석은 30대 중반이니 이 사람들만 가지고도 회사는 10년 이상 꾸려갈 수 있겠어.]

구건호는 조용히 지에이치 모빌을 빠져나와 엄찬호와 함께 아산 디욘코리아로 향했다.

김전무는 거래처에 나가있고 윤상무는 옹벽공사 현장에 나가있다고 하였다.

“옹벽공사?”구건호는 윤상무를 전화로 불렀다.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옹벽 공사현장에 있습니다.”

“옹벽공사?”

“장마가 되어서 남쪽에 있는 저지대쪽 옹벽이 2, 3미터 정도 무너졌습니다. 별건 아닙니다. 지금 업자가 와서 공사 중입니다. 곧 사무실로 올라가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일 보세요.”

애덤 캐슬러가 통역을 데리고 구건호 방엘 왔다. 통역은 이선생이 아니고 무역 업무를 맡고 있는 신입사원이었다. 눈망울이 똘똘하게 생긴 젊은이였다.

“이 선생은 이제 안 나오는 가요?”

“아닙니다. 이따 오후에 나옵니다. 여기 숙소의 짐을 가지고 오후에 서울에 있는 집엘 갑니다. 오후에 잠깐 들려 사장님께 인사하고 간다고 했습니다.”

“아, 그래요?”

“일단 500만원만 경리에서 업무가불 해주었습니다. 인도에 가서 1, 2개월은 생활비 해야 되니까요. 환전은 외환은행에서 미리 해 놓았습니다.”

“흠, 그래요?”

비서 이선혜가 녹차 세잔을 가지고 들어왔다. 구건호가 차를 마시며 통역을 보고 말했다.

“여기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지요?”

“9개월 되었습니다.”

“영어를 잘 하네요. 이름이 뭐더라? 내가 김전무한테 들었는데 잊었네요.”

“채명준입니다.”

“오, 그래. 채명준씨! 정확히 최명준이요? 채명준이요?”

“채명준입니다. 차이명준입니다.”

“흠, 채씨네. 채씨면 희성인데. 영어는 미국에서 배웠어요?”

“예, 유학생활을 좀 했습니다.”

채명준은 처음엔 구건호 앞에서 긴장해서 그런지 표정이 굳어있었으나 구건호가 웃으며 이것것 저것을 물어보자 풀어져서 그런지 통역을 곧잘 했다.

“통역은 때론 근무시간 이외에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생산직이 아니라 관리직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특별히 시간외 수당이 붙는 것도 아닙니다.”

“잘 알고 잇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구건호는 채명준의 나이를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구건호보다는 5살 정도 어려 보였다.

구건호가 애덤 캐슬러에게 짤막한 토막 영어로 물었다.

“하우 어바웉 인터프리터(통역 어때요)?”

“오우, 베스트 인터프리터(최고에요)!”

애덤 캐슬러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엄지 척 시늉을 하였다. 구건호가 하하 하고 웃었고 채명준이 쑥스러워하며 뒤통수를 긁었다.

애덤 캐슬러가 다이어리를 펴들고 말했다.

“한 가지 보고가 더 있습니다.”

“뭡니까?”

“디욘코리아 중국법인에 50톤 원재료가 나갔습니다.”

“그래요?”

“그리고 중국 법인장 딩딩이 디욘코리아 중국법인 명의로 세금계산서 발행한 것을 이메일로 보고해 왔습니다.”

애덤 캐슬러가 딩딩이 이메일로 보내준 세금계산서 스캔본을 다이어리 속에서 꺼내 보여주었다.

“이제 돈만 벌면 되겠네요.”

“딩딩이 영어를 할 줄 알아 영문으로 이메일 보고서를 보내니 아주 편합니다. 디욘코리아 중국 법인장은 아주 적임자를 고르신 것 같습니다.”

“하하, 그래요?”

“옌청(염성시)에 있는 중국공장은 다음 주에 오더가 떨어질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럼 월 매출 70톤이 됩니다.”

“70톤이면 톤당 가격 450만원으로 잡고 일 년이면 매출이 얼마나 됩니까?”

애덤 캐슬러와 통역이 계산을 해 보았다.

“계산할 것도 없습니다. 월간 3억 1천 5백이고 일 년이면 37억 8천이네요.”

애덤 캐슬러와 통역 채명준은 구건호의 암산 실력에 놀랐다.

채명준은 김전무의 말이 떠올랐다. 수입품 지출결의 품의서를 올렸을 때의 일이었다.

“이봐, 채명준! 이거 틀렸잖아. 다시 고쳐.”

“죄송합니다. 정정하겠습니다.”

“이거 사장님까지 올라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사장님이 허허 웃고 있지만 경리 출신이네. 숫자에 대해선 우리보다 훨씬 빠삭하지. 잘못 올렸다가 나 망신 주지 마. 결재서류에 눈감고 싸인 했다는 말 듣는 수가 있어. 구건호 사장 앞에서 숫자를 말할 땐 항상 조심해야 돼!”

채명준은 김전무의 말이 다시 새로웠다.

애덤 캐슬러와 채명준이 나가자 생산부 유희열 부장이 사장실로 올라왔다. 사장실을 잘 안 들어오는 친구인데 뭔가 흥분해서 식식거리며 들어왔다.

“배합 안료 중에서 제일 많이 쓰고 있는 AJ-252가 있습니다. 수입품입니다. 그런데 안료 회사에서 자꾸 가격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 제품은 우리가 직수입하면 어떻겠습니까?”

“해외의 안료 제조사에서 한국의 안료사에 독점 수입권을 준건 아닙니까?”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니면 수입하세요.”

“좀 많은 양을 확보해도 되겠습니까?”

“많은 양? 많은 양 갖다 놓으면 나중에 굳어지는 건 아닙니까?”

“주기적으로 흔들어주면 됩니다.”

“얼마나 수입하려고요?”

“100만원어치 수입하려고 합니다.”

“100만원요? 알았습니다. 무역파트와 협의해서 하세요.”

“고맙습니다.”

유부장은 또 식식거리며 나갔다.

구건호는 웃음이 났다.

“저 친구가 왜 저러나. 안료 회사가 고분고분하지 않아서 그런가?”

오후에 통역 이선생이 보따리를 들고 왔다.

“디욘코리아 인도 법인장 이종근이 부임명령을 받고 떠나겠습니다.”

구건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생이 많으시겠습니다.”

구건호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힘차게 하였다.

“이종근 법인장님을 믿겠습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업무가불은 했지요?”

“했습니다. 환전도 다 했습니다.”

“내일 출발인가요?”

“그렇습니다. 내일 저녁 비행기입니다.”

“매출도 좋지만 우선 건강하십시오. 저도 해외생활 해보았지만 해외에 나가선 건강이 제일입니다.”

“고맙습니다.”

구건호는 다시 한 번 이종근 법인장에게 손을 잡고 흔들어주었다.

인도 법인장으로 발령을 받은 이종근 부장이 나가고 얼마 후에 중국서 전화가 왔다.

“안당시 장도기차(長途汽車: 시외버스) 유한공사 사장 옌룬셩(嚴潤生)입니다.”

“아, 예. 안녕하십니까? 구건호입니다.”

“지난번에 한국 방문시 열렬한 환대를 해주어 고맙습니다.”

“별 말씀 다하십니다. 제가 중국서 받은 환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부시장님에게도 구건호 사장님이 뜨거운 환대를 해주어 고마웠다고 보고를 드렸습니다. 또 구건호 사장님의 제조회사를 방문하고 그 규모와 청결함에 놀랐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하, 그랬습니까?”

“1억 달러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회사라 역시 달랐습니다.”

“별 말씀을...”

“그건 그렇고 이제 저희도 차참(車站: 터미널) 공사를 위하여 조만간 삽질을 해야 할 입장입니다. 구사장님과 함께 허츠꽁쓰(합자회사)의 인연을 맺고 싶습니다. 의향서라도 먼저 체결하고 싶습니다.”

“검토를 더 해보고 답을 드리겠습니다.”

“운송업 면허는 바로 내 드립니다. 지금 홍콩의 회사와 합작을 추진 중에 있는데 저희는 솔직히 말씀드려 홍콩보다는 한국의 기업과 손을 잡고 싶습니다.”

“홍콩은 중화인민공화국 안에 있으니 더 친숙한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래서 더욱 싫습니다. 경영권에 관하여 심하게 간섭하면 우리도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여기 에 있는 위엔꽁(員工: 직원)들은 한국에 대하여 아주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또 이번에 한국을 와보고 돌아가서 한국은 정말 아름답고 깨끗한 나라라고 약을 많이 팔았습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어떻습니까? 다음 주라도 오십시오. 좋은 조건으로 사업을 하게끔 해드리겠습니다. 실상 제 위로는 부시장님과 교통국장님이 있지만 합자의 실질적 주체는 저의 장도기차 유한공사와 지에이치 산하의 회사 아닙니까? 다음 주에 얼굴을 뵙는 기회를 주시면 서로가 좋을 겁니다.”

“흠, 글쎄요.“

“솔직히 말씀드려 중국 동부 해안의 도시와 서부지역이라도 큰 도시는 한국과 운송업 합자는 안합니다. 중국도 자금력이 이제는 형성되어 구태여 외자를 끌여 들여 하지는 않습니다. 안당시의 이번 프로젝트는 한국에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흠, 맞는 말씀인 것 같기는 합니다.”

“다음 주에 지에이치 로지스틱스 사장님과 한번 같이 오세요. 아무래도 합자 계약은 지에이치 집단공사에서 운송업인 로지스틱스가 될 것 같습니다. 거기에 계신 문재식 사장님과 같이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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