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276화 (276/501)

# 276

요꼬하마 목각 전시회 (2)

(276)

모리에이꼬는 가라앉은 소리로 말했다.

“삿뽀르에 가야해요.”

“왜? 할머니 때문에?”

모리에이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기다리느라고 늦었어. 공항에 빨리 나가봐야 돼요.”

“가자. 내가 공항까지 데려다 줄게. 어디냐? 나리따 공항이냐? 하네다 공항이냐?”

“하네다...”

구건호는 모리에이꼬의 가방을 들고 나왔다. 택시가 오지 않아 콜택시를 불렀다.

“택시 안에서 모리에이꼬는 구건호의 어깨에 기댄 채 아무 말도 안했다. 구건호가 모리에이꼬의 귀밑머리를 올려주며 앙증맞은 두 손을 잡아 주었다.

“감바레마쇼(힘내)!”

모리에이꼬가 힘없이 웃었다.

모리에이꼬는 비행기 시간 때문인지 시계를 자꾸 쳐다보았다. 구건호와 모리에이꼬는 15살 차이가 난다. 그래서 그런지 구건호의 눈에는 언제나 귀여운 소녀로만 보였다. 뺨에 뽀뽀라도 해주고 싶지만 택시기사의 눈치가 보여 행동에 옮기지를 못하고 있었다. 택시기사는 그렇지 않아도 두 사람의 관계가 수상해서 룸미러로 자꾸 뒷좌석을 쳐다보았다.

공항은 다행히 출발 직전 도착했다.

“조심히 다녀와.”

“오빠.”

모리에이꼬가 참지 못하고 구건호에서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구건호가 등을 토닥여 주었다.

“잘 다녀와.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미안해요.”

구건호는 안 포켓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혹시 병원비가 필요할지 모르니 이거 가져가.”

“모리에이꼬는 또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구건호가 준 봉투를 가방에 담았다.”

구건호는 하네다 공항에서 모리에이꼬를 삿뽀로로 떠나보내고 동경시내로 돌아왔다. 아무도 없는 다이칸야마의 맨션에 가서 잠을 잘까하다가 뉴오따니 호텔로 갔다. 호텔서 체크인을 하고 거리로 나왔다.

최지연사장이 운영하는 한식점으로 갈까하다가 저녁 먹을 시간은 아닌 것 같아서 아까사까에서 가까운 롯뽄기힐스로 갔다. 쇼핑센터에 들어가 아이쇼핑을 했다.

“최지연 사장에게 늘 신세만 지는 것 같은데 선물이나 하나 사줄까?”

구건호는 중년 여인에게 어울리는 진주목걸이를 하나 샀다.

구건호가 최사장의 한식당으로 온 것은 저녁 7시 무렵이었다. 카운터에는 최사장이 아닌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최사장님은 안 오십니까?”

“예? 곧 오십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한국이요.”

구건호는 테이블에 앉아 곰탕을 시켰다. 뒷좌석에는 젊은 유학생들이 들어와 일본 소고기인 와규를 시켜 구워먹고 있었다. 유학생들은 ‘헤피버스데이 투유’를 부르는 것으로 보아 생일파티를 하는 것 같았다.

“어머! 구사장님. 소식도 없이 오셨네.”

고개를 들고 보니 화사한 옷차림의 최지연 사장이었다.

“요꼬하마의 미술관에서 아는 사람이 목각 전시회를 해서 왔습니다.”

“모리에이꼬는 만나셨어요?”

“만났어요. 오늘 삿뽀로로 갔어요.”

“삿뽀로요?”

“할머님이 입원했다고 하네요.”

“저런, 그런 일이 있었군요.”

“오늘은 혼자 주무셔야겠네. 다이칸야마로 가실 거예요?”

“아니오. 여기 뉴오따니 호텔 체크인을 했습니다.”

“호텔이라 돈이 좀 나가겠지만 잘 하셨어요. 결혼 하셨으니 이제 마나님한테 잘해야지요.”

“하하, 잘 하고 있습니다.“

“더 잘하세요.”

아까 시간이 있어서 롯뽄기힐스에 가서 목걸이를 하나 샀습니다. 최사장님 드리려고요.“

구건호가 포장지에 싼 작은 상자를 최사장에게 주었다.

“어머, 이걸 왜 나를 줘요. 마나님한테 갖다 줘야지요. 아니면 모리에이꼬를 주던가.”

“하하. 중년부인에게 잘 어울리는 목걸이입니다. 자꾸 신세만 지는 것 같아 미안해서요.”

“신세진 게 뭐 있다고 그러세요. 주는 거니까 잘 받겠어요.”

최사장은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마마상?”

“마마상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마마상 세가와 준꼬인 것 같았다.

“지금 내 앞에 구건호 사장이 와 있어.”

“응? 뭐라고? 구사장이 모리에이꼬를 만났냐고? 응, 만났데. 에이꼬는 할머니가 아프셔서 삿뽀로로 갔다고 했어. 구사장이 공항까지 바래다주고 왔데.”

최사장과 마마상은 빠른 일본어로 뭐라고 한참 이야기 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마마상인 것 같은데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깁니까?”

“마침 알맞게 구사장이 와줘서 고맙데요.”

‘그 말 뿐입니까?“

“모리에이꼬가 요즘 좀 힘든 모양이에요. 타이완의 영화 촬영이 힘든 모양이에요. 거기 주연으로 나오는 홍콩배우가 출연료 문제로 시비가 붙어 도중하차 했데요.”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영화 찍는 게 진행이 안 되면 조연인 모리에이꼬도 영향을 받겠죠. 참, 모리에이꼬에게 차비라도 주셨지요?”

“예, 약간.”

최사장이 환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래서 마마상이 에이꼬가 구사장님을 만났다니 좋아하는군요.”

“에이꼬가 그렇게 어려운가요?”

“영화사에서 돈을 못 받았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국내 공연도 취소하고 출연한 거니까 그럴 만도 하겠지요. 마마상도 게이샤 만드는데 들어간 돈 뽑지 못해 안달하겠네. 쯧쯧.”

구건호는 최사장의 소리를 듣고 게이꼬에게 차비를 넉넉하게 줄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다음날 구건호는 요꼬하마의 미나토미라이역에서 내려 미술관을 찾아갔다.

요꼬하마 미술관에서는 사카다 이쿠조씨의 목각전시회를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전시회는 2층에서 한다고 되어 있네. 12시에 여기서 신정숙 사장과 마츠이 요시다카씨를 만나기로 했는데 왔을까?

구건호가 2층으로 올라가니 현관 앞에서 신정숙사장과 요시다카씨가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신사장님!”

“어머, 오셨네!”

“요시다카 선생님도 오래간만입니다.”

구건호는 요시다카와 악수를 하였다.

“왜? 들어가서 관람을 안 하십니까?”

“호호, 우린 일찍 와서 벌써 구경했어요. 좋던데요? 정말. 이런 작품들 처음 봐요. 요시다카 선생님도 지금 놀랬데요.”

“전 그럼 안에 들어가서 구경 좀 하겠습니다.”

구건호가 이쿠조씨의 작품들을 보았다. 잠자리나 나비는 인조로 만든 풀잎위에 얹어 놓았다. 앙상한 마른 나무 가지위에 수십 마리씩 앉아 있는 나비와 잠자리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얼른 구분이 안 갔다.

“옛날 신라시대 솔거가 황룡사 벽에 그려놓은 노송도를 보고 새가 날아와 부딪쳐 떨어졌다고 했지? 여기에 있는 나비와 잠자리를 밖에 내어 놓으면 아마 새들이 진짜인줄 알고 잡아먹으러 달려들 거야.”

작품은 잠자리와 나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귀뚜라미나 여치, 개구리도 있었고 작은 새들도 있었다. 구건호는 계속 감탄을 하며 구경을 했다. 다보고 나오자 신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어때요? 보신 감상이?”

“그저 놀랄 뿐입니다.”

요시다카 선생이 신문을 봤는데 신문엔 이쿠조 선생의 작품을 보고 신의 솜씨라고 했데요.“

“정말 신의 솜씨더군요.”

“저희들도 그렇게 생각됩니다.”

“참, 이쿠조씨가 이리로 오기로 했습니다. 같이 식사하고 혹시 비즈니스와 관련된 것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알겠습니다.”

흰색 중절모를 쓴 이쿠조씨가 왔다. 깡마른 체격에 입을 앙다문 고집스럽게 생긴 그의 인상을 보고 신사장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고집스럽게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장인처럼 생기셨습니다.”

“이쿠조 선생님!”

“오셨군요. 구사장님.”

이쿠조씨와 구건호는 서로 악수를 하였다.

“한국에서 갤러리 사장을 하시는 신정숙 사장님입니다.”

“안녕녕하세요?”

신사장과 이쿠조씨가 서로 악수를 하였다.

“이분은 언론인을 하다가 지에이치 미디어의 객원기자를 하시는 마츠이 요시타카 선생님입니다.”

”하지메마시데(처음뵙겠습니다).“

“흠, 댁은 일본인이군요.“

“점심시간이 됐으니 같이 식사하러 가시죠.”

“이곳 미나토미라이에서는 유기농 채소만 가지고 음식을 하는 유명 맛집이 있습니다. 그리로 가시죠.”

구건호 일행은 이쿠조씨를 따라서 음식점엘 갔다. 정말 유기농 채소로 만드는 음식이 풍부한 집이었다.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구건호가 말했다.

“이쿠조 선생님 작품은 잘 보았습니다. 정말 훌륭하십니다.”

신사장과 요시타카씨도 맞장구를 쳤다.

“선생님 작품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작품은 신문에 난 그대로 신의 솜씨였습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따로 미술공부도 하지 않고 어깨 너머로 배운 솜씨를 가지고 잔재주 좀 부려봤습니다.”

“여기서 전시회가 끝나면 다른 곳에서도 합니까?”

“오사카와 나고야에서 할 계획입니다.”

“한국에서도 선생님 작품 전시회를 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나고야 전시회가 끝나야 되겠네요.“

“그렇게 되겠네요. 한국 전시회를 한다면 8월 중순이 넘어야겠네요.”

“그럼 오늘 아예 전시 계약서를 쓰지요?”

“변변치 못한 작품에 관심을 가져주니 고맙습니다. 사실 저는 목각보다는 금형을 깎는 기술자인데 어떻게 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네요.”

구건호가 이쿠조 선생을 신사장과 요시타카에게 다시 소개했다.

“이쿠조 선생님은 목각뿐만 아니고 금형을 깎는 기술도 세계적 권위자입십니다. 동생분도 동경대의 유명한 물리학자로 노벨상을 받은 세계적 학자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세계적 기술자가 된 것은 집안 유전자 인 것 같습니다.”

이날 이쿠조씨는 신사장과 전시계약서를 작성 후 서명하였다.

신사장과 요시타카씨는 요코하마 미술관 관장과 동경 미술관 관장을 만나고 돌아가겠다고 하였다. 앞으로 지에이치 갤러리의 작품 전시는 작가 개별 접촉보다는 화랑을 통해서 하겠다고 하였다. 구건호는 모리에이꼬도 없는 동경에 머무는 것이 별 의미도 없을 것 같아 바로 귀국해 버렸다.

디욘코리아의 애덤 캐슬러가 전화를 했다.

“중국의 딩딩 회사에서 서류들이 왔습니다. 이 서류에 따른 인수계약서는 사장님과 저의 공동 서명이 들어가야 합니다. 오셔서 서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류 확인은 다 하셨어요?“

“서류는 다 확인했습니다. 일단 이상은 없습니다. 그리고 서명 후 실사 확인서도 준비해야 하는데 서명해주시면 저는 내일이라도 중국에 가서 실사를 하고 오겠습니다.”

“하긴 창고 같은 건 눈으로 봐야겠지요. 천 평인지, 백 평인지는 봐야 할 테니까. 좋소. 지금 내려가겠소.”

구건호는 엄찬호를 불렀다.

“야, 아산에 가야겠다.”

“오늘은 신사동 빌딩에 있는 날 아닙니까?‘

“아산에 일이 생겼다.”

“알겠습니다. 빌딩 정문 앞에 차 대겠습니다.“

빌딩 경비는 엄찬호가 정문 앞에 차를 대기만 하면 꼭 현관 밖으로 나와 대기했다가 문을 열어주었다. 이럴 땐 빌딩 입주자들이 오고가다가 구건호를 힐금힐끔 쳐다보았다. 구건호가 벤트리 승용차에 올라타자 경비가 거수경례를 붙여주었다.

벤틀리 승용차가 서서히 고속도로로 진입하였다.

“찬호야, 밥은 가다가 휴게소에서 먹어야 되겠다.”

“그렇게 하시죠. 요즘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도 많이 나아졌습니다. 뷔페식으로도 운영하잖습니까?”

벤틀리 승용차가 톨게이트를 지나 기흥쯤 갔을 때 엄찬호가 룸미러를 보며 말했다.

“사장님 동경에 가셔서 안 계신 동안에 태영이 형 만났습니다.”

“그래? 걔는 잘 있나?”

“조금 힘들지만 잘 있는 모양입니다. 지난번 중국 갔다 올 때 사장님이 준 중국 술 갖다 주니까 되게 좋아하던데요?”

“그랬어?”

“그래서 그날 우리 경비회사 식구들 모두 데리고 자장면집에 가서 탕수육 시켜놓고 그 술 마셨습니다.”하하, 그랬어?“

“중국집 사장이 한국에서는 그 술 25만원에 판다고 하니까 태영이 형이 뿅 갔습니다.”

“하하, 그래?”

“사장님이 주신 담배도 태영이 형 주었습니다. 태영이 형이 찬호가 중국에 가서 가져온 선물이라고 우리 식구들한테 두 갑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흠, 태영이가 그래도 혼자 갖지 않고 경비회사 직원들에게 다 나누어 주는구나.”

“태영이 형이 의리는 있습니다. 자기 것 못 챙겨도 동생들한테는 잘 합니다.”

“흠, 그 녀석도 기특한 데가 있구나.”

“제가 중국 가서 별의별 음식 다 먹고 뱀고기도 먹고 왔다고 자랑했습니다. 상해를 거쳐 소수민족이 사는데 까지 갔다 왔다고 하니까 다들 부러워했습니다.”

“흠, 그랬어?”

“또 사장님이 일본에 가기 전 지난주에는 아산의 경찰서장과 간부들하고 같이 식사도 하고 친하게 지내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치안감도 아는 것 같다고 하니까 태영이 형이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뭐라고 하는데?”

“오야지 잘 만난 줄 알라고 하면서 잘 모시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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