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273화 (273/501)

# 273

인도 산업시찰 (1)

(273)

구건호는 비행기를 자주 타봐서 긴 여행에는 가벼운 책이 있어야 좋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주간지 몇 개를 가방에 담았다. 얇은 소설책도 한권 담았다. 그리고 에어컨이 빵빵 나오는 비행기를 잘못 타면 감기에라도 걸릴 것 같아 긴팔 와이셔츠도 준비했다.

“사장님은 잡지도 준비하시고 대비를 철저히 하셨네요.”

멸치같이 생긴 중소기업 이사가 말했다. 이 사람은 무슨 인연인지 비행기에서도 옆자리에 앉았다.

비행기는 밤새 날랐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홍콩 앞바다인 남지나해를 지나고 있었다. 구건호는 주간지를 다 읽고 소설책도 읽었다. 스튜어디스가 무릎을 덮는 담요를 가져왔다.

인도의 델리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은 좀 후지네.”

“그러게 말이야. 중국 지방도시 공항 같네.”

일행들은 입국 심사대를 빠져나와 대기한 관광버스에 모두 올라탔다. 구건호 또래의 안경 낀 남자가 버스 위로 올라왔다.

“산업시찰단의 인도 방문을 환영합니다. 저는 코트라 인도지사의 과장입니다.”

영어도 공용인 인도에서 코트라 직원들은 과장이나 사원이나 영어들은 꽤 잘하는 편이었다. 하긴 코트라 정도 입사하려면 스펙깨나 있어야 입사하는 곳이라 그런 모양이었다. 과장 정도면 대부분 구건호 정도의 또래들이 많은 것 같았다.

[이 친구들이 급여는 얼마나 받나?]

구건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산의 이자소득이나 배당소득을 제외하고 순수한 급여는 전부 합쳐 4천만 원쯤 된다. 지에이치 모빌에서 1500만원, 디욘코리아에서 1500만원, 미디어에서 300만원, 개발에서 700만원 정도를 받는다. 대한민국에서 아무리 스펙이 좋고 좋은 직장을 다녀도 구건호 만큼 급여를 받는 사람이 재벌 2세 빼놓고는 거의 없을 것 같다. 더구나 구건호는 이자소득만 해도 년 간 40억이 넘는다.

“와, 가로수 한번 죽인다.”

인도의 가로수는 전부 용문산 은행나무처럼 아름드리 가로수들이 죽죽 뻗어 있었다. 거리는 지저분한데 가로수만큼은 장관이었다. 사람도 시커멓고 거리도 지저분하니 별로 호감이 가는 나라는 아니었다.

길가에 입간판이 즐비했다. 일본기업의 입간판이 많았다. 도요타, 혼다, 도시바 같은 입간판이 있었고 현대나 삼성 같은 한국기업 입간판도 있었다. 한국 기업의 입간판을 볼 때는 반갑기도 하였다.

첫째 날은 현대차 공장을 방문했다. 델리대학의 박사과정의 학생이라는 사람이 통역으로 왔다. 통역은 기사들과 이야기 할 때 영어가 아닌 힌두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공장은 깨끗했고 인도 젊은이들의 선망의 직장이라고 했다. 공장은 젊은 인도의 경비원들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출입을 통제하였다.

“이 공장에 다니면 주변 가게에서 외상도 잘 주고 장가 갈 때 신부도 골라서 갈수 있습니다.”

안내자는 이 말 한마디로 현대차의 인도에서의 위상을 설명했다.

역시 이 나라도 관리직들은 좀 더 피부가 하얀 것 같고 생산직은 더 시커먼 것 같았다. 생산라인을 구경하고 나올 때 공장 책임자가 나왔다. 코트라 직원이 구건호를 단장이라고 소개했다. 구건호는 코트라 직원이 가져온 선물을 공장 책임자에게 주었다.

산업 시찰단은 현대차 델리공장을 방문하고 하리아나주에 있는 협력업체 공장을 보러 이동하였다. 버스 안에서 시찰단 한명이 앞에서 안내하는 통역에게 물었다.

“인도는 아직도 카스트 제도가 있는가요?”

“법으론 금지되어 있지만 지금도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4개 계급은 엄연히 존재합니다. 그 밑에 또 불가촉천민도 있습니다.”

“그래요?”

“현대 자동차 관리직들도 같은 회사의 직원들이라고 해도 바이샤 족은 크샤트리아 족한테 꼼짝 못합니다.”

구건호의 옆에 앉았던 중소기업의 이사라는 사람이 말했다.

“참, 미개하고 더러운 나라네요.”

델리대학의 박사과정 통역이 싸늘하게 웃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나라보다도 출세의 사다리는 더 좋습니다.”

“계급이 있다면서요?”

“이 나라는 할당제가 있습니다. 좋은 대학이나 좋은 자리는 계급별 할당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낮은 계급의 수드라 계급에서도 총리도 나오고 재벌도 나옵니다. 우리나라는 흙수저 계급에서는 이제 총리나 재벌이 나오긴 어렵지만 그런 면에선 인도가 더 합리적이고 문이 넓습니다.”

질문을 했던 중소기업 이사는 다음 질문을 하지 못했다. 구건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산업시찰단은 하리아나주에 있는 한국의 현대차 협력업체 두 군데를 방문하였다. 구건호는 공장의 임대료와 매출 등을 물었다. 같이 간 사람들은 가는 곳 마다 팜프렛을 챙겼지만 구건호는 무거워서 팜프렛 수집은 포기했다.

“사장님은 팜프렛 안 챙겨요?”

“예, 됐습니다. 나는.“

인도에서도 협력업체는 제2 벤다도 있고 제3 벤다도 있고 제4 벤다도 있었다. 작은 회사의 직원들은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날은 구건호가 이상하게 새벽녘에 잠이 깨었다. 조깅을 하러 호텔 밖으로 나왔다.

“가로수 하나 만큼은 진짜 부럽네. 나무 두께가 한국 가로수의 10배는 될 것 같네.”

구건호는 울창한 가로수를 지나 마을을 구경하러 가옥이 즐비한 동네로 들어갔다. 길은 아스팔트인데 길바닥에 들어 누운 송아지만한 개도 있었고 아랫도리 바지나 치마를 입지 않은 여자아이가 거리 한가운데서 오줌도 누곤 하였다. 구건호는 마을을 들어가다가 포기했다. 사람 똥인지 쇠똥인지 도로 위에 똥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똥 밟을라.”

호텔안과 호텔 밖은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이 날은 인도의 상공회의소인지, 중소기업청인지 어떤 기관을 방문했다. 여기의 직원들은 거리의 사람들보다는 확실히 깨끗하고 우아해 보였다. 여자들도 더 우아해 보였다. 밖은 찜통이지만 이 관청 안은 에어컨도 빵빵 나왔다.

“회의장도 넓네.”

“25명이 아니라 30명도 충분히 앉겠네.”

긴 속눈썹이 인상적인 인도의 여직원들이 차와 과자 같은 것을 내왔다. 청장이 나오자 인도의 직원들이 전원 칼같이 기립하는 것을 보고 이 나라도 상당히 권위주의적인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사람 알면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나라군.]

아랫배가 뽈록 나온 청장이 거만스럽게 말했다.

“델리 옆의 하리아나주는 계속 개발되고 있습니다. 투자를 환영합니다.”

청장은 투자를 권유하는 몇 마디를 던지고 휭 하고 나갔다. 구건호는 가져간 선물을 부책임자인 듯한 사람에게 주고 나왔다.

거리에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쟁반만한 호떡을 팔기도 하고 택시 역할을 하는 삼륜차도 있었다. 자동차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다니면서 시도 때도 없이 빵빵거렸다.

“거 되게 빵빵거리네.”

“저 호떡인지 빈대떡인지 먹음직스럽기는 한데?”

고삐 없는 소가 어슬렁거리며 다니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 중소기업 한군데를 더 보았다. 200명 종업원의 중소기업 사장인데 지치고 피곤한 표정이 역력했다.

“인건비 싼 것 보고 인도에 들어왔습니다.”

“인건비가 얼마나 하는데요?”

“중국은 현재 인민폐도 올라 60만원 줘야 하잖습니까? 여긴 20만원 미만입니다.”

“흠, 인건비 메리트는 있네요.”

“더구나 여기는 25살 미만 인구가 47%나 되잖습니까? 질 좋은 노동력은 많이 있습니다.”

“공장 임대료는 어떻습니까?”

“이 나라는 땅도 넓지만 인구도 많아 땅값은 비쌉니다.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

그의 옆얼굴에서 고독이 뿜어져 나왔다.

구건호는 사장에게 선물을 주며 진심으로 고생한다는 말을 전했다.

“이역만리에서 고생이 많습니다.”

“한국에서 할 만한 게 뭐 있나요? 인도에 나온 지가 5년차인데 그저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일했습니다.”

구건호는 임대료와 종업원 평균임금, 전기료 등을 메모하고 돌아왔다.

[중국에 나오는 직원들은 가족을 동반해야지 혼자 나오면 힘들겠군.]

구건호는 인도가 인구도 많고 아직은 발전이 덜 되어 시장은 넓고 풍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셋째 날에는 타지마할을 구경하러 아그라의 남쪽 지방으로 이동했다. 가면서 도로는 점점 좁아져 2차선이 되었다.

“황색선이나 백색선도 없는 도로네.”

“와, 낙타다. 낙타.”

가다가 보니 짐 실은 낙타들도 지나갔다. 쌍봉낙타는 굉장히 높아서 말이나 소가 끄는 수레보다도 더 웅장하고 우아해 보였다. 낙타들은 짐을 싣고 일정한 보폭으로 도도하게 걸어갔다.

“저건 고양이야? 원숭이야?”

시멘트 집 담 위에서 동물이 뛰어다니기에 고양이 인줄 알았더니 원숭이였다.

“차가 오래가네. 타지마할이 먼 곳에 있나보군.”

“버스가 속도를 못 내서 그래요.”

3시간 이상 달려 타지마할에 도착했다. 타지마할은 총을 멘 군인이 지키고 있었다. 옛날 무굴제국의 왕이 죽은 왕비를 그리워하며 지은 건축물이라고 했다.

구건호는 타지마할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해보았다.

[인도는 현대나 삼성이 나와 있으니 협력업체도 많아 지에이치 모빌이나 디욘코리아가 나온다면 기본은 하겠지. 이지노팩 회장은 디욘코리아보다는 서로 협력 의존도가 높은 모빌의 동반 진출을 원하고 있어. 하지만 송사장은 코스닥 등록을 앞두고 신규 투자는 하지 않으려고 한단 말이야. 투자는 모두 상장이후로 미루고 있어.]

[송사장은 신규투자는 역시 유보 현금을 소진시키니까 그러겠지. 당장 부채비율 줄이는 게 문제란 생각을 하겠지. 대신 디욘코리아는 부채도 없고 유보 현금도 있으니 투자는 얼마든지 가능하단 말이야. 더구나 생산 공장도 아닌 판매 대리점 형태라 중국의 딩딩 회사처럼 창고와 사무실만 있으면 되니까 투자비용도 크지 않을 거야. 그런데 인도 현지 생산도 아니고 한국에서 생산한 걸 여기다 팔면 물류비가 만만치 않을 텐데 그게 문제군.]

구건호는 타밀라드주에 있는 첸나이 지역은 방문하지 않았다.

[공장들 봐야 다 거기서 거기일 테지.]

구건호는 인도 방문을 마치고 송사장을 만났다.

“인도에 가는 건 좋은데 돈이 들어가겠네요. 공장 임대보증금도 들어가고 기계설비도 들어가야되니까 초기 자본금만 3억 이상 들어갈 것 같네요.”

“잘 보셨습니다.” 이지노팩이야 하리아나주에 이미 공장이 있으니까 인도 경험 노하우도 많이 있지요. 하지만 우리는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지요. 이미 하리아나주에 공장이 있으니까 남부지역 첸나이에 공장 설립하는 건 쉬웠겠지요.”

“이지노팩 회장에게 아직 우리는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시겠습니까?”

“인도 전문가를 하나쯤은 키워볼 필요가 있긴 합니다. 떠오르는 시장인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그건 맞습니다.”

“디욘코리아부터 진출 하는 걸로 하지요. 디욘코리아의 통역출신 이선생을 보내지요.”

“이선생은 회사 경험이 있으니 가면 바로 적응은 할 겁니다. 그런데 적어도 부장 직급은 줘야할 것 같네요. 사람들은 퇴직 당시 직급은 줘야 체면이 선다고 생각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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