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267화 (267/501)

# 267

코스듐 플레이 매거진 (1)

(267)

미디어의 신정숙 사장은 다시 한 번 사카다 이쿠조씨가 만든 나비 조각품을 보았다.

“정교하게 만들긴 했지만 다른 작품을 보기 전엔 뭐라고 평가하기가 어렵네요.”

“이건 모빌의 박종석 이사가 딸을 순산했다고 해서 선물로 준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몇 개 더 가져올걸 그랬네요.”

“참, 지난번 선물로 주신 샤넬 핸드백은 최 화가에게 주었습니다. 조카사위한테 과분한 선물을 받았다고 하네요.”

“최 화가님 전시계획은 없습니까?”

“아직 없습니다. 좀 쉬었다가 다시 활동하려는 모양입니다.”

신정숙 사장은 오연수가 가져온 차를 마시며 말했다.

“지난번에 일본 만화가 원화 전시회를 주선했던 일본인 마츠이 요시타카 선생을 아시죠?”

“알죠. 특파원 출신이라고 한국말 잘하시는 분 아닙니까?”

“저보고 잡지를 한번 만들자고 하네요.“

“잡지를 요?”

“코스프레 잡지를 한번 만들자고 하네요.”

“코스프레면 아이들 만화 주인공 복장하고 다니는 것 아닙니까?”

“호호, 맞아요. 그 산업이 일본에 발전을 많이 했어요. 일본엔 그와 관련된 잡지가 있는데 한국엔 없다고 만들자고 하네요.”

“일본과 우리와는 문화적 차이가 많은데 그게 될까요?”

“5천부 이상 나갈 걸 장담하고 있습니다.”

“그런 건 잡지 기자도 채용하고 그런 것 아닙니까? 인건비도 나갈 텐데...”

“잡지 컨텐츠는 일본 잡지사와 제휴하여 절반은 일본 잡지를 그대로 베끼자고 합니다. 나머지 절반은 한국 기자가 행사장 쫓아다니면서 하는 거지요.”

“흠....”

“그리고 자기를 지에이치 미디어의 객원 기자로 채용을 해 달라고 합니다.”

“객원기자로요? 하하, 이 방면에 대해서 저는 잘 모르겠으니 신사장님이 알아서 하십시오.”

“요시타카 선생은 일본 코스프레 잡지 몇 권을 저에게 주고 가셨습니다. 한번 가지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됐습니다. 저는 신경 쓸 일들이 많아서 아이들 잡지는 눈에 잘 안 들어 올 겁니다. 봐도 잘 모르고요.”

“사카다 이쿠조씨의 요코하마 전시회는 일정 잡히면 보러 가겠습니다.”

서울대 정책대학원에 구건호가 모처럼 등교하였다. 그동안 일본과 중국 출장으로 몇 번 수업을 빠졌었다. 오래간만에 나타난 구건호를 보고 사람들은 반겼다.

“와, 이거 총무 아냐?”

“난, 총무가 안보여 죽었는지 알았네. 일본과 중국 출장 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제야 나타나네.”

“엊그저께 장가간 사람이 신혼 재미 안보고 어딜 그렇게 다녀?”

“오늘은 떡 안가지고 왔어?”

이진우 장관이 구건호를 조용히 불렀다.

“총무가 없으니 무척 아쉬웠소. 있을 땐 몰랐는데 총무가 하는 일이 많다는 걸 알았소. 총무가 없는 동안 김앤정 로펌의 김영진 변호사가 일을 많이 봐줬으니 김변호사에게 고맙다고 하쇼.”

“하하, 알겠습니다. 김변호사는 제 친구이니 그런 말 안 해도 될 겁니다.”

첫 시간 강의가 끝나고 구건호는 떡과 건강음료를 돌렸다.

넉살좋은 국회의원 한사람이 떡을 받으며 말했다.

“이 떡 중국 출장 가서 사온건가?”

“하하, 떡은 한국에서 나는 쌀로 만든 한국 떡입니다.”

“음, 총무가 학교에 나오니 이런 것도 얻어먹는 구나. 당신 학교 빠지면 안돼요.”

장미와 라일락 향이 짙은 5월이 되었다.

구건호는 강남 신사동 지에이치 빌딩 18층에서 밖을 내다보았다.

“결혼을 한지도 한달 반이 넘었네.”

구건호는 다시 자기 책상에 앉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전체 기업에 대하여 이메일 문서를 발송하였다.

[수신처: ㈜ 지에이치 모빌

㈜ 디욘코리아

㈜ 자에이치 개발

㈜ 지에이치 미디어

㈜ 지에이치 로지스틱스

중국 지에이치 기차배건 유한공사

중국 지에이치 소료 유한공사

금년도 1/4분기 부가세 신고 시한은 지난주 4월 25일까지였습니다. 신고 납부 금액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혹, 아직 신고가 안 된 회사가 있으면 그 사유를 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전년도 외부감사 재무제표는 한 권씩 신사동 지에이치 개발 사무실로 보내주시고 금년도 1/4분기 손익현황도 이메일 보고 바랍니다.

사장구건호 ]

이메일을 보내놓고 화장실을 가려는데 00부 비서실이라고 하는데서 전화가 왔다.

“구건호 사장님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여긴 00부 장관 비서실인데 장관님 바꾸어드리겠습니다.”

00부 장관은 정책대학원에서 같이 공부하는 회장이었다.

“총무요?”

“예, 구건호입니다. 장관님.”

“박 치안감 어머님이 돌아가셨다고 하네요.”

“박 치안감님요?‘

“아, 거 왜, 내 뒷자리에 앉은 얼굴 까무잡잡한 사람 말이요.”

“아 예, 기억납니다. 머리 약간 스포츠형이고 이마에 주름 있는 분 아닙니까?‘

“맞소. 어머님이 돌아가셨다고 하니까 정책대학원 학생들에게 문자 띄워보내세요. 발인은 모레 아침 07시이고 영안실은 대학로 앞에 있는 서울대병원이요.”

“알겠습니다. 문자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정책대학원 이름으로 조화 하나 보내주세요.”

“알겠습니다. 이장관님 이름으로 보낼 가요?"

“아니오. 정책대학원 일동으로 보내면 되요. 장관 이름으로 보내는 것은 여기 비서실에서 할 거요.”

“알겠습니다. 장관님.”

구건호는 사장실에 앉아서 투덜거리며 정책대학원 학생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총무를 김영진 변호사보고 하라고 할 걸 잘못했어. 되게 귀찮네.”

구건호는 정지영 대리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구건호가 메모지를 주면서 말했다.

“서울대 병원으로 조화하나 보내 주세요. 보내는 사람 이름은 쪽지에 있어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봉투에 부의금 10만원만 담아요.”

“알겠습니다.”

“부의금 10만원은 회사에서 정리하고, 조화는 따로 회비가 있으니 내가 돈으로 주지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리고 경리과장 들어오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경리과장이 들어왔다. 비서 오연수가 들어올 때 같이 채용된 사람으로 세무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일 할만 해요?”

“예, 할만 합니다.”

“제조회사가 아니니까 크게 복잡한건 없을 겁니다. 빌딩 입주기업들 밀린 월세 독촉은 강이사가 하지요?”

“예, 그렇습니다.”

“내가 지에이치 산하의 모든 회사는 전년도 외부감사용 재무제표를 모두 이쪽으로 보내라고 했습니다. 총 7개 회사입니다. 경리과장이 받아 놓았다가 취합해서 나에게 가져와요.”

“알겠습니다.”

정지영 대리가 다시 사장실에 들어왔다.

“조화는 조치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여기 부의금 봉투입니다.”

“글씨를 멋있게 썼네? 강이사님 들어오셨어요?”

“예, 방금 들어오셔서 봉투를 써주셨습니다.”

“수고했어요.”

구건호는 오후 6시가 되어 퇴근을 위해 아래로 내려왔다. 정문 앞에 벤틀리 승용차가 시동을 건채 대기하고 있었다. 제복을 입은 빌딩 경비원이 차 문을 열어주며 구건호에게 경례를 붙였다.

차에 올라탄 구건호가 엄찬호에게 말했다.

“오늘은 도곡동 타워펠리스가 아니고 서울대 병원으로 간다.”

“서울대 병원요? 사모님한테 가십니까?”

“아니야. 거기 장례식장에 가. 경찰간부 한분이 상을 당해서 가는 거야.”

“아, 그러면 대학로 쪽 보다는 창경궁 쪽으로 가겠습니다. 장례식장은 그쪽으로 가는 것이 좋습니다.”

“차 많이 밀리겠지?”

“예, 좀 밀릴 겁니다. 퇴근시간이니까요.”

가는 도중 김영진 변호사의 전화를 받았다.

“상가 집 오늘 가니, 내일 가니?"

“나, 지금 가고 있어.”

“그래? 그럼 8시에 거기서 만나자.”

구건호는 국립극장 앞을 통과할 무렵 김영은에게 전화를 하였다. 문자를 보낼까 하다가 직접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응, 나야.”

“웬일이세요?”

다소 지친 음성으로 김영은이 물었다.

“지금 어디에 있나? 집인가? 병원인가?”

“”병원에요. 오늘 야간 당직이 있어요.“

“나, 지금 서울대병원 가고 있어. 조금 있으면 도착해.”

“어디... 아픈 건 아니지요?”

“아니야. 장례식장에 가. 아는 분 한분이 상을 당했어. 간 김에 당신 얼굴한번 볼까?”

“금요일 저녁에 볼 텐데.”

“그래도 병원까지 왔는데 얼굴은 한번 보고 가야지.”

“회진 있으니까 7시 반 넘어서 오세요.”

“알았어.”

차가 너무 많이 밀려 거의 8시가 다 되어 병원에 도착하였다. 구건호를 태운 벤틀리 승용차는 대학병원 정문을 지나 본관 현관 앞에 차를 세웠다.

구건호는 당직 의사실을 찾아갔다. 흰 가운을 입은 김영은은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구건호가 들어가자 김영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수는 없잖아.”

흰 가운을 입은 김영은의 목덜미 아래 흰 피부가 조명 불빛아래 더욱 눈이 부셨다. 청초한 백합과도 같았다.

구건호가 김영은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날마다 보고 싶어.”

김영은이 황급히 몸을 뺐다.

“이러지 마세요. 누가 들어오다가 봐요.”

“부부인데 어때?”

구건호가 멋쩍은 웃음을 띠며 말했다.

“너무 늦게까지 수고가 많은 모양이네.”

“저, 일이 좀 밀려있어요.”

“그래? 그럼 나, 갈게. 너무 무리하진 마.”

구건호가 돌아서서 손을 흔들었다.

“오빠!”

김영은이 나직히 구건호를 불렀다.

“미안해요. 잘해 드리지 못해서.”

구건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도 당신한테 잘해주는 것이 없어 미안해.”

김영은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장례식장엔 문상객들이 많았다. 제복을 입은 경찰간부 모습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구건호가 보낸 조화가 당당히 입구에 서 있었다.

“구건호가 돌아가신 분께 두 번 절하고 상주와도 절을 했다. 박 치안감이 장남인지 맨 앞줄에 서 있었다. 맞절을 하고나서 치안감이 말했다.

“총무님께서 이렇게 와 주셨네. 고맙소.”

박 치안감은 옆에 서있는 동생들을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구건호를 문상객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조의원님, 김장관님 다 저쪽에 앉아 계십니다.”

한쪽 구석에 정책대학원 원생 몇 명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평상 앞에 앉아 술들을 마시고 잇었다.

“오, 총무 왔소? 이리 앉으시오.”

구건호는 김변호사를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국회의원 한 사람이 구건호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총무는 기사 있지요?”

“예, 있습니다.”

“그럼, 몇 잔 들고 가슈.”

이진우 장관 모습은 없었다. 앞에 앉아있는 정책대학원 원생은 그리 친하지 않은 국회의원과 다른 부처의 장관이었다. 이들은 자기들끼리만 이야기 했다. 구건호가 공직자도 아니고 나이도 한참 어려 더욱 그랬다.

구건호가 김영진이 왔나 하고 일어서서 둘러보았다. 멀리 입구에 젊은 사람들이 앉아있는데 엄찬호의 얼굴이 보였다. 수행 기사들끼리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어, 늦어서 미안해!”

김영진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문상은 했나?”

“응, 지금 막 했어.”

김영진이가 오는 바람에 술을 몇 잔 더하게 되었다. 문상객들은 점점 많아졌다.

사람들이 빽빽하게 앉다보니 옆자리의 사람들과 가까이 앉게 되었다. 옆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50대 초반의 건장한 남자가 구건호를 자꾸 쳐다보았다. 구건호도 이 사람을 어디서 본 듯하여 자꾸 쳐다보았다. 하지만 기억은 통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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