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5
GH 소료(塑料) 유한공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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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건호와 엄찬호는 김민혁의 아우디 승용차를 타고 지에이치 기차배건 유한공사를 찾아갔다. 공장에 도착하자 구건호의 얼굴을 아는 간부 몇 사람이 인사를 하였다.
“아, 동사장님 오셨습니까?”
간부들은 구건호를 동사장이라고 불렀다.
“잘들 계셨어요?”
구건호는 이들에게 악수를 하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흠, 기계가 다 돌아가네.”
“100%가동이야. 대신 야간작업을 할 만한 수준은 못돼.”
퇴직 공장장도 구건호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잘 계셨어요? 건강해 보이시네요.”
“김민혁 사장님이 잘 해주어 편하게 있습니다.”
“잘 계시는 모습 보니 저도 좋습니다.”
“기계가 잘 돌아가니 늙은이의 업무량이 많지는 않습니다. 좋은 대우 받고 있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장장님 같은 분은 옆에 계셔 주는 것만 해도 든든하지요.”
구건호는 생산현장을 시찰하고 구내식당과 사무실, 회의실, 심지어 화장실까지 살폈다. 화장실이 지저분한 것 같아 화장실 장식을 새로 하라고 김민혁에게 말했다.
“돈 아까워하지 말고 해줘라. 종업원들에게 쓰는 돈은 나중에 그 보답이 다 돌아온다.”
“알겠어. 조치할게.”
김민혁이 사무실로 구건호와 엄찬호를 안내했다. 세 사람이 자리에 있었다.
“오마나, 구 사장님 아니야요?”
자세히 보니 구건호와 김민혁에게 중국어를 가르쳤던 조선족 조은화였다.
“오, 조은화씨!”
구건호도 반가워서 악수를 하였다. 김민혁이 웃으며 말했다.
“통역하다가 지금은 여기서 판공실 업무를 맡고 있어.”
“어? 그래? 잘 됐네.”
구건호는 경리에게도 인사를 했다. 경리도 구면이라 구건호가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콰이지스(회계사)도 오랜 만이요?”
“니하오! 동사장님.”
“아, 참 안과장! 이리 와 봐요.”
가운데 큰 책상에 앉아있던 남자가 왔다.
“지난번 채용했던 관리과장이야.”
“오, 그래?”
구건호보다 서너살 아래로 보이는 남자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한국기업에 있다가 한국기업이 철수하는 바람에 우리 회사로 왔어. 중국에 나온 지 7년이나 된 중국 통이야.”
“그래? 7년이면 중국일 빠삭하겠는데?”
“대학졸업 후 취업해가지고 바로 중국에 와서 일한 친구야. 대학도 내 후배야.”
“허허, 그래?”
“동사장님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반갑소. 결혼은 하셨소?”
“아직 미혼입니다.”
“열심히 하면 좋은 일이 많이 있을 겁니다. 유능한 사람이 들어와 나도 반갑소.”
김민혁이 너스레를 떨었다.
“이 친구가 와서 내가 마음 놓고 영업하러 다닌다니까.”
“좋은 동지를 얻어 김사장이 편하게 된 것 같네. 김사장 잘 보필해 줘요.”
“알겠습니다.”
구건호와 엄찬호는 김민혁의 안내로 소주시 평제로에 있는 딩딩의 회사로 갔다. 3층에 있는 그의 회사는 벌써 지에이치의 로고가 선명한 간판을 달았다. ‘GH 소료(塑料) 유한공사’란 상호가 붙어 있었다.
사무실에는 경리 혼자였고 사장실엔 딩딩 혼자였다. 딩딩이 반갑게 구건호를 맞이했다.
“동사장님 반갑습니다!”
구건호가 사장실 소파에 앉자 경리가 차를 가지고 왔다.
“여성들만 있어서 그런지 사무실이 깨끗하군요. 서양란 화분도 있고 딩펑선생 그림도 걸려있군요. 참, 딩펑 선생님은 건강하시죠?”
“예, 건강하십니다. 홍콩에 행사가 있어서 가셨습니다.”
“여기 사무실은 깔세라고 했지요?”
“예, 한국 돈으로 월 45만원 꼴입니다. 평수는 100평방미터 내외입니다. 한국 평수로 하면 30평 정도 됩니다.”
“여기 직원은 그럼 밖에 있는 경리 한사람인가요?”
“현재 직원은 모두 4명입니다. 창고에 있는 경비 두 사람을 직원으로 편입했습니다. 그래야 책임감을 갖고 일할 것 같아 그렇게 했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디욘코리아의 원재료는 현재 톤당 한국 돈 450만원에 들어오지요?”
“그렇습니다. 450에 들어오면 저희가 480에 나갑니다. 이윤율 6.6%입니다. 주 거래처는 지에이치 기차배건 유한공사입니다.”
이 말에 모두 웃었다.
“지난달 50톤 소화하셨다고요?”
“억지로 50톤 나갔습니다.”
“흠, 금액으로 2억 4천민원이군요. 50톤 나가면 한국 돈 1,500만원 떨어진다는 이야기네요.“
“그렇습니다.“
“그 정도면 돌아갈 만합니까?”
“이윤율이 10%도 안 되지만 저희는 제조회사가 아니라서 인건비나 경비 같은 것이 많이 안 나가 유지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흠, 그렇습니까?”
“사장님이 주신 10만 달러 자본금은 창업자금으로 많이 나갔습니다. 다음 달 부터는 수금이 되니까 큰 걱정은 안합니다.”
“지금 접촉하고 있는 염성 공장은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시제품을 생산하고 반응을 보고 있는 중입니다. 자동차 부품뿐만이 아니고 가전제품까지 생산하는 회사라 거래가 되면 주문량이 많을 겁니다.”
“거긴 어떻게 아신다고 했지요?”
“거기 회장님 아드님과 부인이 모두 미국서 공부할 때 같이 공부한 사람들입니다. 김민혁씨도 잘 압니다. 호호.”
“창고가 여기서 4키로 정도 된다고 했지요?”
“같이 가보시죠.”
구건호와 엄찬호, 김민혁이 모두 창고엘 가보았다. 경비원이 지게차로 원재료 들어온 걸 상차시키고 있었다.
“지게차는 중고로 한 대 샀습니다. 마침 경비아저씨가 지게차 운전을 할 줄 알아 일을 시키고 있습니다.”
“여기 창고에 물건을 꽈 채우면 100톤은 가능하지요?”
“맥시멈 100톤은 가능합니다.”
구건호는 창고 옆에 붙은 현장 컨테이너 사무실도 들어가 보았다. 책상도 있고 원형 테이블도 있었다.
“작업지시는 전화로 합니까?”
“전화로도 하고 이메일로도 합니다. 이메일로 보낸 물품명세서를 출력시켜 성적서와 함께 납품할 때 같이 보냅니다.”
“평제로에 있는 사무실에서 여기 창고까지는 아까 보니까 약 15분 정도 걸리네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물건 사달라고 하면 제가 직접 여기 옵니다. 거의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들립니다.”
“흠, 잘 보았습니다.”
“지금 경비원이 2명인데 3명은 있어야 할 것 같아 1명을 더 채용하려고 합니다. 3교대해야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물량이 많아지면 화물트럭도 사야할 것 같네요.”
“수송은 우선 용역주고 있습니다. 운송비가 많이 들어가 원재료 공급단가를 좀 낮추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건호가 빙그레 웃었다.
“돌아가서 실무진들과 협의해 보겠습니다.”
구건호 일행은 소주시의 평제로 사무실 근방의 식당으로 안내되었다. 2층 식당인데 대리석을 깔아 깔끔했다.
“소주의 전통음식들이니 들어보세요.”
소주의 전통음식인 수정효육(水晶肴肉)이나 삼투압(三套鴨) 같은 음식들이 나왔다. 구건호는 어제 설사기운이 없어 많이 먹지 못했지만 엄찬호는 트림까지 하며 엄청 먹어댔다.
소주시 공항에서 헤어질 때 김민혁은 술을 4병이나 선물했다.
“술 4병인데 2병씩 밖에 못가지고 들어가 더 이상 못주네.
구건호는 면세점에서 향수와 남성용 지갑과 벨트가 든 세트 두개 사고 담배도 두 보루 샀다. 담배는 엄찬호에게 주었다.
“나는 담배를 많이 안 피니 이 담배는 모두 너 가져라. 임태영에게 한 보루 줘라.”
“알겠습니다.”
엄찬호의 입이 함지박 만하게 벌어졌다.
구건호는 저녁 무렵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세워둔 벤틀리 승용차 주차료는 꽤 많이 나왔다.
“주차비 영수증 잘 챙겨라.”
구건호는 디욘코리아 법인카드로 주차비를 정리했다. 구건호는 3개회사 법인카드를 가지고 다녔다.
퇴근시간이라 밀리긴 했지만 저녁 8시경 타워팰리스에 도착하였다.
“찬호가 수고 많이 했다.”
‘사장님 덕분에 구경도 잘하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은 금요일이니까 내일 모레는 푹 쉬어라.”
“그럼 월요일 뵙겠습니다.”
구건호가 차에서 내리자 엄찬호가 불렀다.
“사장님, 이 술 두병은 챙기지 않으셨네요.”
“그 술 2병은 네 꺼야. 각자 2병씩 가져가면 돼.”
“4병 다 사장님 꺼 아니에요?”
“아냐, 두병은 네 꺼야.”
“사장님 가 감사합니다.”
엄찬호의 입이 또 벌어졌다.
금요일이라 집에는 김영은이 와 있었다. 문소리가 나자 현관 앞에 나온 김영은이 구건호가 들고 온 물건을 받아 주었다.
“지금 오세요? 이게 다 뭐에요?”
“술하고 내 소지품들이야.”
“얼굴이 까칠해 보여요.”
“내가 설사를 해서 그런 모양이야. 참 당신이 엄찬호에게 준 약은 고마웠어.”
“설사약은 드셨어요?”
“먹었어.”
“저녁 식사 못했죠?”
“아무것도 먹기 싫고 밥에 김치 한 가지만 있으면 돼.”
김영은의 태도는 일본에서 돌아올 때와 확연히 달랐다.
[여자란 정말 그런 걸 느끼는 건가?]
구건호가 씻고 나오자 김영은이 저녁을 차려 주었다. 김치 외에 된장찌개와 반찬가게서 사온 밑반찬 몇 개가 더 있었다. 계란도 하나 부쳐주었다.
“당신은 먹었지?”
“아녜요. 오빠 오는 날짜라 안 먹고 있었어요.”
“이렇게 늦으면 먼저 먹어. 배고프잖아?”
김영은이 구건호를 쳐다보고 미소를 지었다. 미소 짓는 얼굴이 귀여워 뺨에 뽀뽀를 해주었다.
밥을 먹고 나서 김영은이 과일을 깎아주었다.
“설거지 하지 마세요. 장거리 여행으로 피곤할 테니까.”
구건호가 가방에서 술과 지갑, 벹트 세트를 김영은에게 주었다.
“신림동 아버님 갖다드려.”
“인천 아버님은요?”
“여기 또 있어.”
구건호는 김영은과 안방 침대에 나란히 누었다.
잠옷을 입고 나란히 누우니 김영은의 따뜻한 체온이 포근하게 느껴졌다. 김영은을 껴안으며 말했다.
“집이 최고다. 아늑한 방이 있고 이렇게 사랑스런 부인이 있으니까.”
“아까, 나 무서웠어.”
“왜?”
“오빠가 안 오면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했어. 넓은 아파트에서 혼자 자려니까 무서웠어.”
“내가 금요일 온다고 했잖아?”
“그래도 하루 이틀 연장되어 늦게 오면 어떻게 하나 했어.”
“나 보고 싶었어?”
“바빠서 그럴 시간도 없었어. 요즘 일이 많아.”
“무슨 일이 그렇게 많아?”
“주치의 수술하는 것도 도와야하고, 환자 체크도 해야 하고, 회진 따라 다녀야하고, 서류 작성하는 일도 많아.”
“종아리 아프겠구나.”
“종아리에 살이 박힐 때도 있어.”
“내가 풀어줄게.”
구건호가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김영은의 종아리를 주물러주기 시작했다.
“시원해?‘
“응.”
“시원해?”
김영은은 대답대신 겔겔 거리고 웃었다.
“지난번에 내가 일본 갔을 때는 왜 그렇게 토라졌었어?”
“내가?‘
“그땐 찬바람 휘휙 돌데?”
“그땐 이상하게 오빠가 뺀질거리는 남자 같았어.”
“내가? 왜?”
“나도 몰라. 그냥 싫었어.”
“오늘은?”
“오늘은 아까 들어오는데 보니까 불쌍해 보였어.”
“내가 왜 불쌍해?”
“몰라. 얼굴도 수척해진 것 같고 등도 굽어보였어.”
“내가 그랬나?”
“오빠한테 중국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중국 냄새? 아까 씻었는데?”
“호호, 기분에 그래.”
“중국 바람 쏘이고 와서 그런 모양이다.”
“당신 중국 어디어디 가봤어?”
“북경에 딱 한번 가보았어. 의학 학술 발표회 때 갔다가 북경대 병원도 가보고 그랬어.”
“그래? 북경대 병원은 어때?”
“병원들 다 그렇지 뭐. 약타는 곳에 갔다가 배꼽 잡았어. 진짜 약방(藥房)이라고 팻말이 붙어있어서 같이 간 사람들 모두 웃었던 기억이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