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9
모리 에이꼬의 눈물 (1)
(259)
김민혁의 주간 업무 보고서가 올라왔다.
[딩딩이 추진하고 있는 염성(鹽城: 옌청)의 중국기업 접촉은 초도물량 1톤이 발주된 상태임.
딩딩의 창고가 쑤저우 공업원구에 있어 공업원구에 입주한 한국기업의 주문량이 증가하고 있음.
수입한 디욘코리아 원재료 50톤의 소화는 문제 없을듯함.]
[내가 맡고 있는 기차배건 유한공사도 디욘코리아 원재료 사용처의 신규 주문 증가로 지난달 매출 월 7억을 실현하였음.]
구건호가 답신을 보냈다.
[향후 중국기업 확대를 위하여 30세 전후의 젊은 인재를 양성하여 놓을 것.]
구건호가 지에이치 모빌로 출근하는 날이지만 직산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결혼 하고나서 구건호는 직산공장이나 아산공장, 성환공장에 내려가는 일이 뜸해졌다. CEO라고 할만한 사람들이 책임 경영을 하므로 자기가 일일이 간섭할 필요도 없었다.
지에이치 모빌로 출근하지 않자 송장환 사장이 주간업무 보서서를 보내왔다.
[클라이슬러 주문량 소폭 증가함. 지난달 매출 70억 돌파하였음. 하반기엔 월 매출 80억 돌파를 위해 전 사원 독려중임.]
구건호는 혼자 생각해 보았다.
[월 매출 80억이면 1년이면 960억. 내년이면 1천억 돌파하겠네. 지난해 흑자니까 올해 말, 내년 말, 재무제표 나오면 바로 코스닥 등록 예비심사 청구한다. 현재 모빌의 내 자본금은 50억이다. 상장 후 주식 평가액 5배나 6배만 튀어라.
벤처기업이나 신약을 개발한 제약회사는 아니고 굴뚝 기업이니까 10배 이상은 안 되겠지. 하지만 5배만 뛰어도 내 주식 평가액은 250억으로 늘어난다.]
[모빌과 디욘을 상장시킨 후 지에이치 그룹을 선포하고 나는 회장으로 물러앉는다. 결혼까지 했고 그때는 나이도 40세가 되니까 회장이 되어도 누가 뭐라는 사람은 없겠지.]
구건호는 상해에 있는 리스캉이 자기를 만나고 싶어 하므로 중국을 갈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모리에이꼬를 먼저 만나기로 했다. 모리에이꼬를 만난 지 오래되었고 최근에는 꿈자리에도 나타나 뒤숭생숭 했기 때문이었다.
구건혼는 모리에이꼬에게 문자 메세지를 보냈다.
[다음주 화요일 일본 출장 예정임]
모리에이꼬에게 답신이 왔다.
[지금 타이완에 와 있음. 다음 주 화요일까지 동경으로 돌아가겠음.]
“타이완? 얘가 타이완에 왜 갔을까? 공연 때문에 갔나? 한번 물어볼까? 에이, 관두자. 일이 있어 갔겠지. 아니면 관광을 갔거나 그랬겠지.”
구건호는 일본엔 이틀 밤만 보내고 오기로 했다. 결혼을 한 사람이 다른 여자를 만나는 건 아무래도 본처에게 미안하기 때문이었다.
[중국을 갔다 오면 또 바로 중국엘 가자. 중국에서 리스캉을 만나고 귀주성까지 가려면 혼자 보다는 누굴 데려갈까? 중국어는 나도 할 줄 아니까 중국어를 잘 하는 사람이 꼭 필요한건 아니니까 회사 직원을 데려가지. 그보다는 엄찬호를 데려갈까? 이 녀석 중국 못 가봤으니 같이 가자고 하면 엄청 좋아할걸.]
[그래, 중국에서 혼자 다니면 초라해 보이니까 보디가드 겸 엄찬호를 데리고 가자.]
구건호는 사장실로 엄찬호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너, 여권 있냐?”
“없는데요.”
“하나 만들어라. 우선 여권용 사진부터 찍어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사진 나오면 여권발급 신청해라.”
“시청에 가면 되나요?”
“너 주소가 어디로 되어있지? 사당동이냐?”
“네.”
“그럼 동작구청에 가면 된다. 사진 여러 장하고 신분증 들고 가면 해준다.”
“그런데 어딜 가십니까?”
“너 중국 못 가봤지?”
“못 가봤는데요?”
“다음 주에는 내가 일본 가므로 안 되고 다다음주에 중국 가니까 그 안에 비자까지 받아놓아라.”
“비자는 중국대사관 가면 되지요?”
“여행사에서 대행해 주니까 정지영 대리에게 맡겨라.”
“알겠습니다.”
엄찬호는 밖에 나와서 폴짝 뛰었다.
“얏호! 나도 중국 간다!”
박종석이 딸을 낳았다는 전화가 왔다.
“순산했다고? 축하한다.”
“우리 엄마는 아들이면 더 좋았을 거라고 하시던데?”
“요즘은 딸이 더 좋지. 딸 나면 금메달이고 아들 나면 목메달이라고 하잖아?”
“하하, 그런가?”
“딸이면 널 담지 말고 제수씨 닮아야 할 텐데.”
“날 닮았다고 하네. 붕어빵이래. 난 잘 모르겠는데.”
“하하, 그래? 네 기가 더 셌던 모양이다. 미래의 보배니까 잘 키워라. 요즘 아이 잘 안 낳으려고 하는데 너는 자식 낳았으니 애국자다.”
“고마워.”
“부모님은 이사 하셨지?”
“하셨어.”
“어디로 오셨냐?”
나 사는 곳하고 같은 두정동이야. 이편한세상 아파트로 오셨어. 깨끗하고 좋다고 하셔.“
“가족들이 같은 동네에 사시니까 의지가 되고 좋겠다.”
“엄마는 하나 더 낳으라고 성화야.”
“그래, 하나 더 낳아라.”
“형은 소식 없어?”
“장가 간지 얼마 되었다고 소식이 있냐? 인천 주안에서 코 흘리고 다닐 때가 엊그제 같은데 딸을 낳았다니 실감이 안 난다. 이제 어엿한 부모가 되었구나. 진짜 축하한다.”
“헤헤, 고마워.”
구건호는 박종석 전화를 끊고 모빌의 경리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생산부 박종석 이사 계좌번호 좀 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급여 나가는 통장 계좌번호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문자 찍어줘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구건호는 경리이사가 알려준 박종석 계좌로 100만원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문자를 보냈다.
“종석아 진짜 축하한다. 100만원 보내니 제수씨에게 미역이라도 사 드려라. 자식을 낳아준 제수씨한테도 고맙구나.”
문자를 보내자 바로 박종석이 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 형, 왜 돈을 보내?”
“미역이라도 사 먹어야지.”
“그러면 내가 너무 미안하잖아.”
“너한테 보낸 것 아니다. 제수씨한테 보낸 거다.”
“형, 고마워.”
토요일이 되었다.
구건호는 김영은과 함께 손을 잡고 청계산 등산을 갔다.
“오빠, 나 다음 주에는 집에 못 와. 토, 일요일 당직이 있어.”
‘신혼인데 안 봐줘?“
“지금껏 봐준 거야. 의사들은 야간 당직이 많아.”
“거기 그만 두고 이리 와라. 병원 안 차리면 여기 개인병원 의사라도 들어가지 그래?”
“조금 더 있어 봐.. 아직은 빨라요.”
“나도 다음 주에는 일본 출장 가.”
“일본? 회사가 일본하고도 거래하나?”
“그럼, 일본도 하고, 미국이나 중국도 해.”
“그럼 갔다 와야겠네. 몇 일간 출장인데?”
“화요일 갔다가 목요일 저녁에 와.”
“그래?”
“그리고 그 다음 주는 중국에 가.”
“중국은 몇 일 인데?‘
“중국은 가봐야 돼. 서쪽 끝에 있는 귀주성까지 갔다 올 거야.”
“귀주성?”
“서쪽 끝이라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티베트야.”
“어머나, 그렇게 멀리?”
“비행기 타고 가니까 금방이야.”
“몸 조심 하고 다녀와요.”
청계산은 층층대가 많았다. 한참 올라가다 보니까 김영은이 뒤에 처져서 오고 있었다.
“영은아! 빨리 올라와. 힘들어?“
내려가던 아줌마가 구건호에게 웃으며 말했다.
“부부간이요?”
“예, 그렇습니다.”
“이름을 막 부르네. 여보, 당신 안 해요?”
“예? 아, 예.”
김영은이가 구건호 있는 곳으로 올라왔다.
“어휴, 숨차. 저 아줌마가 뭐라고 하는 거야?”
“여보, 당신 소리 안하고 부부간에 이름 부른다고 흉보네.”
“오지랖 넓은 아줌마네.”
“이제부터 내가 여보라고 부를게. 여보!”
“여보? 아휴, 징그러워.”
“당신도 그렇게 불러봐.‘
“당신? 풋! 난, 오빠가 편한데?”
김영은은 깔깔 웃었다.
밤에 잘 때 구건호는 이불 속에서 김영은에게 여보라고 불렀다.
“여보, 이리와!”
김영은은 여보 소리가 우스운지 또 깔깔대고 웃었다.
“여보, 뭐가 그렇게 우스워?”
구건호가 김영은의 뺨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당신도 여보라고 해야지. 여보, 사랑해!”
김영은은 마침내 폭소를 터트렸다.
“으하하, 징그러워.”
“여보. 뭐가 이상해? 안 그러는 게 이상하지. 여보라고 해봐.”
“여보옹”
마침내 이 소리를 하고 김영은이 구건호의 가슴을 두 팔로 감싸 안으며 킥킥거렸다.
화요일이 되었다.
구건호는 오후 늦은시각 김포공항에서 동경 가는 비행기를 탔다. 면세점에서 약간의 선물을 사갖고 다이칸야마의 맨션으로 올라가는 구건호는 심정이 착잡했다.
“결혼 했다고 말할까?”
모리에이꼬가 충격이 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건호는 모리에이꼬가 자기를 단순 후견인이 아닌 연인으로 생각해 주는 것이 늘 고마웠다. 모리에이꼬는 구건호와의 잠자리에서도 의무감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 주었었다.
모리에이꼬는 집에 있었다. 그런데 전에처럼 반가워서 달려들거나 음식을 준비하거나 그런 것이 없었다.
“오빠!”
“잘 있었어? 보고 싶었다.”
구건호는 작고 예쁜 요정을 얼른 껴 앉았다. 전 같으면 목을 잡고 팔짝 팔짝 뛰던 아이가 오늘은 이상하게 나무토막처럼 서 있기만 했다. 그리고 구건호의 허리를 감은 채 말했다.
“오빠, 어디 안 갈 거지?”
“가긴 어딜 가. 여기 있지.”
“나 오래 동안 사랑해 줄 거죠?”
구건호는 울고 있는 모리에이꼬의 작은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나, 오빠 온다는 문자 받고 좋아했는데 토요일 꿈을 꾸었어.”
“무슨 꿈?”
“오빠하고 내가 새가 되었는데 나는 작은 새였고 오빠는 큰새였어.”
“하하, 그런가?”
“큰새가 돤 오빠가 먹이를 가져와 작은새가 된 내 입에 넣어주고 날아갔어.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어. 작은새가 계속 울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았어.”
그러면서 모리에이꼬는 계속 눈물을 흘렸다.
구건호가 생각해보니 모리에이꼬가 꿈을 꾼 시각은 자기가 김영은과 여보 당신하며 침대위에서 정사를 벌이던 시간이었다.“
“흠, 꿈은 안 맞아. 그냥 개꿈이야.”
구건호는 씻지도 안은 채 울고 있는 모리에이꼬의 옷을 벗겼다. 그리고 격렬하게 입을 맞추며 정사를 벌였다. 모리에이꼬는 눈을 감은채 수동적으로 구건호에게 몸을 맡기고만 있었다.
구건호는 정사후 옷도 벗지 않은 채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얼마를 잤을까?
구건호는 주방 쪽에서 소리가 나는 것 같아 일어나 보았다. 모리에이꼬가 주방에서 무엇을 먹고 있는 것이 보였다. 구건호가 시계를 보니 밤 2시가 넘은 것 같았다. 물이라도 마시려고 구건호가 주방으로 가다가 모리에이꼬를 보고 놀랐다. 모리에이꼬는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을... 마시고 있었나?”
모리에이꼬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잔 하시겠어요?”
모리에이꼬는 식빵을 안주삼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구건호는 출출하여 모리에이꼬 앞에 앉았다. 구건호는 모리에이꼬가 따라주는 술을 단숨에 마시고 식빵을 뜯어먹었다. 모리에이꼬가 다시 술을 따라 주었다.
모리에이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이제 결혼 하셔야지요.”
구건호는 대답대신 한숨만 쉬었다. 결혼했다는 말이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미안하구나. 모리에이꼬.]
“밤이 깊었구나. 그만 자자.”
“오빠는 젊고 돈도 많은 분이에요. 아마 내가 모르는 여자들도 많을 거예요. 에이꼬는 많은 여자들 중 한때나마 오빠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할게요.”
“쓸데없는 소릴 하는구나.”
“저, 내일 타이완으로 다시가요. 드라마 촬영하다가 오빠 온다는 소리 듣고 잠깐 온 거예요.”
“오, 드라마를 찍나? 거기서 무슨 역할을 해?”
“게이샤요.”
“게이샤?”
“항일 첩보원이 공작업무를 위해 일본에 들어왔다가 게이샤를 사랑한다는 줄거리에요. 주연은 아니고 조연이에요.”
“흠, 그래?”
“진짜 춤추는 게이샤가 출연한다고 타이완 신문에 떠들썩해요.”
“흥행에 성공했으면 좋겠다.”
“날이 새면 저 공항으로 나가봐야 돼요. 오빠하고 함께 못 있어 죄송해요.”
“만났으니 됐다. 촬영 마치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라.”
구건호는 에이꼬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고 침대에 눕혔다.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라.”
모리에이꼬는 또 울면서 구건호의 얼굴을 두 팔로 감싸 안고 이번엔 자기가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