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8
운송 합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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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엔터테인먼트 이사는 계속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구사장님이 상해의 시정부에 좋은 꽌시가 있는 것은 잘 압니다. 상해에 드라마 제작사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드라마는 콘텐츠 싸움인데 무작정 사업이 될 거냐고 물으시면 제가 답변하기가 어렵습니다.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흠, 일리 있는 말이요.”
“중국의 드라마는 대개 30회가 넘어가는 대작들이 많습니다. 사업을 하신다면 이 비용을 감당하셔야 합니다.”
“드라마 한편 찍는데 비용이 얼마나 들어갑니까?”
“드라마는 사극이냐 현대물이냐 등 여러 가지 종류별로 다 다르기 때문에 뭐라고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만 점점 증가추세인 것만큼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금액이 있을 것 아니요?”
“중국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의 경우 회당 3억이 넘는 것도 많습니다.”
“그렇게나 많아요?”
“출연자 캐런티와 작가에게 지출하는 비용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중국 드라마처럼 30회 찍는다면 90억 들어가겠네요? 시청률 저조하면 한방에 돈을 날릴 수도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흠, 조심해야 되겠군.”
“사장님이 하신다면 일단 유리한 것은 있습니다. 재력이 있으신 분이니까 다른 사람처럼 제작비 때문에 쩔쩔 매진 않을 것 같습니다. 또 상해시의 높은 분들을 알고 있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그 사람들이 크게 도와줄 일이 있는가요?”
“중국은 공산당의 나라라 정부의 검열이 까다롭습니다. 방송사의 갑질 또한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나라인데 시 정부의 고위층을 안다는 것은 아주 큰 장점입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컨텐츠 내용이 제일 중요합니다.”
“컨텐츠는 어떻게 확보합니까?”
“좋은 작가를 섭외하셔야지요. 저, 차 한잔 들겠습니다.”
“예, 드세요.”
구건호도 차를 한잔 마시면서 말했다.
“중국 드라마니까 중국 작가를 섭외하나요?”
“중국도 될 수 있고 우리도 될 수 있습니다.”
구건호가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기생오라비 같은 친구가 틀린 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구먼.]
“혹시 구사장님이 중국과 합작으로 제작사를 운영하신다면 국내 연예인을 참여시키는 건 도와 드릴 수 있습니다. 중국은 톱스타가 드라마를 거의 독점하고 있어 한국 연예인을 쓰는 제작사도 가끔 있습니다. 일단은 신중히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 가지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BM엔터테인먼트의 이현만 사장님은 잘 계시죠?”
“예, 잘 계십니다. 구사장님께서 안부 전한다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오늘 오디션 심사가 있어 먼저 일어서겠습니다.”
BM엔터테인먼트 이사가 정중히 인사를 하고 구건호 방을 나갔다.
구건호는 언젠가 상해의 리스캉 국장이 한말을 곰곰이 새겨 보았다.
[중국에 드라마 제작사를 하는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있네. 이들이 재주는 있지만 제작비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번 손잡고 일해 볼 생각 없는가?]
구건호는 드라마 제작은 자기가 잘 모르는 분야이고 함부로 투자했다가 돈만 날리는 수가 있으므로 이 문제는 시간을 두고 검토해 보기로 하였다.
리스캉과 왕지엔이 일단은 자기 결혼식에 화환이라도 보내 준 친구들이기 때문에 인사는 해야 될 것 같아 전화를 했다.
“지금은 회의 중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중국어로 된 안내방송이 나왔다.
“공산당 회의라도 하는 모양이군. 공산당은 평소에도 회의가 많아.”
구건호는 투덜대며 이번엔 왕지엔에게 전화를 했다.
“왕지엔? 나네. 구건호!”
“오, 구건호! 반갑다.”
“내 결혼식 때 화환 보내주어 고맙다.”
“고맙긴, 당연하지. 직접 한국을 방문해서 결혼식을 축하해 주어야 하는데 못가서 미안하다.”
“별소릴! 혹시 리스캉 만나면 내가 고맙다고 한다고 말 좀 전해라. 전화 거니까 회의 중이라는 멘트만 나온다.”
“진짜 회의 때문일 거야. 그렇지 않아도 리스캉이 구사장을 한번 만나보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어.”
“왜?”
“직접 들어봐.”
퇴근 무렵 쯤 해서 리스캉에게서 전화가 왔다.
“구사장? 미안하다. 전화를 못 받아서.”
“많이 바쁜 모양이지?”
“아냐, 쓸데없는 회의가 많아서 그래. 드라마나 영화 검열을 강화하라는 회의네.”
“뭘 그렇게 강화하나?”
“당 정책과 위반되는 것들을 골라내라는 거야.”
“어떤 내용들인데?”
“이를테면 너무 잔인한 장면이나 천안문 사태와 파룬궁 같은 정치적 내용을 담는 것들에 대한 검열이지.”
“흠”
“또 있어. 불륜이나 미신 같은 것, 동성애 나오는 장면 등은 무조건 몽둥이를 들라는 이야기야.”
“하하, 그럼 뭐 재미가 없겠는데?”
“그건 그렇고 중국 한번 안 올래?”
“한번 갈게.”
“김민혁 사장 이야기 들으니까 구사장이 운송회사도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아, 그거? 물류 수송하는 회사야. 중장비 대여도 하고 그래. 크진 않아.”
“내 친구가 귀주성(貴州省)의 작은 도시 부시장으로 간 친구가 있어. 한국의 운송회사를 아는 데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하네. 한번 만나볼 생각 없나?”
“만나는 거야 어렵지 않지. 그런데 내가 투자 여력은 없어.”
“그래도 한번 만나봐라. 상해로 와라. 상해에서 귀주성 성도(省都)인 귀양(貴陽)까지 가는 비행기가 있어.”
“알았다.”
김영은이 금요일 일찍 와서 된장찌개를 끓였다. 인천 구월동 아파트로 신행을 갔을 때 엄마한테 된장찌개 만드는 법을 배워서인지 한번 솜씨를 내본 모양이었다. 지난번 보다는 맛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맛이 없었다.
“내가 이 여자하고 살다간 만날 맛없는 반찬만 먹게 생겼어.”
그래도 구건호는 맛있다고 해 주었다.
“맛있지? 그렇지?”
“그래 맛있다.”
김영은은 삼겹살을 조금 구워서 내 놓았다. 고기야 구우면 다 맛이 있었다. 김영은은 삼겹살을 상추에 싸서 잘도 먹었다.
“천천히 먹어. 안 뺏어 먹을 테니까!”
김영은이 궁시렁 거렸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데.”
구건호는 그래도 김영은이 자기 처라고 고기를 몰아서 김영은 앞에다 놓아주었다. 김영은이 잘 구어진 삼겹살을 상추에 싸서 구건호 입에 넣어주었다.
“앙 해봐!”
“앙”
“어휴! 오빠 입도 크다!”
“무슨 입 같아?”
“메기입 같아.”
“메기 봤어?”
“봤지.”
“먹어봤어?”
“아니.”
“잡아봤어?”
“그걸 어디 가서 잡아?”
“난 잡아봤어. 낚시로.”
“다음부터 살생은 하지 마.”
결혼하고선 그래도 둘이 이불 속에 누울 때가 가장 좋았다.
“덥지?”
구건호가 김영은의 분홍색 잠옷의 단추를 풀러 주었다. 하얀 속살이 들어났다. 김영은은 의외로 속살이 새하얗다. 속살은 모리에이꼬나 설빙보다도 더 하얗다. 모리에이꼬나 설빙은 직업상 살이 찌지 않기 위해서 운동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라 살이 뻣뻣한 것 같은데 김영은은 무척 보드라웠다. 화장을 전혀 안 해서 그렇지 화장을 한다면 설빙이나 모리에이꼬에게 뒤지지 않을 것 같았다.
“쪽!”
구건호가 김영은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나 보고 싶지 않았어?”
“아니.”
“난, 보고 싶었는데?”
“쪽!”
구건호가 또 입을 맞추었다.
김영은이 팔을 뻗어 구건호의 코를 잡아당기고 귀를 잡아 당겼다.
“오빤 꼭 바보같이 생겼어.”
“영은이는 선녀같이 생겼다.”
“정말?”
“응, 바보의 눈에는 바보만 보이고 신선의 눈에는 선녀만 보이는 법이거든.”
이불속에서 김영의 발이 날라 왔다.
“어이쿠!”
구건호가 김영의 잠옷을 벗기고 시작했다. 그리고 소등을 하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구건호는 다시 불을 켰다. 그리고 수건으로 김영은의 얼굴에 있는 땀을 닦아주었다.
“오빠 내일 어디 안가지?”
“가긴 어딜 가. 영은이 옆에 있어야지.”
“내일 포천가자.”
“포천? 아가리 큰 메기 잡으러?”
이불 속에서 김영은의 발이 또 날라 왔다.
“어이쿠.”
“오빠 나랑 같이 포천 우리엄마 산소에 가자.”
“한식날 안 가고?”
“한식날 차 많이 막혀. 내일 가요.”
“그래, 가자. 바람도 쏘일 겸.”
“고마워요.”
“그런데 뭘 가져가야 되는 것 아니야? 술 같은 것 말이야.”
“내일 내가 준비할게. 오빠는 그냥 몸만 오면 돼.”
토요일 아침이 되었다.
아침을 먹고 난 김영은은 밖에 나가더니 무엇을 한보따리 사왔다.
“그게 뭐야?”
“산소에 가져갈 것.”
“과일도 사고 술도 사고 명태포도 샀네? 이건 뭐야? 나물하고 부침개 전 아냐? 이런 거 어디서 샀어?‘
“우성아파트 건너편에서 샀어. 맛있는 찬이라는 반찬가게가 있어요.”
“거기 반찬가게 있다는 건 또 어떻게 알았어?”
“우성아파트에서 친구가 살았었어.”
“허허, 그래?”
구건호는 랜드로버를 몰고 동부 간선도로로 들어왔다. 중랑천 변을 지날 때 노래가 나왔지만 산소 가는 길에 노래 부르는 것이 결례가 될 것 같아 그만 두었다.
“영은아, 고맙다. 결혼하기 전에는 일요일 날 낮잠이나 자고 TV만 보았는데 이렇게 영은이와 함께 하니 좋다.”
“앞만 보고 가요! 뒷 차 빵빵거리잖아.”
차는 포천시내를 지나 계속 달렸다. 구건호가 자주 가던 신북면 낚시터를 지나고 계속 달렸다. 만세교를 지나 영중면에 있는 하늘 공원묘원까지 왔다.
“엄마는 매장하셨나?”
“화장 후 매장했어. 저기 두 번째 줄 좌측이에요.”
오늘 산소에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봄바람이 살랑대고 불고 있었으며 하늘엔 구름 몇 조각이 두둥실 떠 있었다.
“여기 맞아?”
김영은이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구건호가 차에서 가져온 돗자리를 폈다.
김영은이 가져온 과일과 음식을 묘지 앞 상석에 올려놓았다.
“음식을 올려놓는걸 보니 기독교 집안은 아닌 것 같네.”
“우리 아빠가 유교 쪽이에요.”
“어쭈? 음식 배열을 그럴듯하게 놓네.”
“아빠 오실 때 따라와서 봤어요.”
김영은이 술을 따르며 말했다.
“엄마, 저 왔어요. 저 결혼했어요. 사위하고 같이 왔어요.”
김영은이 구건호를 쳐다보며 쓸쓸히 웃었다.
“우리 엄마한테 절 좀 하세요.”
구건호도 술을 한잔 올리고 절을 했다.
구건호가 절을 하고나자 김영은이 엄마 산소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김영은은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있었다. 구건호가 지루하게 왔다 갔다 했다. 김영은은 돌부처처럼 계속 그러고만 있었다.
“이제 그만 일어나라. 무릎 아프겠다.”
구건호가 말을 붙이자 김영은이 고개를 약간 들었다. 구건호는 김영은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랏다. 김영은은 울고 있었다.
“엄마, 미안해!”
김영은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눈물이 비 오듯이 깔아 논 돗자리 위로 떨어졌다.
“엄마, 미안해! 약속을 못 지켜 미안해.”
김영은은 흐느껴 울었다.
“자, 자. 이제 그만 일어나.”
구건호가 김영은을 부축해 일으켜 세우며 수건을 주었다.
“얼굴 닦아라.”
김영은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구건호를 향해 미소를 보내주었다.
“오빠, 미안해.”
한줄기 봄바람이 김영은의 얼굴을 살짝 스쳐갔다. 김영은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