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257화 (257/501)

# 257

아파트 증여 (2)

(257)

아빠는 바로 아파트 증여 수속을 밟았다.

법무사 수수료도 다 내고 세금도 냈다. 그리고 구건호에게 전화했다.

“증여수속 다했다. 나중에 등기부등본 떼서 너한테 보내줄게.”

“보낼 필요 없습니다. 인터넷 확인이 가능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누나한테 전화가 왔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아파트 50%를 나한테 증여한다고 했나?”

“응, 수속 다 마쳤어.”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안 된다!”

“이미 아빠가 다 했어.”

“네가 피땀 흘려 마련한 집을 왜 나한테 증여를 하냐? 말도 안 돼.”

“100%증여는 아니야. 50%증여야. 그동안 부모님 모신 것에 대한 내 고마움의 표시야.”

“내가 그동안 너한테 신세 진 것이 얼마냐? 50평짜리 아파트를 그렇게 한강물에 던지듯 하면 어떡하냐?”:

“누나도 집이 있어야 안정감이 있잖아. 엄마 아빠 돌아가시면 자동적으로 나머지 50%도 절반은 누나한테 가게 돼있어. 누나집인 셈이야. 내가 부모님을 모실 입장이 못돼서 그러니 받아 둬.”

“그래도 너무 큰 것을 갖게 되어 무섭고 떨린다.”

“무섭긴! 강남의 우리 집 와봤지? 20억짜리야. 거기 구월동 아파트는 3억 밖에 더 가겠어? 그 집에 대한 미련 추호도 없어. 영은이도 그게 누구 건지도 몰라.”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또 그 소리!”

“엄마, 아빠는 내가 돌아가실 때까지 잘 모실 테니 걱정하지 마라.”

“아, 그리고 아까 누나 통장으로 3,500만원 보낸 것 확인해 보았어?”

“3,500? 모르겠는데?”

“아빠 그랜저 한 대 사드려. 취득세나 등록세 같은 것 모자라면 나한테 이야기 하고.”

“고맙다. 정말 고맙다.”

구건호의 누나는 사실 부모님하고 같이 사는 게 유리했다.

우선 부모님이 함께 사니까 정아를 맡길 수 있어 좋았다. 또 아빠는 지에이치 모빌에서 비상근 이사 급여가 매월 300만원씩 나와 살림에 보탰기 때문이었다. 아파트의 관리비나 가스비는 모두 아빠가 부담했고 쌀이나 반찬도 아빠나 엄마가 샀다. 더구나 노인들이라 특별히 돈도 잘 쓰지 않고 정아의 학용품이나 옷 같은걸 자주 사주어 누나도 저축하는 재미가 요즘은 쏠쏠했던 것이었다.

구건호가 사무실에서 경제신문을 보고 있는데 알림 톡이 왔다. 스마트폰을 열어보니 사회단체에 있다는 동창 강민호에게서 온 것이었다. 계좌번호를 보내왔다. 수취인은 민중 진보연합이란 단체였다.

구건호는 지에이치 모빌의 김민화 경리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리이사요? 나, 사장이요.”

“예, 사장님. 접니다.”

“민중 진보연합이란 사회단체가 있는데 100만원만 보내주세요. 내가 계좌번호하고 거기 전화번호를 문자로 보내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전화해서 영수증 달라고 하세요. 정부 지정 기부금 단체라고 하니까 회사에서 비용 처리해도 될 거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구건호는 너무 많은 금액을 보내주면 요구가 점점 커질 것 같아 일반 상식선의 수준에서 기부금을 보내주었다.

오후에 강민호에게서 전화가 왔다.

“구사장? 나 강민호야. 기부금 100만원 잘 받았어. 고맙다.”

“어, 그래? 많이 못 보내 미안하다.”

“아냐, 생각지도 못한 기부금이 들어와 우리 진보단체의 단비가 되었어. 매월 발행하는 여기 회보가 있는데 내가 매월 우편으로 보내줄게.”

“아냐, 괜찮아. 난, 사회운동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안 보내도 돼.”

“그래도 그럴 수가 있나. 보내줄게. 회사로 보내줄 가? 회사 주소가 어떻게 되지?”

“됐어, 됐어. 나 손님이 와서 전화 이만 끊는다.”

베푸는 건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양쪽을 즐겁게 한다. 구건호는 베풀면서 고맙다는 소리를 들으니 확실히 기분이 좋았다.

구건호는 집에 들어가면 주말부부라 쓸쓸했다.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아무도 없는 집은 언제나 적막감이 들었다.

구건호는 이 날도 혼자서 케이블 TV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구건호는 동경의 시부야에 있는 고엔도리를 걷고 있었다. 멀리서 산발을 한 여자가 신발도 신지 않은 채 걸어오고 있었다. 구건호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아, 모리에이꼬!”

산발을 한 여자는 모리에이꼬였다. 모리에이꼬는 울고 있었다.

“당신이 나를 평생 지켜주겠다고 한 사람인가요?”

모리에이꼬는 이 말을 하면서 획 돌아섰다. 구건호가 쫓아갔다.

“이봐! 모리에이꼬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면 뭐죠?”

모리에이꼬가 다시 획 돌아서는데 얼굴에 눈,코,잎이 하나도 없는 얼굴이었다.

“으악!”

구건호는 소리를 지르고 벌떡 일어났다.

“휴, 꿈이었구나.”

구건호의 머리에서 식은땀이 났다.

“내가 모리에이꼬를 잊은 채 결혼을 해서 그런가? 어차피 나는 후견인일 뿐 결혼을 할 상대는 아니지 않은가?”

구건호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모리에이꼬가 보고 싶어졌다.

“다음 주에 일본을 한번 가봐야겠네. 가만있자, 다음 주는 황병철이 결혼식이 있지 않은가? 결혼식이나 보고 가야겠다.”

구건호는 다시 잠을 청했다.

김민혁이 맡고 있는 중국 공장이나 신정숙 사장이 맡고 있는 지에이치 미디어는 설립 자본금이 많지 않았다. 구건호는 이번에 각각 9억 5천만 원씩 배당 받음으로 인해 사실상 투자금액은 회수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물론 김민혁의 중국 공장은 한국에 있는 지에이치 모빌의 기술이나 인력을 지원받았으며 미디어도 공격적 투자를 할 수 있도록 구건호가 지원해 주었고 화랑 수입도 발생하게 해주었지만 돈을 벌어다 준건 김민혁과 신정숙이었다.

괴산에 내려가 있는 박도사 말대로 구건호가 돈 버는 시기는 다 가버렸고 이제는 밑에 있는 사람들이 돈을 벌어다 줄 것이라고 한 이야기가 맞았다.

김민혁의 전화가 왔다.

“구사장? 오늘 황병철 결혼식에 갈 거지?”

“갈 거야.”

“나, 5만원만 축의금 낼게.”

“10만원 해라. 중국 회사 사장님 체면이 있잖아.”

“거래처가 아니라서.”

“그 정도는 해도 괜찮다.”

“그리고 배당금 5천만원 받은 건 요긴하게 잘 썼어. 고맙다. 주식을 증여해 주어서.”

“줄만하니까 준거지. 더 못줘 미안하다.”

“지난번 배당 받은 5천만원으로 인천에 부모님 계신 아파트 융자금 갚았어. 이제 이자가 많이 안 나가니까 집안문제도 신경을 덜 쓰게 생겼어.”

“그래? 다행이구나.”

“원래는 순이익 20억에 내가 1억 정도 배당 받아갈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되네. 금년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꼭 순이익 20억을 달성해보도록 노력할게.”

“그래라. 그래야 너도 좋고 나도 좋지. 병철이 결혼식엔 네 명의로 화환 보내주마.”

“화환까지? 고마워.”

“미안해 할 것 없다. 넌 나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사람 아니냐?”

“많이 벌지도 못한 사람이 너무 대접을 받는 것 같아 미안하다.”

여의도의 황병철 결혼식에 구건호가 참석했다. 정장을 한 엄찬호의 경호를 받으며 참석했다.

“오, 건호 왔구나.”

“건호 왔구나. 바쁜데 왔네.”

동창들은 결혼 당사자인 황병철이보다도 구건호에게 눈 도장 찍으려고 몰려들었다. 구건호는 잔잔한 미소만 날리며 학처럼 걷기만 하면 되었다.

구건호가 천천히 황병철에게 갔다.

“축하한다.”

“와줘서 고맙다.”

황병철이 자기 엄마를 소개했다.

“사업한다는 구사장이에요, 엄마.”

“오, 그래요? 고마워요.”

금테안경을 낀 황병철 엄마는 구건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금은 늙고 왜소해졌지만 당시 구건호와 놀지 못하게 하였던 장본인이었다. 말은 안하지만 기억력이 뛰어난 구건호는 당시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 하고 있었다.

[병철이는 지금 숙제해야 되니까 너희들은 나가서 놀아라.]

병철이 엄마와 아빠는 두 분 다 중학교 교사였다. 나가서 놀라는 것까지는 좋은데 귓전으로 들리는 병철이 엄마의 목소리가 구건호의 가슴을 아프게 했었다.

[너, 축대위에 사는 애들하고 놀지 말라고 했지? 걔들은 공부도 못하고 가난하고 놀기만 하는 애들 아니냐? 너는 걔들하고 달라. 좋은 대학 가서 성공해야지. 지금 나간 애는 자기아버지가 공장 경비원 한다며? 왜 그런 애들하고 놀아? 친구도 가려가며 사귀어야지! 앞으로 우리 집엔 조원철이나 이석호 같은 애들 아니면 데리고 오지마라!]

병철이는 엄마 아빠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전교 1등을 했고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았다. 구건호와 황병철이 싸우면 선생님들은 무조건 이유 불문하고 구건호를 나쁜 애로 몰아부쳤다.

가난은 죄였던 것이다. 죄도 큰 죄였던 것이다.

구건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황병철이 근무하는 연구소나 대학동창회 등에서 보낸 화환도 보이고 발 넓은 엄마가 아는 사람들이 보낸 화환도 눈에 띠었다. 구건호의 결혼식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숫자의 화환이지만 그래도 10개 정도는 들어왔다.

그 화환들 사이에 지에이치 모빌의 대표이사 구건호와 중국 소주시 지에이치 기차배건 유한공사의 대표이사 김민혁과 지에이치 로지스틱스 대표이사 문재식의 화환이 당당히 버티고 서 있었다. 축대 위의 동네에 살던 공부도 잘 못하고 가난하게 살던 아이들이 보낸 화환이었다. 엄마가 같이 놀라고 한 친구들이 보낸 화환은 하나도 없었다.

구건호는 로비에 서 있으니까 인사하는 사람들이 많아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식이 시작되자 구건호는 문재식에게만 먼저 간다고 말하고 조용히 예식장을 빠져 나왔다.

누나가 그랜저를 뽑았다고 연락을 해왔다.

“그랜저 뽑아서 아빠에게 드렸어. 아빠하고 엄마가 덩실 덩실 춤까지 추더라.”

“하하, 그래?”

“그 차 타고 요즘 매일 돌아다녀.”

“어딜 돌아다녀?”

“연안부두도 가고, 고모네 집도 가고, 소래포구에 가서 생선도 사오고 그랬어.”

“그래?”

“제일 좋아했던 것이 뭔지 알아?”

“뭔데?”

“타워팰리스 아들 집에 갈 때 이 차 타고가면 체면이 좀 설 거라고 했어.”

“그래? 하하.”

“요즘 아빠 종로3가 탑골공원 안 가. 엄마하고 둘이 구청 문화센터 강좌 들으러 다녀. 많이 유식해졌어.”

“남촌동 밭엔 안가시나?”

“왜, 갔었지. 그 동네 노인정에 갖다 준다고 사탕을 3봉지나 싣고 갔어. 사람들이 요즘 아빠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뭐라고 부르는데?”

“구사장님이라고 불러. 그랜저 타고 다니는 구사장님이라고 그래. 남촌동 노인정에서도 모두 그렇게 부르나봐.”

구건호는 신사동 사장실에서 창밖을 내다보다가 일본을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김영은이 타워팰리스로 오는 날이라 가급적 주중에 잠깐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비서 오연수가 차를 가져오면서 말했다.

“손님이 오셨는데요?”

“손님?”

누군가 보았더니 BM엔터테인먼트의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이사였다. 기생오라비는 구건호에게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며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전에 청담동에서 한번 뵐 때 놀러오라고 하셔서 지나가는 길에 들렸습니다.”

“앉으세요.”

구건호는 오연수에게 차를 주문했다.

“요즘 중국이나 일본 자주 가십니까?”

기생오라비는 눈웃음을 살살 치며 말했다.

“요즘은 자주 못갑니다.”

“뭐, 저에게 특별히 물어보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이거 하나 물어봅시다. 중국 드라마 제작사를 인수하거나 합자를 한다면 사업성이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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