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6
아파트 증여 (1)
(256)
장인과 최 화가는 구건호의 부(富)에 대하여 실감을 못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 두 부부가 열심히 돈 모아서 영은이 병원 하나 차려주세요.”
“지금이라도 원한다면 차려주지요.”
“어머나! 지금요?”
김영은이 인상을 썼다.
“이모! 그런 소리 하지 마. 딴 이야기 해요. 돈 있어도 난 지금 못해! 경험도 없어요!”
신사장도 아파트 내부를 훑어보며 말했다.
“신혼부부가 살기에는 너무 넓은 집이네요. 아까 50평이라고 했지요?”
“그렇습니다.”
‘여긴 강남이라 비싸겠네요.“
“글쎄요. 경매로 15억에 낙찰 받은 집이니까 지금 한 20억 가려는가 모르겠네요.”
“헉! 20억!”
장인과 최 화가, 그리고 신사장은 놀란 눈을 하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장인이 물었다.
“이 아파트 살 때 융자는 얼마였나?”
“융자는 없습니다.”
장인이 구건호에게 술을 권했다.
“내일은 쉬지? 많이 들어.”
“예, 고맙습니다.”
“부탁이 하나 있네.”
“네?”
“영은이랑 둘이 영은이 엄마 묘소에 한번 갔다 오지 않겠나?”
“묘소가 어디 있는데요?”
“포천 공원묘지네.”
“포천요?”
장인이 위치를 알려주는데 자기가 가끔 갔던 낚시터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알겠습니다. 다녀오지요.”
최 화가가 나섰다.
“형부, 그러지 말고 한식날 같이 다녀오세요. 한식날도 얼마 안 남았네요.”
“그럴까? 에이, 둘이 갔다 와. 둘이 다니는데 자꾸 어른들이 끼면 안 좋지.“
“하긴 그러겠네요.”
“급한 건 아니니까 아무 때고 다녀오면 돼. 묘소 앞에 가서 결혼했다고 신고는 해야 될 것 아닌가? 하하.”
이날은 모두 취했다.
장인도 취하고 구건호도 취하고 최 화가도 취하고 신사장도 취했다.
구건호는 집에 간다고 하는 이들을 말렸다.
“지금 밤도 늦었고 취했으니 내일 아침에 가세요.”
“아니, 가야돼.”
“여기 방이 4개나 되요. 아무 방에나 들어가 주무시면 되요.”
김영은도 자기 아빠와 이모를 말렸다.
“여기서 무주시고 가요.”
“이불도 없잖아?”
“제가 시집올 때 가져온 것 덥으세요. 저는 이 사람 쓰던 이불 덥고 같이 잘게요.”
“그러세요. 형부. 몸도 못 가누면서 어딜 가요.”
설거지는 김영은과 최 화가와 신사장이 달라붙어 했다. 세 사람이 하니 금방 끝났다.
장인은 구건호의 책상이 있는 방에서 자고 최 화가와 신사장은 김영은이가 가져온 책이 쌓여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구건호는 자기가 쓰던 이불을 가져와 김영은과 함께 안방에서 잤다.
“어휴, 이불에서 냄새!”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래?”
“남자 냄새가 나.”
“남자가 덥던 이불 남자 냄새나지 그럼 무슨 냄새 나냐?”
김영은도 피곤했던지 바로 코를 골았다.
구건호는 김영은의 볼에 입을 맞추고 꼭 껴안고 잤다. 새벽녘에 숨이 막혀 일어나보니 김영은의 다리가 구건호의 목을 감고 있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양평을 가려던 최 화가와 신사장이 주차장까지 갔다가 도로 올라왔다.
“뭐 잊어버리셨어요?”
거실에서 교자상 상다리를 접고 있던 김영은이 물었다.
“관리사무실에서 외부차량 주차위반 딱지를 붙여놨네.”
“신고 안 해서 그렇구나!”
“칼로 떼어내면 될라나?”
“물 끼얹고 칼로 살살 긁어내면 돼요. 행주도 드릴가요?”
“망할 자식들. 고새 그렇게 붙여놨네.”
“그럼 아빠 차도 그렇겠는데요?”
“그러겠지.”
“저도 내려갈게요.”
장인은 아직까지도 자고 있었다.
김영은이 물통에 물을 담아가지고 과도와 행주를 가지고 내려갔다.
장인이 잠결에 들은 모양이었다.
“내차에 주차위반 딱지를 붙였다고?”
장인은 옷을 주섬 주섬 입더니 나가려고 하였다.
“영은이 내려갔어요. 저도 내려갈게요.
김영은이 한참 주차 딱지를 떼어내고 있었다.
“다 뗐나? 그럼 난 갈란다. 둘이 잘 지내는 모습을 보니 아빠도 기분이 좋다.”
“아침 식사하고 가세요.”
“아니다. 가다가 해장국 하나 사먹지. 신림동 관악산 밑에 해장국 잘 하는 집이 있어. 구서방! 그럼 우리 영은이 잘 부탁해!”
“염려 마십시오.”
아빠는 운전석 유리문을 내리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구건호와 김영은도 아빠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최 화가와 신사장도 주차딱지를 다 뗀 모양이었다.
최 화가가 시동을 걸었다.
“그냥 가시게요? 식사하고 가세요.”
“아냐, 가야돼. 두 사람한테 대접 잘 받고 가요. 양평도 한번 놀러 와요.”
“알겠습니다.”
“두 사람 그렇게 서 있으니 정말 아주 잘 어울리는 부부네. 싸우지들 말고 오순도순 잘 지내요.”
“하하, 알겠습니다.”
구건호와 김영은은 아빠와 이모, 신사장을 보내놓고 자기들이 사는 아파트로 올라왔다. 잠이 부족한지 둘은 다시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로지스틱스의 문재식이 형질변경 추진에 대한 일을 보고해 왔다.
“형질변경을 하려면 우선 농지 전용허가를 받아야 돼. 농지전용허가는 도로에 접한 땅이어야 하는데 새로 산 땅은 맹지라 할 수가 없어.”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먼저 합필부터 해야 돼. 땅을 다 합치는 거지.”
“쉽게 허가해 주나?”
“분필은 어려워도 합필은 쉬워.”
“그럼 아무나 해주나.”
“우선 명의자가 같아야 돼. 1천평짜리 논과 1천 6백평 짜리 논 임자가 같아야 돼.”
“둘 다 문재식 이름으로 되어 있잖아.”
“그리고 융자가 없어야 돼. 어느 한쪽 땅이라도 융자가 있으면 합필의 결격사유야.”
“당분간 그 땅을 담보로 융자받을 생각은 없어.”
“그럼 작업하고 또 연락 줄게.”
“알았다. 그럼 수고해라.”
“지금 여기 비오는 데 거기 비오니?”
“와. 바람도 많이 불어.”
“안전운행 신경 써야겠구나.”
“운수회사다 보니까 일기 나쁘면 무조건 안전운행을 강조해. 사고 나면 기사도 불행해지지만 보험료 수가도 높아져 회사도 손해거든.”
“알았다. 수고해라.“
미디어의 신정숙과 중국의 김민혁이 증여세를 납부했다고 하면서 배당을 집행한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둘 다 회사에 유보금 약간을 남겨놓고 10억을 배당한다고 하였다.
[사장님 계인계좌로 배당금 9억 5천만원을 송금합니다. 5천만원은 제가 배당받아 갑니다.]
구건호가 답신을 보냈다.
[수고하셨습니다. 내년에는 더 높은 배당을 받도록 합시다.]
급여 외에 기업 활동으로 구건호는 9억 5천씩 19억이 생긴 것이다. 통장을 확인해 보았다. 개인통장 잔고 4억에서 잔액 23억원이 되었다.
중국 공장이나 미디어보다 훨씬 덩치가 큰 모빌이나 디욘코리아는 아직 배당을 안했다. 모빌은 부채상환을 했기 때문에 대주주인 구건호는 배당은 못 받았어도 자산은 증가하게 된 것이다. 만약에 회사를 청산한다면 청산가치는 그만큼 더 올라간 것이다. 디욘코리아는 영업일수 부족으로 유보금이 있었지만 배당은 하지 않았다.
증권사 지점장이 전화를 해왔다.
[사장님이 지난번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준 1700억에 대한 채권투자 이자는 중간 계산 결과 42억 5천만 원입니다.]
즉, 증권사에 넣어둔 구건호의 돈은 원금 1700억이 불어나 1742억 5천만 원이 된 것이다. 환매를 하지 않아 현금화는 되지 않았지만 중간 계산이 그렇다는 것이다.
구건호는 증권사 지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에 대한 일은 극비로 하셔야 합니다. 만에 하나 나에 대한 신분 노출시는 전액 자금을 빼갑니다.”
“염려 놓으십시오. VVIP고객은 저희도 지점 단위가 아닌 본사 단위의 특별 관리를 합니다. 비밀은 저희 생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강남 큰손에 대한 정체는 외부는 물론 증권사 내부에서도 일체 모릅니다. 그래서 작년 투자부터는 제가 사장님께 라운딩하자는 소리도 안 하잖습니까? 강남 큰손에 대한 정체는 목숨 걸고 지켜드리겠습니다.”
증권사 1700억에 대한 돈은 부모님도 모른다. 김영은도 모른다. 오직 구건호만 알 뿐이었다.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신혼 재미 좋지?“
“좋긴. 주말부부라 재미없어.”
“강남에 개인병원 하나 차리지 그래? 남촌동 땅 팔면 되잖아?”
“의사 된지 얼마 안 되서 아직은 못해. 진료 경험이 더 있어야지.”
“그래?”
“지금 집인가? 엄마 아빠는 집에 계신가?”
“남촌동 땅 보러 가셨어. 두 양반 요즘 거기 다니는 게 취미야.”
“뭐 심으로 간다더니 그래서 가셨나?”
“씨 심는다고 땅 고르러 가셨어. 오늘 전화한건 사실 그것 때문에 전화했어.”
“무슨 일인데?”
“너, 결혼한지도 얼마 안 되고 돈도 많이 썼을 텐데 이런 소리해서 안됐지만 아빠 차 한 대 사드리자.”
“난 또 뭐라고.”
“두 분이 손잡고 남촌동 땅 보러 가시는 건 좋은데 몇 번씩 버스 갈아타고 가시는 게 안 되 보여서 그래.”
“엄마한테 언젠가 차 사드리겠다고 했더니 펄쩍 뛰던데? 아빠 면허증도 반납했다고 그러면서.”
“너한테 자꾸 신세지기가 싫어서 그랬을 거야. 그게 부모 마음이거든.”
“사드리지. 난 아빠가 원하시면 언제든지 사 드릴 수 있어.”
“아반떼 정도 사 줄 수 있나?”
“아빠가 원하시면 좋은 차 사 드리지. 제너시스라도 사드리지. 외제차도 좋아.”
“하하, 그럴 필요는 없고 아반떼나 K3면 좋을 것 같은데.”
“아냐, 좋은 차 사드려. 나 이번에 배당소득이 있어서 그래.”
“아빠나 엄마는 외제차 이름도 잘 몰라. 제너시스도 잘 몰라. 한국에서는 그랜저가 제일 좋은줄 아시는 분이야. 그랜저는 큰 회사 사장들이나 타는 줄 알아.”
“그럼 그랜저 사 드려.”
“정말?”
“누나 통장으로 돈 보낼 테니 한 대 사 드려.”
“하하, 그러지 말고 아반떼라도 사주면 고맙겠다. 그럼 일 봐라. 바쁜데 전화해 미안하다.”
구건호는 전화를 끊고 보니 누나에게도 미안했다. 매형에게 자기가 가지고 있는 회사의 임원이라도 시켜주고 싶지만 회사 근무 경력이 없고 또 친인척간에 한 회사에 있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자기가 결혼을 해서 부모를 모셔야 될 입장이지만 그럴 형편도 아니라 고민했다.
구건호는 집에 가서 잠자리 들기 전에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노인들은 밤잠이 없으니 지금 TV보고 계실거야.”
“아빠세요?”
“응? 건호냐? 웬일이냐?”
“지금 구월동 아파트는 아빠 엄마 명의로 된 거 아시죠?”
“알지. 왜 팔라고?”
아빠는 깜짝 놀라 말했다.
“그게 아니고 50%만 누나에게 증여하려고요.”
“증여?”
“네, 증여요.”
“이 집은 명의만 내 이름으로 되어있지 네 집 아니냐? 네가 피땀 흘려 마련한 집을 증여해?”
“제가 결혼을 해서 아빠 엄마를 모셔야 되지만 지금 그럴 형편이 아니잖습니까? 누나가 모시고 있는 입장이나 마찬가지라 누나에게도 뭔가 해줘야 할 것 같아서요.”
“뜻은 좋다만 나중에 네 처라도 알면 뭐라고 안할까?”
“아빠, 저나 제 처나 다 돈들 있어요. 구월동 아파트에 대해서 미련 안 가져요. 염려 말고 내일 증여 수속 밟으세요. 증여세라도 나오면 제가 부담해 드릴게요. 아빠 엄마 명의로 되어있어서 법무사 사무실에 아빠가 도장 들고 가야해요.”
“고맙다. 정말 고맙다. 너희 누나는 세상에 다시없는 동생을 두었구나. 나나 네 엄마도 다시없는 효자 자식을 두었다.”
“그런 소리 하지마세요.”
“자식이 결혼하면 선물을 주어야 하는데 우리 집은 거꾸로 너한테 받는구나. 네 누나가 굉장히 좋아할 거다.”
“아빠 차도 사드릴게요.”
“차? 허.”
아빠는 말을 잇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