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253화 (253/501)

# 253

신행(新行) (1)

(253)

구건호와 김영은은 신행을 위하여 인천 구월동 집을 들렸다. 엄마 아빠가 밝은 표정으로 맞이해 주었다.

“바로 와야 하는데 내가 바쁜 일이 있어서 일찍 못 왔어요.”

“아휴, 바쁘면 일부터 봐야지. 신행이야 천천히 하면 어떠냐?‘

김영은이 자기가 가져온 보따리를 풀었다.

“그게 다 뭐냐?”

“하와이서 산 기념품이에요. 이건 티셔츠고 이건 알로하 셔츠에요.”

“알로에 셔츠?”

“알로에가 아니고 알로하에요. 하와이 원주님들이 입는 옷이에요.”

“무슨 옷이 이렇게 무당 옷처럼 생겼냐?‘

“그냥 집에서 입으세요.”

주방에 있던 누나가 나왔다.

“내 것은 없어? 시누이한테 잘 보여야지!”

“손톱 영양오일 가져왔어요.”

“이거 가지고는 약한데?”

김영은이 웃으면서 면세점에서 산 화장품 세트를 하나씩 돌렸다.

누나는 화장품을 받으며 말했다.

“올케 이거 안 가져왔으면 나한테 시집살이 고달플 뻔 했어.”

김영은은 정아 선물이라면서 하와이서 산 조개 목걸이도 꺼내 누나에게 주었다.

누나가 건너 방에 대고 소리를 쳤다.

“여보, 이리 나와 봐요. 동생 부부 왔어요.”

“매형 집에 있었나?”

매형이 나왔다.

“처남 왔어?”

“당신 동생 댁 처음보지?”

“결혼식 때 보았지.”

“정식 인사는 없었잖아. 올케! 인사해요. 정아 아빠에요.”

“안녕하세요?”

김영은이 인사하자 매형은 쑥스러워했다.

엄마와 누나는 지난번처럼 점심을 차려주었다.

김영은도 엄마가 만든 된장찌개가 맛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이거 뭐 넣고 만든 거예요?”

엄마는 김영은에게 된장찌개 만드는 법을 알려주었다.

엄마는 김영은에게 손 하나 까닥 못 하게 했다. 설거지도 못하게 했다.

“환자 치료하는 귀중한 손인데 다치게 하면 안 된다.”

누나가 핀잔을 주었다.

“아이고 엄마, 일을 시켜야 일을 배우죠.”

김영은이 행주로 상을 닦자 엄마는 또 펄쩍 뛰었다.

“행주 이리 다오. 내가 할게.”

엄마와 아빠는 서울대 나온 의사 며느리를 보아 요즘 친구들 간에 우상이 되었다. 하긴 엊그제까지만 해도 요양원 간병인하면서 치매환자한테 눈까지 얻어맞았는데 의사 며느리를 보았으니 그럴만도 했다.

아빠 역시 주변의 친구들이 경비나 공장 근로자 출신이었는데 서울대 나온 의사 며느리를 보았다고 하니까 곧이듣지를 안했다. 심지어는 고모까지도 믿지를 안했었다.

하지만 결혼식에 와본 사람들은 놀랐다.

굵직굵직한 신사들이 엄청 몰려왔고 장, 차관의 화환이 즐비하고 정말 신부가 의사인지 제약회사 화환도 즐비했기 때문이었다.

엄마와 아빠 친구들은 현직 장관의 주례사를 듣고 거짓말이 아닌 것을 알았다. 아들이 기업을 몇 개나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신부가 분명 서울대 나온 의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 집은 개천에서 용 났어.”

“그 아들이 언제 그렇게 출세했어? 노량진에서 9급 공무원 한다는 소릴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고모는 사람이 달라졌다. 이제 자식 자랑은 쏙 들어갔다. 9급 공무원인 자기 아들이 최고이고 자기 며느리가 최고인줄 알았는데 구건호는 자기 아들과 비교할 수 없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었다. 며느리의 직업도 비교가 안 되지만 인물 또한 구건호의 색시를 따라갈 수 없었다. 고모는 우울증 증세가 심해졌다.

고모는 또 놀란 것이 있었다.

구건호가 강남 타워팰리스의 50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인천 남동구 남촌동에 땅을 천 평이나 사 놓았다는 소식을 듣고서였다.

“천평? 시상에!”

엄마와 아빠는 지에이치 모빌의 사외이사 자격으로 나오는 월 급여 300만원으로 가끔 친구들에게 갈비탕 같은 것도 사주어 모임의 회장 노릇도 하였다.

구건호 앞에서 사과를 깎던 엄마는 구건호 부부가 대견스러웠다.

“점심 먹었으니 사과 한쪽 식 먹어라.”

사과를 먹으면서 엄마가 구건호에게 말했다.

“남촌동에 사논 그 땅 말이다. 내가 그저께 한번 가보았다.”

“누가 거기다 쓰레기 안 버리나 잘 보세요.”

“거기 통장도 만나고 노인정도 들려보았는데 내가 4월 달에 거기다가 씨갑시 좀 뿌린다고 했다.”

“뭘 심으려고요?”

“고추도 심고 옥수수도 심고 땅콩도 심을란다.”

“하하, 마음대로 하세요.”

말없이 사과만 먹고 있던 아빠가 말했다.

“너, 혼인신고는 했냐?”

“옛? 혼인신고요? 다, 다음 주에 하죠. 바빠서 못했습니다.”

“그런 건 빨리해라.”

“알겠습니다.”

“사돈어른 댁엔 한번 못 들렸지?”

“오늘 저녁에 가다가 들릴 예정입니다.”

“그럼 가봐라. 점잖으신 분이니 잘해드려라. 장인도 부모님이니까.”

“알겠습니다.”

부모님이 살고 계신 구월동 아파트를 나온 구건호와 김영은은 시간이 많이 남아 송도 신도시를 구경했다.

“연안부두에 가서 전복이나 사갈까? 신림동 아버님 갖다드리게.”

“요리할 줄 몰라 안 돼. 사려면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서 젓갈이나 사요. 오빠.”

구건호는 노량진 수산시장에 들러 젓갈 두통을 사가지고 신림동엘 갔다.

아빠가 반갑게 구건호 부부를 맞아주었다.

“회사 일이 바빠서 신혼 여행 후 바로 못 들렸습니다.”

“음, 괜찮아. 아무 때고 올수 있는데 뭐.”

“아빠, 이거 하와이에서 산 알로하 셔츠에요?”

“알로하 셔츠? 등산 갈 때 입을까?”

“그리고 이건 오빠가 샀어요. 면세점에서 산 양주하고 전기 면도기에요.”

“돈 없애가며 뭘 이런걸.”

“젓갈도 사왔어요.”

“상표가 우리나라 것 같은데?”

“아녜요. 이건. 하와이에서 산 게 아니라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산거예요.”

“음, 그래?”

“저녁은 오빠가 한우갈비 사드린다고 했어요.”

“한우보다는 회나 먹으러 가자. 신림동 먹자골목에 회집 하나 생겼다.”

“참, 잊어먹기 전에 이거 하나 가져가게.”

김영은의 아빠는 서류 하나를 구건호에게 주었다.

“가족관계 증명서네.”

“가족관계증명서요?‘

“혼인 신고할 때 필요할걸세. 혼인신고는 누가 할 건가? 자네가 할 건가? 그러면 영은이 주민등록증하고 도장 가져가야 할 걸세.”

“알겠습니다. 내일이라도 주민센터에 가서 신고하겠습니다.”

“혼인신고는 주민센터에 가면 안 되네.”

“네? 거긴 안돼요?”

“구청으로 가야되네.”

‘아, 그렇습니까?“

“그리고 증인 두 명 주민등록번호와 도장이 필요할지 모르니 내 목도장 하나 가져가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시간 있을 때 자네 호적등본 하나 떼 가지고 나한테 붙여주게. 내 주소를 알려주겠네.”

“아닙니다. 직접 가져다 드리지요. 제가 요즘 서울대 정책대학원에 다니니까 올 때 갖다 드리지요. 그런데 호적등본이 왜 필요하지요?”“김씨 문중에서 족보를 새로 만든다고 그러는데 자네 이름은 올려야 할 것 아닌가. 김해김씨 안경공파에는 족보에 사위 이름이 올라가네.”

김영은의 아버지는 족보보다는 구건호가 호적상 총각인가 아닌가를 확인해보고 싶어서였다.

구건호와 김영은은 신림동 먹자골목에 있는 횟집으로 가서 도다리회를 시켰다. 술도 한 병 시켰다.

“저는 차를 가져와서 술은 반잔만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 운전하면 술 안 먹는 게 좋지.”

김영은의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면서 김영은의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영은이는 한 잔 해라.”

“예.”

“결혼식에 사람 참 많이 왔데. 내 친구들도 왔다가 자리에 안지도 못하고 가버린 사람들도 있었어.”

“좌석을 좀 더 큰 걸 빌릴 걸 잘못했습니다.”

“주례사에 보니까 자네가 자동차 부품 제조사 외에 회사를 4개나 갖고 있다고 했는데 어디 어디인가?”

“천안에 지에이치 모빌이라는 자동차 부품 제조회사가 있고 아산에 디욘코리아라는 원재료 생산업체가 있습니다. 미국과 합작입니다.”

“흠, 그래?”

“그리고 강남 신사동에 빌딩을 관리하는 지에이치 개발이라는 회사가 있고 출판을 전문으로 하는 미디어란 회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환에 로지스틱스란 운송회사가 있습니다. 중국에도 투자한 회사가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는 김영은도 눈을 반짝이며 관심 있게 들었다.

“그런데 부모한테 물려받은 것도 아니고 언제 그렇게 회사를 세웠나?“

“어떻게 하다 보니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적자는 안 나나?”

“적자 나는 회사는 아직 없습니다.”

“결혼식장에 왔던 내 친구들이 사위 잘 보았다고 모두 그러네. 두 사람이 잘 만난 것 같아 내가 기쁘네.”

김영은의 아버지는 청하를 두병이나 다 마셨다.

“화장실을 갖다올게. 늙으니 오줌이 자주 마려워.”

김영은의 아버지는 휘청거리는 걸음 거리로 중간에 일어나 화장실을 갔다. 김영은이 하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고 있었다.

“왜 그래? 우는 거야?‘

“아니, 눈에 뭐가 들어갔나 봐요.”

김영은도 화장실에 간다고 일어섰다.

구건호는 김영은이 운 것은 자기 아버지 때문에 그런 것일 꺼란 생각이 들었다.

도다리 회가 다 떨어져가자 구건호는 해삼과 멍게를 추가로 시켰다.

김영은의 아버지가 돌아오고 김영은도 언제 울었냐는 듯 헤헤 웃으며 들어왔다.

구건호가 장인에게 술을 따라드리며 말했다.

“아버님 여기서 계시지 말고 저희 집으로 들어오시죠. 방도 많은데요.”

김영은과 김영은 아버지가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건 안 돼.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뭐 하러 딸네 집엘 가나? 나중에 내가 걷지를 못할 지경이나 되면 자네 집 근방에는 살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 추호도 없네.”

“가까운 시일 내에 저희 집에 한번 오시죠.”

“음, 한번 다니러 가는 건 해야 되겠지. 어떻게 사나 구경도 하고 말이야.”

“다음 주에 오십쇼. 그럼.”

“알겠네.”

“저는 술에 안 취했으니 집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내가 사위가 있으니 더 든든해진 것 같아. 우리 집 손이 귀하니 아들 딸 많이 낳게.”

“감사합니다.”

구건호와 김영은은 아버지를 신림동 동부아파트레 모셔드리고 도곡동 타워팰리스로 향했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면서 구건호가 말했다.

“아버님이 많이 외로우실 것 같네.”

김영은은 앞만 쳐다보며 아무 말 안했다.

“우리 집에 안 오시면 우리 집 근방에 이사 오시라고 할까?‘

“그렇게는 안하실거야. 우리 아빠 보기보다는 자존심도 강하고 고집도 대단해.”

“양평의 이모님 댁에도 한번 들리는 게 안 좋을까?‘

“그러지 말고 다음 주에 아빠가 타워팰리스 오실 때 같이 오시라고 하지. 신정숙 사장님도 같이 말이야.”

“오신다고 하면 그게 좋지.”

“내가 한번 이야기 해볼게요.”

구건호는 집에 와서도 계속 김영은의 안색을 살폈다.

김영은은 아버지를 만나고 계속 우울해 있었다. 안방에 들어가 같이 잠자리 하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오빠, 오늘은 술 냄새도 나고 그러니까 각자 방을 써요.”

“그래, 알았다. 오늘 두 집 다니느라 피곤하겠다. 잘 자라.”

구건호는 김영은의 뺨에 뽀뽀를 해주었다.

다음날은 일요일이었다. 구건호와 김영은은 아침을 먹고 나서 양재천변을 걸었다.

강남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양재천변에서 운동을 하였다. 양재천은 물량이 제법 되었다. 구건호는 김영은과 함께 걸으며 골똘히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김영은도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걸었다.

[내일이면 3월말이니까 이제 슬슬 지에이치 산하의 회사들의 재무재표가 나오는 달이지?]

전년도 결산은 12월 말에 끝나므로 대개 12월 말엔 내부 결산 자료가 나오지만 외부감사를 받고난 외부 공표용 결산 자료는 3월 30일이 지나야 나온다.

적자인 회사가 안 나와서 다행이긴 하지만 지에이치 개발이 문제였다.

[빌딩을 가지고 있어서 폼은 잡고 있지만 400억 투자로서는 너무 재미가 없는 회사야. 돈을 잘 버는 회사가 있으면 흡수 합병을 시키고 싶은데 아직은 그런 회사가 없으니 그게 좀 답답하군.]

구건호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양재천 개울을 따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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