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251화 (251/501)

# 251

신혼생활 (2)

(251)

구건호는 오래간만에 지에이치 모빌 직산 공장으로 출근했다.

송사장이 시카고 박람회 때 클라이슬러에서 주문받은 오더의 시제품이 나왔다고 보고했다. TPU(Thermoplastic PolyUrethane)로 만든 프로텍타 종류였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 필통만한 크기의 제품이었다.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웠다.

“단가가 얼마입니까?”

“2,800원입니다.”

“몇 개 들어간다고 했지요?”

“월 1만개입니다.”

“A/S용이면 얼마나 계속 들어갈 것 같습니까?”

“단종된 차니까 약 2년 정도로 봅니다. 납품 좀 하다가 거기 구매담당자를 한번 만나보려고 합니다.”

“지난번에 사람 모집 더 한다고 그랬지요? 모집 다 했나요?”

“지금 모집 중에 있습니다.”

“경력사원은 영어 잘하는 사람 뽑으세요.”

“그렇지 않아도 영어 능력자 우대한다고 했습니다.”

“지난번 내 결혼식 때 임원들이 모두 오셔서 고마웠습니다. 디욘코리아 임원들과 함께 점심 대접해 드리지요.”

“어디로 모이라고 할 가요?”

“백석동 큰댁 한정식 집으로 오라고 하세요. 내가 총무이사한테 직접 이야기 해놓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저는 거래처 갔다가 이따가 음식점으로 바로 오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아, 그리고 사장님 결혼식 때 안내를 보기대문에 차출한 직원 5명에게는 출장비 달아주는 게 좋지 않을 가요?”

“그 사람들도 식사를 같이 하지요. 큰댁 한정식 집으로 오라고 하지요.”

“그건 좀... 다른 직원들 문제도 있으니까 출장비를 주는 쪽이 좋겠습니다.”

“흠, 내가 총무이사에게 지시하지요.”

구건호는 총무이사를 불렀다.

“내 결혼식에 참석한 임원들에게 식사 한번 사겠습니다. 이사님이 백석동 큰댁 한정식에 예약 좀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우리 회사 임원들 다 참석하게 하시고 디욘코리아에도 연락해 참석하라고 하십시오. 송사장은 식당으로 바로 오겠다고 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결혼식에 안내를 맡았던 직원 5명은 일일 출장비 달아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출장자들은 5명이 아니라 영업부 서차장까지 6명입니다.”

“6명에게 달아주세요.”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직접 은행에 들려 10억원을 문재식 통장에 넣어주었다. 은행 담당직원이 10억을 송금한다고 하니까 얼굴을 들고 쳐다보았다. 바로 지점장이 뛰어 나왔다.

“새로 온 지점장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지점장은 공손히 구건호에게 명함을 주었다. 법인도 아니고 개인이 10억을 송금하는 사례는 지방도시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은행을 나와 구건호는 돈을 보냈다고 문재식에게 전화를 걸어주었다.

“문사장?”

“어, 나야.”

“10억 네 통장으로 보냈다.”

“벌써?”

“마음 놓고 중도금하고 잔금 치러라.”

“알겠어.”

“그리고 지난번 내 결혼식 때 동창들이 많이 와주어서 한번 대접 좀 하려고 해. 네가 모이라고 연락 해 줄래? 명단 네가 가지고 있잖아?”

“어디로 모이라고 할까?”

“너 버스타고 가면 남부터미널에 도착하나?”

“남부터미널도 가고 강남터미널도 가고 차를 가져가도 돼.”

“차는 술 먹고 그러는데 좀 그렇지 않을 가?”

“남부터미널 근방도 좋아. 일찍 끝나면 버스타고 오고, 늦게 끝나면 지하철 타고 마포 집에 가면 되니까.‘

“그럼 남부터미널 옆 평화빌딩 지하에 있는 선궁에서 만나자고 해라. 중국 음식점이다.”

“날짜는 언제가 좋을 가?”

“다음 주 금요일, 아니 목요일로 하자. 금요일은 주말부부들 만나는 날일 테니까.”

“알았다. 전부 연락할게.”

“예약을 해야 하는 음식점이니까 참석여부를 확인해야 할 거야.”

“알았다. 많이는 참석 못할 거야. 대개 동창회 모임 보면 열댓 명 밖에 못 모여.”

“그럼 그때 보자.”

지에이치 모빌의 임원 5명과 디욘코리아의 임원 4명이 백석동 큰집 한식당에서 모였다.

구건호와 엄찬호까지 합쳐서서 11명인줄 알았는데 애덤 캐슬러를 태우고 다니는 렌트카 기사가 있어 12명이 모였다.

엄찬호는 대개 이럴 때 별도로 홀에서 식사를 하고나가지 모임에 끼어들지는 않는다. 엄찬호는 렌트카 기사와 함께 식사를 하고 나갔다. 10명이 한정식집 내실에서 맥주까지 곁들여 식사를 했다. 이번 임원 모임에는 여성도 있고 외국인도 있었다. 여성은 모빌의 김민화 경리이사였고 외국인은 디욘코리아의 애덤 캐슬러였다.

여성과 외국인이 끼어서 그런지 이전보다 분위기가 부드러웠다. 애덤 캐슬러는 통역을 대동하지 않았다. 영어를 잘은 못해도 김전무나 윤상무, 그리고 모빌의 송사장이나 연구소장 등은 약간의 영어를 할 줄 알기 때문이었다. 또 애덤 캐슬러 자신이 한국생활에 이제 적응이 되어 웬만한 것은 눈치로도 다 때려잡았다.

역시 말은 디욘코리아의 김전무가 많이 했다. 영업 출신이라 구라가 좋았다.

“모빌과 디욘이 다 모이니 좋네요. 이런 모임은 한 달에 한 번씩 합시다.”

송사장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한 달에 한번은 어렵고 분기별로 합시다.“

김전무는 구건호를 보고 말했다.

“옛날엔 결혼하면 신랑 발바닥도 때리고 그랬는데 오늘 사장님 한번 다루어 볼까요?”

이 말에 모두 웃었지만 선뜻 그럽시다 라고 하면서 달려드는 사람은 없었다. 김전무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능글맞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전무가 또 떠들었다.

“임원들 이렇게 합동 모임할 때는 미디어의 신사장하고 개발의 강이사, 로지스틱스의 문재식 사장도 다 오라고 하지요.”

구건호는 대답대신 웃기만 하였다.

“아니, 중국의 김민혁 사장도 오라고 하고 판매회사를 맡고 있는 딩딩인가 둥둥인가 하는 중국인 여자 사장님도 오라고 하면 어떻습니까?‘

“김전무님이 술이 떨어져서 그런 모양입니다. 맥주 2병만 더 시키시죠.”

말이 없던 총무이사가 조용히 말했다.

“이번에 사장님 결혼식 때 협력사 사장님들이 많이 오셨습니다. 그분들에게 사장님 명의로 감사의 서신이라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예, 그렇게 하세요.”

김전무가 또 나섰다.

“이지노팩 회장님하고 S기업 부사장님이 참석을 했습니다. 화환도 보내주고요. 이 두 분들한테는 가까운 시일 안에 사장님께서 직접 방문하여 감사의 표시를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영업에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송사장도 말을 거들었다.

“이지노팩과 S기업은 그렇게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송사장은 성격이 가칠하기는 하지만 신사다운 면이 있었다. S기업 부사장은 자기 후배로 부사장이 되는 바람에 자기가 밀려났지만 원망을 하거나 뒷소리는 전혀 하질 않았다.

임원들 모임에는 주로 김전무와 송사장이 말을 했고 상임감사나 연구소장, 그리고 윤상무는 내성적인 사람들이라 말을 하는 편이 아니고 듣는 편이었다. 총무이사나 박종석이사, 그리고 경리이사는 짬밥이 안 되어 제대로 대화에 끼질 못했다.

구건호는 오후에 김전무와 함께 S기업을 방문했다.

S기업 부사장은 S그룹 내에선 비교적 젊은 부사장이었다. 50대 초반의 엘리트였다. 구건호는 깍듯이 인사를 하였다.

“결혼식에 참석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협력사 사장의 결혼식인데 가봐야겠지요. 그런데 주례를 맡은 이진우 장관과는 잘 아는 사이요?”

“예, 좀 압니다.”

“그 양반이 재벌그룹 사위인데 어떻게 알게 되었소?”

“서울대 정책대학원에서 만났습니다.”

“구사장도 거기 다니오?”

“네, 그렇습니다.”

“오, 그래요? 시간 있을 때 거기 커리큐럼이나 하나 갖다 주시오.‘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김전무와 함께 이지노팩 회장을 만나러 갔다. 구건호는 회장에게 정중히 인사하며 말했다.

“뜻밖에도 회장님이 와주셔서 놀랬습니다.”

“아, 내가 당연히 가야지. 우리 회사 중요 거래처 사장인데.”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 옛날에 조금 껄끄러운 일이 있었지만 난 다 잊어버렸소. 남자가 그런 것 기억하면 못쓰는 법이오.”

“역시 회장님은 마음이 한없이 넓으신 것 같습니다.”

옆에서 김전무도 초를 쳤다.

“이지노팩 회장님이 마음이 넓으신 건 업계에서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압니다.”

“그래? 업계도 소문 났나?”

“그럼요. 제가 업계는 하도 돌아다녀서 정보가 빠삭하잖습니까?”

“그렇지. 김전무는 나하고 안지가 20년이 넘었지.”

“회장님은 화를 내셔도 뒤끝이 없는 분으로 유명하시잖습니까. 더군다나 기업을 선친께 물려받았지만 이렇게 크게 성장시킨 건 전부 회장님이 하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회장님을 더욱 존경하는 것 아닙니까?”

구건호도 아부를 좀 했다.

“저도 회장님이 2세가 아니라 1.5세란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당신도 들었나? 그 소리를? 허허.”

김전무가 끼어들었다.

“저도 들었습니다.”

“김전무는 내가 물량 많이 안준다고 섭섭하지 않아?”

“아, 그건 여기 사정이 있으니까 그런 것 아닙니까? 차차 늘겠지요.”

“다음 달 오더는 내가 많이 주도록 해볼게. 허허.”

이지노팩 회장은 오늘 기분이 아주 좋은 모양이었다.

구건호는 주례를 맡아주었던 이진우 장관에게도 무언가 답례를 해야만 했다. 보통사람 같으면 사례비라도 드리면 되지만 장관이나 되는 사람에게 돈 몇푼 줄 수도 없었다. 더구나 그는 국내 유명 재벌의 사위라 돈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입을 닦기도 어려웠다.

“어떻게 하지?”

구건호는 생각다 못해 그림을 한 점 주기로 했다.

딩펑 선생에게 받은 산수화 그림 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광주에 갔을 때 황영산 선생의 작품을 한 점 사고 싶었었다. 한빛 화랑의 안내원에게 황선생 그림 값을 물어보았는데 너무 고가라 사지 못했었다. 딩펑선생의 그림으로는 사례가 좀 약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황영산 선생의 그림을 사서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한국 사람이 잘 모르는 딩펑선생의 그림을 줘도 될지 모르겠어.”

구건호는 정책대학원 수업이 있는 날 지난번에 가져갔던 떡과 음료수를 차에 실었다. 딩펑선생 그림도 실었다.

구건호는 수업 한 시간이 끝나고 떡을 돌렸다

“결혼식에 와주었다고 돌리는 떡인가?”

“이 떡가지고는 약해. 몇 번 더 돌려야 돼.‘

교육생들은 이런 농담을 하며 떡을 먹었다.

“그런데 결혼식에 사람들 엄청 왔데? 난 구사장이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줄 몰랐어.”

“아, 주례 맡은 이장관 말 못 들었어? 회사를 다섯 개나 운영한다고 했잖아.”

“회사가 얼마나 커?‘

“매출 800억 한다잖아.”

“젊은 나이에 대단하네.”

구건호는 싹싹하게 일을 잘했다. 강사가 마실 음료수를 미리 준비해 주는가 하면 쉬는 시간에 솔선하여 칠판도 닦고 그랬다. 구건호는 교육생들 사이에 차츰 인기가 높아져 갔다. 명함을 달라고 하는 법조계 인사나 고위공무원들도 있었다.

구건호는 교육이 끝나고 나갈 때 주차장에서 이진우 장관에게 그림을 주었다.

“주례를 맡아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기회 되면 라운딩 한번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그림 좋아하시면 한번 감상해 보라고 드립니다. 중국 유명화가의 그림입니다.”

“뭘, 이런걸.”

이진우 장관은 그 자리에서 그림을 펴보았다.

“흠, 좋군. 북종화 계열이네.”

“북종화를 아십니까?”

“알지. 이런 건 상식 아닌가. 그런데 결혼식장에서 보니까 사람들 엄청나게 많이 왔던데요? 총무님 인기가 좋으신가봐.”

그러면서 장관은 손을 내밀었다.

“좋은 사람을 알게 되어 나도 반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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