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0
신혼 생활 (1)
(250)
인천공항 주차장에서 구건호와 김영은은 간편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신혼여행 길에 정장은 불편하기 때문이었다. 정장은 커다란 캐리어에 담아서 벤틀리 승용차 뒤 트렁크에 실었다.
“찬호야, 수고했다. 나흘 후에 내가 여기 오후 5시에 돌아올 예정이다. 차 가지고 나와라.”
“잘 다녀오세요. 사장님.”
“스마트폰 로밍하고 가니 회사에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하와이 호눌룰루 공항에서는 여행사 직원이 나온다고 하였다. 구건호는 공항 로비에 들어서자 약간 움츠렸다.
“혹시 동경에서 오는 비행기나 나가는 비행기는 없나? 괜히 여기서 모리에이꼬를 만난다면 낭패 아닌가? 걔는 왜 하필이면 이때 한국을 들어온다고 했지?”
구건호는 김영은과 함께 게이트를 찾아가다가 선글라스를 쓴 여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설빙이다!”
가까이 가서 보니 설빙은 아니었다.
“휴, 십년은 감수했네. 설빙은 왜 이때 일본에 가서 드라마를 찍는다고 그러지? 한국에선 그렇게 찍을 데가 없나?”
구건호는 주위를 살피며 게이트를 찾아갔다.
다행히 탑승할 때 까지 아무 일이 없었다.
“오빠!”
뒤에서 부르는 여자 목소리는 설빙 아니면 모리에이꼬의 음성이 틀림없었다. 구건호는 화들짝 놀라 뒤를 쳐다보았다. 설빙이나 모리에이꼬가 부르는 소리가 아니고 김영은이 부르는 소리였다.
“탑승 안 해요? 뒤에 사람들이 있는데?”
“응? 아, 알았어.”
하와이행 비행기에 탑승하니 그제서야 안도감이 들었다.
“비행기가 내일 아침에 호놀룰루 공항에 도착한다고? 허, 첫날밤을 비행기 안에서 보내게 생겼네.”
스튜어디스들은 퍼스트 클래스에 탑승한 구건호와 김영은을 보고 신혼부부인줄 금방 알았다.담요도 가져오고 와인도 가져오고 서비스가 극진했다.
비행기는 밤새도록 태평양을 날아 아침 10시경 호놀룰루 공항에 도착했다. 공기가 달랐다. 입국 심사대를 빠져나오자 많은 사람들이 마중을 나왔다. 어떤 젊은이가 A4용지 두 배 정도의 종이에 한글로 구건호라고 쓴 걸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구건호요.”
“반갑습니다. 가이드를 맡은 김도길입니다.”
“한국 유학생이요?‘
“그렇습니다.“
가이드는 한국 유학생치고는 나이가 좀 많아 보였다. 밴 승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운전은 하와이 원주민인 듯한 사람이 운전을 하였다. 차는 한참을 달려 와이키키 해변에 있는 하와이안 호텔에 당도하였다. 고풍스럽기는 하지만 고급스러워보이지는 않았다.
“하와이에 있는 동안 잘 부탁합시다.”
구건호가 100달러짜리 하나를 가이드에게 주자 가이드가 놀랐다.
“힉! 고, 고맙습니다.”
가이드는 구건호의 짐과 김영은의 짐을 빼앗아 자기가 들고 다녔다. 100달러를 받는 순간 태도가 180도로 달라졌다. 호텔 체크인까지 다 해 주었다.
“계시는 동안 스케줄표입니다.”
가이드는 A4용지 한 장짜리 스케줄 표를 주었다.
“장시간 비행기 타고 오시느라 수고하셨으니 호텔에서 쉬시고 제가 두 시간 후에 모시러 오겠습니다.”
호텔에서 점심을 먹고 난 구건호와 김영은은 가이드를 따라 호놀룰루 시내 관광을 하였다. 투명한 푸른 바다도 구경하고 하와이 왕조의 칼라카우아 왕이 건설했다는 이올라니 궁전도 구경했다. 가이드는 사진이 잘 나오는 장소를 잘 알아 사진을 찍어주었다. 가이드는 사진을 찍고 나서 이 건물이 빅토리아 피렌체 건축양식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저녁에는 아주르 레스토랑에서 와이키키의 야경을 구경하며 해산물과 함께 와인을 들었다. 분위기는 최고로 좋았다.
첫날밤이 되었다.
구건호는 여자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동안 모리에이꼬와 뜨거운 정사도 여러 번 해보았었다. 구건호는 김영은의 옷을 하나씩 벗겼다. 김영은은 긴장된 탓인지 꼿꼿하게 들어 누워 눈을 꽉 감고 있었다. 얼마나 세게 감았는지 인상을 쓰는 것 같았다.
김영은은 모리에이꼬처럼 달려들어 팔로 감싸고 하는 행동도 없이 차렷 자세로만 누워 있었다. 설빙처럼 촉촉한 입술도 아니었다.
구건호는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허, 이거 나무토막하고 첫날밤을 치루는 것 같네.]
어찌되었던 재미는 없지만 첫날밤은 무사히 치루었다. 첫날밤을 치루고 난 아침에 김영은의 얼굴을 슬며시 쳐다보았다. 김영은은 의외로 어제보다 더 표정이 밝아진 것 같았다. 잘 웃고 농담도 더 잘하고 행동이 달라진 것 같았다. 심지어는 가이드가 사진을 찍어줄 때 까불기까지 하였다.
기억이 나지 않는 여러 곳을 관광하고 오후엔 하와이안 호텔 야외 테라스에서 전통 하와이안 훌라춤을 구경하였다.
마지막 날이 되었다. 쇼핑하는 날이었다.
김영은은 이것저것을 샀지만 구건호는 살 물건이 별로 없어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뭘 그렇게 샀어?‘
“이거? 티셔츠하고 알로하 셔츠.”
“알로하 셔츠?“
김영은은 옷을 꺼냈다. 구건호가 핀잔을 주었다.
”울굿 불긋한 옷을 쪽팔리게 어떻게 입고 다니냐?“
“집에서 입지! 아빠하고 엄찬호씨 주려고 하나씩 샀어.”
“그건 또 뭐야?”
“손톱 영양오일. 양평 사는 이모 드리려고.”
“손톱 영양오일도 다 있었나?”
구건호는 자기도 빈손으로 돌아 가기는 찝찝했다. 부모님과 누나에게 줄 알호하 셔츠와 손톱 영양오일을 샀다.
구건호는 탑승하기 위해서 호놀룰루 공항에서 웨이팅을 하다가 뜨고 내리는 비행기들을 보았다.
[여러 개 항공사들이 들어오네. 갑질로 유명한 대한항공, 형제 싸움을 했던 아시아나 항공, 델타항공, 하와이안 항공, 심지어 일본항공과 중국 동방항공도 있네. 저 비행기들은 하루 수입이 얼마나 될까?]
강남 큰손 구건호는 사업에만 머리가 돌아갔다.
[인천공항까지 한 사람당 비행기 표 값이 50만원이라면 100명이면 5천만원, 200명이면 1억원, 거 괜찮겠는데? 여기서 지금 뜨고 내리는 항공사들은 제조회사가 아니고 전부 보잉사의 항공기를 리스 했다면 리스료는 얼마나 될까? 정부에서 항공사 운송면허는 어떤 사람에게 내어주는 것인가?]
구건호는 이런 생각을 하며 김영은의 손을 잡고 천천히 귀국 비행기를 탑승했다.
인천공항에는 엄찬호가 나와 있었다.
“즐겁게 보내셨습니까?”
“흠, 회사에 별일 없지?”
“예, 별일 없습니다.”
“가자, 타워팰리스로.”
‘네, 알겠습니다.“
김영은의 결혼 휴가는 5일이지만 앞뒤로 토요일과 일요일이 있어 9일이었다. 이틀을 타워팰리스에서 보내고 명륜동 아남 아파트로 가기로 했다.
벤틀리 승용차가 타워팰리스에 도착하였다.
“엄찬호씨 수고하셨어요.”
김영은은 엄찬호에게 티셔츠와 알로하 셔츠를 기념품이라고 하면서 주었다.
“비싼 거는 아니니까 그냥 집에서 입어요. 기념으로 샀어요.”
“익! 고맙습니다.”
엄찬호가 가려는데 구건호가 다시 엄찬호를 불렀다.
“결혼식 날 임태영이가 애들을 데리고 와서 안내 역할을 하고 돌아갔었지. 태영이 만나면 내가 고맙다고 한다고 전해라. 그리고 이건 애들하고 술이나 한잔하라고 해라.”
구건호가 봉투 하나를 주자 엄찬호가 황송해 하며 두 손으로 받았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김영은이 안방을 보고 좋아했다.
“여기는 내가 사는 아파트하고 달라서 드레스룸이 있어 좋네.”
“안방이 좁으면 책상은 빈방으로 옮겨도 돼.”
“이 방도 운동장 같은데 뭐.“
둘은 같이 김영은이가 사서 보낸 더블 침대에 나란히 들어 누었다.
“여기 쌀 있지?”
“쌀이야 있지. 왜? 밥하려고? 반찬이 없어. 오늘은 나가서 먹어.”
“오빠 내일 출근 안하지?”
“결혼 휴가가 있어서 나도 쉬어도 돼.”
“그럼 내일 나랑 같이 시장가자.”
“여기 재래시장 없어. 재래시장은 양재역 있는 데로 가야돼. 가까운데 롯데마트 있어.”
“그래?‘
“보통 필요한건 롯데마트에서 사면 돼. 차 타고 청계산 쪽으로 가다보면 엄청 큰 하나로 마트도 있어.”
김영은이 침대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았다.
“음식 싹 치웠네. 텅 비었어.”
“누나가 와서 다 버리고 갔어.”
“가스레인지 기름때도 다 닦았네?”
“그것도 누나가 와서 다 해주고 갔어.”
“누나가 고맙네.”
“나가자. 여기 상가 2층에 우동 잘하는 집이 있어. 초밥도 팔아. 오늘은 거기서 밥 먹고 슈퍼에서 음료수나 과일도 사가지고 오자.”
“잊어버리지 말고 생수도 사.”
구건호와 김영은은 타워팰리스 상가동 2층에 있는 미타니아에서 우동과 초밥을 먹었다. 오는 길에 생수와 음료수, 맥주, 과일, 종이컵 등을 사가지고 왔다.
“여기는 앞으로 영은이가 안주인이야. 꾸미는 건 난 잘 모르니까 영은이가 알아서 해.”
둘이 맥주를 마시며 거실에 나와 TV를 보고 있는데 문재식에게서 전화가 왔다.
“신혼여행 잘 갔다 왔지?”
“응, 오늘 도착했어.”
“피곤하겠구나. 보고할게 있어 전화했어.”
“뭔데?”
“논 2,600평 나온 것 계약했어.”
“잘 했다.‘
지난번처럼 계약금은 법인 통장에서 빼서 지불했어.“
“내가 내일 넣어줄게.”
“중도금은 열흘 후에, 잔금은 이달 말 지불하기로 했어.”
김영은이 얼른 TV볼륨을 줄여주었다.
“그럼 지금 쓰고 있는 공장까지 합쳐서 5100평인가?”
“맞아. 성토 작업만 끝나면 대형 트레일러도 들어와 얼마든지 돌릴 수 있어.”
“역시 거기다 판 벌려 놓으니 그런 걸 살 수 있는 기회도 오고 그러는구나.”
“둘이 달콤한 시간 보내는데 이런 전화해서 미안하다.”
“아냐, 전화 잘했어. 그래야 내가 돈을 보내지.”
김영은도 안방에 들어가 자기 아빠와 이모에게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했다. 구건호도 그걸 보고 자기도 인천 구월동에 있는 엄마 아빠에게 신혼여행 잘 갔다 왔다고 전화를 했다.
구건호와 김영은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거실에서 맥주를 마시며 TV를 보았다. 구건호는 이게 행복이란 생각이 들었다.
구건호는 TV를 보고 있는 김영은의 뺨에 쪽 소리가 나도록 뽀뽀를 하였다.
꿈같은 이틀이 지나가고 구건호는 일요일 저녁 김영은을 태우고 명륜동 아남 아파트로 왔다.
“그럼 다음 주 금요일 저녁에 타워팰리스로 올 건가?”
“응, 당분간 그래야지 뭐.”
“지금 영은이가 갖고 있는 차가 무슨 차지?”
“SM5. 차는 있지만 잘 사용 안 해.”
“얼마나 됐나?‘
‘한 5년 되었을걸? 그런데 운행을 잘 안 해. 주행키로 수는 얼마 안 돼.“
“차 바꿔 주마.”
“안 돼, 낭비야. 멀쩡한 차를 왜 바꿔?”
“차 구입하고 나서 5년 동안 타이어 한 번도 안 갈았지?”
“안 갈았어. 하지만 양평 이모네 집에 갈 때 잘만 달리던데 뭘.”
“타워팰리스에 주차된 차들 보았지? 외제차가 얼마나 많아? 5년 된 국산차 타고 들어오면 거기선 쪽 팔려.”
“그렇긴 하지만 아무래도 낭비인 것 같아. 멀쩡한 차를 바꾸다니 말도 안 돼.”
“회사를 다섯 개나 가지고 있는 구건호가 자기 부인은 털털거리는 5년 된 준준형 차를 타고 다니게 한다면 남들이 욕해. BMW 한 대 사주마.”
“됐어.”
“내 체면 좀 봐다오.”
,생각해 볼게. 조심해 들어가.”
구건호는 김영은을 끌어안고 뜨겁게 키스를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