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9
주례 이진우 장관
(249)
다음날 도배를 다시하고 대청소를 하겠다는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타워팰리스에 와 있는데 너 여기 도배하고 화장실 공사 언제 했니?”
“이사 올 때 했지.”
“낮에 와서 보니까 모두 새 거라 교체할 필요는 없겠다. 냉장고, 세탁기도 모두 청소를 안 해 때가 껴서 그렇지 다 새 거다.”
“그럼 대청소만 해.”
“알았다.”
저녁에 퇴근 후 집에 와본 구건호는 깜짝 놀랐다. 청소 한번 했는데 집이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전등갓에서부터 시작하여 화장실, 가전제품은 잡티하나 없이 새로 살 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구건호는 누나에게 전화를 하였다.
“누나, 고마워.”
“너 일 년 동안 청소 한번 안했지?”
“헤헤, 내가 쓰는 안방 청소만 하고 살았지.”
“쓰레기도 많이 나오고 먼지도 산더미같이 나오더라. 청소는 가끔 해주는 게 위생에도 좋아.”
“헤헤, 알았어.”
“신부한테 연락해라. 화장대나 옷장 같은 것은 신부가 주문할거다. 택배 오는 날 집안에 누가 있어야 되니까 아빠 오시라고 하고.”
“음, 알았어.”
구건호는 김영은에게 문자를 보냈다.
[집안 대청소 다 했음. 필요한 물건 있으면 들어와도 됨.]
[화장대, 옷장, 침대, 그리고 내 책상, 책장 등이 갈 것임. 모레 도착예정.]
구건호는 아빠에게 전화를 하였다.
“모레 우리 집에 오세요.”
“도곡동 아파트 말이냐?”
“신부가 보내는 화장대하고 옷장이 오니까 받아주세요.”
“알았다.”
“현관문 비밀번호 알지요?”
“내 생년월일, 엄마 생년월일 앞의 두 글자씩 딴 숫자라며?”
“네, 맞아요.”
“알았다.”
“신부가 안방을 쓰니 오는 물건 안방으로 들여놔 주시고 제 물건은 건너 방으로 옮겨주세요. 옷장 가지고온 사람들한테 부탁하면 옮겨줄 거예요.”
“건너방? 어떤 방 말이냐? 방이 4개나 되던데.”
“현관문 열면 바로 보이는 방에요. 거기가 건너 방 중에서는 제일 큰방에요. 제 골프채 놔둔 방이에요. 컴퓨터 코드선 빼놨으니까 그대로 옮기기만 하면 되요.”
“알겠다.”
구건호가 신사동 빌딩 사장실에서 정책대학원 교육생 명단을 정리하고 있는데 문재식한테서 전화가 왔다.
“농지를 팔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네.”
“우리 샀잖아? 1500평 논 말이야.”
“그 땅 잔금 치루고 나니까 소식 듣고 이번엔 우리 공장 뒤에 있는 논 주인이 땅을 사지 않겠냐고 하네.”
“몇 평이나 되는데?”
“2,600평이야.”
“어휴, 2,600평이면 돈 많이 들어가 못 사겠다.”
“10억에 팔겠다네.”
“10억? 왜 그렇게 싸? 우리 공장 부지를 1천평에 20억 주고 샀는데.”
“아, 이건 맹지야.”
“맹지?”
“출입구가 없어. 우리 공장 뒷담하고 접해있는 논이야. 뒤쪽에 있는 논 알지? 그런데 우리가 사면 우리공장하고 새로 산 논하고 연결되어 기가 막힌 한 덩어리가 된단 말이야.”
“흠, 그래? 한번 가 봐야겠구나.”
“너, 결혼식 준비로 바쁘잖아?”
“아니, 괜찮아.”
“논 주인이 맹지라 평당 40만원을 불렀어. 2600평이니까 10억 4천만원인데 돈이 필요해 10억에 팔겠다고 하더군. 우리가 자기네 땅을 사면 더 큰 한 덩어리가 되고, 출입구가 생기니 맹지도 안 되고 가격이 튈 거라고 했어.
“흠.”
“대한민국에서 자기네 땅을 살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고 하면서 사라고 조르네.”
“알았어. 점심 먹고 갈게.”
구건호는 10억 이라면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지에이치 미디어와 김민혁이 있는 중국 강소성 기차배건 유한공사에서 배당이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공장과 붙은 뒤쪽 땅이라면 합필(合筆: 토지를 합치는 것)하여 지가상승에 큰 재미를 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점심을 먹고 구건호는 엄찬호와 함께 성환에 있는 로지스틱스로 갔다.
얼굴이 점점 좋아진 문재식이 반갑게 맞이했다. 직원 두명이 여기 저기 전화를 받는걸 보니 회사는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공장하고 지난번에 산 논은 6미터 도로변이란 말이야. 우리 공장하고 지난번에 산 논 뒤로 걸쳐있는 저 논이 이번에 팔겠다고 한 논이야.”
“흠.”
“여기보다는 우리 공장 뒤쪽 담에서 보면 잘 보여.”
문재식은 담 있는 쪽으로 구건호를 안내했다. 그리고 담 밑에 파렛트 3장을 겹쳐서 깔았다.
“파렛트 위에 올라가서 봐. 잘 보이지?”
“흠, 보이네.”
“저쪽 미루나무 서있는 곳이 경계선이야. 거기까지가 이번에 팔겠다는 땅이지. 사가지고 이 공장부지하고 지난번 산 논하고 합필하면 끝내주는 땅이 되잖아? 살 사람은 우리밖에 없어. 이 땅은 보다시피 우리 공장이 가로막혀있어 맹지라 누가 안 사.”
“알았다. 계약해라.”
“돈... 있나? 지금 여기 정비공장 사는데 20억 들어가고 1,500평 논 사느라고 9억 나갔는데. 여기 논까지 또 사면 거의 40억이 나간다는 이야기가 돼.”
“돈 조달은 내가 알아서 하마.”
“40억이면 평생 먹고도 살고 강남에서도 부자소리 듣고 살 돈인데.”
“내가 은행 금고를 털던지 할 테니 넌 나중에 형질변경 작업만 잘 하면 돼.”
구건호가 웃으며 문재식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구건호가 도곡동 집에 들어가 보니 김영은이 보낸 가구들이 들어와 있었다. 아빠는 가셨는지 보이지 않았다.
안방엔 드레스 룸이 있어 옷장은 크게 필요하지 않은데 준비를 해가지고 왔다. 침대는 더블침대를 가져왔고 책상과 책장을 놓으니 방이 커 보이지는 않았다.
“나중에 책상과 책장은 다른 방으로 옮겨야 할 것 같군.”
이불도 여러 채 가지고 왔는데 아빠는 전부 침대 위에 올려놓고 가셨다. 구건호는 자기 방으로 쓸 건너 방으로 가 보았다. 안방보다는 오히려 아늑하고 좋은 것 같았다. 구건호는 컴퓨터의 선을 끼우고 작동을 시켜보았다. 와이파이가 있어서인지 인터넷은 금방 되었다. 김영은에게서 문자가 왔다.
[물건 잘 들어갔지요?]
↳ [잘 들어왔어. 몸만 오면 돼.]
↳ [이불도 왔지요?]
↳ [이불도 왔어. 이제 얼어 죽을 염려 없어.]
↳ [편히 주무세요.^^]
↳ [나타샤도 잘 자요. ♥♥]
↳ [ ㅎㅎ ]
결혼식 날이 되었다.
구건호는 새로운 양복에 눈부시도록 하얀 와이셔츠에 푸른색 실크 넥타이를 매고 미리 식장엘 갔다. 벌써 접수대에는 정장을 한 지에이치 모빌의 직원 두 명이 앉아 있었다. 예식장 안내가 와서 구건호에게 흰 장갑과 꽃을 주었다.
“큰형님 축하드립니다.”
구건호가 쳐다보니 임태영이가 초청하지도 않은 깍두기 5명을 데리고 왔다.
“홀 안내는 저희들이 담당하겠습니다.”
‘오, 그래? 고맙네.“
축하 화환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임태영이는 벌써부터 화환을 이쪽으로 놔라, 저쪽으로 놔라 하면서 통반장 노릇을 하였다. 한복을 입은 엄마와 양복 정장을 한 아빠가 구건호 옆에 섰다. 건너편 신부 측을 보니 김영은 아빠와 한복을 입은 최 화가가 서서 손님을 맞고 있었다.
예식 시간이 가까울수록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구건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화환도 50개가 넘게 들어온 것 같았다. 거래하는 원재료업체 사장들이 보낸 것도 있고 아산의 기관장들도 보냈다. 서울대 정책대학원에서 같이 공부하는 장관이나 국회의원들도 보냈고 00사령관도 화환을 보내주었다. 디욘제펜의 리차드 아미엘이 보낸 것도 있었고 절강대 교수 왕지엔과 상해시 인민정부 광파영시국장 리스캉이 보낸 것도 있었다.
화환은 의외로 신부측도 많았다. 무슨 제약회사 사장 명의로 보내온 화환이 많았다. 물론 구건호보다는 적었다.
“신랑 아버지가 뭐하는 분이야. 결혼식이 굉장하네.”
신부 측으로 온 하객들은 신랑 부모의 사회적 위치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신부측은 대학 동창이나 동료 의사들도 많았지만 제약회사 직원도 많았다.
구건호는 하객 중 일부를 엄마와 아빠에게 소개했다.
“00부 장관님이야.”
엄마 아빠는 장관보다 더 깊숙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000 국회의원님이야.”
“이지노팩 회장님이야.”
애덤 케슬러가 동경에서 온 리차드 아미엘과 함께 왔다. 뒤에는 김영진 변호사가 웃으며 서 있었다. 구건호는 애덤 캐슬러와 리차드 아미엘을 엄마와 아빠에게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덩치 큰 미국인이 악수를 청하자 엄마와 아빠는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구건호의 친구들도 왔다. 조원철과 황병철도 보이고 잠바차림으로 온 이석호의 모습도 보였다.
청담동 이회장의 모습도 보였고 괴산에 내려간 박도사의 얼굴도 보였다. 이날 결혼식에서 박도사는 단연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왜냐하면 박도사는 한복 두루마기를 입고 흰 머리를 길게 늘어트리고 진짜 도사처럼 하고 왔기 때문이었다.
식이 시작되었다.
사회는 김민혁이 보았다.
김민혁은 업무 협의 겸 결혼식 참석을 위해서 부부가 함께 왔다. 구건호는 사회를 문재식에게 맡길 가 하다가 말은 김민혁이 잘하므로 김민혁을 시켰다.
김영은은 세련된 화장에 하얀 드레스를 입고 아빠와 함께 입장했다. 그의 지적 용모는 밀레니엄 힐튼호텔의 이스턴베니비스 예식장을 더욱 환하게 밝혔다.
이진우 장관의 주례사가 시작되었다.
[오늘 구건호군과 김영은양의 뜻깊은 결혼식에 많은 분이 참석하여 감사드립니다. 날씨도 젊은 부부의 출발을 축복하는 듯 화창한 봄날입니다.
저는 서울대학교 정책대학원에서 신랑 구건호군과 함께 공부하는 인연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신랑 구건호군은 중국 절강대학교 경상학부를 졸업하고 현재는 자동차 부품제조회사를 비롯한 4개 회사를 경영하는 기업인입니다. 많은 사람을 고용하고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젊은이입니다.
신부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나오고 현재 서울대 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재원이며 일찍이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했던 당차고 또 희생정신이 강한 젊은이입니다....... ]
공돌이 출신 구건호는 이진우 장관의 주례사를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묵묵히 듣고 있었다.
결혼식은 너무 사람이 많아 음식을 못 먹고 간 사람들이 많았지만 무사히 잘 끝났다.
친구와 친인척 사진 촬영도 끝나고 폐백도 끝났다. 구건호와 김영은은 엄찬호가 운전하는 벤틀리 승용차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김포가도를 달리며 구건호가 김영은을 쳐다보며 말했다.
“수고했어.”
“오빠도요.‘
김영은은 피곤한지 구건호에게 몸을 기대었다. 구건호가 살며시 김영은을 껴안아 주었다. 벤틀리 승용차는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며 강변도로를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