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6
결혼 (4)
(246)
상임감사가 사장실을 나가자 구건호는 김민혁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나야, 전화 받을 수 있나?”
“괜찮아.”
“합자사는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딩딩 합자사? 경리직원 하나 뽑고 차도 중국에서 생산되는 치야(기아 자동차를 말함)K3 뽑고 영업 잘 다녀. 명함도 지에이치 로고가 있는 총경리 명함 들고 말이야.”
“여기 직원들이 그러는데 합자사가 잘 된다고 하네. 네 와이프가 영업력이 좋은가보다.”
“좋긴, 내가 거래하던 곳 소개해 준거야. 아, 그리고 참, 그 합자사는 편하게 딩딩 합자사라고 해. 그게 발음하기도 좋잖아? 딩딩 그러면 또 음악적이잖아.”
“하하, 알았다. 그래도 용케 판매했구나.”
“거기서 물건 들어온 것이 전부 다 해서 20톤 밖에 안 되는데 그거야 금방 나가지.”
“그래?”
“내가 물건 더 보내달라고 김전무한테 이야기 하니까 아직 11호기, 12호기가 안 들어와 생산이 달린다고 그랬어. 딩딩은 현재 중국 완성차 제조 공장 아들 부부와 미국 유학 동기라 거길 지금 공들이고 있는데 아직은 두고 봐야지.”
“지금 나간 것 20톤이면 얼마냐?”
“9천만원이지. 중국은 현금 좋아해서 외상매출 오래 끌지는 않아. 다음 달에 수금되면 한국으로 송금할게.”
“기계장비 11호기 12호기는 선적했다니까 곧 물건 갈 거다.”
“알겠어.”
“딩딩이,... 이거 미안하다. 네 와이프 이름 불러서.”
“중국은 괜찮다니까. 다 이름 불러.”
“딩딩이 합자사 총경리에 앉은 것 만족해 하는 것 같아?”
“지에이치 로고 찍힌 명함 받고 되게 좋아하더라. 고급 아파트에서 기아차 타고 다니니 중국 사회에선 중산층이지. 거기다가 미국 유학 갔다 왔다고 혀 꼬부라진 소리 하지. 아빠도 유명 한 화가지. 아빠가 재산 좀 있는데 중국은 자식이 하나밖에 없어 나중엔 그게 다 딩딩한테 넘어올 거란 말이야. 갠 걱정 없어.”
“아, 나 참 3월 18일 결혼한다.”
“그으래? 나, 너 연애한다는 소리 못 들었는데.”
“중매로 갑자기 하게 되었어.”
“신부가 뭐하는 사람인데?”
“의사야.”
“의사? 야, 너 땡잡았다. 킥킥, 공돌이가 진짜 출세했네.”
”너도 출세했잖아. 유학 갔다온 유명 화가의 딸과 결혼했으니.“
“아냐, 아냐. 난 외국인과 결혼했으니 아니야.”
“거기 재무제표 나오면 한부 보내줘라.”
“그럼, 당연히 보내야지. 아예 내가 한국어로 번역해서 번역본까지 같이 보내지.”
“알았다. 일 봐라.”
“3월 18일 결혼식장에 가봐야 하는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꼭 가봐야 되는데.”
“아냐, 그럴 필요 없어.”
구건호가 신사동 빌딩으로 출근하여 정지영 대리를 불렀다.
“우리 거래하는 꽃집 있지요?”
“예, 있습니다.”
“화환 두 개만 보내주세요. 하나는 ‘(주)지에이치 모빌 대표이사 구건호’로 보내고 또 하나는 ‘서울대학교 정책대학원 학우 일동’으로 보내세요. 여기로 보내면 되요.”
구건호가 그러면서 청첩장을 정대리에게 주었다.
“신부측 쪽에 보내는 화환입니다.”
“결혼식장이 이상한 데서 하네요. 00사령부 강당이네요.”
“신부 아버지가 군인이라 그래요.”
구건호는 축의금 봉투도 하나 만들었다. ‘서울대 정책대학원 총무 구건호’란 봉투를 하나 만들었다.
구건호는 퇴근 길에 엄찬호에게 말했다.
“내일 토요일인데 특근해야 되겠다. 내가 결혼식 가야한다..”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엄찬호가 운전하는 벤틀리 승용차를 타고 00사령부를 갔다.
“결혼식을 거기서 합니까?”
“청첩장에 그렇게 되어있어..”
00사령부 정문에는 바리케이트가 쳐저 있었다. 차량이 하나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은 열어 놓았다. 헬멧을 쓴 군인들이 구건호가 탄 차를 막았다. 그리고 경례를 붙이며 말했다.
“어디를 가십니까?”
구건호가 뒷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청첩장을 보여주었다.
“오늘 결혼식장에 가요.”
군인들은 구건호에게 다시 경례를 붙였다.
“그대로 가시다가 오른쪽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오른쪽으로 올라가니 넓은 연병장이 나왔다. 군인들이 여러 명 나와 주차 유도를 하고 있었다. 차도 엄청 많이 왔다. 그런데 화환은 강당에 들어가지 못하고 차고 같은데 모아 놓았다. 서울대 정책대학원을 비롯한 구건호의 화환도 거기 있었다. 화환 30여개가 강당에 들어가지 않고 한곳에 놓여 있었다.
“규정이 그런가?‘
축의금을 내는 접수대는 강당에서 연병장 밖까지 늘어섰다.
“어휴, 사람들이 많이 왔네. 군인 가족들이 많이 왔나?”
구건호는 축의금 접수부터 시키고 강당 안으로 들어갔다. 원 스타, 투 스타 견장을 단 군인들도 여러 명 눈에 띄었다.. 한쪽에는 결혼식 행사를 위해 동원된 헌병들이 칼같이 빳빳한 날을 세운 군복을 입고 도열해 있었다.
구건호는 줄을 서서 신부 아버지에게 인사를 했다.
“축하합니다.”
“오, 총무 아니요? 방금 이장관님도 오셨소.”
구건호는 회장인 이진우 장관도 온 것 같아 찾아보았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찾지를 못했다. 결혼식은 헌병들의 예도 의식 빼놓고는 이렇다 할 특색은 없었다. 주례는 목사가 했다.
구건호는 주차장으로 왔다. 엄찬호는 음악을 듣고 있었다.
“왜 벌써 오셨어요?”
“복잡해서 밥은 나가서 먹자.”
“진짜 사람들 많이 왔어요. 역시 남자가 태어나서 사령관 한자리는 해 먹어야 되겠어요.”
“결혼식만 호화스러우면 뭐하냐. 결혼해서 잘 사는 게 중요한 거지.”
“그래도 아까 보니까 스타들도 많고 영관급들은 여기서 완전 쫄다구들 이더라고요.”
“이 근처 유명한 한우 갈비집 있으니까 갈비나 먹으러가자.”
“갈비요? 좋죠.”
고기를 좋아하는 엄찬호는 입이 크게 벌어졌다.
문재식에게서 연락이 왔다.
“논 임자가 땅을 9억에 팔기로 해서 지금 부동산으로 계약하러 가.”
“흠, 그래? 결국 9억에 하기로 했구나. 계약금 치러라. 오늘은 늦었고 내일 내가 9억원 전부 송금해 주마.”
“농지증명은 땅 주인이 다 알아서 해 주기로 했어.”
“그래?”
“이제 3월이 되었으니까 객토하기도 좋을 거야. 그 영감 논에 기름 들어온다고 딱딱거리지 않게 되어 좋네. 그동안 스트레스 받았는데 말이야..”
“그럼 현재 공장 1천평에 거기 논을 합치면 2500평은 되겠구나.”
“그 논을 사서 도로변에 붙은 땅 면적이 넓어져 모양이 아주 좋아졌어. 형질변경 안하고 밭으로 만들어 뭐를 심어도 좋겠던데? 농담이지만 말이야.”
“잔금까지 치루면 형질변경 작업해라.”
“알겠어.”
“회사는 잘 굴러가지?”
“디욘코리아 거래하는 관세사 사무실에서 컨테이너 수송을 우리한테 맡겨서 수입 좀 올라가고 있어. 차가 많다보니 작은 접촉사고는 몇 건 있었지만 인사사고는 없어. 이제 눈이 안 오니 살 것 같아. 운수회사 최대의 적은 역시 눈이야.”
“인사사고 없이 겨울철 넘겼으니 다행이다.”
“논은 잔금 치루고 다시 연락할게.”
“그래라.”
신부 집에 보내는 채단은 구건호가 그냥 신림동 집으로 보냈다. 김영은의 엄마도 안 계시고 늦게 하는 결혼이라 함을 지고 가는 건 생략했다. 김영은이 오히려 좋아했다.
김영은이 예단명목으로 현금을 보내왔다. 엄마가 예단 현금을 보고 말했다.
“우리 두 내외 양복하고, 네 누나 내외 양복사면 더 이상은 필요 없다. 고모도 필요 없다. 재웅이 결혼할 때 언제 나까지 챙겼냐?”
그러면서 엄마는 김영은이 보낸 현금의 절반을 김영은에게 다시 돌려보냈다.
구건호는 주례문제로 고민했다.
“누굴 세우지? 마음 같아선 청담동 이회장님을 모시고 싶은데.”
구건호는 청담동 이회장을 찾아가 주례를 요청했지만 이회장은 한사코 거절했다.
“나는 사채업자 출신이네.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얼마나 욕할 건가? 그리고 자네도 욕을 먹을 걸세. 어떻게 저런 고리대금업자를 주례로 세우는가 하고 말이야.”
“누가 뭐래도 저는 이회장님을 존경합니다.”
“나는 한 번도 주례를 서본 적이 없네. 흠 있는 사람을 주례 세우는 건 옳은 일이 아니네.”
구건호는 국내에서 정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것이 아니라 은사인 교수님을 모실 수도 없었다. 종교도 없어 목사님을 모실 수도 없었다.
[주례 없이 그냥 할까? 김민혁이나 문재식보고 사회를 보라고 하고 그냥 할까? 요즈음은 주례없이 그냥 하는 경우도 있던데.. 김영은에게 부탁할까? 김영은이 졸업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세우자고 말이야. 그러기에는 자존심이 상하는데.]
구건호는 이리저리 생각해 보았다. 역시 결혼은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부모님도 어렵게 살다보니 부탁할 만한 사람들이 없을 것 같았다.
“정책대학원의 회장에게 부탁해보자. 그런데 현직 장관이 주례를 서도 되나?”
수업이 있는 날 구건호는 주차장에서 회장을 기다렸다.
회장인 이진우 장관이 검은색 제너시스에서 내리는 것이 보였다.
“회장님!”
“오, 총무 아니요?”
“잠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나를?”
“실은 제가 3월 18일 결혼합니다.”
“오, 그래요? 난 장가 간줄 알았는데.”
“장관님께 주례를 부탁하려고요.”
“나를? 난 주례 같은 거 잘 안하는데.”
“장관님을 꼭 모시고 싶습니다.”
“3월 18일이면 내가 그날 골프 약속이 없나 모르겠네.”
“제가 결혼식 끝나면 필드에 한번 모시겠습니다. 저는 가끔 일본이나 중국에 가서 라운딩하기도 합니다.”
회장은 구건호와 함께 강의장으로 올라가면서 말했다.
“지금 하고 있는 회사가 뭐하는 회사라고 했지요?”
“자동차 부품 제조업입니다.”
“매출은 얼마나 해요?”
“작년에 800억 정도 했습니다.”
“흠, 그래요?”
“골프 좋아하시면 일본과 중국에 잘 아는 곳도 있습니다.”
“내가 일본은 여러 번 가보았는데 중국은 아직 못 가봤어요.”
“거긴 바다를 조망하면서 치는 골프장도 있고 3천미터 설산 위에서 치는 골프장도 있습니다.”
“허허, 그래요?”
“중국 가신다면 제가 안내해 드리죠. 제가 중국서 대학을 나왔습니다.”
“오, 그래요? 중국말도 잘 하겠네.”
“네, 약간.”
“결혼식이 3월 18일이라고 그랬나요? 어디서 해요?‘
“서울역 앞 힐튼 호텔입니다.”
“오, 거긴 내가 조찬 세미나에 가끔 연사로 초대 받아 가기도 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총무님 부탁이라면 내가 거절하기 어렵네요. 주례 해 드리지요. 재혼은 아니죠?”
“별말씀을요. 초혼입니다. 하하.”
이렇게 해서 국내에서 대학을 못 다닌 공돌이 출신 구건호는 주례 문제가 해결되었다. 구건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일요일 구건호는 대학로 스타벅스에서 김영은을 만났다. 김영은도 결혼을 앞두고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살이 좀 빠진 것 같았다.
“많이 힘들지? 살이 좀 빠진 것 같네.”
“오빠도 그래요.”
“오늘 영양보충 좀 해야겠다. 좋은 것 먹으러 가자.”
“삼겹살 먹으러 가요. 명륜동에 무한 리필집 있어요.”
“무한 리필집은 고기가 질겨. 어디 한국산 돼지고기 파는데 없나?”
“있어요. 한성여대 쪽 시장 부근에 친구들과 가본 데가 있어요.”
김영은이 안내한 곳은 재래시장 입구에 있는 허술한 삼겹살집이었다. 벽에는 국내산 돼지고기라고 써있었다.
“호호, 사장님이 이런데 오셔도 되겠어요?”
“이런 집이 좋아.”
구건호는 소주도 시켰다.
“차 가지고 왔잖아요. 술 드셔도 돼요?”
“오늘은 좀 취하고 싶어. 대리운전 부르지. 뭐.”
“대리운전을 어디서 불러요?‘
“여기 있잖아.”
구건호는 식당 벽에 붙어있는 대리운전 스티카를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