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244화 (244/501)

# 244

결혼 (2)

(244)

구건호는 엄마에게 전화했다.

“결혼식 날짜는 3월 18일 12시로 확정했고 예식장은 서울역 앞 힐튼 호텔이야.”

“힐튼 호텔? 거기 비싼데 했구나.”

“결혼식 날은 꼭 필요한 사람들만 불러 .”

“그럴 수가 있나? 청첩장 안보내면 아들이 돈 좀 벌었다고 사람 차별 하냐고 할 텐데.”

“그래도 아무나 부르진 말아요. 꼭 친한 사람한테 보내요.”

“그런데 미안하구나. 너 결혼하는데 부모가 힘이 되어주지 못해서. 신부에게 보낼 채단은 엄마가 준비할게.”

“알았어요. 그러면 됐어요. 전화 끊어요.”

정책대학원 강의가 있는 날이었다.

구건호는 자기가 결혼한다는 것을 알려야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했다.

[이 사람들이 친한 것도 아니고 여기서 몇 번 만났는데 보내야 하나? 화환 몇 개 더 들어오고 축의금 몇 푼 더 들어오는 것 다 귀찮은데 말이야. 보내지 않는 것이 예의인지, 아닌지 모르겠네.]

구건호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장군이라는 사람이 쉬는 시간에 구건호를 조용히 불렀다. 별 말도 없이 항상 뚱하고 앉아있는 사람이었다.

“총무님, 이거 하나 물어봅시다.”

장군은 그러면서 포켓에서 무엇을 꺼냈다.

“이게 청첩장인데 실은 우리 큰딸이 결혼한단 말이요. 여기 계시 분들한테 알려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몰라서 내가 총무한테 묻는 거요.”

“아, 그러세요? 축하드립니다. 당연히 알려야지요.”

“그럴까?”

“그럼요. 청첩장 가져오셨어요? 저, 주세요. 제가 나누어드리지요.”

장군은 삼소나이트 서류 가방 속에서 청첩장 한 움큼을 꺼내 구건호에게 주었다. 명함도 한 장 주었다. 명함에는 oo사령부 사령관으로 되어있었다.

[이 사람은 뚱하고 있더니 이런 거나 돌리려고 하네. 내 것을 먼저 이야기 하려고 했는데 김새게 먼저 초를 치네. 결혼식 날짜가 다행히 2월말이라 나와 겹치지 않아 다행이야.]

강의 시간이 가까워지자 밖에 있던 사람들이 강의실로 들어왔다. 교수가 오기 전 구건호가 막간을 이용하여 앞으로 나왔다.

“저기 뒤에 세 번째 앉아계신 장군님의 장녀가 2월 26일 결혼을 한답니다. 장군님은 현재 oo사령부 사령관으로 계십니다. 시간 되시는 분들은 꼭 참석하여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는 기색은 아닌 것 같았다. 장군 주위에 앉아있는 사람들만 장군에게 악수하며 축하의 인사말을 하였다.

구건호가 청첩장을 나누어 주었다. 어떤 사람은 낮은 소리로 빈정대기도 하였다.

“여기서 몇 번 만났다고 청첩장을 돌려?”

구건호가 신사동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미국 시애틀에 가 있는 송사장한테 국제 전화가 걸려왔다.

“시애틀에 잘 도착했고 무역협회 직원들도 나와 있어서 부스 오픈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자동차 박람회에 참관하러 온 많은 사람들이 AM083 어셈블리 이중압출 제품을 보고 관심이 많았습니다. 우리 회사의 카다로그를 가져가기고 하고 제 명함도 가져갔습니다.”

“그 중에서 한건 건졌으면 좋겠네요.”

“일단 반응은 괜찮습니다. 기존 제품들도 가격조건이 유리하면 구매 협상을 하겠다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

“흠.”

“오더가 있을지는 몰라도 업계에 홍보는 된 것 같습니다. H모비스 사장님도 게스트로 참관하러 오셨는데 우리 제품들을 살펴보고 가기도 했습니다.”

“흠.”

“변동사항이 있으면 또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잠깐만요.”

“무슨 일 있습니까?”

“총무이사가 승진후보자 명단을 보내왔는데요. 경리부장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후보자 9명 전원이 승진 조건에는 다 부합됩니다. 승진시켜줘도 상관없는데 경리부장 문제는 제가 결정할 성질의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경리부장을 승진시키면 재무담당 임원이 둘이 됩니다.”

“한 사람은 다른 부서로 보내야 하겠군요.”

“어떻게 하는게 좋겠습니까?”

“죄송합니다. 그건 제가 답변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장님이 결정하십시오.”

“알겠습니다.”

구건호가 직산공장으로 출근하였다가 화장실에서 박종석 이사를 만났다.

“너, 내방으로 좀 와라.”

박종석이 사장방으로 들어오자 비서가 녹차 두 잔을 가지고 왔다.

“별일 없지?”

“응, 별일 없어. 지난번 송사장이 현장에 와서 불량률이 낮아졌다고 생산부 중간 간부들 하고 회식이나 한번 하라고 했어.”

“불량률이 낮아져? 다행이다. 노조도 잠잠하지?”

“걔들 요즘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난리야. 노노간 싸움이지.”

“왜 그래?”

“서로 노조 위원장 해먹으려고 그러지.”

“위원장 되면 뭐가 나지나? 회사에서 월급 더 주는 것도 아닌데.”

“판공비 있잖아. 자기들 예산 집행권도 있고.”

“음, 노조회비를 마음대로 집행할 수 있다 이건가?”

“마음대로야 못하겠지만 어느 정도는 재량권이 있겠지.”

“집안도 별고 없지?”

“없어. 참 형, 승진 발표 안 해? 대상자들 지금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던데.”

“곧 할 거야.”

구건호는 디욘코리아의 김전무에게 전화했다.

“지금 사무실에 계십니까?”

“아닙니다. 이지노팩에 들어와 있습니다.”

“점심이라도 같이 할까 했는데 거기 계시다니 못하겠군요. 그럼 일 보십시오.”

“아닙니다. 지금 끝나서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여기서 디욘코리아보다는 모빌이 가까우니 모빌로 가지요. 지금 모빌 사무실에 계시죠?”

“그럼 이리 오지 말고 12시에 매실농원 가든으로 오세요.”

“알겠습니다.”

매실농원 가든 주위에 있는 매실 나무들은 겨울이라 앙상한 가지만 있었다. 평상 옆에 있는 소나무의 잎만 푸르렀다.

김전무가 도착했다.

“다른 임원들은 안 왔습니까?”

“아니, 나 혼잡니다.”

둘이 매실 농원 가든의 홀로 들어갔다. 겨울철이라 그런지 손님이 없었다. 매실이 한창 열릴 때는 손님들이 복작거렸는데 오늘은 텅 비었다. 홀 안은 난방을 빵빵하게 틀어 훈훈했다.

구건호와 김전무, 그리고 엄찬호 3명이 밥을 먹었다. 대개 이런 경우 엄찬호는 밥을 빨리 먹고 나갔다. 높은 사람들 이야기 하는데 자기가 옆에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이 집은 식사 때 의례히 모주가 나왔다. 구건호와 김전무가 천천히 모주를 들었다.

“먼저 나가 있겠습니다.”

엄찬호가 나가자 구건호가 김전무에게 말했다.

“지에이치 모빌의 이번 승진심사 대상자는 9명입니다.”

“예, 소문 들었습니다.”

“이번 승진 대상자에 경리 김민화 부장도 들어 있습니다.”

“김민화 부장도 4년차 부장이니 들어갔겠지요.”

“문제는 김민화 부장이 경리이사로 승진하면 상임감사를 다른 부서로 옮겨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겠죠. 대기업도 아닌데 재무담당 임원이 둘씩은 필요 없겠지요.”

구건호는 검은 빛이 도는 모주를 마시며 말했다.

“그래서 나는 상임감사를 디욘코리아로 보낼까 합니다.”

“예? 디욘코리아로요?”

“디욘코리아가 커지게 되면 디욘의 조명숙 차장으로는 벅찰 수 있습니다. 조명숙 차장이 일을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디욘으로 넘어오면서 차장이 된 사람이라 아무래도 경험이 없으니 상임감사 같은 사람이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중국이나 동남아 시장으로 디욘코리아 제품이 나가면 연결재무제표도 작성하고 그쪽 나라 회계에 대한 지식도 있어야 하겠지요. 뭐 저는 좋습니다. 사장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직급은 상임감사로 하겠습니다. 상무나 전무 직급을 주면 나중에 승진문제가 부딪치게 됩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애덤 캐슬러에게 잘 말해주세요. 한국에서는 상임감사 제도가 있다고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상임감사 안 두면 나라에서 벌금 엄청나게 많이 나온다고 하지요. 하하.”

“이지노팩 회장 아들 문제는 잘 해결되었답니까?”

“돈 가지고 막았겠지요.”

“잘못하면 아들 대에 말아먹겠네.”

“어느 집안이건 문제 하나씩은 다 있지요. 이지노팩 회장도 아들 문제만 나오면 한숨 쉬더군요.”

“이지노팩 회장도 문제는 있지요. 5년 전 아들이 술집에서 맞았다고 야구 방망이 들고 가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전무님이나 저 같으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하하, 이지노팩 회장도 작고하신 선친에게서 물려받은 금수저 아닙니까?”

“본인은 2세가 아니고 항상 1.5세라고 한다면서요?”

“선친대 보다 회사를 더 키웠다고 해서 그런 모양입니다.”

“회사 규모가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자동적으로 굴러가지요. 큰 변동이 없다면 말입니다. 그걸 가지고 1.5배라고 큰 소리 치는 군요.”

“그래도 어떡합니까? 디욘코리아의 제품을 사주는 고객이니 가서 잘 보여야지요.”

“전무님은 그렇게 하셔야겠지요.”

“사장님도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사장님도 지난번 이지노팩 회장 아들을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박종석 이사 말로는 자기도 회칼로 그놈 얼굴을 작살내고 싶었지만 사장님이 말렸다고 하더군요. 그런 면에서 사장님의 모습에 거인의 그림자를 봅니다.”

“과찬의 말씀. 아무튼 애덤 캐슬러에게 상임감사가 온다고 이야기 해주십시오.”

“합자사이기 때문에 임원의 변동사항은 캐슬러도 아마 디욘 본사에 보고할 겁니다. 걔들도 위클리 리포트를 작성하는 애들이니까요. 보고는 하되 크게 관여는 안할 겁니다.”

김전무를 보내놓고 직산 공장으로 돌아온 구건호는 상임감사를 불렀다.

“커피 한잔 하시죠.”

“네.”

상임감사는 구건호가 왜 불렀나 궁금한 표정이었다.

“혹시 디욘코리아에 가서 일해 볼 생각 없으십니까?”

“디욘코리아요?”

“거기는 계속 기계가 들어오고 있고 매출도 늘고 있어 확장 추세입니다. 재무담당 임원이 필요할 것 같아 그렇습니다. 오히려 여기 계시면 내년에 임기가 끝나지만 거기로 가시면 새롭게 임기가 시작되므로 임기가 연장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뭐, 저야, 나쁠 것은 없습니다.”

“경리부장 김민화도 4년차 부장이라 이번에 승진대상자입니다. 아무래도 재무담당 임원이 두 분이면 회사규모로 보아 맞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맞습니다. 김민화 부장도 물파 시절부터 회사 살림을 맡아하다 시피 했습니다. 법정관리 때도 많이 고생한 사람입니다. 여자지만 상당히 똑똑하고 업무에 빈틈이 없습니다.”

“흠.”

“사장님의 높은 뜻 잘 알겠습니다. 디욘으로 가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김전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애덤 캐슬러에게 상임감사 부임을 이야기 했더니 자기들은 한국 측 인사문제에는 간여를 안 한답니다. 합자 계약서에 나오는 사장과 부사장만 협의 대상이라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총무이사를 불렀다.

총무이사가 다이어리를 들고 사장실로 왔다.

“승진대상자 9명은 3월 2일자로 발령합니다. 전원 품의 안(案)대로 승진 발령합니다. 경리부장 김민화는 경리이사로 하며 고희석 상임감사는 디욘코리아 상임감사로 전출 발령합니다. 역시 3월2일자입니다.”

“감사합니다.”

총무이사가 구건호에게 깊숙이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나갔다.

총무이사는 즉시 공문을 만들었다. 각 부서로 보내는 승진 발령 통보였다. 아울러 작성된 공문은 송장환 사장 명의로 사내 게시판에 붙었다. 사원들은 웅성거리며 승진 발령 통보서를 보았다.

“이번엔 될 사람들이 됐네.”

김민화 부장이 문을 열고 사장실로 들어왔다.

“고맙습니다. 사장님.”

“고맙긴요. 될 분들이 된 거지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김민화 부장은 목소리까지 떨었다. 눈물까지 보였다. 역시 여자라 눈물에 약한 모양이었다. 김민화 부장은 이사가 됨으로서 달라지는 게 많게 생겼다. 급여도 많이 올라가지만 회사 차를 배정 받을 수 있고 파티션으로 쳐진 자기만의 공간에서 양수책상에서 회전의자 돌리며 근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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