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3
결혼 (1)
(243)
일요일 구건호와 김영은은 대학로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만났다.
“어제 수고 많았어요.”
“다들 수고했지요.”
오늘 만나자고 한 것은 예식장 문제 때문이에요. 어디가 좋을 가 서로 상의해요.“
“교통 편한 것이 좋겠지요.”
“음, 서로 부모님들이 사는 인천과 신림동 사이가 좋지 않을가 생각합니다.”
“강남이 좋지 않을 가요? 구건호씨 사무실이 신사동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저도 동료 의사들이 강남에 많이 살아요.”
“강남으로 할까? 인천과 신림동 사이라면 전쟁기념관이나 힐튼호텔도 좋을 것 같네요.”
“힐튼호텔? 서울역 앞에 있는 곳 말이죠? 음.... 거기도 괜찮겠네요. 거기서 의학 학술 세미나가 있어서 가봤어요. 언젠가 조찬회도 가봤고요.”
“거기면 인천서 오는 손님이나 신림동에서 오는 손님이나 무난할 것 같네요. 5호선과 1호선이 지나가니까 강남에서 사는 사람들도 무난할 거예요.”
둘은 결혼식을 서울역 앞에 있는 밀레니엄 서울 힐튼 호텔로 정했다.
“그런데 예식장은 빨리 예약해야 한다고 하네요. 내일이라도 같이 예식장 가봐야겠네요.”
“내일은 안되고 모레 화요일 점심시간에 여기로 와 주시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둘은 스타벅스 부근에 있는 사보텐이란 식당에서 돈가스를 먹었다.
돈가스를 먹고 나서 구건호가 걷자고 하였다.
“소화도 시킬 겸 좀 걷지요.”
“여긴 사람이 많아요. 제가 사는 아남 아파트하고도 가깝워요. 한성대역 앞 스타벅스 쪽으로 가요.”
둘은 렌드로버를 타고 한성대역 앞 스타벅스로 갔다.
“둘레길 걸을 가요?”
“둘레 길은 오르막길이 있으니까 오늘은 그냥 간송 미술관까지만 걸어가요.”
“간송 미술관?”
“예, 간송 전형필씨 미술관요.”
구건호는 간송 미술관이 어디 있는지 잘 몰랐으나 따라가기로 했다. 이쪽은 대학로보다 조용해서 좋았다. 구건호가 김영은에게 팔짱을 끼었다.
“구건호씨 안 추우세요?”
“영은씨와 걸으니 안추어요.”
“풋.”
김영은이 웃었다.
“이제 구건호씨라고 부르지 마세요.”
“그럼 뭐라고 불러요? 사장님? 회장님?”
“오빠라고 불어요.”
“오빠?”
“그래요, 오빠라고 불러 봐요.”
“오빠!”
김영은은 오빠라고 불러놓고 깔깔 웃었다.
구건호가 김영은의 허리를 끌어 앉았다.
“고맙다, 영은아!”
“지나가는 사람들이 봐요.”
구건호는 김영은이 사랑스러워 뽀뽀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보행자가 있는 도로라 차마 그렇게 하질 못했다.
둘은 간송 미술관까지 걸어갔다. 짧은 거리라 금방 왔다.
“시간이 2시반 밖에 안됐네. 오늘 오빠네 집에 가자.”
“도곡동 아파트?”
“그래.”
“그럼 올 때 나 여기까지 태워줘야 해요.”
“그래, 오빠가 태워줄게.”
차가 제3한강교 다리 위를 건너갈 때 김영은이 물었다.
“거기, 오빠 혼자 살아요?”
“아니, 둘이.”
“둘이?”
“김영은이란 사람하고.”
김영은이 주먹으로 구건호의 어깨를 치며 웃었다.
구건호의 아파트를 보고 김영은이 놀랐다.
“어마나! 이렇게 넓어요?”
“그럼, 자식 여러 명 낳고 살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혼자 이렇게 넓게 살면 비경제적이에요.”
김영은은 이방, 저방 문을 열어보았다.
안방에만 침대와 책상, 그리고 TV와 컴퓨터가 있는걸 보고 김영은이 말했다.
“이 방만 쓰는 모양이네요.”
김영은은 왕지엔이 쓴 ‘중국의 미래’란 책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김영은은 방을 나와 주방으로 가더니 냉장고 문도 열어보고 주방 찬장도 열어보았다. 주방 옆 베란다에 있는 세탁기도 보았다.
“호호, 그릇이 별로 없네요.”
“외식을 많이 해서 그래.”
둘이 거실에 있는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전망이 좋네요.”
구건호가 김영은을 살며시 안았다.
“고마워.”
구건호가 김영의 뺨에 키스를 하였다. 그리고 입을 맞추었다. 김영은의 숨소리가 그대로 구건호에게 전해졌다.
“평생 행복하게 해줄게.”
구건호는 더욱 격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김영은이 구건호를 밀어냈다.
“저, 이제 가봐야 되요.”
구건호는 김영은을 태우고 다시 혜화동 로터리로 갔다.
“혜화동 아남아파트라고 했나?”
“명륜동 아남아파트에요.”
구건호는 가다가 신호만 걸리면 김영은을 쳐다 보았다.“
“운전할 땐 앞에 봐요. 안전운행 해야지요.”
구건호는 가다가 또 쳐다보았다.
“돈룩(Don't Look)!”
김영은은 이번엔 영어로 소리쳤다.
구건호는 아남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나도 영은이 사는 곳 구경해야지.”
“다음에 오세요.”
“싫어. 오늘 보고 싶어.”
“우리 집 좁고 청소도 안했어요.”
“그래도 좋아.”
김영은이 사는 아파트는 21평형이었다.
방이 둘인데 작은방 하나는 의학 서적이 가득했다. 거실에는 최 화가가 그린 듯한 수채화 한 점이 걸려 있었다.
안방엘 들어가 보았다. 침대와 책상이 있었는데 벽에 그림엽서 같은 것이 잔뜩 붙어 있었다. 구건호가 그림엽서를 보자 김영은이 말했다.
“정신 사납죠?”
“아니야, 좋아.”
책상 위에는 흰 가운을 입고 동료 의사들과 단체로 찍은 사진이 있었고 정말 아프리카를 갔다 왔는지 새카만 흑인 어린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
“혼자 살긴 좋은데. 얼마주고 샀나?”
“산건 아니고 반 전세에요.”
“반 전세?”
“보증금이 전세보다는 적고 월세보다는 많은 거예요.”
“그런가? 직장은 가깝겠네.”
“병원까지 여기서 걸어 다녀도 돼요.”
“흠, 그거 하나는 좋겠네.”
“이제 그만 가보셔야지요. 도곡동까지 한참 걸리던데.”
“저녁은 먹고 가야되겠네. 우리 내려가지.”
구건호는 출근을 위해서 직산 공장으로 가다가 송장환 사장의 전화를 받았다.
“인천공항입니다. 인사 못 드리고 시카고로 출발합니다.”
“잘 다녀오세요. 다음 주에나 보겠네요.”
“사장님도 중간에 한번 시카고로 오시죠.”
“요즘 개인적으로 바쁜 일이 많아 그건 어렵겠네요.”
“뭐, 좋은 일 있습니까?”
“아니요, 나중에 말씀드리지요.”
“구건호는 결혼을 앞두고 할 일이 많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서울대 정책대학원의 총무 노릇을 하니 더 바빠졌다.
구건호는 지에이치 모빌 직산공장에 도착하여 최근의 매출 구성을 알고 싶었다. 경리부장 김민화를 부를까 하다가 상임감사를 불렀다.
[경리부장을 바로 부르면 상임감사가 소외감이 들겠지.]
상임감사가 사장실로 왔다.
“지난달 거래처별 매출 구성을 알고 싶습니다.”
“우리 회사는 대개 월 70억 내외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계절적 요인도 있어 봄, 가을에 좀 많고 겨울철은 약세입니다. 물파산업 시절엔 연간 매출액이 약 700억이었다가 법정관리 기간중 500억대로 주춤한 적이 있습니다. 이후 AM083신제품 매출이 월 10억정도 되고 송사장님이 와서 S기업 4개 공장의 납품액이 월 10억 정도 됩니다.”
“기존 매출액은 월간 약 50억이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월 70억에 연간 800억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해 사업실적 보고 때 우리 회사 매출은 816억으로 보고 드린바 있습니다.”
상임감사가 나가고 난후 구건호는 혼자 계산해 보았다.
[월 매출 70억에 S기업에서만 발생하는 매출이 30%가 되네. 신제품 AM083이 S기업으로 들어가고 송사장 부임하여 신규거래처를 뚫은 것도 S기업 4개 공장에 들어가니 결국 모두 S기업 거래네. 송사장이 금년도에는 자기가 부임한지 1년이 못되어 스톡옵션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했지? 합리적인 사고는 갖고 있는 사람이네.]
[송사장이 내년도에는 스톡옵션을 행사하겠지. 내년도에 50억 순익이 발생한다면 2억 5천을 받아가겠네. 코스닥 상장후 순익 100억이 발생한다면 월급 외에 5억을 받아가겠지. 월급쟁이로는 꽤 짭짤하겠네. 그러니 저렇게 시카고도 가고 그러는 거 아닌가? 하긴 나도 덩달아 좋아지니 더욱 권장할 사항이긴 하지만 말이야.]
구건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총무이사가 들어왔다.
“사장님 살이 좀 빠지신 것 같네요.”
“살이? 그런가요?”
“사장님, 이번 승진인사는 어떻게 할 가요?”
“승진문제는 내가 간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송사장에게 다 맡겼어요.”
“임원인사가 걸려서 그렇습니다. 임원인사는 송사장 전결로 할 수 없잖습니까?”
“임원인사? 누가 해당된다는 거요?”
총무이사가 결재판 속에서 승진 심사대상 후보자 명단을 꺼냈다.
“해당 직급 근무년수 4년차 이상과 인사고과 B이상자 대상입니다. 모두 9명입니다. 그중 1명이 임원 후보자입니다. 경리부 김민화 부장이 해당자입니다.”
“흠.”
구건호가 명단을 보았다. 대리, 과장, 차장, 부장의 승진자 대상은 구건호가 볼 필요가 없지만 김민화 부장은 구건호가 관여해야만 했다.
“흠, 이 문제는 내가 좀 더 검토하고 연락드리죠.”
“알겠습니다.”
총무이사가 허리 굽혀 인사하고 나갔다.
구건호는 김민화 부장 처리를 어떻게 할까 고민 했다.
[법정관리 시절에 혼자 일을 다한 사람이라 시켜는 줘야겠지. 업무에 대한 능력도 우수하고 계수감각도 있는 사람이지만 이렇게 되면 재무담당 임원이 두 사람이 되네. 상임감사와 함께 둘이 재무담당 임원이라 한 사람은 뽑아 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디로 보내지?]
[송사장과 의논해 보고 싶은데 미국엘 갔으니 안 되겠고 그렇다고 상임감사와 의논하기도 난감하네.]
상임감사는 중소기업에서는 상설기구는 아니다. 대기업에만 있다. 따라서 지금 있는 상임감사는 명칭만 그렇게 부르지 실상은 재무 담당 역할을 해온 사람이었고 임기도 1년 남아있는 상태였다.
화요일이 되었다.
구건호는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동숭동 서울대학 병원엘 갔다. 김영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동안 문자 메세지만 보내고 직접 전화는 처음인 것 같았다.
“나야, 오빠야.”
“네, 오빠.”
지금 서울대병원 정문이야. 본관 현관 앞에 나와 있어.“
“알겠어요.”
구건호는 김영은을 태우고 힐튼 호텔을 갔다.
차를 타고가면서 김영은이 옆자리의 구건호에게 말했다.
“저, 살 좀 빠져 보여요?”
“아니, 모르겠는데?”
“보는 사람마다 살이 빠졌다고 그러네요.”
“나도 그런 소리 들었었는데.”
엄찬호가 룸미러를 보면서 말했다.
“결혼 날짜 받으면 살이 빠진데요.”
“신경 쓸 것이 많아서 그런가?”
“사장님은 좋으시겠어요.”
“왜?”
“사모님 될 분이 의사라 아프면 고쳐줄 것 아녜요?”
구건호와 김영은은 웃고 말았다.
두 사람은 힐튼호텔 예식부 예약담당 사무실로 갔다.
“언제 하실 겁니까?”
“3월 18일요.”
“일요일이네요.”
담당직원이 스케줄표를 보았다.
“토요일은 꽉 차는데 일요일은 가끔 비긴 합니다. 교인들은 일요일을 피하는 경향이 있어서요.”
다행히 3월 18일 예약이 가능하였다. 구건호와 김영은은 하객 300석 짜리를 맞추었다.
“300석이면 될 거야. 나는 회사에서 임원들 이상만 오라고 할 예정이야.”
웨딩드레스 비용이나 사진촬영 비용은 생각보다 엄청 비쌌다.
“어휴, 그렇게나 많이 들어요?”
김영은이 너무 비싼지 되물었다.
“다른 호텔은 더 비쌉니다. 보여 드릴가요?”
구건호가 말렸다.
“됐어요. 그대로 하세요.”
김영은이 불안스런 얼굴로 구건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지금 다른 예식장 잡기도 어려워. 그냥 하자.”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은 밀레니엄 서울 힐튼호텔 이스턴베니비스 예식장을 예약했다.
담당직원은 신혼여행지도 알선해주어 신혼여행지는 하와이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