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242화 (242/501)

# 242

상견례 (4)

(242)

장관이나 법조계 인사들은 편하게만 살아와서 그런지 입으로 모든 걸 다했다.

“총무, 여기 물수건 좀 더 갖다 달라고 하세요.”

“총무, 모텔 주차장 외엔 주차할 데가 없나?”

“총무, 여기 컵이 하나 모자라요!”

회장이 구건호를 불렀다. 차에다 술을 갖고 다니는지 발렌타인 17년산 3병을 주었다.

“테이블 위에 하나씩 올려놔줘요.”

귀한 술을 가져 왔으니 또 소개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구건호가 일어섰다.

“저, 여기 주목해 주세요.”

모두 구건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방금 회장님께서 발렌타인 17년산 양주 3병을 주셨습니다. 큰 박수로 감사의 표시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모두 박수를 쳤다. 어떤 장관은 갈구는 사람도 있었다. 갈구는 것은 공돌이 세계나 고위 공직자 세계나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재벌집 사위가 17년산이 뭐야. 30년짜리 하나는 가져와야지.”

구건호는 말석에 앉았다. 나이도 어리고 사회적 지위도 이 자리에선 별로라 그랬다. 그러고 보니 끼리끼리 앉은 것 같았다. 장관은 장관대로 앉고 법조계는 법조계 대로 앉고 별들은 별대로 앉았다. 구건호 앞에는 아주 나이 많은 건설회사 사장이 앉아 있었다. 모두 과거에 폼 잡았다는 이야기들이 주로 오고 갔다. 교수들도 왔는데 교수들이 더 나이가 어려 학생들 목소리가 더 컸다.

시끄러운 회식이 끝나고 고급 승용차들이 골목을 빠져 나갔다.

구건호가 엄찬호한테 물었다.

“식사는 잘 했나?”

“예, 잘 먹었습니다.”

“다른 기사들도 잘 먹었지?”

“예, 다들 같이 먹었습니다. 그런데 모시고 다니는 오야지들이 다 짱짱하네요.”

“뭐가 짱짱해?”

“장관들도 많고 법조계도 많고 장군들도 있네요. 기사 중에는 공무원 신분인 사람도 있어요.”

“그래?”

“기사들 나이들이 많았어요.”

“흠.”

“그런데 차는 우리 차가 제일 좋았어요. 다른 기사들이 얼마짜리냐고 물어봤어요.”

“그 놈들한테 기죽을 필요 없다.”

“그럼요. 오야지가 대단해도 실속 없으면 별 볼일 없지요.”

구건호가 지에이치 모빌로 출근했다. 송사장은 자리에 없었다.

연구소장이 구건호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사장실로 왔다. 무슨 서류를 들고 왔다.

“사장님 이거 한번 보아주시겠습니까?‘

“뭡니까?”

“수소연료 전지자동차 부품개발에 대한 연구비 정부 지원 안내입니다. 앞으로는 휘발유를 이용한 내연기관보다 수소연료 전지자동차가 대세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언젠가 언론 보도를 한번 본 기억이 납니다.”

“이번에 평창 올림픽에서도 수소차가 선을 보인바 있습니다.”

“들은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수소연료차란 뭡니까?

“수소와 공기 중 산소를 반응시켜 발생하는 전기로 모터를 돌려 구동력을 얻는 차를 말합니다.”

“우리 지에이치 모빌에서 만드는 제품은 전부 내연기관용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수소연료 전지를 이용한 부품 개발시에는 시제품 제작비를 정부가 적극 지원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들고 온 문건이 그겁니다.”

“100%지원은 아니지 않습니까?”

“90%지원입니다. 시험테스트의 장비도 테크노파크 등의 장비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환경시험이나 인증시험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럼 신청하시죠.”

“이 연구테마는 제가 BMW연구원으로 있을 때부터 연구한 것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저와 함께 연구원 2명이 여기에 매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연구를 못한다는 말이겠군요. 현재 우리의 소득원은 내연기관인데 말입니다.”

“미래에 대한 투자입니다.”

“알겠습니다. 신청하세요.”

송장환 사장이 들어왔다.

“연구소장이 수소 전기차 부품 개발을 위한 정부 보조금 신청을 승인해 달라고 하네요.”

“미래는 그쪽으로 가야되겠지요. 아직은 수소 충전소가 적어 인프라가 약하지만 말입니다.”

“개발비 90%를 지원해 준다고 하네요.”

“하지만 인력이 그쪽으로 붙게 되면 R&D비용이 1%는 증가할 것으로 봅니다.

“미래의 먹거리라면 승인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시카고는 언제 출발합니까?”

“다음 주에 출발합니다. 사카다 이쿠조씨가 개발한 AM083 이중압출 부품은 규격별, 칼라별로 분류해서 출품토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기존부품은 다른 회사들도 다 만들어 내는 내연기관용이므로 AM083 하나만 기대를 걸어봅니다..”

“디욘코리아의 통역 이선생과 같이 가나요?”

“그렇게 하기로 애덤 캐슬러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오후에 디욘코리아로 갔더니 낯선 사람들이 와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김전무도 이들과 함께 있었다.

구건호는 비서 이선혜를 불러 물어보았다.

“저 사람들은 누구요?”

“잡지사 기자들이랍니다.”

“기자?”

“홍보용 사진을 찍는 모양입니다.”

“흠.”

구건호는 이선혜를 다시 불렀다.

“애덤 캐슬러씨를 내 방으로 오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이선혜씨도 간단한 통역은 할수 있지요?”

“네,”

“그럼 애덤 캐슬러씨와 같이 들어오세요.”

애덤 캐슬러가 들어왔다. 이선혜도 메모지를 들고 같이 들어왔다.

“지금 우리가 현물 출자외의 기계장비 9호기, 10호기는 리스로 들어와 있습니다.”

“맞습니다.”

“앞으로 수출용 생산을 위하여 16호기까지 계속 들어올 예정인데 꼭 리스로 들여올 필요가 있겠습니까? 우리에겐 그동안 쌓인 보유현금 32억이 있지 않습니까?”

“글쎄요.”

“이번 결산은 영업일수 1년도 안되어 디욘본사에서 과실 송금 하자는 이야기는 안할 것 아닙니까? 장비를 사서 들여오는 방향으로 하지요. 그런데 장비 값이 너무 비싸요. 싸게 들여올 수 있다면 그게 좋겠는데.”

“본사도 기계장비를 직접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납품 받아서 이윤 붙여 보내는 것입니다. 생산자와 직접 접촉하면 좋을듯한데 본사에서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본사와 협의를 해보시죠.”

“알겠습니다.”

애덤 캐슬러가 나가고 김전무가 들어왔다.

“기자들 갔습니까?”

“갔습니다. 플라스틱 매거진 잡지에 칼라광고를 할 예정입니다. 거기 사장을 잘 알아 반값에 광고를 때려주겠다고 해서 기자들을 불렀습니다.”

“흠. 그래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요?”

“전에 사장님하고 저하고 일본 출장갔을 때 통역을 했던 제 조카 말입니다.”

“일본 유학생 말입니까?”

“일본서 학교 졸업하고 한국에 들어왔는데 나이 때문인지 취업이 잘 안되네요. 디욘코리아를 들어오고 싶어 하는데 총무 쪽 일을 맡겨보면 어떻겠습니까?”

“총무에 대한 경험은 없지요?”

“총무 경험은 없지만 총무과장이 있으니까 일을 배우게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현재 총무과장이 혼자서 일하니까 벅찬 모양입니다. 생산직 인원이 많아지니까 근태기록 확인후 수당 산출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려 외근 일을 잘 못합니다.”

“데리고 와 보세요.”

“실은 밑에 와 있습니다.”

“그래요? 비 간부니까 전무님이 알아서 채용하세요.”

“인척관계가 되다보니 남들 오해도 살 것 같아 사장님께 승인을 받고 쓰려고 합니다.”

“데리고 와 보세요.”

“알겠습니다.”

김전무가 자기 조카를 데리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디욘코리아가 일본과 접촉은 없더라도 일본어 하는 친구가 한명은 있는 게 좋겠지.]

두꺼운 안경을 낀 30대 중반의 남자가 들어왔다.

“흠, 얼굴을 한번 본 기억이 나네요. 의자에 앉아요.”

남자가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구건호는 총무과장을 사내전화로 불렀다.

총무과장이 사장실로 들어왔다.

“총무과장이 일이 많다면서요?”

“아 예, 조금.”

“이 분이 앞으로 총무과장 일을 보조하게 될 거예요. 아직 경험이 없으니 잘 좀 가르쳐 주세요. 생산직원들 근무수당 계산하는 것부터 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상견례 날자가 되었다.

이날은 토요일이라 엄찬호를 부르지 않고 랜드로버를 타고 갔다. 어른들이 잘 못 찾아 올까봐 좀 일찍 갔다.

“지에이치 예약 손님입니다.”

룸에서 기다리니 엄마 아빠가 누나와 같이 왔다.

“하이고, 이런데 이런 고급 식당이 있네. 시상에.”

엄마와 아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누나가 구건호에게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말했다.

“나는 먼저 간다.”

“수고했어.”

“야, 여긴 두당 10만원 넘겠는데? 나도 여기 처음 와봤다.”

아빠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신부 아버지가 교사 출신이라고 그랬지?”

“네.”

엄마가 아빠를 보고 말했다.

“당신 말실수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얼굴도 활짝 피고.”

“당신이나 말실수하지 마. 실수는 말 많은 사람이 하게 되어있어.”

“조용, 누가 오는 소리가 난다.”

구건호가 룸 밖으로 나왔다.

김영은과 아빠가 들어왔다.

“안녕하셨습니까?”

구건호가 김영은 아빠에게 깊숙이 허리숙여 인사를 했다.

“일찍 온 모양이네.”

김은영 아빠가 손을 내밀었다.

구건호가 김영은을 보니 오늘따라 옅은 화장을 하고 왔다. 벙거지 비슷한 모자까지 쓰고 왔는데 평상시 보던 것과는 달리 상상외로 예뻐 보였다. 역시 여자는 화장과 옷이 날개란 생각이 들었다.

“다들 오셨나?”

“예, 오셨습니다.”

김영은과 김영은 아빠가 룸으로 들어서자 엄마와 아빠가 황급히 일어났다. 엄마는 당황해서 그런지 손수건을 떨어트리기도 했다.

“저의 엄마, 아빠입니다.”

엄마와 아빠가 깊숙이 허리 숙여 인사했고 김영은 아빠도 크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구건호의 부모나 김영은의 아빠는 이런 음식점은 자주 다녀보질 못했는지 다들 촌스러워보였다. 주위의 분위기와는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래도 구건호와 김영은의 세련된 용모는 여기서도 빛을 발했다.

김영은 아빠가 먼저 말했다.

“제가 혼자되다보니 얘 엄마와 같이 못나왔습니다.”

“예, 말씀은 들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김영은의 달라진 모습에 자꾸 쳐다보았다. 주위의 고급스런 분위기와 조화가 되어 김영은의 얼굴은 더욱 예뻐 보였다.

“훌륭한 따님과 인연을 맺게 되어 기쁩니다.“

아빠는 어디서 배워가지고 왔는지 말을 그럴듯하게 하였다. 구건호가 종업원을 불러 음식을 주문했다.

“코스 요리로 하고 술은 사케 말고 와인으로 주세요.”

“알겠습니다.”

구건호가 어른들에게 말했다.

“코스 요리니까 조금씩 계속 나올 겁니다. 천천히 드시면 됩니다.”

구건호가 엄마 얼굴을 쳐다보았다. 엄마는 계속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김영은 아빠가 다시 말했다.

“얘 엄마가 고등학교 때 그렇게 되어서 통 가사 일을 배우질 못했습니다. 많은 이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엄마가 말했다.

“지난번 우리 집에 왔을 때 보니까 예절바르고 단정해서 훌륭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구나 하는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도 수준급의 대화를 했다.

구건호가 어른들에게 붉은 와인을 잔에 조금씩 따라드렸다.

어색하지만 화기애애한 가운데 상견례는 무사히 끝났다.

구건호가 나오면서 김영은에게 물었다.

“차 가져왔지요?”

김영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빠 차로 왔어요.”

“그래? 내일 어디 안가면 대학로 스타벅스로 12시까지 갈게요. 의논할 것이 있어요.”

구건호는 이날 부모님을 랜드로버에 태우고 구월동 집으로 모셔다 드렸다.

엄마가 차 안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

“흥, 너희 고모 며느리는 우리 며느리 발뒤꿈치도 못 따라 온다. 인물 훤하지, 서울대학 나왔지. 당당한 의사지, 예의범절 있지, 지금 내가 다녔던 요양원이나 교회에선 의사 며느리 본다고 난리다.”

아빠도 한마디 했다.

“건호가 복이 있는 거여. 신부 아버지도 학교 선생을 해서 그런지 아주 점잖네.”

“건호야, 우리가 실수한 게 없지?”

“예, 실수한 거 없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결혼 날짜는 잡았니?”

“3월 18일 하기로 했어요. 예식장 알아봐야 해요. 예식장 사정에 따라 날자 변동은 있을 수 있어요. 확정되면 다시 말씀 드릴게요.”

“그 집이 신림동이라고 그랬지? 그럼 어디가 좋을 가? 인천서 오는 손님들 있으니까 노량진 옆 대방동 어떠냐? 거기 유한양행 있는데 예식장 있더라.”

구건호는 엄마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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