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239화 (239/501)

# 239

상견례 (1)

(239)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졌다. 구건호는 김영은과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고 싶었다.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24일 저녁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고 싶군요. 저녁 6시까지 대학로 스타벅스로 나가겠습니다.]

김영은에게 답신이 왔다. 구건호는 김영은의 문자를 처음 받는 것 같았다.

[24일은 신림동 아빠가 계신 곳에 가야합니다. 다음 기회에 만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구건호가 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잘 되었네요. 아버님을 뵈러 저도 신림동으로 가겠습니다.]

김영은은 답신이 없었다.

구건호는 자기가 결례를 한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답신이 없으니 또 불안하였다. 옛날 군대에 있을 때 선임하사가 말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쨔샤, 여자는 무조건 잠자리를 같이해야 내 사람이 되는 거야. 여자는 요물 같아서 언제든지 고무신 거꾸로 신는 거 몰라?. 구건호 이 새끼는 순진하기만 해서 그렇게 못하겠는데?”

구건호는 모리 에이꼬나 설빙처럼 강제로 김영은을 끌어안고 키스라도 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김영은에게는 그게 안 통할 것 같았다. 잘못하다간 다 된 밥에 코를 빠트리는 격이 될 것만 같았다.

“반지 맞춘다고 실로 손가락까지 재간걸 보면 결혼의사가 있는 것 같은데 어째 답이 없을까?”

구건호는 모리에이꼬가 생각났다.

모리에이꼬는 문자만 보내면 오빠, 오빠하면서 달려올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모리에이꼬가 많이 외로울 거야. 학교생활도 제대로 못해 친구도 별로 없을 텐데.”

구건호는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에 가서 겨울용 파카를 하나 샀다. 그리고 다이칸야마에 있는 맨션 주소로 부쳐주었다.

옷이라도 하나 부쳐주니 무거운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하지만 이번엔 스마트폰을 보다가 설빙의 기사가 기분이 잡쳤다. 설빙과 남자가수의 열애설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설빙의 엄마가 반대한다는 기사도 있었다.

“설빙은 거의 포기했는데 내 마음이 왜 이러지? 남자가수와 연애를 하던 결혼을 하던 상관이 없는데 이상하게 뒤숭 생숭 하네.”

구건호는 집에서 잠자리에 들 무렵 김영은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12월 24일 저녁 6시 신림동 동부아파트 2동 XXX호실로 오세요]

구건호는 안도감에 편안한 밤을 잘 수 있었다.

구건호는 다음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안에 별일 없죠?”

“별일 없어. 너도 잘 있지?”

“몸 아픈데 없어요?”

“괜찮아. 허리 보호대 하고 다니니까 활동하는 데는 아무 지장 없어.”

“다행이네요. 아빠는요?”

“아빠? 아빠는 너무 잘 먹어서 탈이다.”

“나, 요즘 여자 하나 사귀었어.”

“뭐라고? 여자 사귄다고?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뭐하는 애냐?”

“엄마도 알 만한 사람이야.”

“알 만한 사람? 누군데?”

“연말 지나고 한번 집에 데리고 갈게.”

“뭐하는 애야? 나이는 몇 살이고?”

“나보다 6살 적어. 병원에 다녀.”

“병원? 간호원이냐? 여섯 살 적다니 네가 그래도 그런 재주는 있구나. 하하.”

“간호원은 아니야.”

“간호원 아니면 뭐야. 원무과 직원이야?”

“나중에 이야기 할게. 그런 줄만 알아.”

“빨리 데리고 와라. 얼굴 한번 보고 싶다.”

한 시간 쯤 후에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 여자 있다며? 왜 진작 이야기 안했어?”

“사귄지 얼마 안 돼.”

“병원에 다닌다며? 간호원이냐? 엄마는 원무과 직원인 것 같다고 하더라.”

“아직 결혼까진 몰라. 좀 더 지켜보고 나서 이야기 할게.”

“실은 내가 좋은 사람이 있어서 소개해 주려고 했는데 안됐구나. 여섯 살 차이라며? 네가 좋아하게 생겼다. 여자 고향은 어디야?”

“서울이야.”

“엄마 아빠도 만나게 해 드려야지. 누눈지 나도 보고 싶다. ”

“알았어. 나중에 연락할게.”

김영은의 아빠는 의사 사위 보기를 원했다. 딸과 사위가 같은 길을 가는 것을 더 바랬다. 사업하는 사람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처제인 최 화가와 몇 번 입씨름을 했었다.

“나는 의사 사위를 보았으면 해.”

“아니, 영은이가 결혼하는 거지 형부가 결혼하는 거예요? 언제까지 영은이를 끼고 살 작정이에요. 내년이면 걔도 서른 한 살이에요, 서른 한 살. 좋은 사람 나타났을 때 후딱 해 치워요.”

“신랑 될 사람이 사업한다며? 사업은 불안해. 사업하다 망한 사람이 얼마나 많아.”

“의사도 망하려면 망해요. 그 사람이 한 두푼 가진 것도 아니고, 들은 이야기로는 천억이 넘는 재산이 있는 사람인데 그렇게 쉽게 망해요?”

“그래도 사업은...”

“아니, 현대나 삼성이 언제 망했어요? 남자가 큰일을 하려면 사업도 하고 정치도 하고 그러는 거지 안정만 찾으면 뭐해요. 형부는 안정 안정 하는데 형부처럼 안정하다는 학교 교사하다 떵떵거리고 사는 사람 봤어요?”

“자수성가한 사람이라 호감은 가는데 글쎄...”

“자수성가한 사람이라 야물어서 내가 보기엔 재산을 더 늘렸으면 늘렸지 안 망해요. 영은이 좋다면 시키세요. 보아하니 영은이도 그렇게 싫은 표정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이번에 영은이 크리스마스날 집에 오지요? 신랑 될 사람 한번 오라고 하세요.”

“얼굴이나 한번 보지. 그런데 젊은 사람이 어떻게 천억을 벌어. 나는 도대체 이해가 안가.”

“이해가 안가면 직접 물어보세요.”

크리스마스 날이 되었다.

구건호는 깔끔한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코트를 입었다. 그리고 렌드로버에 중국술 마오타이 두병을 실었다. 오다가 신림역 주변 제과점에서 커다란 케익도 하나 샀다.

김영은의 아빠가 산다는 아파트는 좀 오래된 아파트 같았다.

“6층이라고 그랬지?”

구건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으로 올라갔다. 자동키 번호를 몰라 문을 두르렸으나 반응이이 없었다. 김영은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문 앞에 와 있어요.”

문이 열렸다. 청바지를 입은 김영은이 나와서 문을 열어주었다.

“이게 다 뭐에요?”

김영은이 구건호가 가져간 마오타이와 케익을 받았다. 아파트 내부는 단출해 보였다. 25평 정도 되어보였다. 김영은의 안내로 거실 소파에 앉았다.

“아빠는 안계세요?”

“계세요.”

김영은이 안방의 문을 열었다.

“왔어요.”

안방에서 6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왔다. 약간 마른 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구건호가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였다.

“앉아요.”

“네.”

김영은이 녹차를 가져왔다.

그런데 김영은의 아빠는 구건호를 보고 좀 쑥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우리 영은이는 언제부터 만났소?”

“6개월 정도 된 것 같습니다.”

“부모님은 다 계시고?”

“예, 두 분 다 계십니다.”

김영은이 사과를 깎아가지고 왔다. 김영은 아빠가 사과를 한쪽 들면서 말했다.

“들어요.”

“네.”

“지금 사업하신다고?”

“예, 그렇습니다.”

“무슨 사업을 해요?”

“자동차 부품 제조업입니다.”

“흠, 그럼 공장도 있겠네.”

“네, 천안시 직산읍에 있습니다.”

“직산이 천안시였든가?”

“예, 그렇습니다.”

김영은은 자기 아빠와 구건호가 이야기 하는 것을 유심히 들었다.

“그래, 종업원은 몇 명이나 있소?”

“현재 250명 있습니다.”

“250명?”

김영은의 아빠가 약간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김영은도 눈을 크게 떴다.

“흠, 종업원이 꽤 되네. 성씨가 구씨라고 했나?”

“예, 그렇습니다.”

“어디 구씨요?”

“능성 구씨입니다.”

“흠, 우리는 김해 김씨요.”

김영은이 구건호가 사온 케이크를 들었다.

“아빠, 케이크 여기 올려놓을 가요?”

“케이크를 사온 모양이네. 아주 큰 걸 사왔네. 먹을 사람도 없는데.”

김영은이 구건호가 가져온 술을 가리켰다.

“저것도 사왔어요.”

“저게 뭐야? 어이쿠, 마오타이네. 비싼 술 사왔네!”

“이게 비싼 거예요?”

김영은이 마오타이 상표를 쳐다보았다.

“참, 중국서 학교를 다녔다고 했지요? 중국 어디서 다닌 거요.”

“절강성에 있는 절강대학입니다.”

“오, 절강성! 전공은 뭐요?”

“경상대학입니다.”

“옳아, 그래서 사업하는 모양이구먼. 중국어도 잘 알겠네. 저 벽에 걸린 액자 글씨도 알겠소?”

“네, 압니다. 유덕유린(有德有隣: 덕이 있으면 이웃이 있다는 말)이라고 썼네요.”

“저건 중국말로 뭐라고 해요?”

“요떠요린이라고 합니다.”

“요떠요린? 끝에 린자는 같은 발음인 모양이네.”

두 부녀는 구건호의 말에 아주 흥미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가만있자. 손님을 이렇게 대접하면 되나? 영은아 뭣 좀 시켜라. 냉장고 옆에 통닭집하고 족발집 스티카 붙어있다. 전화해라.”

“아닙니다. 아닙니다. 식사 하고 왔습니다.”

“그럼 식탁 위에 마른안주 있으니 그거 가져와라. 잔 두 개하고.”

김영은이 마른안주와 잔 두 개를 가져왔다. 아빠가 마오타이 한 병을 땄다.

아빠는 구건호에게 한잔을 따라주었다. 구건호가 두 손으로 받았다.

“흠, 역시 좋네.”

아빠는 술맛이 좋은지 잘 마셨다. 술기운 때문인지 구건호에게 반말을 하기 시작했다.

“자네도 마셔. 남자가 한잔씩은 해야지.”

구건호는 두 손으로 잔을 받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마셨다. 최대한 예의를 표시하려고 애를 썼다.

“이게 마오타이에요? 저도 한잔 줘보세요.”

김영은도 빈 잔을 가져왔다.

“어휴, 술 냄새!”

김영은이 조금 마시더니 인상을 썼다. 아빠는 술이 들어가더니 말이 많아졌다. 김영은이 케이크를 상에 올려놓고 촛불을 켰다. 김영은의 제의로 크리스마스 캐롤도 불렀다.

“내가 아들이 하나 생긴 것 같군.”

구건호는 최 작가 말대로 술을 가져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영은은 케이크를 예쁘게 잘라 접시에 담아 포크와 함께 내왔다. 술과 함께 케이크를 안주삼아 먹었다. 구건호가 보기에 김영은 아빠도 기업의 생리나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잘 모르는 듯 했다. 어떤 대화는 아이들 같은 질문도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평생을 아이들과 함께 지내서 그런 것 같았다.

“영은이가 학교 다닐 때 참 모범생이었네. 부모 속 한번 썩인 적도 없고 공부도 잘했지. 전교 1등을 했네. 착하고 예쁜 우리 딸이 결혼을 한다니 내가 기쁘기도 하고 섭섭한 기분도 드네. 결혼들 하면 잘 살게. 그게 부모에게 효도하는 길이네.”

“아버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구건호도 어느새 자연스럽게 아버님이라고 불렀다.

김영은의 아빠는 술을 즐겨 드시는 모양이었다. 하긴 부인을 잃고 많이 적적할 땐 술로 외로움을 이겨 나갔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구건호의 나이도 이제 한 달만 있으면 37살이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버님은 전에 무슨 일을 하셨나.”

“인천서 회사에 다니셨습니다. 작은 회사입니다.”

“부모님이 대단하네. 아들 유학도 보내고 그랬으니 훌륭하신 분들이네.”

“감사합니다.”

“영은이가 엄마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게 아쉽군. 영은이 엄마가 일찍 죽는 바람에 가사 일에 대하여 부족함이 많이 있을 거네. 그래서 얘 이모가 많이 가르치기도 했는데 그래도 서툰 구석이 많을 거네. 자네가 많이 이해해 주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김영은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빠, 이제 그만 술 드세요. 구건호씨 이제 가봐야 해요.”

“음, 그래? 어이쿠, 벌써 이렇게 시간이 되었나?”

구건호가 일어섰다.

“오늘 아버님 뵙고 즐거웠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구건호가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다음에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나오지 마십시오.”

“음, 그래, 잘가요. 영은아, 너는 바래다 드려야지.”

김영은이 일층 현관까지 따라 내려왔다.

“아버님한테 합격 점수 딴 것 같아요?”

“술까지 드신 것 보니 그런 것 같네요.”

“아버님이 좋으신 분이네요. 학자같은 인상이에요.”

“조심해 가세요.”

구건호가 손을 내밀며 김영은과 작별의 인사를 하였다. 구건호가 아파트 입구까지 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김영은은 그때까지 현관에 서서 구건호가 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멀리서 구건호가 다시 손을 흔들었다. 김영은도 역시 손을 흔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