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4
둘레길 데이트 (2)
(234)
신호가 몇 번 간 후에 김민혁이 전화를 받았다.
“야, 네 와이프 소주시 국제학교서 급여 얼마씩 받냐?”
“3천 위안 정도 되는 것 같던데?”
“신설법인 총경리 해볼 생각 없냐고 한번 물어봐라.”
“뭐? 디욘코리아 중국 판매회사를?”
“그래. 급여는 8천 위안 정도로 하고 말이야.”
“흠.”
“학교는 급여가 작아도 안정성은 있지만 합자사는 위험은 있겠지. 하지만 돈은 고위험 고수익 아니야?”
“이 방면에 하나도 경험이 없는데.”
“너나 나나 언제 경험 있어서 이 사업하냐?”
“하긴 그래. 그런데 본인이 하려고 할까? 그게 문제네.”
“이야기나 한번 해봐라.”
“급여가 8천 위안이면 엄청 매력은 있는데.”
“수습기간 3개월 지나서 적성에 맞으면 스톡옵션도 고려해 볼게.”
“스톡옵션을?”
“그래.”
“알았어. 한 번 물어보지. 물어보고 연락해 줄게.”
오후가 되어 구건호는 디욘코리아로 넘어갔다.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문재식에게서 연락이 왔다.
“추레라를 사야겠다. 홈페이지 띄워 놓으니까 컨테이너 화물 수송도 의뢰가 가끔 와.”
“돈은 되나?”
“돈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어. 추레라도 캐피탈 회사에서 자금 지원을 해 준다고 했어.”
“공장이 좁아서 차 세워둘 데는 있나?”
“아, 그건 걱정 마. 여기 논 매립한 비어있는 땅 많아. 월 주차비나 지주한테 좀 주면 돼.”
“추레라는 차가 길어서 땅도 넓어야 되겠던데?”
“앞부분 트렉타하고 뒷부분 트레일러하고 분리해서 주차시켜도 돼.”
“필요하면 사라. 그리고 앞으로 증차(增車)하는 건 네가 알아서 해라. 나중에 손익에 대한 것만 나에게 알려주면 돼.”
“논 주인이 또 와서 딱딱거려 논을 팔라고 했어.”
“기름 유출한다고 그랬나?”
“기름 유출한 것도 없는데 와서 지랄하네. 쓰레기 같은 건 가끔 바람에 날려 들어가긴 하는데 땅주인 그 자식이 아무래도 논을 우리보고 사라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 그러니까 그 지랄을 떨지.”
“싸우다가 땅 팔라고 하면 진심이 아닌 것으로 아니까 한가할 때쯤 찾아가서 진지하게 이야기 해봐.”
“알겠어.”
“그럼 수고해라.”
“아, 잠깐. 저녁에 여기 한번 안 올래? 종석이가 이따가 6시에 족발 사가지고 온다고 했어.”
“그래? 그럼 내가 서울 올라가다가 잠깐 들리지.”
구건호가 저녁에 성환의 로지스틱스 사무실을 들렸다.
마당 한옆에 청색 자바라 천막이 쳐져 있었고 포장용기가 가득 쌓여 있었다. 사무실에는 은행이나 우체국처럼 접수대를 만들어 놓았다. 벽에는 운송 약관이 걸려 있고 사무실 중앙에 현수막도 걸려있었다
[Speed, Smile, Service, 3S는 내가 먼저!]
구건호가 현수막 글씨를 보고 씩 웃었다.
접수를 받는 담당직원은 퇴근했는지 자리에 없었다. 책상 위에는 인쇄된 운송장 용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회사다운 모습이 점점 보여 지고 있었다.
“어? 왔어?”
문재식이 컴퓨터를 보고 있다가 인기척에 일어났다. 박종석은 아직 안 온 모양이었다.
“종석이는 아직 안 왔나?”
“응, 금방 온다고 연락 왔어.”
밖에 차 소리가 나는걸 보니 박종석이가 온 모양이었다.
“어? 건호 형도 왔네.”
“너, 족발 사온다고 하더니 어째 빈 손으로 왔냐?”
“족발을 누가 사들고 다녀? 배달 다 해 주는데. 벌써 시켰어. 곧 올 거야. 건호 형도 오고 엄찬호도 있으니까 족발 대자 하나 더 시켜야겠는데?”
박종석이 족발 집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여기 지에이치 로지스틱스인데요. 예, 맞아요. 옛날 정비공장 자리요. 아까 시킨 것 아직 출발 안했으면 대자 하나 더 추가로 가져 오세요.”
“소주도 있어야 되잖아?”
“내 차에 5병 가져 왔어.”
“너는 차에 항상 소주를 싣고 다니는 모양이구나.”
“아냐, 오다가 슈퍼에서 샀어.”
박종석이 테이블 위에 신문지를 깔았다.
“너는 차에다 신문지도 가지고 다니는 모양이구나.”
“아냐, 여기 신문용지가 없을 것 같아서 오다가 벼룩신문 하나 빼왔어. 지금 밑에 깐 것이 벼룩신문이야.”
“벼룩신문 사장이 보면 너 멱살 잡겠다.”
오토바이 소리가 났다. 족발집 배달원이 왔다. 족발 중자 하나와 대자 하나를 가지고 왔다. 서비스로 콜라도 가지고 왔다.
구건호가 족발 값을 내려고 하자 쏜살같이 박종석이 계산했다.
“너 월급쟁이가 무슨 돈이 많다고 계산 하냐?”
“사장님 오셨으니 아부 좀 해야지. 참, 찬호 오라고 해야지.”
박종석이 나가더니 엄찬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엄찬호까지 들어와 4명이 테이블 앞에 앉았다.
박종석은 역시 손이 빨랐다. 소주 4병을 금방 깔아놓고 종이컵도 깔아놓고 족발 비닐 포장도 순식간에 뜯었다. 그리고 종이컵에 소주를 콸콸 따랐다.
“자, 건호 형 한잔. 찬호가 운전하고 가니까 마음껏 들어. 전에 랜드로버 끌고 다닐 땐 제대로 술도 못 마셨잖아.”
“조금만 줘.”
“찬호야. 너는 오늘 술 마시면 안 된다. 이 작은 형이 콜라 한잔 따라줄게.”
박종석이 엄찬호에게 콜라를 따라 주었다. 엄찬호가 두 손으로 잔을 받았다.
“고맙습니다. 작은 형.”
“너, 큰 형님 잘 모셔라. 좋은 분이다.”
“예, 잘 모시고 있습니다.”
박종석은 문재식한테도 소주를 컵에 가득 따랐다.
“조금만 줘.”
“아따, 왜 이래? 섭하게. 재식이 형은 여기 2층 숙소에서 잘 거 아냐? 마음껏 들어. 운수회사 사장하려면 술도 좀 마실 줄 알아야 해.”
“야, 그렇지 않아도 어제 중장비 기사들하고 여기서 소주 10병이나 깠다.”
“그런데 형은 참 출세했어. 지하실에서 살다가 2층에 사니 출세한 것 아니야?”
“야, 지하실 소리 하지마라. 지긋지긋하다.”
엄찬호가 술병을 들었다.
“작은 형도 한잔 하셔야죠.”
“걔는 주지 마. 운전하고 가야돼.”
“아냐, 딱 한잔만 할게. 한잔은 안 걸려.”
“조심해라. 직산에서 두정동 가는 길에 지난번에 보니까 음주단속 하더라.”
“오매, 저 소주 앞에 두고도 못 마시니 환장하겠네. 이럴 줄 알았으면 마누라 나오라고 할 것 잘못했네.”
“너, 늦게 가면 제수씨한테 야단맞겠다.”
이 말에 엄찬호도 하하 하고 웃었다.
“인천 부모님은 집 내 놓았다고 그랬지?”
“지금 11월이라 내년 구정 지나고 집이 나갈 것 같아.”
“부모님도 정든 인천을 떠나시니 마음이 좀 서운하시겠다.”
“교회에서 친했던 교인이 이쪽으로 이사를 왔나봐. 그래서 더 오고 싶어 하더라고. 그리고 내년 3월이면 와이프가 출산하는데 어미님이 계시면 좋을 것 같아. 친정 부모님들이 다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아이를 봐줄 형편이 못돼. 그러나 저러나 재식이 형은 아이 안 가졌어?”
“응, 아직 소식 없어. 이렇게 떨어져 사니 부부사이가 더 좋아진 것 같기는 하다. 지난주 토요일에 올라갔더니 굴비까지 구워주더라.”
“그럼 하나 곧 생기겠는데. 굴비까지 먹었으니 힘내서 말이야.”
“이 새끼가!”
“그런데 건호 형은 알 수가 없어. 여자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소문엔 영화배우 같은 사람들하고 만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누가 그래?”
“다 아는 수가 있어. 찬호야 너도 알지?”
“전 잘 모르겠는데요.”
“홈페이지 만들어 놓으니까 오늘 40피트 콘테이너 수송할 것이 있다고 연락이 왔어. 중국 광동성에서 들어오는 컨테이너인데 평택항에서 포천까지 수송하는 거야.”
“그래서 차 없다고 그랬나?”
“아니, 지금 차들이 모두 나가서 빈차가 없다고 그랬지. 컨테이너는 거리가 좀 멀고 그러면 하루 100만원도 넘게 받을 수 있어. 종석이가 이야기한 중장비는 다음 달엔 철수해야 될 거야. 헌 겨울이 되니까 땅이 얼잖아. 계약은 내년 6월까지니까 2월 구정 지나면 바로 또 현장에 투입될 수 있어.”
“흠, 그래?”
“어제 중국에 있는 민혁이 하고 통화했는데 중국 서부지역 컨테이너 수송을 눈여겨보라고 하더군.”
“중국 서부?”
“천진이나 상해, 청도 등 동부권은 이미 경쟁이 심하니까 사천성이나 티벳이나 감숙성등 서부지역 물류가 앞으로 뜨게 될 것이라고 했어.”
“거기도 가면 판촉활동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우선 한국 대기업 물류를 잡으라고 하더군.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흠.”
“실은 국내 화물업계도 경쟁이 심해. 나는 운이 좋은 편이야. 우선은 디욘코리아가 있고 지에이치 산하의 임원들이 관심을 갖고 일감을 알선해 주니 시작은 편하게 한 셈이야. 앞으로의 몫은 내가 해야겠지. 요 옆에 논은 꼭 내가 사볼게. 주인이 와서 행패를 부리지만 아무래도 땅을 팔아먹으려고 수작을 부리는 것 같아.”
“흠.”
“나, 어제 주민센타에 가서 주소 전입신고 하고 왔어. 공장이 주거지역이 아니라서 안 되면 어떡하나 했더니 해 주더라고. 이장하고도 인사했고 노인정에서도 월동 난방비 찬조금 걷으러 다녀서 좀 주기도 했어. 농지증명 받는 덴 이상 없을 거야. 논은 봄되면 바로 찔러 볼게.”
2주가 지났다.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여 이제 제법 두꺼운 옷을 입어야 했다.
강남 신사동의 지에이치 빌딩 사장실은 빵빵한 난방으로 훈훈했다. 구건호는 직산에 있는 지에이치 모빌의 송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구건호입니다.”
“예, 사장님, 송장환입니다.”
“내 가수금 30억은 자본금으로 전입하겠습니다.”
“헉! 가, 감사합니다.”
“연말 배당은 어느 정도 될 것 같습니까?”
“세후 당기순이익 30억 정도도 예상하며 25억은 배당 가능합니다.”
“25억중 5%인 1억 2천 5백만원은 약속대로 송사장님은 배당 받아 가십시오. 내 몫 23억 7천 5백은 이익 잉여금 처리 후 부채 상환을 합니다.”
“저는 배당 받을 수 없습니다. 입사한지 1년이 안되어 받고 싶어도 자격이 안 됩니다. 25억을 부채 상환하는 것으로 합니다.”
“받아가세요. 이사회 회장으로서의 지시입니다.”
“따를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흠.”
“오늘 말씀하신 내용대로 임시 이사회 회의록을 작성하겠습니다. 법정 유보금을 제외한 25억 전액을 부채 상환 하는 것으로 하고 외부 감사인에게도 그렇게 통보하겠습니다. 사장님의 결단에 종업원을 대표하여 감사드립니다.”
구건호는 송사장과의 전화를 끊고 서울대 병원 여의사 김영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만난지 2주가 되었군요. 성북동 성곽 둘레길이 자꾸 생각납니다. 일요일 10시까지 한성대역 스타벅스로 나가겠습니다.]
중국의 김민혁에게서 연락이 왔다.
“딩딩이 결정했다. 합자사 총경리 한번 해보고 싶데.”
“딩딩은 김민혁의 와이프 이름이었다.”
“잘 생각 했다. 그럼 법인 등기해라. 합자사의 이름은 지에이치 쑤리아오(塑料: 소료) 유한공사로 하고 자본금은 10만달러, 대표이사는 딩딩(丁丁)으로 하고 출자비율은 한국 구건호 90%, 딩딩 10%로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어.”
“뭔데?”
“딩딩이 조그만 사무실을 하나 얻어 달라고 해. 여기 공장 한쪽을 사무실로 쓰라니까 남편하고 같이 있으면 간섭이 있을 것 같아 싫다고 하네.”
“자본금 들어간 돈 있으니 거기서 조금 빼내 사무실 얻어라. 집기도 사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