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233화 (233/501)

# 233

둘레길 데이트 (1)

(233)

중국의 김민혁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계 장비는 9호기, 10호기가 들어 왔다며?”

“들어왔어.”

“거기서 생산하는 것은 다 수출할거지?”

“그럴 계획이야.”

“지난번에 들어온 5톤은 우리 지에이치 배건 유한공사에서 자가용으로 소비했단 말이야. 이제부터 들어오는 건 외부 판매가 될 거야.”

“그러겠지.”

“판매 법인을 하나 설립했으면 좋겠어. 형식적으로라도 합자로 말이야.”

“합자?”

“그게 일하기 편할 것 같은데 합자는 중국인 허수아비를 하나 끌어다가 90:10으로 하면 어떨까? 전에 구사장이 항주에서 호텔 한식당 할 때도 그렇게 했다며?”

“중국인 한사람 내세울 만한 사람은 있나?”

“있어. 우리 종업원 대표를 내세우면 돼. 형식적으로 내세우고 실질적으로는 디욘코리아가 100%지분을 갖는 셈이지.”

“디욘코리아는 합자사라 미국 측과 의논해야 돼. 특히 출자에 관한 건 더욱 그래.”

“그런가?”

“차라리 내 개인이 합자하는 형태면 되겠지. 이를 테면 내가 자본금 출자를 하고 종업원 대표를 허수아비로 내 세우는 거지.”

“그러면 좋은데 쌩 돈이 또 들어가잖아?”

“제조회사가 아니고 수입하여 판매하는 회사라 자본금 많이 안 들어가도 될 거야. 거기 지방정부의 외국인 합자사 최소 설립자본금이 얼마가 들어가는 가 조용히 알아봐.”

“알겠어. 알아보지.”

“그리고 그 종업원 대표에게는 같이 합자하는데 이름 빌려달란 소리는 아직 안했지?”

“안했어.”

“하지 마. 이름 빌리는 건 종업원 대표보다는 네 와이프나 장인 이름으로 하는 방법도 생각해봐.”

“와이프나 장인을?”

“그래.”

“글세.....”

“아무튼 최소 설립자본금이 얼마인가나 알아봐라.”

일요일이 되었다.

구건호는 랜드로버를 끌고 한성대역앞 스타벅스로 갔다. 새로산 청바지와 티셔츠에 등산용 잠바를 입고 나갔다. 등산화도 새로 산 걸로 입었다. 자기 딴에는 젊게 하고 나갔다.

아침 10시가 지났는데도 김영은은 오지 않았다. 10시 10분, 15분이 지나고 있었다. 구건호는 초조하고 입술이 탔다. 전에 설봉이나 모리 에이꼬를 기다릴 때 이렇게 입술이 탄 적은 없었다.

“10시 30분까지 안 오면 그냥 간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둘레길은 혼자 가지. 올라가는 길을 잘 모르니 물어서 올라가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커피를 다 마실 무렵 김영은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청바지에 분홍색 자켓에 둥글게 챙이 있는 모자를 써 처음엔 딴 사람인줄 알았다.

김영은이 미소를 지으며 앞 의자에 앉았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구건호 역시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빨래 널고 오느라고 늦었습니다.”

“커피 한잔 하시죠.”

“드셨으면 그냥 나가지요.”

밖으로 나온 구건호는 앞서가는 김영은의 뒤를 따라 갔다. 둘은 말없이 둘레길 입구를 향해 걸어가기만 했다. 김영은은 절도 있게 걸어갔다. 의사가 아닌 군인이 되었으면 좋았겠다 할 정도의 걸음걸이였다.

구건호는 등산용 가방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높은 산에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성곽 주변의 둘레길 정도 걷는데 가방은 필요 없을 것 같아서 그랬다. 하지만 생수 한 병은 사야 될 것 같았다. 슈퍼가 보였다. 구건호는 뛰어가 생수 2병과 쵸코렛을 샀다.

“생수 한 병 하고 쵸코렛 샀어요. 하나 가져가세요.”

“고맙습니다.”

김영은이 웃으며 생수병을 받았다. 웃는 모습은 상당히 귀염성이 있어보였다. 둘은 또 말없이 올라가기만 했다. 경신고등학교를 지나자 옛 한양 도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층층대가 많이 나오자 김영은은 잘도 올라가는데 구건호는 숨이 턱턱 막혔다. 평상시 운동도 안하고 낮잠만 자서 그런 모양이었다.

“힘드세요?”

“아닙니다. 헉헉. 괜찮습니다.”

김영은은 약간 걱정스런 얼굴로 구건호를 쳐다보더니 벤치에 앉아 쉬어가자고 하였다.

둘은 긴 의자에 앉아 햇볕을 받고 있었다.

“걸음걸이가 꼭 군인 같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군인 하려고 했었습니다. 군의관으로요.”

“걸음걸이가 상당히 절도 있어 보입니다.”

“컴퓨터를 많이 하는 사람은 어깨가 많이 앞으로 숙여지지요. 의사도 노동량이 많아 평상시 체력 단련을 안 하면 안 됩니다.”

구건호가 생수를 마시고 있는데 노부부가 올라오고 이었다.

“어이구, 힘들어.”

“어르신, 여기 앉으세요.”

구건호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영은이 앞에서 양보를 잘 하는 예의바른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할머니가 앉았다.

“고맙소, 젊은이.”

김영은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괜찮아요.”

할아버지가 김영은이 일어서는 것을 말렸다.

“우리는 갈 거예요.”

할아버지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두 사람 부부요?”

“아니, 저, 저.”

구건호가 얼굴이 빨개지며 말을 더듬었다.

“둘이 많이 닮았네. 부부가 서로 닮으면 오래 해로하며 잘 산다오.”

구건호와 김영은은 얼굴이 빨개진 채 노부부에게 목례만 하고 다시 둘레길을 걸었다. 둘레길은 가파르긴 했지만 거리가 짧았다. 구건호 때문에 중간 중간에 쉬었지만 그래도 점심을 먹기는 아직 시간이 일렀다.

“지금 11시 30분이네요. 점심시간이 좀 남았는데 30분만 더 걸을 가요?”

구건호의 제의에 김영은이 시계를 보았다.

“그럼 저기 길상사까지만 가지요.”

“길상사요?”

어디선가 듣던 절 이름 같았다.

길상사까지 올라가는 성북동이란 동내는 고급 단층주택이 많은 동네였다. 대사관도 많은 동네였다. 구건호는 올라가면서 스마트 폰을 꺼내 슬그머니 길상사를 검색해 보았다. 구건호가 아는 채를 하였다.

“길상사는 전에 대원각이라는 요정이었다면 서요?”

“네, 그렇다고 하더군요.”

“대원각의 요정 주인이 죽으면서 법정스님에게 이 절을 시주했다고 들었습니다.”

“예, 맞습니다.”

두 사람은 길상사를 구경했다. 구건호는 길상사 대웅전 앞에서 잠시 합장을 하였다. 법당에 들어가지는 않고 밖에서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절에... 다니세요?”

“아닙니다. 잠시 소원을 빌었습니다. 김영은이라는 분하고 좋은 인연이 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김영은은 구건호의 말을 듣고 웃었다. 좋은 뜻으로 받아 들였는지, 아니면 기가 막혀서 그런지는 알 수가 없었다.

구건호는 길상사의 이곳저곳을 구경했지만 김영은은 여러 번 길상사에 와보았다고 하면서 구경을 안 했다. 김영은이 화장실에 간 사이 구건호는 또 길상사를 검색해 보았다.

“이크, 남원 실상사가 나오네. 성북동 길상사로 검색을 해야지.”

구건호는 길상사에 대한 여러 정보들을 보았다. 요정 주인과 시인 백석의 러브 스토리도 보았다. 구건호는 뜨락에 앉아 절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여기가 옛날 박정희 시대 때 3대 요정중의 하나라는데 얼마나 큰 요정이야! 한남동 요정이나 모리 에이코가 있는 동경 신쥬꾸의 요정도 여기에 있는 화장실 크기 밖에 안 되네.”

길상사는 산 비탈쪽으로도 길게 이어졌다.

“그러니 박정희나 박정희 일파들은 여기서 얼마나 재미있게 놀았겠어. 여기는 차 없으면 올라오기도 힘드니 일반인들의 눈에도 잘 안 띄었을 것 같네.”

구건호는 길상사의 전신인 대연각 여주인을 생각해 보았다.

“법정스님에게 이 엄청난 토지와 건물을 주면서 죽어간 요정의 여주인은 어떤 인물일까? 동경의 모리 에이꼬도 내가 사준 다이칸야마의 맨션을 절에 시주할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김영은이 왔다. 둘은 길상사에서 나와 아래로 내려갔다. 말없이 또 한참을 걸었다. 돈까스집이 보였다.

“저기 돈까스집 어때요?”

김영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건호는 돈가스를 주문하면서 맥주를 주문하고 싶었다.

“맥주 한 병 주문 할 가요?”

“맥주는 안합니다. 콜라 한잔 시키겠습니다.”

구건호는 돈가스를 먹으면서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를 이야기 했다.

“대원각 요정의 여주인은 원래 기생이었다고 하네요.”

“네, 이야기 들었습니다.”

“시인 백석의 연인이었다고 말년에 밝혔다고 하네요.”

“네,”

“나중에 당시 1천억이 넘는 대원각을 시주하면서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고 했다지요.”

“그랬던가요?”

“둘이 결혼은 안했던 모양이지요?”

“영어 교사였던 백석의 집안이 완고해서 반대했데요. 권번 기생하고는 결혼할 수 없다고 하여 백석은 다른 여자와 결혼했데요.”

“흠, 아픈 사랑 이야기네요.”

구건호와 김영은은 스타벅스가 있는 곳 까지 걸어왔다.

“차를 가져왔습니다. 집까지 태워다 드리지요.”

“괜찮습니다. 지하철 한 정거장만 가면 됩니다.”

“타세요. 다리도 아플 텐데. 여기 잠시만 서 계세요. 얼른 차 가지고 나올게요.”

구건호가 렌드로버를 가지고 나왔다.

김영은이 차에 올라탔다. 구건호의 차를 타는 사람들은 대개 차 좋다 라는 말을 하는데 김영은은 차 좋다는 소리를 안했다.

[무슨 차인지 안 보고 탄 모양이네.]

구건호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사실상 김영은은 렌드로버가 비싼 차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집이 어디시죠.”

“혜화동 사거리 근방에 있는 아남 아파트에요.”

구건호는 앞자리에 앉은 김영은의 옆얼굴을 살짝 쳐다보았다. 옆모습이 상상 외로 예뻤다. 옆모습은 설빙이나 모리 에이꼬보다 나은 것 같았다. 구건호는 계속 이렇게 부산까지 달리고 싶었다.

“오늘 즐거웠습니다. 다음 주에도 10시까지 스타벅스로 올게요.”

“다음 주에는 친구 결혼식이 있어요.”

“그럼 그 다음 주에 나갈게요.”

김영은 대답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저기서 왼쪽으로 가 주세요.”

아파트 건물이 보였다. 좀 오래된 아파트 같았다.

“저, 여기서 내릴게요. 슈퍼에서 뭐 좀 사가지고 가야 되요.”

구건호가 차에서 내리는 김영은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김영은도 오른손을 약간 들어 흔들어 주었다.

구건호는 월요일이 되어 지에이치 모빌로 출근을 하였다.

비서가 가져온 차를 마시고 있는데 중국의 김민혁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합자사 기준 알아보니까 6만달러 이상이면 된데. 하지만 보통 신문에 설립공고 나온걸 보니까 대개 10만달러야.”

“중국 공상은행에 있는 내 개인 통장 잔고가 얼마나 되지?”

“우리 나라 돈 12억원이야. 120만 달러야.”

“그럼 10만달러만 인출해서 법인 설립해라.”

“아, 그리고 허수아비로 내 세우는 중국인은 종업원 대표가 아닌 내 와이프로 하면 안 될까?

“응, 좋아!”

“그럼 출자 지분의 90%는 구사장 이름으로, 10%는 와이프 이름으로 할게. 그리고 그 10%도 구사장 돈이므로 10%지분 포기 각서나 양도 각서 같은걸 써 놓을게.”

“알았다. 법인 설립하는데 내가 안 가도 되지? 위임장 쓰면 다른 사람이 수속 밟아도 되지?”

“아마 될 거야. 중국은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나라니까.”

“하하 알았다.”

구건호는 전화를 끊고 생각해 보았다.

[디욘코리아 중국 판매회사를 내 개인이름으로 한다면 굳이 디욘코리아란 이름을 집어넣을 필요는 없잖아? 그냥 무역 회사일 텐데 말이야. 회사 이름은 지에이치 무역 유한공사로 할까?”전문성을 나타내려면 무역보다는 ‘지에이치 소료(塑料: 고분자 화합물, 플라스틱) 유한공사’로 하는 게 낫겠지?]

[가만있자. 김민혁의 와이프 이름으로 한다면 차라리 김민혁의 와이프를 사장 시킬까? 국제 외국인 학교 교사로 있어 봤자 급여를 얼마나 받겠어. 중국 실정 뻔한데 3, 4천 위안 밖에 더 받겠어? 김민혁 와이프는 젊고, 인물도 그만하면 됐고, 중국인이라 중국어도 막힘이 없으니 얼마나 영업 매니저로 좋겠어? 더군다나 미국 유학 출신이니 영어도 잘하고 세련됐으니 말이야.]

구건호는 김민혁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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