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231화 (231/501)

# 231

부채 비율 (Debt Ratio) (1)

(231)

구건호와 김영은이 식사를 다 하였다.

종업원 와서 물었다.

“치워드려도 될까요?”

“네, 치워주세요.”

종업원이 그릇을 가져가자 구건호가 물었다.

“밖에 나가 걸을 가요? 소화도 될 겸 해서요.”

“아니, 저 가봐야 돼요. 밖에 나가면 병원이 가까워 아는 사람을 마주칠 수도 있어요.”

“그럼, 맥주 한잔 어떻습니까?”

“그냥 여기 있다가 가시면 안 될까요?”

김영은이 시계를 보았다.

구건호는 김영은을 한시라도 붙들고 싶었지만 자꾸 간다니 기회를 놓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가 싫은가?]

“그럼 커피라도 한잔 하시죠.”

구건호는 얼른 식당 안에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왔다. 커피를 마시면서 김영은이 물었다.

“중국서 학교를 나오셨나요?”

“예, 그렇습니다. 절강대학을 다녔습니다.”

“전공이 중국어인가요.”

“아닙니다. 경상대학입니다.”

“중국어 잘 하시겠네요.”

“쉬운 것은 압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번엔 구건호가 물었다.

“일요일은 보통 어떻게 보내십니까? 혹시 교회가십니까?”

“밀린 빨래도 하고 둘레길 걷기도 합니다.”

“둘레길요? 어디에 있는 둘레길입니까?”

“성곽 둘레길입니다.”

구건호가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어디로 올라가십니까?”

혼자 갈 땐 혜화동 사거리에서 성곽 쪽으로 가고 친구들과 같이 갈 때는 지하철 다음 정거장 한성대역에서 올라갑니다.“

“한성대 역이요?”

“네, 거기서 스타벅스 앞으로 해서 경신고등학교 뒤로 올라갑니다.”

“그렇군요. 저도 둘레길 걷기를 좋아합니다.”

구건호는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을 했다. 사실 구건호의 취미는 낮잠 자기였다.

커피를 다 마실 무렵 구건호가 명함을 꺼냈다.

“제 명함입니다.”

김영은이 구건호의 명함을 자세히 보았다. 명함은 지에이치 개발과 지에이치 모빌, 디욘코리아 등 3개 회사 대표이사로 되어 있었다.

구건호가 메모지와 볼펜을 주면서 말했다.

“제가 명함 드렸으니 김영은씨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저희 어머님이나 제가 아플 때 자문 좀 구하게요.”

김영은은 잠시 주저하다가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구건호는 전화번호를 받았으니 조금 진전되었다고 생각되었다. 커피를 다 마신 김영은이 일어났다.

“이제 그만 가시죠.”

“고맙습니다. 오늘 많은 시간을 빼앗은 것 같아 죄송합니다. 저도 둘레길 걷기 좋아하니 한번 동참 기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구건호가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고 나왔다.

“식사 잘 했습니다. 그럼.”

김영은은 약간 미소를 띤 채 고개 숙여 인사했다. 구건호는 김영은보다 더 깊숙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한번 연락드리겠습니다.”

김영은은 절도 있는 걸음걸이로 혜화동 사거리 쪽으로 사라졌다.

구건호가 주차장으로 왔다. 엄찬호는 벤트리 승용차 안에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어? 벌써 오셨어요?”

“밥 먹었지?‘

“예, 먹었어요. 사장님 그런데 오늘 얼굴이 굉장히 유쾌해 보여요.”

“내가 언젠 불쾌했냐? 가자! 즐거운 우리 집으로!”

구건호는 무언가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대학로에서 강남 타워팰리스로 오는 동안 내내 즐거웠다.

지에이치 모빌에서 3/4분기 손익보고를 하는 날이다.

전체 임원이 다 모였다.

상임감사가 자료를 나누어주고 손익보고를 했다. 숫자가 나오자 박종석 이사는 무료한지 앞에 있는 물 컵만 만지작거렸다.

“박종석 이사, 잘 들어!”

“예? 아, 예.”

구건호의 말에 박종석 이사가 얼른 자세를 고치고 듣는 척을 하였다. 공식석상에서는 박종석 이사가 구건호에게 반말을 못하였다. 형이란 소리도 못했다.

손익보고가 끝나고 임원들이 모두 사장 방을 나갔지만 송장환 사장만 자리에 남았다.

임원들이 모두 나간 것을 확인한 송사장이 생수를 마시며 말했다.

“이 회사는 사장님이 인수할 당시 20억을 출자하였고 다시 가수금으로 30억을 넣었습니다.”

“그랬지요.”

“부채는 아까 상임감사가 발표한바와 같이 700억 수준에서 600억으로 줄었습니다.”

“들었습니다.”

“현재 이 회사의 납입 자본금은 25억입니다. 물파회장님이 감자(減資)를 당하고 남은 5억의 지분과 사장님이 넣은 20억이 들어와 25억이 되었습니다.”

“맞습니다.”

“물파 회장님은 자기지분 5억과 자기 가수금 15억을 합하여 20억을 가지고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랬지요.”

“그리고 악성 상거래 채권 정리를 위해 사장님이 30억을 더 가져왔습니다. 이 30억은 임원 가수금으로 앉혀져 지금 부채계정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상거래 채권 정리를 했어도 부채는 줄지 않고 있습니다.”

“흠.”

“우리는 자본 총계 안에 누적된 이익잉여금이 많지가 않습니다. 따라서 부채총액을 납입자본금과 이익잉여금을 합한 자본총계로 나눈 부채비율(Debt Ratio)이 400%를 넘고 있습니다.”

“흠”

“부채 비율을 떨어트리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부채비율을 떨어트리기 위해 내가 넣은 가수금 30억을 자본 전입해 달라는 말이군요.”

“죄송합니다. 그것은 투자자의 몫이기 때문에 제가 끼어들 수 있는 부분은 아닙니다. 저는 단지 현황만 말씀드립니다.”

“흠.”

"연말 배당금도 수령하시고 가수금도 빼 가신다면 회사는 굴러가겠지만 코스닥 상장은 멀어질 수 있습니다.“

“흠.”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냐 하면 어제 L그룹 계열사 입찰에 우리가 탈락했기 때문입니다. 부채비율이 높아 재무건전성에 문제가 있다고 평가가 나왔습니다. 사장님께서 이 점 고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우리 업계의 평균 부채비율이 얼마나 되지요?”

“160%입니다.”

“흠, 코스닥 상장 기준은 업계 평균부채비율 1.5배 이하인가요?”

“그렇습니다.”

“연말 배당에서 자본전입하자고 전에 송사장님이 저에게 말씀 안했습니까?”

“그랬습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너무 약할 것 같아 결국 가수금을 말씀드렸네요. 솔직히 CEO입장에서 오너의 가수금에 대하여 말하는 것 자체가 결례이긴 합니다만 워낙 사정이 그렇다보니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는 제가 좀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

“잘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50대의 송사장은 30대의 구건호에게 깊숙이 허리 굽혀 인사를 하고 나갔다.

구건호는 혼자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 가수금을 자본전입 해? 그게 어떤 돈인데. 물론 나에게는 1,700억의 현금이 증권사에 있지만 그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건드린다. 송사장의 사정이야 이해하지만 가수금을 자본전입하면 이 회사에서 당분간 돈 빼긴 힘들 거다.]

구건호가 지에이치 모빌에 넣은 가수금 30억원은 구건호가 언제든지 빼 갈수 있는 돈이었다. 하지만 자본 전입이 되면 돈을 함부로 빼내기가 어렵다. 물론 부채비율은 확 떨어질 수 있었다. 구건호는 가수금을 자본전입하고 연말 배당을 안 찾아 간다면 부채비율이 얼마나 될까 계산해 보았다. 250% 비율로 확 떨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 내년도 이익잉여금이 쌓인다면 부채비율은 더 떨어질 수 있었다.

[업계의 평균 부채비율이 160%라면 코스닥 상장하기 위해선 부채비율 100% 이내로 줄여야 할 거야.]

구건호는 머리가 아파 맛사지라도 받으러 갈까 하다가 포기했다.

[엄찬호를 데리고 다니니까 그것도 문제네. 기사가 있으니 어디 편하게 가긴 좋은데 사생활이 노출되니 그것도 문제네. 에잇, 온양 관광호텔에 가서 사우나나 해야겠다.]

구건호는 엄찬호를 불렀다.

“엄찬호!”

“예, 저 여기 있습니다.”

“온양 관광호텔에 사우나나 가자.”

“온양으로요?”

“아니야, 스파비스 쪽으로 가자”

아산 스파비스는 음봉면 산 속에 있는 온천이다. 스파가 있는 곳이다.

주중이라 스파에는 사람이 한산했다.

구건호는 뜨거운 사우나실에 들어가 생각을 해보았다.

[가수금 30억을 자본전입 할까? 말까?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내 돈은 내 돈이지만 유동성이 없어진다는데 문제인데.]

구건호는 사우나실에서도 생각해보고 탕 안에서 목만 내놓고 생각을 해보았다. 엄찬호는 샤워만 하고 얼른 나갔다.

눈을 감고 있으니까 송사장의 얼굴이 떠오르는 듯 했다.

[사장님, 코스닥 상장하면 그때는 자본조달하기가 쉬워주고 부채비율이 높아져도 상관없습니다. 자본전입 해주십시오.]

구건호는 눈을 떴다.

[그래, 해 주자. 나는 그래도 돈이 많은 사람이니까.]“

구건호는 스파를 나와 엄찬호와 함께 돌솥 비빔밥을 먹고 디욘코리아로 왔다.

구건호의 책상위에 경리 조차장이 결재 올린 대체 전표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구건호는 30분도 안되어 전표 결재를 모두 마치고 조차장을 불렀다.

“이 서류 다 가져가고 윤상무님을 오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잠시 후에 윤상무가 올라왔다.

“9호기 10호기 들어왔습니까?”

“내일 들어왔습니다.”

“9호기 10호기 생산품은 중국으로 보내세요.”

“알겠습니다.”

“중국 판매대금은 3개월 이내에 수금이 안 되면 다음번 물건은 보내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윤상무는 구건호가 지시한 사항을 메모하였다.

“그리고 생산직 직원은 10명 정도 더 늘려야겠습니다. 야간작업이 늘어나고 9호기 10호기가 들어온다면 인력이 달립니다.”

“갑자기 10명 증원은 너무 빨리 불어나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도 1인당 매출액으로 따지면 지에이치 모빌에 비해서 1.5배나 높습니다.”

“원재료 회사하고 부품 성형 제조회사는 비교하기가 어렵죠.”

“그러기는 합니다만 업계 평균으로 보아서도 우리가 절대 높은 건 아닙니다.”

“그럼, 모집하세요.”

“알겠습니다. 바로 광고 띄우겠습니다.”

윤상무가 나가고 나서 구건호는 사장실에서 또 졸기 시작하였다. 신나게 자고 있다가 알림 톡이 울려 잠이 깨었다. 평상시는 알림 톡이 울려도 못 듣고 잤는데 이번엔 선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알림 톡은 광고였다.

“에이, 씨, 광고네. 광고하는 인간들 잡아다가 족칠 수 없나?”

구건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스마트 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이지노팩이라는 글씨가 보여 급히 스크롤을 올려보았다.

[대한항공 기내 난동을 부린 승객은 이지노팩 회장 아들로 알려졌다. 경찰은 현재 기내 난동을 부린 김동환씨를 입건하여 조사 중에 있다.]

“얘는 또 말썽을 부리네?‘

구건호는 엄찬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너 인터넷 들어가 봐라. 김동환이가 또 일을 저질렀다. 삼성동 룸싸롱에서 우리가 혼내 준 놈 말이다.”

“아, 어디 회장 아들이라고 한 애 말이죠?”

“맞아 그놈이야.”

“그때 손맛을 보여줘야 하는데 너무 쉽게 용서해 주었어요. 애가 싸가지가 없어요.”

“걔 전과는 없나?”

“그건 모르겠는데 꼬리말 붙은 것 보세요. 금수저라 금방 나올 거라는 댓글 천지네요.”

“여론이 그렇다면 경찰도 쉽게 못 내보내겠는데?‘

“글쎄요. 술 취해서 그렇다고 심신미약상태라고 법원에서 봐줄지 모르겠네요?”

“너, 제법 아는 게 많다.”

“헤헤, 들은 이야기죠. 뭐.”

전화를 끊고 나니 김전무가 들어왔다.

“인터넷 보니까 이지노팩 회장 아들이 또 한건 했네요.”

“그렇지 않아도 거기 다녀오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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