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230화 (230/501)

# 230

원화 전시회 (2)

(230)

오후에 지에이치 미디어의 신정숙 사장이 왔다.

“만화 원화 전시도 성공했다는 소리는 들었습니다.”

“비싼 그림 한 점 나간 것보단 못합니다. 호호.”

“그래도 학생들이 그렇게 몰려온다니 갤러리 홍보 효과는 있네요.”

“학생들이라 시끄럽기만 하지요.”

“다 미래의 고객 아닙니까?”

“강남 아이들이라 그런지 20만원, 30만원 그림을 척척 사가네요.”

“부모 입장에선 나쁜 짓 하는 건 아니니까 주겠죠.”

“그런데 학생들이 와서 이야기 하는걸 들으니까 일본 만화가의 이름을 우리보다 더 잘 알아 깜짝 놀랐습니다.”

“일본 만화책을 많이 본다는 이야기네요.”

“번역이 안 된 책도 봅니다. 일본어를 몰라도 이해를 한다는 게 신기합니다.”

“큰 이익이 아니더라도 성공했으니 다행입니다.”

“마츠이 요시타카 선생은 일본 코스프레 소품 전시회를 하자는데 사양했습니다.”

“코스프레가 뭡니까? 들은 것 같기는 한데요.”

“아이들이 일본 만화 주인공 흉내를 내서 복장도 그렇게 하고 소품도 만화 흉내를 내고 그럽니다. 평상시는 못해도 그런 대회가 있으면 온갖 복장을 입고 나와 경연대회도 하고 그럽니다. 지금도 학여울역 서울 무역전시회장에서 하고 있는 것 같던데요?”

“그런데 그건 왜 안한다고 했습니까?”

“미술품 전시를 주로 하는 갤러리의 품위를 떨어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흠.”

"다음번엔 조각 미술품 전시를 추진해 볼까 합니다.“

“그렇습니까?”

“그리고 참 금요일 저녁에 최 화가 조카인 김영은 의사와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구사장님도 나오세요. 대학로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두 분 식사하는데 내가 방해하는 것 아닌가요?”

“아닙니다. 지난번 양평에 가서 잘 얻어먹어 제가 사기로 했습니다. 그날 고생은 걔가 다했잖아요.”

“김영은씨라는 분은 최 화가하고 어떤 관계입니까?”

“언니 딸이에요. 친언니에요.”

“그럼 정확히 이모가 되겠네요.”

“그렇습니다. 엄마가 죽은 후에 이모를 잘 따랐지요.”

“엄마는 어떻게 하다가 돌아가셨습니까?”

“걔가 고등학교 때 난소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장례식 때 저도 가보았는걸요.”

“그렇습니까?”

“걔가 반듯하게 커서 정말 대견스러워요. 장례식 때 그렇게 울더니 어느새 어엿한 의사가 되었네요.”

“아버님은 혼자계시겠네요.”

“네, 신림동에 살고 계세요. 초등학교 교사로 있다가 정년퇴직 했어요. 그런데 오늘 구사장님이 수사관 같네요. 호호.”

“네? 아 저, 저.”

구건호가 말을 더듬었다.

“저는 내려가 볼게요. 비서 오연수씨를 자꾸 제가 부려먹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오연수도 지금 크게 하는 일이 없을 겁니다.”

신정숙은 나가다말고 뒤돌아서서 말했다.

“최 화가가 구사장님을 잘 본 모양에요.”

“네?”

구건호는 얼굴이 빨개졌다.

최 화가는 자기 조카 김영은과 구건호를 맺어주고 싶어 했다. 시집을 안가겠다는 조카를 전화로 설득했다.

“이것아, 결혼이란 때가 있어. 나 봐라 때를 놓치니까 지금 이렇게 청승떨고 살잖아? 너 항상 그랬지? 암 연구소 하나 차리고 싶다고. 그런 연구소는 재벌 아닌 담에 못해. 재벌가에선 의사라면 무조건 어서 옵쇼 그러냐? 오히려 질식할 것 같은 데가 재벌 집구석이야.”

“구건호라는 총각 보니까 자수성가한 사람이라더라. 인물도 그만하면 되고 사람도 점잖잖아? 돈 이야기해서 안됐지만 강남에 그렇게 큰 빌딩도 갖고 있고 여러 기업을 가지고 있는 기업인이라고 했어. 남자 보는 눈이 높은 신정숙 사장도 극구 칭찬하더라. 또 누가 아니? 강남에 번듯한 병원하나 차려줄지.”

“의사가 돈 많이 받는 직업인줄은 알아. 하지만 부모 유산 없으면 어떻게 병원을 차리니? 융자 받아서 병원 차렸다가 망한 의사들이 얼마나 많니? 병원 차렸다가 신용불량자가 된 의사가 말은 안 해서 그러지 그렇게 많다더라. 언젠가 고위공직자 의사 아들이 병원 차렸다가 자살한 것 들었지?”

“구건호 사장이 서울대학은 안 나왔지만 중국에서 대학을 나왔고 중국 친구들도 대학교수 아니면 부시장도 있고 그런다더라. 서울대학이 대수냐? 서울대학 나와도 여편네 굶기는 놈 많다, 구건호 사장은 돈만 있는 게 아니고 미술도 감상할 줄 아는 사람 아니냐? 이모가 전시회 하는 첫날 그림을 사가더라. 나는 저렇게 멋진 남자가 누군가 했더니 바로 신정숙이가 얘기한 남자더라. 너 이모 말 듣는 거니? 바쁘다고? 알았다. 전화 끊는다.”

최 작가는 조카 되는 김영은에게 무지하게 많은 약을 팔았지만 김영은에게 먹혀 들어갔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구건호는 성환에 있는 지에이치 로지스틱스를 들렀다. 중장비 차량도 몇 대 서 있었고 기사들도 있는 것 같았고 제법 활기를 띠고 있는 것 같았다. 반쪽짜리 몸을 하고 입술까지 부르텄던 문재식이 오늘 보니 제법 살이 붙어 있었다.

“오, 구사장 왔어?”

“차가 제법 늘은 것 같구나.”

“현재 마당에 서있는 차까지 모두 보유대수 27대야. 책 수송하는 파주가 2대였는데 우리가 큰 회사라고 알려져서 1대 더 늘었어.”

“그래? 그럼 파주가 3대겠구나.”

“디욘코리아도 윤상무가 1대 더 보내라고 해서 3대가 됐어.”

“윤상무가 이야기한 덤프트럭 들어갔나?”

“그럼 들어갔지. 25톤 짜리 5대 들어갔어.”

“저 앞에 서있는 탑차는 무슨 차냐.”

“저게 바로 미술품 수송하는 차야.”

“매출은 어느정도 되냐.”

“월 1억 정도야. 그런데 구사장한테 건의사항이 있다.”

“뭔데?”

“트럭을 더 늘리고 싶다. 이익금 들어오면 차 늘리는데 쓰면 안 되겠냐?”

“그래, 늘려라.”

“구사장 가져가는 게 없잖아.”

“차 늘리는 게 내 재산 늘리는 거니까 상관없어.”

“그래? 고맙다.”

“그리고 너 여기서 급여 얼마 받니?”

“경리가 월 180, 과장이 220, 내가 250이야. 지에이치 미디어에서 받던 급여하고 같아.”

“그거 밖에 안 되었나? 신사장은 얼마 받지?”

“신사장은 350 받아.”

“미디어는 지금 흑자 나는데 신사장이나 문사장이 다 급여가 너무 적네. 내가 너무 무관심했던 것 같네.”

“신사장이 연말에 구사장에게 경영성적 보고할 때 연봉 협상 다시 하겠다고 했어.”

“연말이 두 달 남았는데 그럼 좀 기다려 보지. 그런데 너는 월 300으로 해라. 영업을 해야 하니 판공비는 월 100만원으로 해라.”

“그, 그러면 미안한데.”

“경영 성적 좋으면 너도 연봉협상 다시 해줄게.”

“아냐, 요즘 너무 좋아. 급여 300에 판공비 100에 승용차 SM5타고 다니니 부러울 것 없어.”

“그래서야 되겠냐. 너도 억대 연봉에 고급승용차 타고 다니는 사람이 되어야지.”

“마, 말이라도 고맙다.”

금요일 오후가 되었다.

구건호는 머리도 새로 깎고 눈부신 와이셔츠에 새로운 넥타이를 매고 동숭동 대학로로 향했다.

구건호는 벤틀리를 타고 가면서 엄찬호에게 말했다.

“5호선 혜화역 근방 대학로 예술극장 부근이니까 그쪽에 적당한 곳에 주차해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엄찬호는 이런 특근을 좋아했다. 1.5배의 특근 수당도 달아주고 맛있는 저녁 식사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구건호가 약속한 레스토랑엘 갔다. 호프집 2층에 있는 아담한 레스토랑이었다.

레스토랑으로 들어오는 구건호를 발견한 신정숙 사장이 손을 번쩍 들었다. 김영은이라는 여의사와 같이 앉아 있었다. 음식은 아직 주문한 것 같지 않았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구건호는 신정숙 사장 옆 의자에 앉았다. 구건호를 본 김영은이 깜짝 놀랐다. 놀란 표정으로 보아서는 사전에 구건호가 온다는 이야기를 안했던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구건호가 김영은에게 인사를 했다. 김영은의 얼굴이 굳어진 채 인사를 받았다.

“영은아 이분 알지? 나한테 양평서 잘 얻어먹었다고 식사대접을 하겠다는 분은 실은 이 분이었어.”

구건호가 자리에 앉자 종업원이 생수를 가져왔다. 신사장이 너스레를 떨었다.

“차 많이 밀렸죠?”

“예, 조금.”

“기사하고 같이 왔나요?”

“예, 좀 늦는다고 했습니다. 주차장에 차 집어넣고 지금 저녁 먹으러 갔을 겁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내 차는 길가에 세워놓고 그냥 왔네. 나 먼저 그냥 갈게요. 두 분 식사 맛있게 하세요.”

신사장이 손을 흔들고 나갔다. 두 사람이 이야기 하라고 자리를 비켜준 것 같았다.

신사장이 가고 구건호가 김영은에게 말을 걸었다.

“그날 양평에서 신세 많이 졌습니다.”

“아, 예.”

김영은은 여전히 긴장된 얼굴로 말했다.

“식사를 주문할 가요?”

구건호가 식사 메뉴판을 김영은에게 주었다.

“먼저 주문하세요.”

김영은이 메뉴판을 구건호에게 다시 주었다.

구건호는 너무 비싸지도 않고 너무 싸지도 않은 중간 메뉴를 집었다.

“이거 괜찮겠어요?”

“좋으시면 그렇게 하세요.”

김영은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구건호가 종업원을 불러 음식을 주문했다.

구건호가 다시 생수를 마셨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랐다.

“이 근처 사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 명륜동에 삽니다.“

“아파트인가요?‘

“네.”

잠시 또 침묵이 흘렀다.

“실은 김영은씨에게 너무 고마워 식사를 꼭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제가 식사를 먼저 대접받았네요.”

김영은이 고개를 들고 무슨 말인가 하는 눈치였다.

“지난달 저희 어머님이 척추관절로 서울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변비로 고생이 심했었습니다. 그때 김영은씨가 관장을 직접해주는걸 보고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의사도 저런 험한 일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몇 동에 입원하신 분이지요?”

“일반 병실에 있다가 일인실로 옮겼었습니다.”

“아,아. 기억이 날것도 같네요.”

처음으로 김영은이 희미하게 웃었다. 구건호는 김영은의 웃는 모습이 상당히 귀염성이 있어 보인다고 생각되었다.

“곧 음식이 나오니까 그 이야기는 그만하지요.”

구건호는 또 생수를 마셨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생수를 많이 찾았다. 한참 뜸을 드린 후에 구건호가 다시 말했다.

“의사 생활 많이 힘들죠?‘

구건호의 말이 따듯하게 들렸는지 김영은이 또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보람은 있어요.”

음식이 나왔다. 스테이크였다. 둘은 말없이 음식을 먹었다. 구건호는 맛있는 음식 접시를 김영은 앞으로 몰아주었다.

“됐습니다.”

김영은은 음식 접시를 다시 구건호 앞으로 밀어주면서 말했다.

“지금 무슨 일 하세요?”

“사업합니다. 제조공장 두 개 갖고 있고 강남 신사동에서 빌딩 임대업도 합니다. 뭐 그저 먹고는 삽니다.”

구건호의 먹고 산다는 말에 김영은이 미소를 지었다.

“의사들도 먹고는 살지요?”

“예, 먹고는 삽니다.”

구건호는 맥주를 한 병 주문했다. 그리고 맥주를 한잔 김영은에게 따라주었다.

“한잔만 하세요. 나머지는 제가 다 마실게요.”

김영은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럼 여기 아파트에서 혼자 사시겠네요. 저도 도곡동 아파트에서 혼자 삽니다.”

“도곡동이 어디지요?”

“양재동에서 두 정거장 더 간 곳입니다.”

"아까 나가신 신사장님 회사에 투자하셨나요?‘

“네, 약간 투자했습니다. 그림에 대해서 많이 아시더군요. 제가 갖고 있는 갤러리에서 처음에 중국의 북종화 산수화 전시회를 했고 다음엔 중국 청년 전위작가들의 전시회를 했습니다. 아방가르드 예술이라고도 하지요.”

구건호는 이날 신정숙 사장에게 들은 풍월로 미술에 대하여 아는 채를 하며 떠들었다. 평상시 말주변도 없던 구건호지만 이 날은 맥주가 한잔 들어가서 인지 잘도 지껄였다., 그래도 김영은은 호기심 있게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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