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9
원화 전시회 (1)
(229)
디욘코리아 임원회의 석상에서 윤상무는 자기 친구 이야기를 했다.
“토목회사 사장으로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번에 조달청으로부터 공사입찰을 따냈습니다. 도로 확장공사인데 토사가 많이 나옵니다.”
“토사 운반 차량이 필요하겠군요.”
“토사를 화성시에 있는 수로공사 현장에 매립용으로 운반하는 건데 운송차량을 용역주려고 합니다. 25톤짜리 덤프트럭 5대는 필요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실상 지에이치 로지스틱스는 국제운송이 주 목적인데 정관에 보면 중장비 임대업이 포함되어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공사기간은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공사기간은 관로공사까지 있어 2년 걸리지만 토사운반은 6개월이면 끝납니다.”
“월 얼마나 받을 수 있습니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25톤 덤프 같은 경우 월 천만원 정도 받지 않겠습니까?”
“공사기간 이후가 문제이겠군요.”
“그래서 토목회사들은 자기 장비도 있지만 용역도 많이 줍니다.”
임원회의가 끝나고 구건호는 문재식에게 연락했다.
“담프트럭 25톤짜리 7대하고 15톤짜리 3대 구입해라.”
“그렇게나 많이? 어디 들어갈 덴 있나?”
“윤상무가 우선 25톤짜리 5대를 소개해준다고 했어.”
“그래? 그럼 빨리 구매해 볼게.”
오후에 문재식에게서 전화가 왔다.
“덤프트럭도 할부가 되는데 차량이 너무 많다고 캐피탈 회사 이용하라고 하네.”
“캐피탈 회사?”
“응, 캐피탈 회사가 차를 몽땅 사서 우리에게 리스를 주는 형식이야..”
“그래? 그런데 캐피탈사가 해 주겠데?”
“우리 공장 토지가 법인 소유라고 하니까 공장을 담보로 해달라고 하네.”
“거긴 그 근처 은행에서 이미 7억2천 융자 받았잖아?”
“2번 담보 설정도 된데.”
“그래? 그럼 그렇게 해라. 기사들 또 모집해야겠구나.”
“기사들은 이직률도 많고 또 사고를 많이 내는 사람도 있으니까 3개월은 수습기간으로 하고 1년 단위로 근로계약을 체결해야겠어.”
“흠.”
“우리가 공사를 못 따면 차를 세워놓아야 하는데 사람 월급은 줘야 하잖아? 잘못하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믿질 수가 있어.”
“그런 면이 있겠구나.”
“그래서 안정성이 있는 대기업 물류를 잡아보려고 해.”
“대기업은 자체적으로 하지 않나?”
“아나, 용역도 준다고 했어. 우리 기사들 중 대기업 용역사에 있다가 잘린 사람이 있는데 대기업도 기사들이 대거 정직원이 되면 문제가 생길 가봐 안한데.”
“무슨 문제?”
“노사분규겠지 뭐. 관리비용도 만만치 않을 텐데 용역이 쉽겠지.”
“그런가?”
“그리고 용역이 아니고 정규직으로 하면 트럭 사망 사고시 유가족들이 대기업 본사에 가서 떼를 쓰는 모양이야. 회장 나오라고 소리치면 어떡하겠어. 차라리 용역 주는 게 낫지.”
“그런 것도 있을 것 같구나.”
“그래서 대기업 담당자들을 만나러 다녀야겠어. 걔들은 용역줄 때 반드시 비교견적을 내니까 또, 누가 알아? 우리한테 연락이 올지? 그래서 홈페이지는 토탈 운송업이라고 띄워 놨어.”
“그래?”
“시간 있을 때 우리 홈페이지 한번 들어 가봐. 미디어의 오민숙 팀장이 잘 만들어 주었어.”
“미디어에 홈페이지 만들어준 용역비는 줘라.”
“하하, 알겠어.”
구건호는 문재식과의 통화를 끝내고 기지개를 폈다.
“문재식의 목소리가 활발해졌는데?”
구건호는 문재식도 서서히 물류에 대하여 눈을 떠가는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구건호는 쇼파에 기대어 신문을 보다가 만화 원화전시회가 열린다는 기사를 보았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모든 신문에 다 난 것은 아니고 몇 개 신문에만 보도가 되었다. 스포츠 신문엔 모두 다 나온 것 같았다.
[일본 만화가들의 원화 전시회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지에이치 갤러리에서 열린다. 특히 이번 전시회는 우리에게 친숙한 일본 만화계의 거장들 손 그림을 직접 볼 수 있어 청소년들의 관심이 벌써부터 뜨겁다.
또한 이번 전시회에서는 원화 그림을 10만원 내지 30만원에서 판매도 되고 있다. 전 일본 신문사 서울 특파원을 지낸 마츠이 요시타카 선생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일반 직장인들도 눈여겨 볼만한 전시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건호는 신문을 내려놓고 빙그레 웃었다.
“요시타카 선생 말대로 직장인들도 몰려올까? 하긴 10만원, 20만원하는 소품이라면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직장인들도 살수가 있겠지.”
김앤정 로펌의 김영진 변호사가 또 전화를 했다.
“서울대 정책대학원 입학원서는 우편으로 보냈어. 아직 못 받아보았지?”
“응, 아직 못 받았어.”
“아마 오늘이나 내일 도착할거야. 시간이 별로 없으니 원서 작성해서 제출해라.”
“내가 다닐 수 있는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원서 제출했어. 서울대 교수로 있는 친구한테 이야기 했더니 구사장 같은 사람이 입학해야 된다고 하더라.”
“나는 매출 천억이 넘는 중소기업인이 아니라도 그러네.”
“입학자격을 설정해 놓은 건 권장사항이지 꼭 그렇다는 건 아니야. 아무나 막 들어갈 가봐 그런 거야.”
“하여튼 우편물 오면 보고 결정할게.”
“꼭 같이 다니는 거다!”
“알았어.”
구건호의 기사 엄찬호는 아침 8시 30분쯤 타워팰리스로 온다. 그러면 대개 신사동 빌딩엔 9시쯤 도착했고 직산 공장으로 출근할 땐 10시 정도 되었다.
이 날도 엄찬호는 8시 30분쯤 타워팰리스로 왔다.
“너 사당동 집에서 몇 시에 출발 하냐?”
“사당역하고 양재동에서 많이 밀려 아침 7시 40분엔 출발해야 돼요.”
“힘들지?”
“괜찮아요.”
“정말이야?”
“술 마신 날은 아침에 좀 힘들지만 괜찮아요. 직산으로 출근하는 날은 뻥 뚫린 고속도로 달릴 땐 기분이 좋아요.”
“야, 그런데 너 지금 어디로 가냐?”
“아 참, 오늘은 신사동 빌딩으로 출근하시는 날이죠?”
“저기 가서 유턴해야겠다. 나도 가끔 헷갈리는 때가 있는데 너도 헷갈리는구나.”
“헤헤, 죄송합니다.”
“천천히 운전해라.”
“어제 제가 한남동 갔다와서 그런 모양이네요.”
“한남동?”
“저녁에 태영이 형이 한번 쏜다고 그래서 우리 용역회사 직원들 다 모였어요.”
“그래? 돈 좀 벌은 모양이구나.”
“중장비 소개해주고 문재식 사장님한테 용돈 좀 받은 모양이에요.”
“허허, 그래?”
“그것도 있지만 어제 장마담 이모가 와 달라고 해서 갔어요.”
“장마담이? 왜?”
“일본 야쿠자 두목이 손님으로 온다고 해서 우리들 다 모였어요.”
“그래, 한번 붙었냐?”
“아뇨. 일본 야쿠쟈들 머리도 빡빡 깎고 문신도 많고 콧수염도 기르고 했지만 점잖던데요?”
“그래?”
“동생들이 수고한다며 용돈도 주었어요?”
“허허, 그래?”
“이번에 온 야쿠자들은 야마구치구미(山口組)의 조직원들이었어요.”
“야마구치구미라면 일본 최대의 야쿠자 조직인데.”
“두목은 진짜 새끼손가락이 없더라고요.”
“새끼손가락이?”
“일본 야마구치구미에선 조직원으로 들어갈 때 새끼손가락을 칼로 베어 바치잖아요. 충성 맹세로요.”
“그런 게 있나? 원, 별 끔찍한 짓을 다 하는구나.”
“두목이 나가면서 태영이 형한테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뭐라고 했는데?”
“눈빛 보니 한가락 하겠는데? 그랬어요.”
“허허, 그래?”
“태영이 형 싸우는 것 못 봤죠? 진짜 싸움 잘해요. 청담동 룸싸롱에서 싸울 때 보니까 건달 서너 명은 그대로 걷어버리더라고요.”
“허허, 그래? 다 왔구나. 나 내려야겠다.”
“네, 사장님.”
경비원이 구건호가 탄 벤트리 승용차를 보고 쏜살같이 달려와 문을 열어주었다.
구건호는 사장실에 들어가자 강이사를 불렀다.
“지에이치 미디어가 이곳으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데 사무실 빠지는 데가 있습니까?”
“신사장님한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임대기간 만료 전이라 아직 들어올 데는 없는데 16층 관광회사가 나가면 거기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관광회사가 나간답니까?‘
“제가 나가라고 했습니다. 임대료를 3개월치나 밀렸습니다.”
“3개월치나요?”
“봄까지는 비워준다고 했습니다. 임대료 밀린 건 보증금에서 까기로 했습니다.”
“여행사가 잘 안 되는 모양이지요?”
“여행사가 너무 많습니다. 옆 건물에도 여행사가 있고 건너편 빌딩에도 여행사가 있습니다.”
“우리 빌딩에서 성공해서 나가야지 망해서 나가면 마음이 안 좋네요.”
“그건 그렇습니다.”
비서 오연수가 차를 가지고 들어왔다.
“사장님 그러시고 지금 아래층 갤러리에서 하는 만화 원화 전시회 보셨습니까?”
“아직 안 봤습니다.”
“보시려면 지금 보셔야합니다.”
“왜요?”
“오후엔 학생들이 엄청나게 많이 옵니다. 어제도 보니까 오후3시부터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와서 그런지 길게 줄까지 섰더라고요.”
“흠, 만화라 그런 모양이네요.”
“오후에 신사장님 이쪽으로 올 겁니다. 오후에 오연수보고 지원해달라고 할지 모르겠네요.”
“별일 없으면 지원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구건호가 아래층 갤러리에 내려가 보았다.
주위의 직장인인 듯한 사람들이 와서 구경을 했다. 안내하는 사람은 미디어의 직원이 아니고 알바생인 것 같았다. 구건호도 관람자들 틈에 끼어 구경을 했다.
“허, 진짜 잘들 그렸네.”
구건호는 감탄을 하였다. 정식 화가들의 작품보다는 예술성이 떨어지지만 섬세한 필치로 세밀하게 그린 솜씨들은 탁월했다. 우리가 흔히 보는 게임물의 표지나 만화책 표지의 그림들이 손 그림 그대로 전시되어 있었다. ‘작품에 손대지 마시요’라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판매 예약이 많이 된 것 같네.”
구건호가 작품 밑을 보니 판매 예약이 되었다는 붉은색 점이 붙어 있는 것이 많았다.
구건호가 나온 김에 신사동 가로수 길을 걸었다. 인근 주변의 회사원들이 사원증를 목에 걸고 자랑스럽게 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전에 노량진에서 9급 공부할 때 여의도에 가면 저런 사람들이 부러웠지. 사원증을 목에 달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한없이 부러웠었지. 벌써 5년도 넘은 것 같네. 참 세월이 빠르네.”
구건호가 지에이치 빌딩에 당도할 무렵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었다. 구건호는 강이사를 불러내어 같이 냉면을 먹으로 갔다.
“지금 우리 사무실이 있는 18층은 3개 회사가 입주해 있나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60평을 쓰고 있고 한군데는 90평, 또 한군데는 30평입니다.”
“18층은 임대기간 만료되면 다른 사람 드리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용도가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급한 건 아니지만 일단 임대 만료되면 비워두세요.”
“알겠습니다.”
강이사는 냉면 줄기가 너무 길다고 식당 종업원에게 가위를 주문했다. 가위로 냉면 면발을 자르며 말했다.
“지에이치 모빌은 현재 매출이 얼마나 됩니까?”
“연말까지 년 매출 700정도 될 겁니다.”
“헉! 700억! 대단하네요.”
강이사는 면발을 자르면서 다시 말했다.
“디욘코리아는 얼마나 됩니까?”
“거기도 연간 한 300억 될 겁니다.”
“300억! 다들 대단하네요. 사장님은 지에이치 개발은 년 매출이 100억도 못돼 좀 재미가 없겠습니다.”
“하하, 빌딩 사업이란게 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희 지에이치 개발도 뭔가 수익사업을 해 볼까요?”
“그냥 임대사업만 하고 건물만 깨끗하게 잘 관리하세요. 또 벌리면 복잡하잖아요?”
“하긴 사장님이 5개 회사를 거느리고 있어 지금도 복잡하실 겁니다. 사장님 냉면 면발도 잘라드릴 가요?”
“아니, 난 됐습니다.”
“참, 신정숙 사장님은 오후 2시면 여기 도착한답니다. 3시부터 학생들이 밀려오니까요.”
“그렇습니까?”
“아까 사장님 계시냐고 물어본 걸로 봐서는 무슨 할 말이 있으신 것 같던데요?”
구건호는 말없이 냉면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