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228화 (228/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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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전원주택 (2)

(228)

융자금 7억 2천만원이 지에이치 로지스틱스 법인 통장으로 들어왔다.

구건호는 천안에서 숙소로 쓰던 불당동 아파트를 팔아 지에이치 로지스틱스의 설립 자본금으로 썼었다.

천안 불당동 아파트는 구건호가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하기가 힘들어 샀던 30평대 집이었다. 구건호는 처음엔 불당동에서 25평짜리 월세로 살았다. 그 후 월세 내기도 귀찮아 30평형대의 아파트를 샀던 것이다. 그 아파트를 판돈 3억이 로지스틱스의 설립 자본금인 것이다.

3억 중에서 그동안 파주 물류를 인수하고 디욘코리아와 음성공장 용역용 트럭을 사느라고 써 버려 8천만원이 남았었다. 이제 융자금 7억 2천원이 들어왔으니 법인 잔고는 8억이나 되었다. 문재식은 통장에 찍힌 돈을 보고 자신감을 얻었다.

[자동차는 특수차나 고급 외제차를 제외하곤 대부분 몇천만원이다. 할부로 끌어오면 많은 트럭을 살 수 있을 있을 것이다.]

문재식은 구건호가 말한 대로 3천만원을 빼내 마을금고 개인 부채를 갚았다. 회사에서는 임원 가수금으로 빼냈다. 이제 문재식의 부채는 없다. 마을금고 3천만원과 전에 있던 카드빚을 못 갚아 인생이 완전히 절단 났던 문재식은 이제 회생하게 되었다. 못 갚은 이자는 액수가 꽤 되었으나 그동안 편집주간으로 있으면서 많이 갚았고 문학상 탄 금액에서도 일부 빼내 갚았다. 지금 있는 연립주택 보증금은 문학상 상금으로 마련했던 것이다.

문재식은 여유를 찾자 주위를 돌아보았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처 역시 카드빚이 있는 것 같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처의 집안도 썩 좋은 편은 못되었다. 신용불량자가 된 아버지도 연락이 없지만 아직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문재식은 아버지를 찾지 않았다. 평생 시 같은 것만 쓰면서 가족을 돌보지 않아 지하실이란 별명을 아들에게 안겨준 장본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문재식의 학자금 융자 받은 것도 생활비로 써 아들에게 재산은커녕 부채만 안겨준 인물이기도 했다.

엄마는 아직도 인천 주안의 낡은 연립주택 지하실에서 기초 노령연금으로 생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동생이 있었지만 장애아였다. 하지만 동생은 20살이 못 되어 죽었다. 엄마는 이 충격으로 이때부터 약간 정신기가 맑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빚은 없다. 나만이라도 우선 신용등급을 올리자.]

문재식은 정비공장 기숙사에 자면서 이를 악물고 일을 했다. 본인은 집안을 일으킬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문재식은 포크레인과 굴삭기, 크레인, 블도자, 페이로더 등 중장비 10대를 구입하여 두 대는 박종석이 이야기한 양주 공장으로 올려 보내고 3대는 임태영이 소개해준 곳으로 보냈다. 5대는 공장 마당에 세워놓았다.

지에이치 로직스티스는 매출이 월 3천만원이 오르게 되었다. 이익은 아직 못 내고 있었다.

일요일이 되었다.

구건호는 랜드로버를 끌고 양평으로 향했다.

“최 화가가 온 메밀을 잘 만든다고 했지? 온 메밀이란 따듯한 메밀국수를 말하는 건가? 하긴 요즘처럼 찬바람 불때는 뜨듯한 메밀 국수를 후후룩 하고 먹으면 되겠네.”

구건호는 팔당대교를 지나 양수리에서 북쪽으로 꺾어져 서종면 쪽으로 올라갔다.

“북한강 물 좋네. 역시 화가라서 좋은데 살고 있군.”

그림 같은 전원주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정순 화가의 집은 언덕배기에 있는 작은 전원주택이었다. 단층집이었다. 마당에는 작은 화초들이 어지럽게 피어 있었다. 강아지가 요란스럽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최정순 화가가 뛰어 나왔다.

“어서오세요, 구사장님! 집 찾느라고 힘들었지요?”

“아닙니다. 금방 찾았습니다. 문 앞에 한글 문패가 있더군요.”

“최정순이란 이름이 좀 촌스럽기는 하지요. 들어오세요. 신정숙이하고 일본사람 와 있어요.”

구건호는 오다가 산 배 한 상자를 최 화가에게 주었다.

“어머, 배까지 사 오셨네!”

구건호가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 앉아있던 신정숙과 마츠이 요시타카 선생이 일어났다.

“시간 맞춰 오셨네요.”

“오래간만입니다.”

구건호는 마츠이 요시타카와 악수를 하였다. 요시타카가 자기가 앉았던 자리를 양보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앞에 전경이 보입니다.”

정말 거실의 통유리 밖으론 건너편 산이 보이고 마당의 꽃들이 보였다.

“좋죠? 저는 여기서 매일 창밖을 마시며 커피도 마시고 음악도 듣습니다.”

“진짜 좋은데 사시네요.”

구건호가 거실안쪽을 보았다. 줄에 매단 학이며 앙증맞은 꽃병 등 화가의 집답게 데코레이션이 특이했다. 주방에서는 젊은 여자가 삶은 메밀을 채에 건져내고 있었다.

“영은아 너도 이리 와서 인사해라.”

검정 줄무늬 목걸이형 앞치마를 입은 여성이 와서 인사를 했다. 이 여성을 보고 구건호는 크게 놀랐다.

“그 여자다!”

구건호는 갑자기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여자가 행주로 손을 닦고 인사를 하였다. 병원에서 관장후 손을 닦던 모습과 똑 같았다.

“서울대 병원에서 의사로 있는 내 조카에요. 하나 밖에 없는 사랑스런 내 조카에요.”

요시타카 선생이 눈을 크게 떴다.

“오우, 의사입니까? 소우 데스까(그렇습니까)?”

“이분은 한국주재 특파원을 하다가 현재는 미술품 중개를 하는 마츠이 요시타카 선생이야.”

젊은 여자가 웃으며 인사를 하였다.

“이 분은 사업을 하면서 강남서 갤러리도 운영하는 구건호 사장님이야.“

젊은 여자는 역시 웃으며 인사를 했다. 구건호를 몰라보는 듯 했다. 여자는 바로 부엌으로가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제 언니 딸이에요. 이름은 김영은이고요. 신림동 살다가 지금은 명륜동에서 살아요.”

최 화가가 붉은색이 도는 차를 내왔다.

“산수유 차에요. 요 뒷산에서 제가 직접 따가지고 온 산수유 열매를 우려낸 거예요. 비타민도 많고 신장에도 좋다니까 드세요.”

차를 마시면서 최 화가가 계속 수다를 떨었다.

“집이 좁죠? 하지만 집이 넓어진 거예요. 그림들이 여기 저기 있었는데 그래도 지에이치 갤러리 전시회와 요꼬하마 전시회에서 많이 빠져나가 그나마 넓어진 거예요.”

“그림을 여기서 그리셨습니까?”

“아니요. 옆에 있는 창고가 내 아뜨리에예요. 이따가 나가시다 보세요.”

“작가의 화실을 볼 수 있어 영광입니다. 일본 미술잡지를 이곳으로 보내드리지요.”

“어마나, 일본 잡지를요? 고맙네요.”

최 화가는 조카가 하는 일을 도우러 주방으로 갔다.

식탁에 온 모밀이 차려졌다. 메밀은 예쁜 사기그릇에 담아져 나왔다. 온 모밀을 즐겨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봐 칠기 직사각형 대나무 메밀판에 별도로 건져낸 메밀이 따로 나왔고 호박전과 깻잎전과 막걸리도 나왔다. 4명이 식탁에 앉았다.

“너도 와 앉아라.”

김영은이란 여의사가 줄무늬 앞치마를 벗고 의자에 앉았다. 막걸리를 살짝 맛본 신정숙 사장이 박수를 쳤다.

“오우 복숭아 막걸리구나.”

“내가 담근 거야.“

요시타카도 맛을 보고 구건호도 맛을 보았다.

“좋네요. 이게 뭐라고요?”

“복숭아 막걸리에요. 모모닥슈(복숭아 막걸리)에요. 여기까지 오셨는데 건배 한번 하지요.”

종이컵에 담긴 복숭아 막걸리를 들고 건배를 외쳤다.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맛은 없지만 여기 있는 호박이나 깻잎전은 모두 옆에 있는 텃밭에서 따온 걸로 한 거니까 농약도 없습니다. 마음껏 드세요. 호호.”

메밀국수는 먹을 만 하였다.

구건호는 먹으면서 계속 앞에 있는 김영은을 의식하였다.

“호박전은 얘가 부친 거예요. 얘가 어려서부터 날 잘 따랐어요. 엄마가 없다보니 자연히 날 잘 따랐어요.”

“엄마가 안계세요?”

구건호가 물었다.

“예, 병으로 죽었어요. 혼자된 아버지도 계시고 그래서 빨리 시집가라고 했더니 이렇게 안가네요.”

최 화가는 그러면서 김영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니 아버지 생각해서 빨리 가라. 가라가라 해도 안가니 징그러워죽겠다. 너 내 꼴 날래?”

최 화가의 핀잔에 김영은은 조용히 웃고 있었다. 구건호는 그녀의 웃는 모습이 상당히 품위가 있어 보인다고 느껴졌다.

복숭아 막걸리가 달착지근하지만 알콜 도수가 있는지 취기가 올랐다. 최 화가와 신정숙이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미술서부터 시작하여 철학 종교까지 다양했다. 여기에 언론인 출신 요시타카 선생까지 합류를 하니 환상적인 대화가 오고 갔다. 구건호와 여의사 김영은은 주로 듣는 편이었다. 최 화가와 신정숙은 아는 것도 참 많았다. 구건호는 이들이 이렇게 많이 아니 결혼을 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날의 모임은 최 화가와 신정숙 사장의 고도한 전략이었다. 이들은 구건호와 김영은이 주위에 도움이 없으면 서로 이성관이 서툴러 결혼을 잘 못하리라고 판단되었다. 그래서 자연적 만남을 주선한 것이다. 둘의 결혼이야기는 입 밖에 내지도 않았다. 서로 대면을 많이 하면 거부감이나 서먹서먹함에 대한 경계심을 누그러트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최 화가는 게임까지 했다. 종이접기 게임까지 했는데 늙은 사람 젊은 사람 편을 갈라 최 화가와 신정숙이 한 팀이 되고 구건호와 김영은이 한 팀이 되었다. 요시티카 선생은 심판을 보게 했다.구 건호와 김영은이 서로 함께 종이를 맞추어 보기도하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더구나 진팀이 만원을 내기로 하여 더욱 열심히들 했다.

12시에 와서 오후 3시가 되었다. 이들은 최화가의 아뜨리에로 쓰고 있는 창고를 구경하고 헤어졌다.

“오늘 아주 유쾌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구건호와 요시타카 선생이 최 화가에게 인사를 하였다.

“재미있었다고 생각하시면 다음 기회에 또 모이지요.”

구건호는 오늘 모임이 옛날 어렸을 때 누나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던 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보험을 하는 평범한 사람이 된 누나 친구 박승희는 어렸을 때 꾀나 깔끔하고 예쁘다고 생각되었었다. 구건호의 집에 와서 누나와 누나 친구가 놀면 구건호가 꼽사리 끼어 놀곤 하였었다. 구건호는 고시텔을 운영할 때 누나친구 박승희에게 화재보험을 들어준 적이 있었다.

월요일이 되었다.

구건호는 엄찬호와 함께 지에이치 모빌에 들렸다. 오늘은 임원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송사장과 상임감사, 연구소장, 총무이사, 생산이사 등이 참석했다.

송사장이 발언했다.

“무역협회에서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는 자동차 박람회에 참여할 기업체를 모집한다는 안내 공문이 왔습니다. 부스를 임차하는데 비용의 절반은 지원해주겠다는 공문입니다.”

“그래요?”

“이번 모터쇼에 우리가 오토파츠(Auto Parts) 부분에 참여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입니다.”

“흠.”

“미국의 대형 수입상이나 완성차 업체에 우리를 알릴 수 있는 기회도 될 겁니다. 자동차 OEM 관(館)에 작은 부스 하나만 얻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준비해 보세요.”

이번엔 총무이사가 말했다.

“노조위원장이 상근 사무실을 내어주길 원합니다. 두 사람 정도 상근하기를 원합니다.”

“노조사무실을 내어주면 상근자들은 생산라인에서 빼내 일을 안 한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송사장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종업원 260명의 회사에서 노조 상근자 배치는 시기상조입니다. 차라리 노조간부인 회장과 부회장을 시카고 모터쇼에 견학시켜주는 것도 인센티브 부여는 될 것 같습니다. 제가 한번 설득시켜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구건호가 벤틀리 승용차를 타고 디욘코리아를 갔다. 여기서도 임원회의를 주재했다. 부사장 애덤 캐슬러와 통역, 김전무와 윤상무가 들어왔다.

“기계 장비는 8호기까지 현물출자로 다 들어왔는데 9호기, 10호기는 리스 발주 했습니까?”

“했습니다. 선적했다고 합니다.‘

“직원들 아침에 영어교육은 잘 하고 있지요?”

“잘하고 있습니다. 호서대학 원어민 선생은 발음이 좋다고 애덤 캐슬러 부사장님도 자주 말합니다.”

구건호가 농담을 했다.

“원어민 선생님이 계셔서 캐슬러 부사장님이 외롭지는 않겠습니다.”

이 말에 참석자들이 모두 웃었다. 애덤 캐슬러도 쑥스러운지 따라서 웃었다. 구건호는 둘이 연애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었다.

윤상무가 말했다.

“9호기 10호기가 들어오면 생산량이 많아져 트럭 용역 1대가 더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지에이치 로지스틱스 문사장에게 연락하세요.”

“그리고 이건 회사와 관계없지만 지에이치 로지스틱스에서 중장비도 취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취급합니다.”

“그렇다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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