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227화 (227/501)

# 227

양평 전원주택 (1)

(227)

구건호는 성환 정비공장의 잔금을 치렀다. 문재식도 파주에 있는 자기 물건들을 SM승용차에 싣고 이사를 왔다. 파주에는 트럭 2대와 기사 한명, 관리인 한명만 남겨두고 왔다. 출판사와 서점 배송은 우선 현상 유지만 시키기로 하고 기업 물류에 중점을 두기로 하였다.

구건호가 성환의 로지스틱스를 들렸다. 차도 없고 직원도 없고 문재식이 혼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어? 구사장 왔어?”

“직원 빨리 뽑아야겠구나.”

“그렇지 않아도 워크넷에 지원자가 얼마나 되는가 보고 있는 중이야. 현재 12명 지원했네.”

“오늘 너랑 같이 갈 데가 있다.”

“어딜?”

“이 근처 은행엘 가야겠어.”

“은행?”

“이 정비공장 부지를 담보로 은행에서 돈 좀 빼려고..”

“그래?”

구건호와 문재식이 은행을 찾아가 대부 담당 차장을 만났다. 사업자 등록증을 주면서 말했다.

“이 근처에 있는 공장을 새로 인수한 신설 법인입니다. 이 토지를 담보로 융자를 받고 싶습니다.”

“저희 운행 고객이십니까?”

“이 은행 파주지점을 거래했습니다.”

문재식이 파주은행 법인 통장을 꺼냈다.

“법인이십니까? 재무제표를 볼 수 있습니까?‘

“신설법인이라 재무제표가 아직 없습니다.”

“아, 참. 신설법인이라고 했지요.”

“싯가 20억짜리 땅입니다. 근저당 설정된 건 없습니다.

구건호가 정비공장의 등기부등본을 은행차장에게 주자 차장은 등기 부등본을 한참 쳐다보았다. 그리고 컴퓨터를 두드려보기 시작하였다. 아마 공시지가를 조사해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전자계산기를 두드려 보았다.

“얼마를 쓰시려고 합니까?”

“싯가의 40%, 아니면 공시지가의 60% 안될까요?”

차장은 또 전자계산기를 두드렸다.

“맥시멈 7억 2천만 원까지는 해 드릴 수 있습니다. 공시지가의 약 40% 됩니다. 재무제표도 있고 우리 지점과 오래 거래했다면 사장님들 말씀대로 해 드릴 수 있지만 지금은 어렵네요. 7억2천도 대표이사 개인 지급보증이 필요합니다.”

“흠.”

융자 원하시면 법인 인감, 법인등기부등본, 토지 틍기부등본. 토지대장 준비하시고요. 대표이사 인감하고 주민등록등본, 재산세 과세증명이 필요합니다.“

“재산세 과세증명요?”

“예, 그렇습니다.”

구건호가 생각하기에 문재식이 재산세 과세증명이 있을 리도 없겠고 신용도 문제가 될 것 같았다.

“이 회사의 대주주는 나고 옆에 있는 분이 대표이사입니다. 대표이사 대신 제가 해도 되겠습니까? 등기부등본에 나와 있는 이사로 등재 된 사람입니다.”

“그럼 사장님 인감하고 주주명부 한부도 가져오세요.”

“알겠습니다.”

은행을 나오는데 문재식이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

“어깨 좀 펴라!”

“응? 그, 그래.”

“7억 2천만원이라도 융자 받자. 그리고 그 돈으로 중장비 사자. 중장비도 할부로 살 수 있으면 사보자. 트럭도 몇 대 더 사고 컨테이너도 사자.”

“아, 그래서 융자 받으려고 했구나.”

“운송회사도 장비 싸움이다.”

“그런 것 같아.”

“그리고 너 새마을 금고 빚이 3천 있다고 했지?”

“이젠 연체는 없어.”

“융자 돈 나오면 대표이사 가수금으로 3천 빼서 새마을 금고 원금 갚아라. 대표이사 신용문제로 장애가 많다.”

“그, 그래도 되나?”

“3천만 원은 네 월급에서 조금씩 갚아나가라. 이자가 없으니 갚기가 새마을 금고보다는 쉬울 거다.”

“고, 고맙다.”

문재식과 이야기 하고 있는 도중에 정비공장을 판 사람한테 전화가 왔다.

“혹시 사람 필요하지 않습니까? 좋은 사람이 있는데요.”

“사람이요?”

“정비공장 할 때 접수 같은 걸 하던 사람인데 행정능력도 있고 자동차 정비도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집도 성환입니다.”

“글쎄요.”

“정비공장 철수하면서 분당에서 지금 나하고 같이 있는데 본인도 여기가 멀어 힘들고 나도 사실은 부담이 되어서 말씀드립니다. 사람은 놓치기 아까운 사람인데 보시다 싶이 여기는 많은 사람이 필요한데가 아니라서 제가 계속 데리고 있기도 난감하네요.”

“잠깐 기다려 보세요.”

구건호가 문재식을 보면서 말했다.

“정비공장 판 사람인데 사람 하나 안 쓰겠냐고 하네. 행정 능력도 있고 자동차 정비도 할 줄 안다는데?”

“”그래? 이, 있으면 좋지. 나이가 몇 살이래?“

“그건 내가 안 물어봤다. 잠깐 기다려 봐.”

“나이가 몇 살쯤 됩니까?”

“서른 세 살입니다. 자동차 정비 1급 자격증도 있고 소방안전관리자 자격도 있습니다.”

“서른 세 살이래.”

“우리보다 세 살 아래구나. 중장비도 들어오고 그런다면 썼으면 좋겠는데.”

구건호가 스마트폰을 다시 들었다.

“그럼 보내보세요. 이력서 가지고요.”

“알겠습니다. 오늘 오후 2시까지 보내겠습니다.‘

“문사장 잘 됐다. 나이도 우리보다 적으니 부려먹기 좋고 또 정비도 할 줄 안다니 자동차에 대해서 많이 알거야. 우선은 걔하고 경리 여직원만 들어와도 네가 숨을 좀 쉴 거다.”

“돈을 잘 벌어야 할 텐데.”

“장비와 인력만 있으면 돈 벌어. 걱정하지마라. 그리고 너 주민등록이 어디로 되어있지?”

“나? 망원동.”

“너 와이프하고 같이 되어 있겠구나.”

“아니, 아직 혼인신고가 안 되어 있어서 와이프는 부천에 자기 부모님이랑 묶여 있어.”

“너 여기 2층 숙소를 임시로 쓰겠다고 그랬지?”

“그랬지. 그렇지 않아도 이따가 성환 읍내에 나가 이불 좀 사가지고 올 거야.”

“그럼 말이다. 너 주민등록을 여기 공장 주소로 옮겨라.”

“여기로?”

“이사를 하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주민등록만 옮겨 놔라.”

“그건 또 왜?”

“그리고 이 공장 옆에 있는 논을 사라. 1500평이라고 한다.”

“논을 사서 뭐하게? 농사지으려고?”

“일단 농지증명 받으려면 주소 옮기고 논 매입해서 형질변경 해야겠다.”

“형질변경?”

“대지나 공장으로 형질변경 하자는 말이다. 그럼 공장을 넓힐 수 있어. 사업장 확장하려면 더 넓어야 해.”

“아, 그거구나.”

“논 사고 형질 변경하고 하는 건 모두 네가 알아봐라. 공부삼아 해 봐라. 인생에 많이 도움이 될 거다.”

“흠.”

“형질 변경 후 시세가 오른 가격으로 지에이치 로지스틱스에 인수시키면 너 팥고물 좀 떨어진다.”

“흠.”

“옆에 있는 땅이니까 작업하기도 좋을 거야. 해봐!”

“흠. 알았다.”

문재식이 입을 앙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재식아 그럼 난 간다. 융자받는 것 때문에 내 인감증명하고 재산세 과세증명 떼 가지고 올테니 너도 법인 관계서류 준비해라.”

“서류는 염려 마. 그런데 이따 오후 2시에 이력서 가지고 오는 사람 면접 안 봐?”

“그건 내가 간여할 성질이 아니야. 그 사람은 네가 데리고 일할 사람이지 내가 데리고 일할 사람이 아니다. 경리도 네가 알아서 채용해라. 지금 지에이치 모빌이나 디욘코리아도 임원 인사 외에는 내가 직원들 인사는 간여 안하고 있어.”

“그래?”

“그럼, 수고해라.”

구건호는 날씨가 쌀쌀해 지는 것 같아 양복 속에 조끼를 껴입고 나왔다.

신사동 건물 18층 사장실에서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개미 같은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지에이치 미디어의 신정숙 사장게게서 전화가 왔다.

신사장은 요즘 기분이 좋았다. 구건호가 아마존 만화시리즈 30권 출판을 위해서 밀어주었던 3억을 갚고 출판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 갤러리나 북카페도 이익을 창출하고 있어 기분이 좋았다.

신정숙 사장은 전에 있던 출판사 이사장에게 감정의 골이 깊었다. 대우 문제와 옵션 문제로 많이 다투었지만 여유가 있는 구건호에게서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업무의 간섭도 없어서 자기의 날개를 마음껏 펼칠 수가 있어서 좋았다.

그래서 그런지 구건호가 듣는 신사장의 목소리는 밝아 보였다.

“구사장님? 신정숙입니다.”

“아, 예. 신사장님.”

“요꼬하마에서 개인전을 했던 화가 최정순이 돌아왔습니다.”

“전시회는 성공했지요?”

“출품작 절반이나 나갔으니 성공한 셈입니다.”

“하하, 다행이군요.”

“최정순이는 요즘 룰루라라입니다. 일요일 자기 집에서 한턱낸다고 하네요. 구사장님 시간 있으시죠?”

“오늘 아침에 찬바람 불던데 냉콩숙수 먹다가 감기 들면 어쩌려고요?”

“걔 콩국수도 잘 만들지만 온 메밀도 잘 만들어요. 혼자 살면서 먹거리 연구도 많이 해요. 대부분의 식재료를 자기 밭에서 난 것으로 해결해요.”

“자기 밭요?”

“호호, 큰 건 아니고 300평 정도 임대해서 여러 작물 심어 놨어요.”

“그렇습니까?”

“마츠이 요시다카 선생도 온다고 했습니다.”

“아, 그림 중개하시는 분 말입니까?‘

“약도 전송해 드릴 테니까 일요일 12시까지 꼭 오세요. 최 화가가 온 메밀 대접한다고 구사장님 꼭 모시고 싶답니다.”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전화를 끊고 여의사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갑자기 여의사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가물가물하기만 하였다.

모리 에이꼬와 설빙의 얼굴은 확실하게 떠오르는데 여의사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조카라는 여의사도 올까? 엄마를 관장해주던 그 여의사 맞을까? 서울대 병원의 여의사가 50명이라면 50대1의 확률인데....]”

사실 구건호는 요코하마의 전시회를 보러갈려고 하였었다. 모리 에이꼬를 불러내 같이 가려고 했었다. 그러다가 혹시 여의사를 최 화가가 소개해 줄지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에 일본행을 포기하고 말았었다. 모리 에이꼬와 사귀고 있다는 것을 들키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모리 에이꼬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요즘도 지방 공연을 많이 다니고 있을까? 설빙은 내가 연락을 안 하면 어째 자기는 연락을 안 할까? 하긴 인기가 오를 대로 오른 설빙의 주가가 한창인데 나같이 이름 없는 기업가와 만나는 것이 싫은가? 톱스타니까 이름 있는 재벌가나 같은 연예인과 사귀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구건호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구건호가 문재식이 있는 성환 공장을 찾았다.

문재식이가 성환 쪽으로 온다고 하여 박종석이가 무척 반가워했지만 정작 반가운 사람은 구건호였다. 구건호는 중고등학교를 왕따로만 세월을 보냈고 대학도 정상적으로 다니지 못해 친구가 없었다. 그나마 친했던 김민혁이 중국으로 가버려 문재식 밖에 없었다.

구건호는 문재식을 친구로 생각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이끌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문재식은 구건호에게 거리감이 있었다. 그것은 신분의 차이였기 때문이었다. 자기는 아직도 연립주택 월세에 살고 있는 신분이지만 구건호는 몇 개의 기업을 거느린 강남 큰손이었기 때문이었다.

문재식은 구건호 옆에 지에이치 모빌이나 디욘코리아의 50대 임원들이 있을 때는 구건호에게 반말을 하기도 민망했다. 그것은 박종석이도 마찬가지였다. 박종석은 임원들이 있을 땐 구건호에게 형님 소리를 못했다. 무의식중에 형이라고 불렀다가 송장환 사장에게 야단을 맞은 후로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구건호는 언제나 박종석과 문재식을 따듯하게 감싸주었다.

구건호가 성환 공장에 들어서니 젊은 남자와 여자가 있었다.

“어, 구사장 왔어? 두 사람 이리 와 봐요.”

남자와 여자가 문재식 앞으로 왔다.

“지에이치 로지스틱스의 대주주인 구건호 사장님입니다. 인사하세요.”

두 사람이 구건호에게 인사를 했다. 구건호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신청했다.

“잘 부탁해요.”

“문사장, 서류 다 가져왔으니 은행에 가자.”

“어? 그래? 나도 서류 다됐어.”

“내 차타고 같이 가지.”

“그럴까?”

새로 채용한 남자와 여자가 창문 너머로 구건호가 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남자가 소리쳤다.

“와, 벤트리 승용차네!”

“여자가 남자에게 물었다.

“저 차 비싸죠? 5천만원도 넘겠죠?”

“5천만원이 뭐야, 3억이요 3억!”

“3억이요?”

여자가 놀란 눈으로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구건호가 은행에 가서 정비공장 융자를 위한 서류들을 꺼냈다. 구건호가 내민 재산세 과세증명을 보고 은행차장이 놀란 눈으로 다시 한 번 구건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침을 꼴깍 삼키며 중얼거렸다.

[엄청 부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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