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4
운송업 베이스 캠프 (2)
(224)
구건호와 문재식은 정문에 걸쳐진 자전거 열쇠를 풀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재식이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여기 저기를 살폈다.
“어때? 안에 있는 것 들어내고 대청소하면 되겠지?”
“아휴, 사무실이 넓은데? 책상도 몇 개는 그냥 쓸 수 있는 것도 있고 청소만 하면 아주 훌륭한 공장이 되겠어. 저 마당도 트럭이나 중장비 수십 대는 세울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에 드냐? 니가 마음에 들면 계약할게.”
“20억이나 된다며?”
“정확히는 19억6천만원 불렀어.”
“에효, 평생 만져보지 못하는 금액인데.”
“그 정도는 나 있어.”
“그으래?”
문재식은 존경스런 눈빛으로 구건호를 쳐다보았다.
“마음에 들면 오늘이라도 계약하지. 여기 대청소 하는 건 내가 지에이치 모빌 애들 시켜서 할 테니까 너는 다 되면 몸만 들어와라.”
문재식은 감정이 벅차오르는지 잠시 말을 못했다.
“책상은 몇 개 쓸 수 있는데 버리지 마.”
“책상 다 버리고 새것 사줄게. 직원도 없는데 고물 책상 끌어안고 있을 필요 없잖아? 좋은 책상 사줄게. 그리고 저 찢어진 천막도 다 뜯어내고 캐노피용 PVC로 바꿔줄게.”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거 아닐까?”
“돈 걱정 마라.
“지금 지에이치 로직스티스의 차는 현재 몇 대지?”
“7대야. 책 수송하는 파주가 2대, 디욘코리아 2대, 음성공장 3대야. 박종석이하고 임태영이란 사람이 중장비 쓸 곳을 알려준다고 했는데 그건 차가 없어서 못했어.”
“여기에 중장비도 몇 대 세울 수 있겠지?”
“그럼, 충분해.”
“용역이 끝나면 일시적으로 차를 보관할 장소가 생겼으니 좋다. 여기가 정리되면 차를 좀 더 늘려보자. 그래야 회사가 돌아가고 직원도 채용할 수 있지.”
문재식이 감개무량한 듯 공장을 쳐다보고 스마트 폰으로 촬영도 했다.
“무엇보다도 지에이치 모빌에서 가까우니 좋다. 자동차로 20분도 안되어 올 것 같다.”
“종석이도 자주 만날 수 있어 좋겠네. 종석이가 기계 같은 거 잘 만지니까 자문도 좀 받고 그래야겠다.”
“종석이는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놈이니까 현장일이라면 못하는 게 없어.”
“걔는 사람도 좋아.”
“그래서 젊은 나이에 이사가 되었어도 밑에 있는 40대, 50대들이 저항이 없는 것 같아. 일본인 기술자가 제품 개발하러 왔을 때 종석이 칭찬을 많이 했어. 용접도 아주 예쁘게 한다고 하더군.”
“그런데 나는 하나도 할 줄 아는 게 없어 미안하다. 너는 경리출신이니 회사 경영에 대하여 돌아가는 것이 훤할 테고 또 직접 공돌이 생활도 했으니 현장도 다 꿰뚫고 있잖아. 내가 들어와서 괜히 구사장에게 짐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끔 들 때가 있어.”
“별 소리 다한다. 네 능력은 지금 감추어져 있을 뿐이야. 희망을 가져라.”
“고맙다.”
구건호는 문재식을 자기 차에 태우고 평택 한우 갈비집으로 갔다.
“갈비탕 먹으려고?”
“아니, 너 얼굴이 반쪽이라 영양보충 좀 시켜야겠다. 갈비나 좀 먹자.”
“비쌀 텐데.”
“여기서 점심 먹고 나는 부동산 들렸다 갈 테니 너는 올라가거라. 이쪽 정리되면 바로 연락해주마.”
“내가 여기 없어도 돼?”
“철거나 대청소 같은 건 용역회사에 맡길 거야. 괜히 여기 있으면 먼지가루나 맡고 일하는 사람들한테 방해만 돼. 정리되면 와.”
한우 갈비가 숯불에 이글거리자 구건호는 소주도 한 병 시켰다.
“자, 한잔 받아라. 나는 차 끌고 가야되기 때문에 못하지만 너는 차 안 가져 왔으니 이거 다 마시고 가라.”
문재식은 엄청 잘 먹었다. 구건호는 갈비를 추가로 주문했다. 문재식은 마른 체격에 음식이 어디로 다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잘 먹었다. 문재식은 먹다가 미안한지 소주병에 써 있는 처음처럼이란 글씨를 구건호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구사장, 이 글씨 누가 썼는지 알지?”
“모르겠는데.”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가 쓴 거야.”
“감옥에서 오래 있었다는 사람 말이냐?”
“응, 감옥에서 반공법 위반으로 20년 살았는데 거기서 한문학자를 만나 한문을 배웠다고 했어.”
“허, 감옥에서 20년? 청춘이 다 갔네.”
“아까운 분이야.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
“돌아가셨나? 진짜 아깝게 됐네. 많이 먹어라.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더라.”
구건호는 점심을 먹고 문재식을 성환역까지 태워줬다.
“잘 가라. 연락하마.”
“점심 아주 잘 먹었다. 또 연락하자.”
구건호는 다시 차를 돌려 부동산 사무실로 향했다. 점심 먹고 술은 반잔밖에 안했는데 어찌나 졸린 지 공터에 차를 세워놓고 의자를 뒤로 젖힌 채 낮잠을 잤다. 코까지 골면서 잤다.
구건호는 낮잠을 잘 잤다.
한번은 온양관광호텔에서 아산시 지역 중소기업 사장단 모임이 있었다. 그때 지역 경제협의회 직원이 나와 사장들 앙케이트 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일 년에 해외여행을 몇 번이나 하는가? 취미가 뭔가? 책은 몇 권이나 보는가? 하는 것들이었다.
그때 구건호는 취미를 낮잠자기로 쓴 적이 있었다. 구건호는 골프를 칠 줄은 알지만 즐겨하지 않았다. 사람들도 자기가 아는 주변 사람들만 만나고 외부의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들은 만나지 않았다. 다른 기업체 사장들하고도 잘 안 어울렸다. 이 날도 여러 번 빠진 끝에 할 수없이 나왔던 것이다.
지역 경제협의회 직원은 사장단 모임이 끝날 무렵 마이크를 잡고 설문 내용을 발표했었다.
“사장님들 취미는 역시 골프가 제일 많았습니다. 70%가 골프고 등산이나 바다낚시도 있었고 해외여행도 있었습니다. 특이하게 한분이 낮잠자기로 하셨네요.”
“뭐? 낮잠자기?”
모인 사람들이 푸하하 하고 웃었었다. 구건호는 낮잠을 즐기기는 했지만 오래 자지는 않았다. 30분을 넘은 경우는 없었다.
구건호는 잠에서 깨어 시계를 보고 자동차에 실려 있는 생수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창문을 열었다. 공터에 1톤 트럭이 정차해 있었다. 트럭 기사가 창문을 열고 구건호에게 말했다.
“아이고, 아저씨 코 되게 골면서 자데요. 차가 들썩 들썩해서 나는 왜 그런 가 했어요.”
구건호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구건호는 부동산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부동산 오늘 영업하시죠?”
“합니다.”
“조금 있다가 찾아뵙지요.”
“어디시죠?”
구건호는 대답도 하지 않고 그냥 전화를 끊었다.
부동산 사무실은 토요일이 더 바쁜 모양이었다.
땅을 보러 온 손님들이 두 명 있었다. 구건호는 한참을 기다려야만 했다.
손님이 가자 부동산 주인이 설레발을 떨었다.
“아이고 이거 미안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지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어제 정비공장 보고 가신 분이지요?”
“네, 그렇습니다.”
“어째, 생각해 보셨어요? 물건은 좋습니다.”
“평당 200이면 좀 쎄요. 좀 깎을 수 없어요?”
“시세가 있어서 그래요. 내가 땅 주인에게 전화 한번 해보지요.”
주인이 땅 주인과 통화를 했다.
“임자 있을 때 파세요. 요즘 경기가 나빠 공장 매물이 많이 나온 것 사장님도 알잖아요. 지금 오신 손님도 여기 저기 알아보신 모양인데 평당 200은 쎄다고 그러시네요.”
부동산 주인은 또 한참 땅 주인을 설득시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평당 200이면 19억 6천만원인데 19억까지는 맞추어 드리겠다고 합니다.”
“19억이라....19억이면 융자가 40% 받는다면? 11억 4천에 땡길 수 있다는 말인데...”
“융자는 저희가 알선도 해 드립니다.”
“주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분당입니다. 분당에서 수입차 대리점 하고 있는 분입니다.”
“오늘 여기 올수 있냐고 말씀해 보세요.”
부동산 주인은 땅 주인과 또 통화를 했다.
“지금 출발하시겠답니다.”
“그럼 기다리겠다고 하세요.”
부동산 주인이 전화를 끊고 웃으며 말했다.
“분당이니까 한 시간이면 충분히 옵니다.”
“에이, 그렇게 못 와요. 오늘 토요일이라 차 많이 밀려요.”
“밀려야 얼마나 밀리겠습니까? 그럼 손님, 여기서 기다리시겠습니까?”
“아뇨, 밖에 나가 바람 좀 쏘이다가 한 시간 후에 올게요.”
“멀리 가지 마시고 이 근처에 계세요. 땅 주인 오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구건호는 부동산 사무실을 나왔다.
“어디 가서 시간을 보내지? 동탄이나 한번 가볼까? 동탄 정도 갔다 오면 시간이 얼추 되겠는데?.”
구건호는 랜드로버를 끌고 동탄을 향했다.
“동탄이 요즘 뜨는 동네라며?”
동탄은 최근에 개발되고 있는 도시로 하루가 다르게 아파트 건물이 올라가고 있는 도시다. 동탄에 와본 구건호는 놀랐다.
“와, 엄청 번화하네. 동탄이 이렇게 발전된 곳인 줄 몰랐네.”
구건호는 동탄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성환으로 향했다. 돌아보는 시간을 한 시간 정도 예상했는데 오히려 시간이 더 걸려 평택 시내에서 부동산 주인의 전화를 받았다.
“땅 주인 오셨습니다.”
땅 주인은 의외로 젊었다. 40대 초반정도로 밖에 안 되어 보였다.
부동산 주인이 말했다.
파시는 분이나 사시는 분이 모두 젊은 사장님들이니 화끈하게 말씀드리지요. 오늘 계약합시다. 사시는 분은 오늘 계약금조로 얼마 가지고 오셨습니까?“
“오늘 토요일이라 돈을 많이 못 찾아 놓았습니다. 지금 3천만원 가지고 있습니다.”
구건호는 안 포켓에서 천만원 짜리 수표 석장을 꺼내 흔들어 보였다.“
부동산 주인이 파는 사람을 돌아보고 말했다.
“3천이라는데 하시겠습니까?”
파는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동산 주인이 부동산 매매계약서를 꺼내놓고 말했다.
“역시 젊은 사장님들이라 화끈해서 좋습니다. 그리고 부럽습니다. 파시는 분이니 사시는 분이 모두 젊은 사장님들인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지고 계신지 부럽습니다.”
구건호는 중도금은 일주일후, 잔금은 2주일 후에 주기로 하였다. 철거나 대청소는 중도금 치른 후에 바로 하기로 하였다.
파는 사람이 3천만원을 받고 주머니에 넣으면서 말했다.
“이것도 인연인데 인사나 하시죠.”
구건호가 그의 명함을 받아보니 주식회사 형태의 자동차 수입 대리점이었다. 외제차만 취급하는 것 같았다.
“정 사장님이시군요.”
구건호도 명함을 주었다. 정 사장이 명함을 자세히 보았다.
“구 사장님이시군요.”
둘은 악수를 하였다.
“제가 외제차 판매를 하고 있으니 A/S차량이 있으면 구사장님 정비공장으로 보내겠습니다.”
“저는 정비공장이 아니고 트럭이나 중장비 운송이나 대여업을 합니다.”
“아, 그러시군요. 사업 번창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월요일 지에이치 모빌로 출근한 구건호는 박종석 이사를 불렀다.
“야, 너 집에서 회사까지 15분이면 되지?”
“조금 더 걸려. 와이프 직장까지 태워주고 오기 때문에 30분 정도 걸려.”
“제수씨가 퇴근할 때도 픽업해야 되겠구나.”
“아니, 출근만 시켜줘. 올 땐 회사 통근버스 타고 와. 출산하면 회사 그만 다니게 할까도 생각중이야.”
“왜?”
박종석은 말하려다가 송사장이 들어오므로 말을 닫았다. 박종석은 구건호에게 습관대로 반말을 하고 부를 때도 사장님이라고 하지 않고 형이라고 불렀다. 언젠가 이렇게 하는 것을 보고 송사장에게 혼난 적이 있었다.
[이봐, 박이사. 사장님과 둘이 있을 땐 형이라고 불러도 되지만 공식석상에서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형이 뭔가? 형이!]
그래서 송사장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했고 그 후로 부터는 송사장 앞에서 말을 조심했다.
송사장은 지출 결의서 결재를 구건호에게 받고 나갔다.
구건호가 박종석에게 다시 말했다.
“왜 그만둬? 출산하면 유급휴가 안줘?”
“그건 주는데 계속 육아문제가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엄마가 하던 일을 맡아볼까 하는 생각도 있는 모양이야.”
“헤어샵 말이냐?”
“아니면 부동산 중개사 자격증을 따서 자기 아빠가 하던 부동산을 물려받을까도 생각중이야.”
“하하, 계획이 많은 모양이다.”
“재식이 형은 잘 하고 있나?”
“아 참, 그것 때문에 널 불렀다.”